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돌 ‘맹꽁이 서당’ 문 닫습니다
[한겨레 2006-11-29 22:42]    

[한겨레]
25년. 윤승운(63) 화백의 ‘맹꽁이 서당’처럼 오랫동안 연재된 작품도 드물다. 1982년 10월 만화잡지 ‘보물섬’ 창간호부터 연재를 시작해 잡지를 갈아타고 지난 8월까지 꼭 25년 동안 연재를 이어왔다. 이번 단행본 15권이 나오면서 윤 화백의 분신같은 이 만화가 마침내 막을 내렸다.

“심혈을 기울여서 그렸지만 항상 마음에 드는 게 없었어요. 출판사에 원고를 보낼 때마다 눈물이 나고 마음이 부서졌죠.” 동글동글 재미난 캐릭터들이 절로 웃음을 자아내는데도 윤 화백은 자신에게 혹독한 평가를 내린다.

‘맹꽁이 서당’은 조선시대와 고려시대 역사를 서당 훈장님이 제자들에게 수업하는 방식으로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 만화’의 대명사다. 요즘 쏟아져나오는 역사학습만화의 원조격인 이 만화의 첫 독자들은 이제 학부모가 되어 자식들에게 책을 쥐어준다.

윤 화백은 ‘꺼벙이’의 길창덕, ‘로봇찌빠’의 신문수, ‘고인돌’ 박수동 화백과 함께 70~80년대 명랑 만화의 전성기를 이끈 한국 만화계의 대표적인 스타다. 대표작 ‘요철발명왕’은 지금의 30~40대 들에게는 아직도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추억의 만화다. 고등학생 때부터 잡지에 만화를 투고했는데, 63년 잡지 ‘아리랑’에 실린 공식 데뷔작인 ‘자선영감’ 원본은 그의 손에 불타 없어졌다. “40대 접어들어 데뷔작을 다시 보니 이걸 만화라고 그렸나 싶더라구요. 마당에 내놓고 불태워버렸어요. 지금은 나이가 들어 털털해졌지만 그때는 꼼꼼하고 내성적이고 그랬죠.”

전통을 잃어버린 세대들을 위해 선조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역사만화를 시작한 것이 ‘맹꽁이서당’이었다. 그런데 시도해보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한학 공부부터 수많은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까지 알아야 할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대학원에 입학해 공부를 더했고, 관련책만 3000권 넘게 읽었다. 그런 열정 덕분에 그는 남들이 은퇴하는 환갑이 지난 나이에도 왕성하게 활동하며 자신만의 전문분야를 이뤄냈다.

그가 만화에 바친 세월 가운데 오랫동안 만화는 ‘아이들 공부를 방해하는 적’으로 박해받았다.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고 그가 그린 ‘메밀꽃 필 무렵’이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기까지 했다. 그만큼 만화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만화가 지망생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아졌고, 그가 만화가가 되었던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는 환경에서 만화를 시작한다. 그런 후배들에게 윤 화백은 하고픈 말이 많다. “요즘은 짧은 기간에 출판사 기획으로 학습만화가 쏟아져나오는데 작가가 스스로 공부해서 깊이있는 작품을 직접 그렸으면 좋겠어요. 다른 나라와 차별화된 독창적인 캐릭터 만들기에 더 힘쓰기를 바랍니다.”

김일주 기자 pearl@hani.co.kr

사진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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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6-11-30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처음으로 본 만화책이 '보물섬'이었다. 초딩 2년 때였던 1986년. 막 이사를 갔던 참이고 학교도 전학을 갔고, 아마도 심심해할 거라 여긴 어무이께서 헌책방에서 보물섬 세권을 사다 주셨다. 그렇게, 나의 만화 인생(?)이 시작되었는데, 어무이께서 그날을 두고두고 후회하셨더라는...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