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만에 다시 찾은 반다아체
울렐르 마을 사람들은
파도가 철썩이는 바닷물 속에
젓가락만한 바까오 나무를 심고 있었다
인도네시아 계엄정부는 쓰나미 넉 달이 지나도록
아무 지원도 복구도 방파제도 해주지 않아
살아남은 주민들끼리 오래된 지혜를 모아
마을 해변에 바까오 나무를 심기로 했단다

파도 치는 바닷물 속에 심는
가느다란 바까오 나무들
정말 자랄 수 있을까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정녕 뿌리 내릴 수 있을까

지지대를 박고 있던 넨 샤팟은
인샬라! 잔잔한 미소를 짓는다

이 여린 바까오 나무가 지진해일을 붙잡아주고
연약한 우리를 지켜줄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자꾸 절망하려는 우리의 마음은
붙잡아 줄 수 있을지도 몰라요
오늘 하루에도 몇 번씩 울부짖고 싶고
죽어간 가족들과 약혼녀가 생각나 미칠 것만 같고
폐허가 된 마을 재건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그만 밀림으로 들어가 총을 들고 싶은 마음이에요
힘내자고 마음먹어도 자꾸만 무너져요

핏빛처럼 붉은 아체의 석양 노을이
넨 샤팟의 눈물 방울에 어리고 있었다

이 어린 바까오 나무가
지진으로 갈라진 내 마음에
질긴 뿌리를 내려 주면 좋겠어요
어릴 때부터 파도 소리를 듣고 자라났는데
아체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형들이 하나둘
밀림으로 들어가 전사했다는 소식이 올 때마다
바닷가에 홀로 앉아 파도와 함께 울었는데
이 녀석도 파도 속에 울며 자랄 운명이네요

넨 샤팟은 바닷물 속에 무릎을 꿇고
어린 바까오 나무를 하나하나 심어가며
그 곁에 지지대를 박아 주는 것이었다
절망의 밑바닥에 뿌리 박지 않은 것은
진정한 희망이 아니라는 듯 단단히, 단단히
파도 속에 어린 바까오 나무를 심는 것이었다

<아체는 너무 오래 울고 있다> 박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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