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석기자의영화이야기

엔딩 크레딧의 비밀? 2007-02-13 16:33

영화에서 '엔딩 크레딧' 또는 '엔딩 자막'은 영화가 끝난 후 배우와 스탭, 장소협조, 협찬 등 영화를 만든 사람들과 조직 등을 소개하는 자막이 올라가는 부분입니다. 영화의 상영 길이를 뜻하는 '러닝 타임'은 바로 이 엔딩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를 포함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엔딩 크레딧까지 다 봐야 영화를 끝까지 봤다고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영화관에서 대부분의 관객들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 '아 이제 끝났구나'하며 서둘러 주섬 주섬 챙겨입고 일어서 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뭐 배우와 스탭들 이름 줄줄이 나오는것이 별 의미 없는 정보일 수 있죠. 물론 끝까지 자리를 지켜 불이 환히 켜진 다음에 나가는 관객들도 계시는데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저는 가급적 끝까지 보려고 하지만 그 때 그 때 다릅니다. 최근 기억으로는 러닝타임이 무려 두 시간 반 가까이 되는  007 시사회때 영화 시작 전에 마신 음료수 때문에 중반을 넘어가면서 긴장하고 있다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자마자 총알처럼 화장실로 직행해야 했습니다. 

또 모든 영화가 그렇지는 않지만 엔딩 크레딧에 후일담이나 뒷 이야기, NG 장면 등을 넣어 서비스 차원에서 제공하는 영화들도 많습니다. 어떨 때는 우르르 몰려나가다가 뜻하지 않게 엔딩 크레딧에 이런 화면이 나오면 나가던 사람들이 '어! 저거 뭐야?' 하면서 걸음을 멈추고 어정쩡한 상태로 감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럴 땐 좌석에 앉아있는 관객들 시야를 가리기도 하죠. 제가 본 영화 가운데 독특한 엔딩 크레딧으로 기억에 많이 남아있는 영화들이 있는데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가 그랬고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도 그랬지요. 영화 다 보고 엔딩 크레딧 빼 먹고 나왔다가 나중에 본 사람들에게 내용을 물어보는 사람도 봤습니다.

전성기 성룡 영화의 엔딩 크레딧은 꼭 봐야했고 또 온몸을 던지는 그의 열정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명절 단골 메뉴로 성룡 영화를 자주 틀어주는 TV에서는 편성의 압박 때문에 뭉텅 잘라버리는 무식한 용감함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물론 극장의 대형 스크린에서는 알아볼 수 있지만 보통 TV 수상기로는 깨알같이 작아져 무의미한 경우가 많습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엔딩 크레딧까지 차분하게 보지만 많은 관객들은 서둘러 자리를 빠져나가기 때문에 극장 측도 고민이 많다고 합니다. 자막 올라가면 불 환히 켜고 청소요원들 투입해 관객들을 빨리 몰아내다가 영화팬들의 격렬한 항의를 받기도 했었고, 일부 몰지각한 극장은 아직도 이런 행태를 계속하고 있다고 합니다.

모 극장 체인은 이런 항의를 받아들여 한때 엔딩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불을 안키고 버티다가 우루르 몰려 나가는 일부 관객들이 앞이 안보여 넘어져 다치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할지 난감해 하다가 결국 절충안을 내서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극장 체인의 경우 미등, 반등, 청소등 3단계의 조명을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면 관람에 방해가 안될 정도로 약한 미등을 켜고, 관객이 거의 다 빠져나가면 반등을 켜고 완전히 객석이 비고 청소를 할 때는 환하게 청소등을 켠다고 합니다. 일부 예술영화를 많이 틀어주는 작은 극장들은 엔딩 크레딧이 끝날때까지 절대 불을 켜지 않고 또 관객들도 대부분이 자리를 떠나지 않는 문화가 정착되고 있습니다.

3-4분 내지는 길어야 5분 정도의 엔딩 크레딧을 느긋하게 앉아서 보지 못하는 것도 우리 사회의 '빨리 빨리' 조급증을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떤 사람들이 만들고 출연하고 어떤 업체가 어느 부분을 만들고 어떤 장소에서 촬영했고 등등의 정보를 담은 엔딩 크레딧이 나오는 시간, 공연으로 치면 '커튼콜'에 해당하는 시간입니다. 

감독들은 사실 엔딩 크레딧에 깔리는 음악에 대해 자신의 작품에 마지막 방점을 찍는다는 의미를 갖고 있어서 무척 공들여 만들거나 고릅니다. 글자를 읽지 않더라도 음악감상을 하며 굳이 보너스 화면이 없더라도 내가 본 영화가 어땠는지 한번 음미하는 시간으로 활용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1976년 [록키]의 감동을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는 [록키 발보아]를 보고 엔딩의 특별한 여운이 남아 생각난 김에 한 번 적어봤습니다.

남상석 기자 ssna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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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02-13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스캔들'의 엔딩 크레딧이 인상적이었다. 일찍 나간 사람은 보지 못하는 뒷 이야기가 있었으니까. 그밖에 위대한 유산도 그랬고... 엔딩 크래딧 올라가기 전에 불 켜주고 비키라고 할 때 너무 화난다. 그나저나.. 기자분 제목이 너무 오버스럽다...;;;;

프레이야 2007-02-13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란서생도 엔딩 크레딧에 유머러스한 반전이 나오죠. ^^
브로크백 마운틴의 엔딩 크레딧과 함께 흘러나오는 노래 '그는 내 친구였네'인가,
도 기억이 나요. 엔딩 크레딧은 꼭 보고 일어나야 합니다~~^^

마노아 2007-02-13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음란서생도 아주 재밌었어요. "동영상"이 거기서 나왔던가요^^;;;
브로크백 마운틴을 본 극장이 다 올라갈 때까지 불을 켜주지 않아서 참 좋아라 한답니다. 노래 참 좋았어요. 제목까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