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 현실문화 / 2006년 1월
절판


그러나, 진실을 말하자면 어른들은 모른다. 아이들이 사실은 너무나 슬퍼서 그냥, 하늘과 바람과 달 같은 것에 '행복해 해버린다'는 것을. 강원도의 아람이나, 충청도의, 전라도의, 경상도의, 이 나라 농촌과 섬에 사는 수많은 아람이들이 사실은 너무나 슬퍼서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그냥, 너무나 작은 것들을 가지고 행복해 해버리지 않고 진정으로으로 명실상부하게 행복해 할 날은 언제 올까.-31쪽

아이는 그런 와중에 끝없이 엄마 저어 오네에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이 나라에서 '엄마 저어 오네에'하고서 우는 아이들은 지금 끝없이 '개인적으로' 불행할 뿐이다. 그리하여 이 나라는 지금 그런 아이들을 ㅂ고서 끝없이 '개인적으로 가슴 아파'하면 그만인 사회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있는 것이다. -33쪽

농촌이 변했다고 한탄하는 자들을 보았다. 저희들은 변하고 변하고 하루에도 골백번은 더 변하면서 농촌은 그대로 있으라고, 어떻게 농촌 인심이 그러냐고, 어떻게 농촌 풍경이 그러냐고 하는 자들. 자기들은 고추 한 그루 키워본 적 없으면서, 농촌에 놀러가 아무 밭에나 들어가 툭툭 고춧대 분질러 가며 고추 따가는 사람들. 고추는 따 가도 좋으나 고춧대는 분지르지 말라는 농부의 말에, 그가 그랬다. 농촌 인심 한번 고약하다고. 고약한 것이 누군데, 도리어 적반하장이다. 농촌은 그리하여 이 시대의 죄 없는 죄인이 되었다.-62쪽

손씨는 장애인문제의 열쇠는 그들에게 없는 능력을 억지로 짜내어 적응하고 자활하도록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조건 없는 지원이라고 말한다. 장애의 종류에 따라서 부분적 지원이 필요한 사람도 있고, 전반적 지원이 필요한 사람도 있다는 것이다. -100쪽

1987년 6월 10일.
전 국민의 함성이 거리를 뒤덮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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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우리는 누구도 서로에게 타인이지 않았다. 아무도 스스로를 '나'라고 부르지 않았으며 그저 '우리'임을 확인했다. 대열 밖에서, 물주전자를 들고 울산 주리원 백화점 앞거리를 달리던 노점상 아저씨도, 하이힐 위태롭던 각선미의 여인도 모두 '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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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팔트는 기억할까.
18년 전 모두 하나가 되자며 어깨를 걸고 내달렸던 발자국의 주인들을. 현대자동차 로고 선명한 작업복들을 기억할까.
18년 전 관리직과 생산직이 다르게 받아들어야 했던 차별받은 식판을.
정규직은 지금 어떤 마음으로 보고 있을까. 다르게 입혀진 비정규직의 저 차별받은 작업복을.-127-128쪽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내일이다.-130쪽

거짓말쟁이 세상은 다시 가르친다. 눈을 낮춰라, 그래서 공대 졸업생이 직업전문학교에 다시 입학한다. 그러나 정부산하 기관인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의 그 직업 전문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사도 세 사람 중 한 사람은 비정규직이다.
-145쪽

사람들의 삶을 온통 임시적인 상태로 만들어놓고 사회의 안정적인 발전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발전과 성장을 위해서 고용을 더욱 유연화해야 한다는 궤변만이 계속되고 있다. '근로복지'를 담당하는 근로복지공단의 비정규직 노동자 이용석 씨의 죽음은 희극이 된 우리 시대의 비극을 상징하고 있다. 사람들이 죽어가고 살아있는 자들의 찢긴 일상 위에 건설하려는 발전된 나라는 도대체 어떤 모양의 것일까.-147쪽

그들, 피부색이 다른 그들은 두 개의 문을 나서야 한다.
우선,
그들은 출입국관리소에 자진 출두해 자신이 난민이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이것이 첫 번째 관문인데 매우 좁다.
법무부로부터 난민 판정을 받더라도 또 하나의 문을 열어야 한다. 취업이다.
그들에게 두 개의 문은 벽이다.-174쪽

한국은 1992년 난민협약에 가입했지만, 난민을 인정해 주지 않기로 유명하다. 2000년까지 단 한 명도 수용하지 않았다. 2001년 2월 에티오피아 출신 1명, 콩고 출신 1명에게 난민 지위를 준 것이 처음이다. 난민 신청은 당사자에게 일생일대의 결단이다. 난민 신청을 하는 이국인들은 대부분 불법체류자이어서 난민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자수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또 스스로 난민임을 입증해야 하는데, 당사자의 진술말고는 특별한 증거가 없을 때가 많다. -190쪽

외국인정책에 관한 한 한국은 아직 폐쇄적이다. 이주노동자와 난민이 한국의 개방성을 가늠할 수 있는 예민한 리트머스 시험지다. 출구만 활짝 열어놓고, 입구는 막아버린다면, 한국이 그토록 외치는 세계화는 불구적 세계화다. 미성숙한, 배타적인 세계화다. 국경은 더 이상 장벽이 아니다. 국경은 출입구로 바뀌어야 한다. -191쪽

그들에게 노동은 매우 익숙한 것이었다. 그 일의 성격이 남자와 좀 다른 점이 있다면, 남자는 주어진 일이 비교적 분명하고 명분 있어 ㅂ이는 반면, 촌여자에게 노동은 그 경계가 불분명하고 명분을 따지는 면에서도 남자에 견줘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이다. 남자가 궂은 일 마다 않고 일하면 먹고 살려고 애쓴다는 말을 듣기 쉬워도, 여자가 그렇게 하면 서방 잘못 만나 팔자 사납다는 말을 듣거나, 너무 억척스럽지 않느냐는 가당찮은 말을 듣기 쉬운 현실이 이를 잘 말해 준다. -206쪽

나는 이 나라 '옛날 부모'들의 양식이란, 다름 아닌, 측은지심과 수오지심임을 알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서양에서 말해지는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아니던가. 서양에서야 가진 자들에게나 요구되는 그 정신을 우리나라는 이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져야 하고 실천해야 할 덕목으로 여기고 있었지 않은가. 말 그대로, 사람이니까. 아무리 큰 부잣집이어도 흉년에 곳간 문 열지 않는 부잣집은 공동체 내에서 사람다운 사람의 집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아무리 잘 배운 사람이라도 자기보다 못 배운 사람을 멸시하는 사람을 배운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힘이 센 놈이 힘 약한 놈을 괴롭히면 그는 이미 '사람 새끼'가 아니었다. -235쪽

요즘 아버지들은 자식에게 카드 주며 '인생을 즐기라'고 가르치는지 모르지만 내가 기억하는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식에게 '사람의 도리'를 가르쳤던 것이 아닌가. 힘 약한 사람 괴롭히지 마라, 서로서로 돕고 살아라. 사람 간에 흐르는 정, 인정이야말로 전쟁과 가난으로 점철된 험난한 세월을 살아내게 한 원동력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것이 어찌된 일인가. 일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나보다 가난하다 싶으면, 나보다 약하다 싶으면, 나보다 못났다 싶으면 일단 아래로 보고야 마는 저 철면피를 우리는 어디서 누구한테 배워왔단 말인가. 요체는 언제나 '빨리빨리' 요 빨리빨리의 숨은 뜻은 경제발전이라는 멋진 이름으로 포장된 '돈' 뿐이었던 세월이 가난한 사람, 장애인, 힘없는 사람들을 내쳐놓고 나 몰라라 하는 '후안무치'를 가르쳤던 것일까. -2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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