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를 씹다가

                                                박성우

 

퇴근길에 오이를 샀네

댕강댕강 끊어 씹으며 골목을 오르네

 

선자, 고년이 우리집에 첨으로 놀러온 건

초등학교 오학년 가을이었네

밭 가상에 열린 조선오이나 따줄까 해서

까치재 고추밭으로 갔었네

애들이 놀려도 고년은 잘도 따라왔었네

밭을 내려와 도랑에서 가재를 잡는디

고년이 오이를 씹으며 말했었네

나 는 니 가 좋 은 디

실한 고추만치로 붉어진 채 서둘러 재를 내려왔었네

하루에 버스 두 대 들어오는 골짜기에서

고년은 풍금을 잘 쳤었네

시오릿길 교회에서 받은 공책도 내게 줬었네

한번은 까치재 밤나무 아래서 밤을 까는디

수열이가 오즘싸러 간 사이에

고년이 내 볼테기에다 거시기를 해버렸네

 

질겅질겅 추억도 씹으며 집으로 가네

아무리 염병 떨어도

경찰한테 시집간 고년을 넘볼 수 없는 것인디

고년은 뱉어도 뱉어도 뱉어지지 않네

먼놈의 오이꼭다리가 요렇코롬 쓰다냐

 

-------------------------------------------------------------

어릴 적 이사를 자주 다녔던 저에게는 초등학교 시절,

특별히 기억에 남는 친구들이 많지가 않습니다.

물론 저를 기억하는 친구돌도 거의 없을 듯.

그러나, 제가 다녔던 학교의 교정들은 애틋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전 초등학교 시절에 전학을 갔었습니다.

어른이되어서 직장생활을 할 때,

전학가기 전에 다녔던 학교를 즐겨찾았습니다.

선생님과 급우들은 기억나지 않지만

옛 학교 학교 건물들과,

지금은 사라진 뒷산의 오솔길은

지워지지가 않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한동안 책을 읽지 못했다. 서양미술사와 몇 권의 시집이 최근 읽은 책의 전부다. 서양미술사는 아직도 많은 분량이 남아있다. 리포트와 시험, 그리고 바빠진 학원일로 지친 몸은 잠을 원했고, 깨어있는 시간에는 책보다 서재에 더 집중했다. 보관함에는 읽고 싶은 책들이 쌓여만 갔다. 게다가 이번 달에는 해결해야할 카드값도 만만치 않았다. 심기일전하는 마음으로 카드결제일을 파악하여 어제 새벽 몇권의 책을 주문했다. 상현이 동화책과 아내가 좋아하는 법정스님의 신간, 그리고 미뤄두었던 소설책과 '절집나무'를 신청했다. 낮에 학원에 있으면서도 택배가 왔는지 몇번이나 확인전화를 했다. 순전히 '절집나무'에 대한 기대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사천왕상앞에서 벌벌 떨던 두려움은 사라지고, 점점 절이 좋아진다. 산사로 향해있는 길들과, 단아하게 놓여있는 절집들, 그리고  풍화작용으로 고와진 부도와 돌탑들을 보면서 정신적 여유로움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저 관광의 대상으로 여겨졌던 절들이 점차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인근의 조그만 산사에서 절을 찾는 기쁨을 맞보기 시작했고, 그때 얻은 그 감정과 생각들은 자꾸만 절을 찾고싶은 욕망을 키운다.  욕심과 욕망을 버리라는 산사의 모습에서 나는 역설적으로 욕망을 느끼는 것이다. 아직 그 욕망을 충족하기위한 발걸음을 떼지는 못했다. 서두르고 싶지는 않다. 어차피 시간과 돈이라는 문제때문에 서두른다고 될 일도 아니다.

  작년 여름에 다녀온 내소사(벌써 일년이라니!)와 완주의 화암사의 이야기도 담겨있다. 설레임으로 책장을 넘길 것이다. 혹여 실망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번 죽 훝어본 지금의 심정은 전혀 그럴것 같지 않다. 앞으로 나의 산사에 대한 욕망을 유연하게 풀어주고, 산사를 찾는 발걸음의 유용한 안내자로써 충분할 것이라는 기대가 된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04-06-25 0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의 기다림은 모두 같은가봐요~그쵸? 메시지님 너무 글 재밌게 잘 쓰세요. 전 이제 독서를 하기보단 책수집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끙~^^::

메시지 2004-06-25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진작에 잤어야했는데(며칠째 계속되는 수면부족에다가 오늘은 12시간 넘게 일을 했구요, 내일도 이른 시간(물론 저의기준으로)에 나가야합니다.) 지금도 뻘겋게 충열된 눈으로 책과 서재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답니다.

superfrog 2004-06-25 0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물이어요..^^  월정사입니다..

 


비로그인 2004-06-25 0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진 한 장 드립니다. 홍련암..


호밀밭 2004-06-25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드릴 사진이 없어요. 늘 절에 가고 싶은 마음이 너무 많아요. 저희 집 앞에 절이 하나 있기는 하지만 절은 산 속에 있어야 느낌이 사는 것 같아요. 내소사도 월정사도 모두모두 가고 싶네요. 절에 관련된 책은 휴양림과 같은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가끔은 휴식을 위해 책을 읽을 때는 스님들이 쓰신 책을 집어 들게 되거든요.

stella.K 2004-06-25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면서 미소가 번졌습니다. 흐흐흐! (이건 미소가 아니려나...)암튼 정말로요.^^

메시지 2004-06-25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굼붕어님, 복돌님, 사진 선물 감사합니다. 월정사의 나한은 몸짱이네요. 힘좋고 오래가는...^^* 처마 밑 풍경은 정말 근사해요. 절에가면 당연히 있어야하는 풍경이지만 언제봐도 새롭고 신선한 바람같은 느낌은 변함이 없어요.
호밀밭님, 늦게배운 도둑이 무섭다고 요즘 제가 불교에 점점 빠져들고 있답니다. 저희 부모님께서 아시면 긴장하실거에요. 기독교 집안이라서.....
스텔라님, 미소는 빙그레(우유!)^^*. 강아지그림이 이뻐서 저도 빙그레^^*

다연엉가 2004-06-25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친정은 모두 교회에 나가는데 .....절에 가면 맴이 편안해집니다. 경치 구경만 하는 편이지만 ^^^^ 이곳은 절이 많아서 그저 놀기 삼아 돌아 다니고 있습니다.^^^

메시지 2004-06-25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이라는 건물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종교적인 의미 외에도 자연과 문화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나봐요. 사실 자연과 멀어진 지금,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곳을 찾는다면, 절이 제일 가까울 것 같아요. 물론 소쇄원같은 곳도 있기는 하지만 절에 비하면 숫자가 부족하죠.
 

                 꿈에 크게 취함

                                                                        - 이 면 우 -

 

술 끊고 한 열 달 지나 꿈속에서 술 마시고

아이고 십년계획 도로아미타불이라고 엉엉 둘다 깼다

깨어 꿈인 걸 알고 기뻐서 방바닥을 쳤다.

 

술 끊은 지 이제 십년이 지났다 남들이 독하다고

그래 한번도 흔들리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그동안 여러 차례 꿈에 크게 취했다 꿈속에서

이건 꿈이니 기왕에 마시려면 잔뜩이라고

왕사발로 거푸 들이켜던 애달픈 밤이 여럿 지나갔다.

 

----------------------------------------------------------------------------

가정을 위해서 술과 담배를 끊었다는 이면우 시인의 안타까운(?) 심정이 재미있게 표현된 시입니다.

비는 내리고 잠은 오지 않는데 유난히 술 생각이 간절해진 지금, 막 떠오른 시입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메시지 2004-06-20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네요. 실은 한 삼일전에도 마셨어요. 내일 늦잠을 자도 되는 날이라 더 그런거예요.

stella.K 2004-06-20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요즘 술 마시고 싶던데, 같이 마실 사람이 없어 참고 있는 중이랍니다. 전 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나, 술을 싫어하는 사람에게나 별로 좋은 사람은 못됩니다.
왜냐하면 먹고 싶어도 맥주 딱 한캔이면 가걸랑요. 그러니 이렇게 어중간한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어요? 흐흐.
 


 이윤택의 희곡 "오구-죽음의 형식"을 무척 좋아합니다. 우리 고유의 연희 방식과 굿의 구조를 이용한 시공의 넘나듬, 그러면서도 우리 일상의 현실을 잘 담고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희곡을 먼저 접한 저는 이 공연을 벼르고 별러서 봤답니다.

 제가 본 공연은

 공연명 : 강부자의 오구

 연출 : 이윤택

 제작 :  연희단 거리패

 공연장 : 정동극장

 

당시에 근무하던 곳에서 조퇴를 한 다음, 기차를 타고 서울에 도착하여 남는 시간을 덕수궁 돌담길을 걸었습니다. 비가 부슬부슬내렸지만 우산없이도 거리를 산책할만 했습니다. 오히려 걷기에 알맞은 비가 내렸습니다.

무대 전체를 들썩거리게 움직이는 배우들이나 관객석을 가득 매우 관객들 모두가 신명이 났습니다. 한 많은 여인의 죽음과 그를 둘러싼 자식들의 재산싸움 등 심각한 문제들이 실상 우리의 평범한 일상의 범주에 머무르는 자연스러움으로 와닿는 공연이었습니다.

올해 초, 연출가 이윤택이 이 작품으로 영화를 찍었습니다.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때 '그냥 연극으로 계속하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왠지 불안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왠지 새로운 장르로의 전환에 대한 흥미와 이윤택의 기발한 연출력이 영화에서는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에 대한 기대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전 지금까지 영화를 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아예 개봉도 안 되었고, 서울에서도 일찍 종영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평이 안 좋았다거나 영화로서의 치명적인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였습니다. 단지 영화 배급의 문제로 제대로 상연하지도 못한 체 사장되었다는 것입니다. 영화로 볼 기회가 생기기를 바라고 있을 뿐입니다.

한국적인 색체가 듬뿍담긴 이 연극은 해마다 정동극장에서 공연되었습니다. 올해에도 이 작품이 공연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다시 한번 우리의 독특한 신명에 푹 빠질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04-06-19 0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구가 굿을 소재로 한 연극이었구나, 그랬었구만요.

stella.K 2004-06-19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영화<오구>를 기대했었는데, 언제 상영이 된지도 모르고, 언제 종영이 된지도 모르게 사라졌습니다. 참, 우리나라 영화 배급 방식이란...
그러면서 스크린 쿼터 사수는 또 뭔지?

sooninara 2004-06-21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디오가게에 있습니다..영화 오구..

메시지 2004-06-21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우리동네 비디오가게는 정말 작아서 없을 수도 있겠네요. 날잡아서 조금 멀리 원정을 가야겠네요.
 

밀가루 반죽을 하다가도 사진기를 들이대면 하나,둘,셋 김치를 외치며 어설프게나마 손가락으로 V를 만들어냅니다. 그런데 꼭 셋에 눈을 감는 것은 애나 어른이나 똑같은가 봅니다.


밀가루 반죽에 완전히 도취되었습니다. 왼손엔 고무장갑을 뒤집어 끼고 있습니다.

저희 집에 밀가루가 없어요. 아무 것도 해먹은 것은 없는데.....


댓글(7)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다연엉가 2004-06-15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흐흐 정말 멋집니다. 치울 생각을 하니 머리가 띵!!!!!

stella.K 2004-06-15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리사로 대성하겠군요. 하하하!

sooninara 2004-06-15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아줌마란...^^ 참 아이를 편하게 키우시는군요..
전 은영이 미술로 생각하기 다니면서..밀가루 반죽 만들기 해본후에..밀가루 3kg사다가..실컷 해줄려고 맘만 먹고..결국엔 안해주었습니다..도저히 치울 엄두가 안나서..아이들이 지금도 그이야기 해요..엄마 밀가루 왜 안해주세요? 밀자만 들어도 무서버..게우른 엄마의 변명..

조선인 2004-06-15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시지님 아들 보고 우리 딸도 부럽다 하겠네요.
저도 밀가루반죽은 도무지 치울 엄두가 안 나서 고무찰흙으로 버팁니다.
쩝... 반성 또 반성.

메시지 2004-06-15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안치웠어요.(반성...변명:급히 나갈일이 있어서..) 아내가 치우기가 힘들긴 하다고 하네요. 자주는 그렇고 가끔 하기로 했습니다. 찰흙으로도 했는데 밀가루에 더 흥미를 느끼더라구요. 요리사로의 성공여부는 모르겠어요. 당장에 해먹은 음식이 없으니...

superfrog 2004-06-15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아이들 밀가루 반죽 좋아해요..^^ 조카들도 밀가루 반죽 주먹 만큼만 떼 주면 한 시간 정도는 너끈히 즐거워하더군요..아드님, 거의 환희에 찬 표정이네요.. ㅎㅎ

아영엄마 2004-06-15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인이 가끔 하는 것에 동의하시는 것을 보니 음.. 대단한 부부인걸~ 했습니다. 이번에는 급히 나가서 못 도와주셨지만 다음에는 꼭 부인이랑 같이 치우셔요~ ^^; 저희집은 제가 안해서 밀가루 반죽할 일은 별로 없지만서도 가끔 하면 아이들도 하고 싶어서 달려 들곤 하죠.. 어쨋든 부스러기는 많이 떨어져도 찰흙보다는 위생상 좋으니 유아들에게는 더 나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