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라미닌 > 요 4:43-54 믿고 가더니

 

요 4:43-54 믿고 가더니


부모는 자식을 끔찍이도 사랑합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황제펭귄(몸집이 크고 목과 가슴에 황금색 털이 있습니다.)은 새끼를 유별나게 사랑합니다. 황제펭귄은 다른 펭귄과 달리 4~5월경에 해안에서 100㎞ 이상 떨어진 내륙에서 짝짓기를 해서 5~6월경에 남극에서 알을 낳습니다. 엄마 황제펭귄은 알을 낳으면 먹이를 섭취하기 위해 바다로 떠나갑니다. 아빠는 알을 발등에 얹어서 뱃가죽으로 덮고 영하 40-50도의 혹한 속에서 아무것도 먹지 않고 2개월 정도를 견딥니다. 아빠가 알을 품고 있는 동안 하얀 눈 속에 덮인 크레바스가 나타나 수백 미터의 빙하 속으로 떨어뜨리기도 하고, 시속 300킬로미터의 차가운 바람이 살갗을 파고들기도 하고, 바다표범이 물 속에 솟구쳐 오르기도 하고, 갈매기가 하늘에서 부리로 쪼아대기도 합니다. 아빠는 알을 보호하기 위해 필사적입니다. 2개월이 지나면 아빠의 체중은 40% 정도 줄어듭니다. 엄마가 영양을 보충하고 돌아와서 알에서 깨어난 새끼를 돌보면 아빠는 먹이를 섭취하기 위해 바다로 들어갑니다. 아빠는 영양을 보충하고 돌아와서 엄마와 교대합니다. 그러나 아빠는 너무나 탈진한 나머지 20% 정도밖에 생존하지 못합니다. 황제펭귄은 부성애가 강한 동물입니다. 아빠 황제펭귄의 모습은 아버지의 모습과 유사합니다. 펭귄이 크레바스와 혹한으로부터 알을 지키려고 온갖 고생을 이겨내듯이 아버지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과로를 합니다. 펭귄이 바다표범과 갈매기의 공격을 막아내야 하듯이 아버지는 윗사람의 질책과 아랫사람의 추격으로부터 자리를 지키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황제펭귄처럼 자식을 끔찍이도 사랑하는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왕의 신하였습니다.(46절)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은 남쪽의 유다와 중앙의 사마리아와 북쪽의 갈릴리로 나뉘었습니다. 아버지는 북쪽의 갈릴리를 다스리던 헤롯 안티파스의 신하였습니다. 고위직 공무원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세상에서는 성공했으나 가정에서는 실패했습니다. 아들이 병들어서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성공하더라도 가정에서 실패한다면 100에다 0을 곱하는 것과 같습니다. 결과는 0 입니다. 실패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고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습니다. 유명하다는 의사는 다 찾아가 봤으나 어떤 의사도 병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몸에 좋다는 약은 다 먹여봤으나 어떤 약도 차도가 없었습니다. 아들은 상태가 악화되어 죽을 날만을 기다렸습니다. 아버지는 죽어가는 아들을 지켜보는 것이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들을 살리고 싶었습니다. 아버지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비추었습니다. 예수님이 유다에서 머물다가 사마리아를 거쳐 갈릴리에 도착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출신의 유랑 설교자였습니다. 시골 출신의 부흥사였습니다. 병든 자도 고치고 죽은 자도 살렸습니다. 아버지는 예수님이라면 아들을 고칠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아버지는 예수님에게 찾아갔습니다. 고위직 공무원이 신분도 벗어버리고 시골 출신의 부흥사에게 찾아갔습니다. 아버지에게 병든 아들이 있었듯이 우리에게도 간절한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살리기 위해 신분을 벗어버리고 예수님에게 찾아갔듯이 우리도 기도응답을 받기 위해 체면을 벗어버리고 예수님에게 찾아가야 합니다.


아버지는 가버나움에서 가나까지 32킬로미터를 걸어가 예수님에게 부탁하였습니다. “(가버나움으로)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아버지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꿈쩍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사람들을 나무라셨습니다.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기적을 보지 않으면 도무지 믿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하셨습니다. 눈으로 봐야만 믿는 세태를 탄식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애가 탔습니다. 아들은 시시각각으로 죽어가고 있는데 예수님은 고쳐주시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다시 한 번 예수님에게 간청하였습니다.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아버지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떨어졌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에게 찾아갔으면 들어주실 때까지 간청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응답해 달라고 조바심을 부리지만 예수님은 ‘가장 적당한 때’에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눈물로 간청하자 예수님의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네 아들이 살아있다.” 예수님은 아들이 살아났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아버지는 평민도 아닌 고위직 공무원입니다. 젊은이도 아닌 노인입니다. 가까이도 아닌 먼 곳에서 찾아왔습니다. 이 정도 되면 예수님이 아버지의 집으로 찾아가서 안수기도를 해주는 성의는 보이면 좋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집으로 찾아가지도 않았고, 안수기도도 해주지 않았고, 말씀만으로 병이 나았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만약 성미가 급한 사람이라면 예수님도 너무 하십니다 고 원망할 겁니다. 의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집까지 가서 안수기도 해 달라고 손목을 잡아 끌어당길 겁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50절) 믿으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납니다. 지면에 있는 양전하와 구름에 있는 음전하가 만나면 번개가 치듯이 사람의 믿음에 하나님의 능력이 결합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20 장 29 절을 통해 부활을 의심하는 도마에게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에도 단계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보고서 믿는 믿음과 보지 않고도 믿는 믿음. 아버지는 보지 않고도 믿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믿음으로 치유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본인의 믿음이 아닌 다른 사람의 믿음을 통해서도 기적이 일어난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서 7장 16절을 통해 결혼에 대한 질문에서 “(신앙 생활하는) 아내 된 자여 네가 (신앙 생활하지 않는)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반대로) 남편 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라고 답변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신앙 생활하는 아내의 믿음으로 신앙 생활하지 않는 남편을 구원할 수 있고 반대로 남편의 믿음으로 아내를 구원할 수 있다고 답변하였습니다. 우리가 기도제목이 있으면 예수님께 찾아가고 찾아갔다면 들어줄 때 까지 간청하고 간청했으면 들어주실 줄 믿어야 합니다. 아버지의 믿음을 통해 아들의 병이 나았듯이 아내의 믿음을 통해 남편이 구원받을 수 있고 남편의 믿음을 통해 아내가 구원받을 수 있듯이 우리의 믿음을 통해 다른 사람의 기도가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집으로 가는 길에서 마중 나오는 종들을 만났습니다. 종들은 너무 기뻐서 주인에게 도련님의 병이 나았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아버지가 종들에게 아들의 병이 나은 시각을 물어보니 예수님이 나았다고 선언하신 어제 7시(오후 1시)였습니다. 아버지의 믿음대로 아들이 병이 나았습니다.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가서 온 집안 식구들을 전도하였습니다. 우리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맛있다고 알리듯이 우리가 기도응답을 받았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기적을 간증해야 합니다. 구원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해야 하듯이 기적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간증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의 믿음을 통해서 기도 응답을 받기도 하듯이 우리의 간증을 통해서 구원을 받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지면의 양전하와 구름의 음전하가 만나 번개를 치듯이 우리 교인들의 믿음에 하나님의 능력이 결합하여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