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량한 잔해 더미에 쪼그려 앉아
나무를 심고 있는 로스니 할머니를 만났다
타는 불볕 아래 도저히 살 것 같지 않은
어린 파파야 망고 끌라빠 아슴나무

평생 소망이던 메카 순례를 다녀와 보니
집도 남편도 아들딸도 손주 녀석들까지
한꺼번에 쓰나미가 쓸어가 버렸단다

이 폐허 위에 무엇이 더 남았다고
홀로 어린나무를 심어 가는 걸까
할머니는 땀을 훔치며 말씀하신다

보다시피 난 이제 살날이 많지 않다오
생각해 보니 내가 이 마을에 할 수 있는 거라곤
이렇게 나무를 심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오
흙심도 없는 곳에 나무를 심는 게
이 어린 것들에게 미안하기도 하지만, 어쩌겠소
이 어린 것들이 날 이렇게 붙잡아 주는 걸

손주라도 하나 살아남았더라면
이 나무들을 끝까지 지켜봐 줄 텐데...
이 나무들이 자라나고 누군가 여기에
다시 집을 세울 수 있으면 좋으련만...
로스니 할머니는 오래 참아온 눈물을
시들거리는 나뭇잎에 떨구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고개를 떨구며 깨달았다
남김없이 절망한 사람만이
욕심 없이 희망할 수 있다는 걸
진정한 희망은
희망 없이 희망해야 한다는 걸
절망은 개인적일 수 있지만 희망은
개인의 희망을 넘어선 곳에서만 가능하다는 걸

<아체는 너무 오래 울고 있다> 박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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