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책을 읽지 못했다. 서양미술사와 몇 권의 시집이 최근 읽은 책의 전부다. 서양미술사는 아직도 많은 분량이 남아있다. 리포트와 시험, 그리고 바빠진 학원일로 지친 몸은 잠을 원했고, 깨어있는 시간에는 책보다 서재에 더 집중했다. 보관함에는 읽고 싶은 책들이 쌓여만 갔다. 게다가 이번 달에는 해결해야할 카드값도 만만치 않았다. 심기일전하는 마음으로 카드결제일을 파악하여 어제 새벽 몇권의 책을 주문했다. 상현이 동화책과 아내가 좋아하는 법정스님의 신간, 그리고 미뤄두었던 소설책과 '절집나무'를 신청했다. 낮에 학원에 있으면서도 택배가 왔는지 몇번이나 확인전화를 했다. 순전히 '절집나무'에 대한 기대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사천왕상앞에서 벌벌 떨던 두려움은 사라지고, 점점 절이 좋아진다. 산사로 향해있는 길들과, 단아하게 놓여있는 절집들, 그리고 풍화작용으로 고와진 부도와 돌탑들을 보면서 정신적 여유로움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저 관광의 대상으로 여겨졌던 절들이 점차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인근의 조그만 산사에서 절을 찾는 기쁨을 맞보기 시작했고, 그때 얻은 그 감정과 생각들은 자꾸만 절을 찾고싶은 욕망을 키운다. 욕심과 욕망을 버리라는 산사의 모습에서 나는 역설적으로 욕망을 느끼는 것이다. 아직 그 욕망을 충족하기위한 발걸음을 떼지는 못했다. 서두르고 싶지는 않다. 어차피 시간과 돈이라는 문제때문에 서두른다고 될 일도 아니다.
작년 여름에 다녀온 내소사(벌써 일년이라니!)와 완주의 화암사의 이야기도 담겨있다. 설레임으로 책장을 넘길 것이다. 혹여 실망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번 죽 훝어본 지금의 심정은 전혀 그럴것 같지 않다. 앞으로 나의 산사에 대한 욕망을 유연하게 풀어주고, 산사를 찾는 발걸음의 유용한 안내자로써 충분할 것이라는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