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섬에 내가 있었네 (반양장)
김영갑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4년 1월
구판절판


그때는 몰랐었다. 파랑새를 품안에 끌어안고도 나는 파랑새를 찾아 세상을 떠돌았다. 등에 업은 아기를 삼 년이나 찾아다녔다는 노파의 이야기와 다를 게 없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이 낙원이요, 내가 숨쉬고 있는 현재가 이어도이다. 아직은 두 다리로 걸을 수 있고, 산소 호흡기에 의지하지 않고도 날숨과 들숨이 자유로운 지금이 행복이다. 아직도 두 다리로 걸으며 숨을 쉴 수 있는 행복에 감사한다. 풍선 불기를 연습하지 않아도 호흡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27쪽

모두에게 인정받기보다는 나 자신에게 인정받는 게 우선이다. 나 자신이 흡족할 수 있는 그 무엇을 느끼고 표현할 때까지는 사진으로 밥벌이하기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않으리라고는 마음을 다잡는다. 다른 사람들은 속일 수 있어도 나 자신을 속일 수는 없기에 늘 자신에게 진실하려 했다.-37쪽

상상력이 빈약한 사진가는 세계적인 명승지를 찾아 나선다 해도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밖에 표현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굳이 사진으로 작업할 이유가 없다. 그곳에 가서 풍경을 직접 보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시간과 돈이 없어 못 가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작품이라고 과대 포장을 할 필요가 없다. 정보를 위한 사진이라면 오히려 동영상이 효과적이다. 바다 사진을 찍더라도 남들이 보지 못하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135쪽

마라도는 사방을 둘러보아도 바다다. 물고기는 바다를 떠나 살지 못한다. 사람은 땅을 떠나 행복할 수 없다. 자연은 말없이 가르친다.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 바위틈에 솟아나는 샘물을 보아라. 굳은 땅과 딱딱한 껍질을 뚫고 여린 새싹이 돋아나는 것을 보아라. 살아 꿈틀거리는 망망대해를 보아라. 빗방울이 모여 개울이 되고 강이 되고 바다가 된다. 자연이 들려주는 소리에 귀 기울이면 삶이 보이고 세상이 보이고 내가 보인다. 이제 눈을 감고 자연의 소리를 들어라. -157쪽

동박새는 모른다. 동백꽃을 피우기까지 나무가 견뎌낸 고통의 시간을... 동박새는 기억하려 하지 않는다. 눈, 비, 바람, 가뭄, 혹한과 무더위를... 동박새는 꽃이 떨어지면 동백꽃을 기억하지 않는다. 동박새는 다음 해 동백꽃이 피어야 다시 올 것이다.-181쪽

길을 가다 보면 두 갈래 세 갈래 갈림길이 나온다. 이제는 망설임 없이 나만의 길을 선택할 것이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갈림길이 나타날 때마다 두려움에 혹은 절망감에 망설였지만, 이제부터 주저 없이 내 마음이 원하는 길을 갈 것이다. 이제 자신 없이 누군가에게 길을 묻는 일도 없으리라. -210쪽

누이는 어머니처럼 나를 채찍질했다. 그리고 어머니처럼 말없이 가르쳤다. 게으름을 피우거나 한눈을 팔다가도 누이를 떠올리면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누이는 말없이 나를 길들였다. 전업 작가는 자유롭다. 자유로운 만큼 자기 관리가 힘들고 조금만 방심하면 허송세월을 보내기 십상이다. 그런 나를 누이는 늘 긴장하게 만들었다. 고집스럽게 한 길만을 갈 수 있게 늘 일깨워주었다. -225쪽

살고 싶다고 해서 살아지는 것도 아니요, 죽고 싶다 해서 쉽사리 죽어지는 것도 아니다. 기적은 내 안에서 일어난다. 내 안에 있는 생명의 기운을, 희망의 끈을 나는 놓지 않는다. 사람의 능력 밖의 세계를 나는 믿는다. -2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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