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감추는 날 - 웅진 푸른교실 5 웅진 푸른교실 5
황선미 지음, 소윤경 그림 / 웅진주니어 / 200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요새는 갖고 싶은 동화책이 너무 많아져서 책을 펼칠 때 겁이 나기도 한다. 작가분이 너무 잘쓰신 탓이다. 내가 참 좋아하는 황선미 선생님의 동화책 "일기 감추는 날", 필연적으로 "이 일기는 읽지마세요, 선생님"이란 책도 같이 떠올랐다. 접근과 전개가 다르지만, 일기를 감추고 싶은 아이의 마음은 같으니까.

주인공 동민이는 말썽부리지 않는 모범생에 속하는 아이지만 사실은 불만도 많고 겁도 많고 어느 정도 소심하기도 하다. 울타리 넘다가 넘어지는 경수를 목격한 이후 경수와 사사건건 부딪히면서 점점 주눅이 들어간다. 고자질 한 것은 자신이 아닌데 경수는 자신이 일기장에 울타리 넘는 일을 일러바쳤을 거라며 오해하고 동민이를 더 괴롭힌다. 엄마한테 구원을 요청하니 일기장에 솔직하게 적으라고 하셨다. 왠지 고자질 같아서 싫었지만, 어느 날 너무 화가 나서 일기장에 사건의 전후 관계를 자세히 적었다. 그렇지만 선생님께서는 고자질 한다고 오히려 야단만 치실 뿐이다.

 

집에서도 일이 생긴다. 아빠께서 회사를 그만두셨고 엄마와 싸우고, 그럴 때마다 엄마는 홀로 숨어서 우신다. 그 이야기를 일기에 썼더니 엄마는 일기를 지우고 다시 쓰라고 하신다.

동민이는 혼란스럽다. 있는 그대로 일기장에 적고 싶지만, 그 일기장을 원하는 대로 쓰라고 강요하는 엄마나, 자신의 일기장을 매번 검사하는 선생님도 못마땅하다. 경수 때문에 불안한 마음에 짓눌리는 것도 힘겹고, 일기장을 내지 않았다가 벌 청소하는 일도 기막히다.

 

작품이 훌륭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철저하게 열 살 아이의 입장에서 서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엄마는 당당하게 경수한테 대항하라고 하지만, 영화주인공도 아닌데 엄마는 무리한 요구를 하신다고 동민이는 생각한다. 어른인 엄마가 보기엔 너무 당연한 얘기이지만, 아이인 동민이에게 힘도 센 경수에게 마음 속 말을 그대로 전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선생님은 바른 교육의 차원에서 일기의 본질을 설명해 주시지만, 어린 동민이 마음엔 선생님이 야속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일기는 내 것인데 선생님이 맘대로 보시는 것도 서럽다. 일기 때문에 자꾸 스트레스를 받는 동민이는 아예 일기가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검사 받지 않아도 될 일기를 쓰고 싶은데 열 살 동민이의 환경에선 그건 안 될 일이다. 같은 반 수연이는 일기장을 두 개 만들어서 검사 일기장과 검사 받지 않을 일기장을 따로 만들라고 귀띔을 해주었지만 어쩐지 그건 싫다. 동민이는 일기 말미에 선생님께 보내는 편지를 짤막하게 쓴다. 비밀이 있어서 쓸 수 없다고... 엄마가 아직까지 슬프시기 때문이라고...

 

 동민이의 이 고백은 선생님께도 변화를 가져왔다. 일기 쓰기가 너무 어려운 날은 그런 편지도 가끔은 괜찮다고... 이제 동민이는 마음이 가벼워져서 날 듯하다. 전 날 교실 문을 잠근 탓에 제일 먼저 등교하여 교실 문을 열 때, 잠든 교실을 깨우는 것 같다고 한 동민이의 표현은 답답했던 자신의 마음 문 열쇠를 연 것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이제 동민이의 일기는 부러 감추지 않아도 되는 일기가 될 것이다.

 

책에서 등장인물들은 모두 자신의 눈높이에서 이야기를 한다. 어른들은 시시콜콜 아이들의 일을 알려고 하면서 자신에게는 집안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려주지 않는 엄마 아빠가 야속하다고 하는 동민이의 말은 뜨끔하다.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로만 인식했던 경수가 울타리 넘을 때 방법을 알려주고 잘 하지 못했을 때 처음엔 다 그렇다고 격려해주는 모습은 동민이 뿐 아니라 나 역시 훈훈한 미소를 짓게 해준다.

 

전체적으로 익살맞은 그림들에 과장된 원근법과 사진을 오려붙인 것 같은 효과 등 다양한 시도가 도입되었는데 그 엉뚱함을 즐기는 것도 책을 보는 큰 재미에 속한다.

대체로 아동용 동화책을 많이 보았는데 근래에는 초등학생용 동화책에 큰 매력을 느낀다. 이 책은 나의 조카가 몇 년이 지나야 소화를 할까...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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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06 10: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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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02-06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제가 엄마라도 이 문제는 굉장히 어려울 거란 생각이 들어요. 아예 안 보기도 힘들고, 보고서 모른 체 하기도 힘들구요. 엄마든 선생님이든 '지혜'가 많이 필요해요. 아이들보다 갑절은 고민해야죠^^;;;

2007-12-15 02: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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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15 07: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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