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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 : 단 두 회 만에 <하얀 거탑>에 대한 반응이 뜨거운데요. 지금까지 김명민씨가 보기에 어떤 드라마인 것 같아요?


김명민 : <하얀거탑>의 1,2회는 오프닝 개념으로 인물들을 소개했다면 3,4회부터는 진미가 나와요. 지금 8회까지 대본이 나와 있어서 중간 중간 찍고 있는데 장준혁이 외과 과장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굉장히 흥미진진해요. 긴장감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인데... 지금 상황으로는 굉장히 좋아요. 주변에서 말씀하시는 것 들어보면 반응이 너무 뜨거워서 우리가 반응에 되려 놀랄 정도라 기분은 좋죠.


강명석 : 자연스럽게 김명민씨의 연기도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이번 캐릭터는 <불량가족>이나 <불멸의 이순신>에서와 달리 선악의 개념 자체가 모호한, 어떻게 보면 가장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성격을 가진 인물이잖아요. 김명민씨가 생각하는 장준혁이란 캐릭터는 어떤 인물인가요?


김명민 : 인간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면이 있는데, 남들은 그걸 잘 표현하지 못하잖아요. 그런데 장준혁은 그걸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서 목표에 한발자국씩 다가가는 아주 현실적인 인물이에요. 그래서 때로는 비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고, 때로는 굴욕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연민을 보여주기도 하고 동정을 일으키기도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너무나 인간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강명석 : 왜 장준혁은 그렇게 갈등하면서까지 앞으로 가는 걸까요?


김명민 : 사람은 누구나 목표가 있잖아요. 그런데 장준혁은 가진 게 너무 많은 사람이에요. 타고난 수술 실력도 있고 야망도 충분하고. 그러니까 그걸 바탕으로 앞으로 더 나가고 싶어질 수밖에 없죠. 그런데 주위에서는 장준혁을 가만히 놔두지 않으니까, 밟으면 밟을수록 올라가려고 하게 되는 거에요. <하얀거탑>에서 대학병원은 줄을 잘 못타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정치 조직과도 같은 곳이거든요. 그러다보니까 실력있는 자, 특히 자기 스스로가 실력을 인정하고 있는 사람이 어떤 주변의 태클이라든가, 자신을 억누르려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건 당연한 것 같아요. 그래서 장준혁은 자꾸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고 하고 주변에서는 끌어내려고 하고. 그러다보니 더더욱이 장준혁의 욕구는 발산되고. 장준혁은 아마 끝이 없을 거에요. 외과 과장이 되면 병원장을 노릴거고, 그 다음에는 세계 외과 학회로 나가서 학회장이 되도 그 욕심은 사라지지 않을 거에요.


강명석 : 그래서 연기 톤 자체가 굉장히 달라지게 된 것 같아요. <불량가족>에서는 아무래도 캐릭터가 겉으로 확 드러났다면 이번에는 겉으로 보기엔 의중조차 파악이 되지 않는 인물인데.


김명민 : 어떤 부분에서는 굳이 드러내지 않고 시청자들 마저도 다 속여야 하는 부분이 있죠. 억지로 한다고 해서 되는 건 아니고 대본 자체가 디테일하게 나와 있어서 대본에만 충실하면 시청자들이 캐릭터의 의중을 궁금해하게 되는 것 같아요.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이다 보니까 가장 리얼리티에 충실한 연기를 해야 한다는 게 힘들죠. 그게 가장 큰 매력이기도 하구요.


강명석 : 그 리얼리티라는 게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김명민 : 진정성이죠. 시청자들이 볼 때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게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어떤 인물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느낌. 어떤 집에서, 또는 어떤 방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벽 한쪽을 뚫고 내가 그 집안을 들여다보는 느낌같은 거. <하얀거탑>의 경우에 장준혁은 철저한 계산하에서 말을 하지만 보는 사람은 그 의중을 모르다가 후에야 알게 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시청자들이 미리 그걸 알게 된다면 그건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거에요. 현실에서 저 놈 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는 것처럼, 연기에서도 그런 부분이 필요하다면 그대로 보여줘야 해요.


강명석 : 그점에서 목소리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특히 부원장에게 췌장암 환자에 대해 이야기할 때. 평소의 목소리와는 다르게 확실하게 내가 이 사람에게 잘 보여야한다는 티가 났던 것 같거든요. 그러면서도 어색하게 이 사람이 가짜로 이런 모습을 보이는구나 싶은 건 아니었구요. 다른 사람들은 그냥 일상적인 대화로 받아들일 것 같은, 그런데 본인은 그게 연기라는 걸 알고 있는... 굉장히 미묘한 느낌이었어요.


김명민 : 장준혁의 안으로 들어가서 장준혁이 왜 이런 행동을 해야하나 합리화 시켜봤어요.

합리화 시키다보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거든요. 사람의 행동이라는 게 먼저 마음으로 느끼고 감정을 느끼고 뇌를 통해서 행동으로 나오는 거잖아요. 내가 이 사람을 속여야겠다라고 생각하면 가장 자연스럽게 표현할 때 속일 수 있는 거지, 그게 안되면 실제로 속일 수 없는 거에요. 아직 나온 내용은 아니지만 내가 이주완 과장 방에서 문을 잠궈 놓고 뭘 하다가 이주완 과장에게 들키는데, 거기서 막 당황하고 그러면서 시청자들에게 보여주려는 연기를 하면 그건 거짓된 연기에요. 거기서 완전히 이주완 과장을 속이려고 하면서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줘야 진정성이 있는 거죠.


강명석 : 장인어른과 술을 마실 때 돈을 받으며 크게 웃는 것도 아닌데 표정이나 목소리에 저 사람이 기뻐하고 있구나하는 걸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장면도 인상적이었어요. 크게 표정이 변하는 건 아닌데 희노애락이 정확하게 표현되는 느낌이었는데. 


김명민 : 장준혁이라는 인물은 1차원적인 인물이 아니에요. 3차, 4차원적인 인물이잖아요. 바로 즉흥적인 반응이 오는 게 아니라 먼저 머리에서 계산이 확 돌아요. 이 돈이 내 앞에 왔을 때 왜 그런지 계산해보고, 그게 자기에게 좋은 방향일 때 좋아하는 거죠. 그러니까 그 서서히 변하는 감정의 변화, 그리고 아주 내놓고 기뻐하지는 않는 장준혁의 평소 성격이 반영되는 거죠.


강명석 : 그런 톤은 단지 그 상황을 잘 이해한다고 되는 것 같지는 않아요. 말그대로 장준혁이 처해있는 전반적인 상황을 다 인지하고 몰입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의사를 연기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했나요?. 단지 수술씬을 제대로 하기 위한 부분 말고도 다른 노력이 들어갔을 것 같은데. 


김명민 : 솔직히 손놀림이나 수술같은 것은 비디오를 틀어놓고 연습해서 반복 숙달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봐요. 그건 기술적인 측면이고, 그보다 중요한 건 의사들의 고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의사와 이야기하고 식사도 같이 하면서 이야기들을 많이 듣고. 나와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이 사람의 직업도 참으로 고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런 부분에 더욱 집중해서 듣게 되고. 의사라고 하면 예전에는 그저 단순히 사람의 병을 고치는 사람, 나와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많이 달라졌어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고, 생명의 소중함이라는 것에 대해 잘 인식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예전에는 의사가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치부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생과 사를 워낙 많이 경험하다보니 무뎌졌을 거라고 짐작했죠. 그러나 그런 무뎌짐 속에서도 사람의 생명을 살리려는 그 뜨거운 부분들, 그런 그런 사투하는 모습에 많은 공감을 하게 됐어요.


강명석 : <닥터스>의 진행은 어때요? 첫 MC진행일 뿐만 아니라 지금 하고 있는 배역과 관련이 있어서 느낌이 남다를 거 같은데.


김명민 : 힘들어요. 때론 이성적으로 내 표정을 감추고 정보력을 전달하는데만 집중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들 때문에 이성과 감정 사이의 어떤 경계선을 넘어서면 안돼요. 딱딱한 용어를 알아듣기 쉽게 전달해야하는 것도 어렵고. 연기는 몰입해서 하면 시청자들도 믿을거라는 자신감이 있는데 <닥터스>같은 경우는 그런 중간선에서 정보를 전달해주면서 얼마나 호소력있게 전달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있죠.


강명석 :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다른 좋은 배우들이 많았지만 어쨌건 김명민씨가 드라마의 모든 짐을 끌고 가야 했잖아요. 반면 <불량가족>에서는 뛰어난 연기력의 중견 배우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조화되는 느낌이 강했구요. <하얀 거탑>에서는 김명민씨가 극의 중심이면서 굉장한 무게감을 가진 배우들과 숨막히는 연기를 펼쳐야 하는데요. 그런 배우들과 치열하게 치고 받는 연기를 해야한다는 데 대한 부담은 없나요?


김명민 : 부담감보다는 굉장한 힘이죠. 극 자체를 혼자 끌어간다는 건 정말 힘들어요.  누가 아무리 옆에 있어도 결국 그건 내가 끌어가야 하는거니까요. <불멸의 이순신>에서는 이순신한테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니까 한 회 한 회 찍으면서 엄청난 부담이 됐죠. <하얀거탑>도 힘들기는 마찬가지긴 해요. 어쩔 수 없이 장준혁을 따라가는 드라마니까. 어떻게 보면 장준혁의 일생을 그리는 거잖아요. 그런데 훌륭한 선배님들이 그 짐을 덜어주시는 거죠. 뭘 등에 업고 가는 느낌이에요.


강명석 : 집중력을 유지하기는 어때요? 한 씬안에서도 다양한 컷들이 들어가 있어서 계속 여러번의 씬을 찍기도 하는데.


김명민 : 그건 배우의 몫이죠. 계속해서 집중하는 수밖에 없어요. 아무리 찍은 걸 한 참 뒤에 또 찍어도 내 몫인 거죠. 감독님도 많이 배려를 해주시고 말씀하셨다시피 여러 각도로 찍는데, 그건 감독님의 연출방식이고, 그런 것들이 결과도 아주 좋구요.


강명석 : <하얀거탑>, <천개의 혀>, <닥터스>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을 의사의 모습에 몰입해야 하는데요. 그게 힘들지는 않나요?


김명민 : 어떤 드라마나 어떤 역할을 하거나 자꾸 생각을 하고 그건 내 일이죠. 그 인물을 나처럼 생각을 하고, 그렇게 하면 자연스러운 연기가 되고. 몰입하는 건 어떤 배우나 당연할 것 같아요. 장준혁이라는 인물의 경우엔... 제가 많이 예민해졌어요. 장준혁이라는 인물에게 벌써 연민이 가요. 너무나도 이 좁은 병원에서 어떤 부귀 영화를 누리려고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그래서 눈물이 흐를 때도 있고 애착이 많이 가요. 남들이 못됐다 하는 부분에서도 눈물이 나고. 그리고 연기를 하다보면 아주 생활이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내 생활이 반쯤 여기 가있어서 다른 곳에 신경을 못써요. 전에 신경 갔던 것들에 신경을 못쓰니까 주위에서 달라졌다는 말도 하고. 슬픈씬과 안좋은 씬을 찍으면 명민이형 기분 안좋아? 이런 얘기도 들어요. 그 생각을 자꾸 하니까.


강명석 : 혹시 주위로부터 조금 여유를 가지라는 얘기는 듣지 않나요? (웃음) 연출자 입장에서야 너무 사랑스러운 배우겠지만 본인이나 주변 사람들은 작품 한 편 할 때마다 진이 빠질 것 같기도 해요 (웃음)


김명민 : 내 집사람은 이해를 해요. 다. 예전부터 다 봐왔으니까. 내가 대본을 들고 오면 내 남편이라고 생각하겠다는 욕심을 안내요. 그래서 내가 예민해져서 배려해주고. 나는 끝난 뒤에야 알죠. 저는 제 자체를 못 느낄 정도로 내일 찍을 씬들이 어떻고 하는 생각만 하게 돼서. 극중에서 위기감이 치달을 때는 애 얼굴을 보기 싫을 때까지 있어요.


강명석 : 그러고 보면 맡고 있는 배역에서도 그런 진지함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어떤 캐릭터든 전형적인 모습에 빠지기 보다는 조금은 위태로운 느낌이 있었던 것 같거든요. <꽃보다 아름다워>의 재벌 2세나 <불멸의 이순신>의 이순신, <불량가족>의 조폭까지 어떻게 보면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이미 그림을 그려놓고 있는 캐릭터를 새로운 모습으로 표현했잖아요. 특히 <불량가족>의 조폭은 단순한 코믹 캐릭터가 될 수도 있었는데 어린 시절 환경과 맞물려 조직에서 떠날수도, 그렇다고 조직에 속할 수도 없는 갈등이 깊은 캐릭터를 연기한 게 특히 인상적이었는데요.


김명민 : <불량가족>을 예로 들면, 깡패에도 진정성과 슬픔이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어떤 역할을 하는 건 중요하지 않은 것 같고. 그 역할의 진정성을 표현하는 게 중요해요. 날라리 개차반 쓰레기같은 소리를 들어도 그런 사람들한테도 진심은 있잖아요? 그들도 정말 고독할 때, 슬플 때가 있어요. 그걸 드러내는 게 연기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강명석 : 그러고 보면 <불멸의 이순신>을 통해 김명민이란 배우는 굉장히 선한 배우의 이미지가 커졌지만, 그 전까지는 늘 선악 어느 쪽인지 짐작 가지 않을 정도로 복합적이고 불안한 캐릭터를 했었어요.


김명민 : 사람에게는 잠재된 어떤 솟구치는 욕망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성공에 대한 야심이 있다든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데, 그런 것들을 차마 드러내지 못하잖아요. 어떤 경우는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도 할 수 있고. 우리가 모르는 잠재의식중에 그런 게 있는데, 배우는 그런 부분들을 자꾸 건드려주고 깨워주다 보니까 자꾸 들어내서 뽑아내야 하는 것 같아요.


강명석 : 그러면 감정적으로 너무 힘들지 않겠어요?


김명민 : 그렇죠. <불량가족>은 유쾌한 드라마였잖아요. 그래서 이 씬을 어떻게 재밌게 찍을까 생각하니까 행복해졌어요. 그런데 우울한 캐릭터를 맡다 보면 그만큼 힘들어지죠. 특히 <소름>은 극으로 치닫는 캐릭터라서, 밑바닥으로 암울하게만 갔거든요. 기분 좋을 일도 즐거울 일도 없고. 세상보는 시각이 다 비뚤어져 있고. 그래서 자꾸 걔를 생각하면 자꾸 내가 삐딱하게 가고 내가 그래야 할 것 같고 그랬어요.


강명석 : 남들이 다 말리는 길만 가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연기자의 길을 그대로 간 것 같기도 해요. <꽃보다 아름다워>에서 재벌 2세역을 했을 때 좀 더 멋진 남자 캐릭터를 끌고 갈 수도 있었을 텐데 <불멸의 이순신>에서 사극을 하고, 거기서 연기력을 인정받자마자 180도 다른 배역을 했고.


김명민 : 글쎄요. 저는 제가 봐왔던 작품들 중에 제일 괜찮았던 작품들을 선택해요. 이미지같은 건 생각 안해요. 이건 무리한 거 아냐라고 해도 작품이 괜찮으면 하는 거죠. 중복되고 자꾸 한가지 캐릭터만 하는 건 의도적으로 피하고. 재미가 없으니까요. 배우란 게 뭐에요. 다른 인생을 산다는 게 매력이잖아요. <천개의 혀>에서 외과 의사를 택한건 직업만 같고 캐릭터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골랐구요.


강명석 : 그런 부분들 때문에 지금의 김명민씨는 굉장히 신뢰감을 주는 연기자가 됐는데요. 이런 시선이 어떻게 느껴지세요?


김명민 : 예전보다 연기를 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게 편해졌죠. 예전엔 이런 걸 하고 싶어도 말 못하는 부분이 많았는데 지금은 거기에 약간 플러스 해서 할 수 있는 거죠. 감독님 하고 이견이 나왔을 때 감독님이 아 그게 맞는 것 같다고 하시면 고쳐서 갈 수 있으니까.  그렇다고 무슨 내 고집대로 가거나 하는 건 아니구요. 감독님이 받아들여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감독님의 생각과 내 생각이 극명한 차이가 날 때만 그렇죠. 나머지는 감독님의 의지대로 가구요.


강명석 : 어떻게 보면 연기파 배우로서 정점으로 다가서는 순간에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요. 요즘에 김명민씨를 힘들게하는 부분이 있다면?


김명민 : 연기란 작업은 정말로 힘들어요. 극을 짊어지고 가는 역을 많이 맡다 보니까 더 힘들고. 그러다보니까 예전에는 하나부터 열까지 터치를 해줬다면 지금은 내가 거의 알아서 하길 바래요. 그러다보니까 그걸 끌고 갈 내 입장에서는 그게 좀 부담이 많이 되고. 그래도 좋죠. 행복한 고민이니까. <불멸의 이순신>때도 그랬어요. 촬영 환경상 한 번 더 가자고 할 수도 없고, 앞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다 뭐 나르고 움직이고 하는데 저는 차분하고 진중한 연기를 해야했거든요. 아무리 감독님이 조용히 하라고 해도 조용할 수 없는 분위기인데, 그 때 제 연기는 제가 책임져야 하는 거니까요. 내 시선앞에서 관광객들은 사진을 찍고 왔다갔다 잡담하더라도 연기를 제대로 하는 건 배우가 혼자 가져갈 몫인 것 같아요. 예전에 어떤 선배님이 눈길에 오열하는 씬이 있었는데, 그 때 촬영중에 트랙터가 지나간다고 길을 비켜 줘야 하는데 그대로 누워 계셨다는 얘기가 있어요. 이제는 그 선배님 심정이 이해가 가는 게, 그 트랙터가 지나가면서 피해주면 바로 다시 촬영이 안되요. 그러면 다시 가서 감정 다시 잡아야 하는데, 감정 잡힐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은 없거든요.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연기자가 완벽하게 해내야 할 일이에요. 그러다보니까 화장실이 너무 가고 싶은데 이 한마디를 치고 가야하는 것 때문에 안가는 것도 있고. 감정이 차오르고 있는데 밥차가 오면 화나요 (웃음) 손에 진흙이 묻건 피가 흐르건 가만히 앉아 있게 되고. 감정씬이 있을 때는 얼굴이 아무리 뺀질 거려도 메이크업 담당자한테 손보지 말라고 해요. 그 한 번의 터치가 굉장히 감정을 깨뜨리거든요. 감독님이 언제 촬영을 시작하실지 모르기 때문에 계속 감정을 유지해야 해요. 촬영을 하려다가도 무슨 문제가 생겨서 10분이고 20분이고 30분이고 지체 될 수 있어요. 연기자는 그 순간에도 방심하면 안돼요.


강명석 : 김명민씨에게 연기란 뭘까요? 연기가 그냥 일이나 본인의 인기를 따지는 그런 차원의 존재가 아닌 것 같은데.


김명민 : 계속 변하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연기자가 되고 싶었어요. 그게 내 전부였고. 어렸을 때 학교에서 연극부를 했는데 거기서 연기를 잘 한다 소리 듣고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니까 기분이 좋았고. 그래서 조금 더 크니까 내가 돈을 버는 것과 좋아하는 게 합쳐지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서 연기를 하고 싶었고. 그 다음에는 내 생계와 관련 있는 직업이 됐죠. 내 가족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수단이 돼야 하는데 과연 될 수 있을까 회의와 고민같은 것도 들었고. 그런데 결혼하고 <불멸의 이순신>을 하면서부터 참 많이 바뀌었어요. <불멸의 이순신>을 찍으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인터넷 상으로나 우편물이라든가 다른 여러 가지 주변 반응들을 통해 내가 좋아서 한 연기, 가족이 윤택해질 수 있어서 한 연기가 어떤 사람들에게 이런 희망을 줄 수 있구나 하는 걸 깨닫게 됐어요. 어떤 화가는 임종을 앞두고 어둡고 힘들게 살아왔는데 불멸의 이순신을 보면서 삶이 연장됐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그런 분들을 통해서 가치관이 변했어요. 일개 배우가 연기를 통해 사람들을 이렇게 감동을 주고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걸 몰랐거든요. 내가 맡은 배역 때문이었겠지만 우리 가족, 나 이렇게 연기의 가친관이 국한 된 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힘이 돼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메시지가 담긴 연기를 하고 싶고, 작품을 고를 때도 그 부분을 염두에 두게 될 거 같아요.


강명석 : 마지막으로 <하얀거탑>을 통해 시청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김명민 : 존엄성이죠. <하얀거탑>이 인간 군상을 다루면서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이면 세계를 파헤치면서 나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그 바탕에는 생명에 대한 존엄성이 깔려있어요. 그 존엄성을 잃고, 단지 기술자로만 행동한 게 장준혁을 점점 파멸로 몬다고 생각하구요. 겉으로 드러나 보이지는 않지만 <하얀거탑>은 결국 그런 존엄성으로부터 파생된 거라고 생각해요.



인터뷰 / 정리 : 강명석(lennonej@freechal.com)


http://bbs.freechal.com/ComService/Activity/BBS/CsBBSContent.asp?GrpId=908398&ObjSeq=4&PageNo=1&DocId=155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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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01-20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거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