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로 감독판 [dts] (2disc) - 할인행사
김대승 감독, 유지태 외 출연 / 에이치비엔터테인먼트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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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이 좋다는 소리를 들었는데도 미처 극장에서 챙겨보지 못하고 뒤늦게 후회하게 되는 작품들이 있다.  이 영화 '가을로'도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번지점프를 하다와 혈의 누의 김대승이 이 작품의 감독이다.  세 작품 모두 재밌게 인상 깊게 보았는데 이제는 이름을 잊지 말아야겠다.  캐스팅을 잘하는 것도 감독의 역량 중 하나일 것 같은데 이 작품 역시 최고의 캐스팅을 해낸 것 같다.  (유지태의 나직한 음성과 김지수의 청아함과 엄지원의 상큼한 매력이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작품은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막 사법고시를 패스한 현우는 민주와의 결혼을 앞두고 있다.  일이 많아 약속 시간을 맞출 수 없게 되자 기다리겠다는 민주를 백화점 지하 커피숍에서 기다리라고 한다.  이때의 선택을, 그는 이후 얼마나 오랫동안 후회하고 절망하게 되던가.

행복한 미래를 꿈꾸던 단잠이 한순간에 달아났다. 백화점은 붕괴되었고, 그곳에 있던 그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현우는 그 환하던 미소를 잃고 기계적인 삶을 살아가는 메마른 인간이 되고 만다.

검사로 일한지 십년, 사고로부터도 십년이 지났다.  원치 않는 휴직을 권고받은 현우는 민주의 아버지로부터 다이어리를 하나 건네받는다.  그녀가 신혼여행으로 가고자 했던 멋진 여행길이 그곳에 펼쳐져 있었다.  현우는 지친 몸과 마음으로 그 길, '가을로' 떠나게 된다.  그리고 그 길목에서 자꾸 마주치는 인연 하나를 알게 된다.

세진은 가슴의 답답증을 풀고자 훌쩍 여행을 떠난다.  매 길목마다 마주치는 한 남자, 그가 들고 있던 다이어리를 확인하는 순간, 그녀의 얼굴빛이 변한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을 떨쳐내려 애써 피해보려고도 하지만, 필연적으로 그들은 만나게 된다.  그 둘 사이에는 '민주'라는 공통 분모가 있다. 



작품이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은, 저런 곳이 있단 말야?라는 감탄이 나올 만큼 아름다운 절경들이 끝없이 펼쳐진다는 것이다.  그 멋진 풍경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 제작진이 엄청 공을 들였다는 것을 영화 끝날 때까지 계속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그리고 연출의 미학으로, 이미 죽은 민주의 여정과 지금 현재를 걷고 있는 세진과 현우의 여행이 앞뒤로 마주치며 붙어있다는 것이다.  위 사진에서 민주가 떠내려보낸 나뭇잎을, 현우가 집어드는 등의 방법으로 말이다. 

작품에는 멋진 풍경과 멋진 명대사와 명연기가 녹아있는데, 사실 그 모든 것들보다 더 마음을 울리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처와, 그 상처의 오랜 후유증에서 자유를 찾아가는 고단한 삶이었다.  산 사람은 살아야 마땅한데, 그건 말처럼 녹록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 작품의 배경이 된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이 실화라는 점에서 보는 사람 역시 감정이입의 극대화를 피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런 사고가 그 이전에도, 또 그 이후에도 너무 많았다는 점에서 마음은 답답하다 못해 요동을 치게 된다. 


함께 걷던 길을, 이제는 홀로 걷고 있다.  추억은 여전히 귓가에 속삭이지만, 사랑하는 이의 손길은 느낄 수 없다.  그럼에도, 삶은 멈추지 않고 흐르고, 그 흐름에 순응하여 제 자리로 돌아오는 것은 남겨진 이의 의무이며 권리가 된다.  그녀가 그토록 좋아했던 햇살같은 웃음, 그 웃음을 되찾는 것도 그의 의무이자 권리이다. 

영화는 시작할 때의 그 밝음으로 다시 마무리를 짓는다.  상처는 덮었고 이제 새 살이 돋을 것이다.  아픔은 잊기 어렵겠지만 서서히 옅어질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 소중한 이들과 함께 이 영화를 본다면, 사랑은 더 깊어지고 그 소중함은 더 뜨겁게 다가오지 않을까.  모처럼 마음을 울리는 좋은 작품을 만났다.  오늘같이 궂은 날씨엔 유독 더 아플 수 있지만, 지금 들리는 저 빗소리와 자동차 경적 소리마저 살아있음의 흔적이라는 것을 더 선명하게 깨닫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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