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출간… 류시화씨 편역한 시선집 출판사 “표지 바꾸고 사용료 지불할 것”
국내 유명 시인이 엮은 한 베스트셀러 시선집의 표지가 미국의 한 시집 표지를 색깔만 바꾼 채 그대로 베낀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가 된 시집은 동서고금의 유·무명 시인들의 시 77편을 시인 겸 출판기획자인 류시화씨가 번역하고 묶어 낸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오래된미래)이다. 치유와 깨달음을 노래한 시들을 묶은 이 시집은 2005년 3월 출간됐으며, 시집으로는 드물게 20만부 이상 팔려 나가는 성공을 거두었다.
‘사랑하라…’의 표지는 지팡이의 손잡이 끝 부분에 사람의 눈을 세로로 그려 넣은 것으로, 국내 디자이너 H씨가 운영하는 ‘행복한물고기HappyFish’에서 디자인한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이 책의 표지는 인도네시아 출신의 중국계 미국 시인 리영리(Li-Young Lee)가 1986년 발표한 영시집, ‘장미(ROSE)’의 표지 그림과 음양의 대조만 다를 뿐, 동일한 형태이다.〈그림 참조〉
이같은 사실은 영시집 ‘장미’를 최근 입수한 한 대학교수의 제보로 밝혀졌다. 국내 종합베스트셀러 순위(출판인회의 집계) 1위인 번역서 ‘인생수업’(이레 출판사)이 표절 논란으로 이달 초 소송에 휘말린 데 이어 올해에만 벌써 두 번째 저작권 도용 시비가 일자 출판계가 술렁이고 있다.
‘장미’는 미국 뉴욕에 소재한 BOA 에디션(BOA EDITIONS) 출판사에서 출간했으며, ‘표지그림:리린리(Cover Art:Li-Lin Lee)’라고 저작권을 명기하고 있다. 이 시집은 ‘내 사랑하는 사람들의 잠든 모습을 보며’(나무생각)라는 제목으로 지난 2000년 국내에 번역 소개됐지만 원작과는 다른 표지를 쓰고 있다.
표절 의혹이 제기되자 오래된미래 출판사측은 “문제가 된 표지를 속히 교체하고, 미국 출판사와 협의해 정식 저작권 계약을 맺고 그간의 표지 사용료도 지불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 저작권자가 합의를 거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향후 사태추이가 주목된다. 본지는 ‘사랑하라…’의 표지 제작과정을 확인하기 위해 ‘행복한물고기’측과 전화접촉을 시도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김태훈기자 scoop87@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