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르마르 가이아에게 바침

어둠 속에 고요히 누워 있는 가이아
그녀는 아체의 고아로 자라났다네
배불리 한 번 먹어 보지 못하고
따뜻한 가족을 느껴 보지 못하고
누군가의 품에 안겨 마음껏 울어 보지 못했다네

하늘도 착한 그녀에게 미안했던지
사람 좋은 남자를 보내 주었다네
처음으로 가정을 갖고 아이를 낳아
작은 뜰에는 꽃향기가 그윽하고
집안에는 늘 웃음꽃이 피었다네

언제부터인가 그녀는 괜스레
미안하고 눈물나고 죄송스러웠다네
한 번도 자신을 안아 준 적 없는 세상에게도
너무 일찍 그녀를 던져버린 하느님께도

우편배달부 남편도 그녀의 마음을 알아챘던지
늘 가난한 사람들에게 슬픈 소식만 전해야 하는
자신의 우편가방에 버려져 우는 아이들을
하나 둘 담아 오기 시작했다네

박봉을 털고 결혼반지를 팔고 작은 집을 내놓고
두 사람은 고아들과 한 밥상에 둘러 앉아
똑같이 먹고 똑같이 자고 내 자식이건 고아들이건
같이 입히고 같이 젖 물리고 같이 공부시켰다네

어느 날부터인가 그녀는 젖가슴이 아파 왔다네
너무 많은 고아들은 너무 작은 그녀 가슴에 안겨
너무 많은 젖을 빨아 먹었다네
가난으로 버려진 아체의 아이들,
총살당한 부모 품에서 살아나온 아이들,
쓰나미로 홀로 남아 울고 있는 아이들,
그녀는 자신의 가슴에 젖이 마르고
피가 나오기 시작한다는 걸 알면서도
배고프고 사랑이 고픈 저 아이들을
차마 물리칠 수가 없었다네

그녀의 젖가슴에는 몹쓸 암이 생겨나
하루 하루 전신으로 퍼져 나갔다네
이제 아이들은 다시는 그녀 품에 안길 수 없게 되었지만
한참 크는 아이들은 어두운 골방에 누워 죽어가는
젊은 어머니를 금세 잊어버리곤 한다네

그녀는 누워서도 미안하기만 하다네
병들어 짐이 되는 자신을 미안해하고
자신을 만나 빚만 지고 고생만 하는 남편에게 미안해하고
병원에 가자는 것도 미안해하면서 그녀는
오늘은 어느 아이가 아픈가
오늘은 어느 아이가 힘든가
오늘은 어느 아이가 슬픈가만 챙기며

반신불수로 비틀려 가는 입에서는 오직
라압......미안하다
알 함두릴라......감사하다
아꾸찐따 빠따무......사랑한다

세 마디만 띄엄 띄엄 되뇌인다네

이제 그녀는 아체의 어둑한 구석방에 누워
뼈아프게 파고드는 암조차 따뜻이 껴안으며
하루하루 고요히 기도하며 죽어가네
아체의 고난과 불행을 그 작은 몸에
다 품고 가겠다는 듯이
아체 아이들의 미래에 드리운 어둠을
다 끌어안고 묻히겠다는 듯이

세상은 그녀에게 미소 한 번 주지 않았지만
그녀는 버려진 세상을 다 품고 가시네
그녀는 세상의 가정에 빚진 것 하나 없지만
이 지상의 가정들은 그녕네게 빚진 게 없을까

그녀는 자신을 너무 일찍 따서 버리고
자신의 작은 젖가슴을 너무 많이 빨아 가고
이렇게 다시 너무 일찍 내던져 버린
세상을 조금도 원망하지 아니하고
라압......미안하다
알 함두릴라......감사하다
아꾸찐따 빠따무......사랑한다며
가난과 공포와 절망이 자욱한 아체의
어둡고 습기찬 구석방에 누워
버림받은 여신처럼 죽어 가시네
어둠 속의 별처럼 사라져 가시네

<아체는 너무 오래 울고 있다>박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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