아주 특별한 선물 길벗어린이 작가앨범 9
펄 벅 지음, 이상희 옮김, 김근희 그림 / 길벗어린이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기력이 쇠하여 옆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도 잠이 깨는 할아버지다.  부부 사이엔 아무 문제가 없지만 서로가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해서 각방을 쓴지 오래다.

어느 날 새벽, 까마득한 옛 기억의 습관처럼 새벽 4시 경에 잠에서 깬 할아버지.  오래 전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열다섯 시절의 할아버지는 매일 아침 젖을 짜기 위해서 아버지가 자신을 깨우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더 자고 싶고 피곤하고 춥고...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와 아버지가 하시는 얘기를 몰래 듣고는 아버지가 자신을 깨우는 것을 몹시 가슴 아파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철없던 자신을 반성하며, 아이는 아버지를 위한 멋진 성탄 선물을 준비한다. 이름하여 혼자서 젖을 짜고 아버지를 쉬게 해드리는 것!

작전을 감행하기 위해서 얼마나 설레였는지 모른다.  자정, 새벽 한시, 새벽 두시, 이윽고 새벽 3시가 되기 15분 전, 아이는 살금살금 일어나서 외양간으로 향한다.  소들도 자신의 마음을 아는지 순순히 따라준다.  일을 말끔히 마쳐놓고 청소까지도 끝내놓고 자기 방 침대에 쏙 들어갔을 때 아버지가 깨우러 오셨다.  아이는 졸린 목소리로 곧 나가요~ 했지만, 곧 이어 놀라실 아버지 얼굴 생각에 벌써 흐뭇해진다.

이야기를 읽으면서 혹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서로 엇갈리는 것은 아닐까, 중간에 실수가 생기거나 사고가 있는 것은 아닐까 조바심이 났다.  그러나 이야기는 아이가 준비한 그대로 매끄럽게 진행되어 아버지의 경탄과 감동을 끌어낸다.

아버지는 크리스마스 날 아침에 아이들과 함께 트리 장식을 바라보고 함께 해가 뜨는 것을 지켜보며 같이 있는 시간을 만들어준 것에 더 감사한다.  나누고 싶어도 나눌 수 없었던 그 시간들이 밟혔던 것.

이제 까마득한 시간이 흘렀다.  아이는 할아버지가 되었고 도시로 나간 아이들은 저녁 늦게나 부모님 집을 찾을 것이다.  지난 밤에 채 마치지 못한 트리 장식을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깨기 전에 끝내놓으려고 분주하다.  그리고 오랜만에, 진심을 담은 편지를 나무 잎 속에 달아놓았다.  할머니가 깨어서 이 편지를 받으면 얼마나 기뻐할까를 상상하면서...

거창한 선물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다.  진심을 보여주는 데에는 말이다.  그 속에 마음이 담겨 있고 정성이 깃들어 있다면, 무엇보다 뜨겁고 아름다운 선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모두들 머리로는 아는데, 실제로는 잘 해내지 못하는 가벼운 진리가 아닐까 싶다.

"대지"로 유명한 펄벅의 작품인데, 그래서인지 동양적 정서가 느껴진다는 기분이다.  그림을 그린 사람은 한국 사람인데 글과는 달리 또 대단히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래서 서양 얘기도 동양 얘기도 다 되는, 딱히 구분이 필요 없는 우리네 사람 사는 곳의 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너무 따뜻한 날씨인지라 조금 분위기에 안 맞지만, 훈훈한 정에 세상이 더 아름다워 보이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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