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듀나(Djuna)djuna01@empal.com
올해 아카데미상 후보작들이 발표되었습니다. 이전엔 뒤늦게 텔레비전이나 신문을 통해서야 접할 수 있는 소식이었지만 그동안 세상이 좋아졌죠. 요샌 CNN 사이트에 들어가 생중계로 후보작 발표를 볼 수 있습니다.

올해는 분위기가 어떤가요? 흠… 일단 마틴 스콜세지가 <디파티드>로 또다시 아카데미에 도전한다는 사실을 덧붙여야겠군요. 수상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인상적인 영화지만 그의 전작들만 한 힘은 없는 것 같거든요. 작은 영화로 선전한 작품으로는 <미스 리틀 선샤인>이 있군요. 엄청나게 신선한 영화는 아니지만 이야기의 느낌이 좋았고 캐릭터들이 무척 사랑스러운 영화였지요. <타이타닉>의 두 주연배우였던 케이트 윈슬렛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모두 주연상 후보에 오른 것도 주목할 만합니다. 물론 엄청난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여우주연상은 헬렌 미렌에게 돌아가겠지만요.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올해 미렌에게 상을 주지 않는다면 아카데미는 그 뒤로 몇십 년 동안 욕을 먹겠지요. 그 이외에는?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귀향>이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에서 탈락했군요. 기예르모 델 토로의 <판의 미로>에 밀린 걸까요? 하지만 <판의 미로>는 공식적으로 멕시코 출품작이라고 알고 있는데… 뭐, 사정이 있겠죠.

참, <왕의 남자>는 후보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사실 기대도 안 했어요. 좋은 부분이 많은 영화였지만… 글쎄요. 솔직히 이런 영화상에서 경쟁력이 그렇게까지 높을 거라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 해당 시기에 만들어진 한국 영화 중 아카데미 회원들의 구미에 가장 맞는 영화였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고요.

하긴 그런 게 좀 있습니다. 한국에서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후보로 내세우는 영화는 모두 조금씩 어긋나는 부분이 있어요. 당시 만들어진 최고의 영화는 당연히 아니고, 은근히 나들이 옷 입고 서울 구경 온 촌 아가씨 분위기의 선정을 하는 경우가 많죠. 웃기는 건 정작 이런 선정의 대상이 되기 전에 그 영화들이 지녔던 고유의 장점도 선정 과정 중의 정치와 나들이 옷 단장, 눈치 보기 속에서는 은근슬쩍 사라져버린다는 것입니다.

칸이나 베를린과 같은 국제 영화제에 선정되는 영화는 사정이 다릅니다. 그 경우엔 일단 칼자루를 영화제 측에서 쥐고 있으니 이런 식의 눈치 보기가 해당사항이 되지 않으니까요. 그 때문에 무슨 영화가 출품되건 우린 큰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영화를 고른 사람들도, 레드 카펫을 타는 영화인들도 자기네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지요. 낯부끄러울 일은 없습니다. 하지만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후보로 내세우는 영화를 보면 사정이 달라요. 괜히 안쓰럽고 보고 있으면 몸 어딘가를 긁고 싶어집니다.

왜 이렇게 어색한 걸까요. 그거야 우리가 아카데미를 보고 거기에 대응하는 관점이 한심할 정도로 촌스럽기 때문입니다. 우린 이 행사를 철저하게 국가주의적인 관점에서 보고 있어요.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도전하는 건 영화 올림픽에 참여하는 것이고 거기에 후보로 오르거나 상을 타는 건 자랑스러운 태극기를 휘날리며 국위선양을 하는 것입니다. 모 은행 광고에 나와서 열심히 국가를 위해 ‘뺑이’를 치는 불쌍한 비보이들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물론 이 모든 건 사정이 다릅니다.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은 할리우드 동네 영화제의 장식에 불과하고 정말로 거기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아카데미 후보에 오르지 않았다고 <귀향>이 <판의 미로>보다 못한 영화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을 거고요. 여기서 상처받는 사람은 시시때때 국위 선양의 기회를 노리는 사람들이죠. 그게 누구건 간에요. 솔직히 우리가 지금까지 계속 후보에 오르지 못했던 것도 그 사람들이 지나치게 힘을 주고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아마 한국 영화도 언젠가 이 영화상의 후보에 오르긴 하겠죠. 오르면 ‘국위선양’도 어느 정도 할 수 있을 거고. 하지만 그건 국위선양에 목숨 거는 그 아저씨들이 어깨 힘을 어느 정도 푼 뒤에야 가능할 걸요. 그래야 눈이 뚫리고 정치와 홍보에도 더욱 유연한 태도로 대응할 수 있을 테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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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SF 작가. 하이텔 아이디 듀나(DJUNA)로, 1994년부터 온라인 활동을 시작했다. 1996년 잡지 <이매진>에 판타지, 미스터리, 호러 등 장르가 모호한 단편을 연재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1997년~1998년에는 씨네 21에 칼럼 `듀나의 채팅실`을 연재했다. 현재 `듀나의 영화 낙서판`을 운영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나비 전쟁』,『면세구역』,『스크린 앞에서 투덜대기』,『태평양 횡단특급』, 『대리전』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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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7-01-26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국위선양, 이제 이런 말에 좀 초연해지면 안 될까 싶어요 머리에 쥐나려고 해요... 그리고 듀나라는 분, 싸이트 들어가 보셨어요? 꽤 재밌더라구요

마노아 2007-01-26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싸이트로 직접 들어가보진 못했어요. 예술이든, 스포츠든... 암튼 세계에서 이름을 떨치게 되는 어떤 기회에 있어서 우리가 대단히 조급해하는 경향이 있어요. 조심스러운 얘기지만 힘겨웠던 지난 시절과 약소국으로서의 비애같은 것이 겹쳐서 있는 그대로를 즐기기보다 그 이상의 부담을 스스로 지우는 것 같아요. 일종의 신드롬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