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가 피로가 되지 않게 - 군더더기 없는 인생을 위한 취사선택의 기술
인나미 아쓰시 지음, 전경아 옮김 / 필름(Feelm)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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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책 제목을 보고 '필요'라는 부분을 오해해서 '소비' 쪽으로만 연상했었다. 근데 소비와 소유뿐 아니라 인생을 보다 잘 살아내기 위한 전반적인 조언들이었다. (더)하면 좋을 것들, 빼는(하지 않는) 게 좋은 것들,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 책도 읽을 때 왠지 가볍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인용한 두 번째 글귀처럼) 작가가 글을 간결하게 썼기 때문이다. 조언들을 실천만 잘 해도 삶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만, 글을 심플하게 표현하다보니 중요성이 잘 전달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글에 군더더기가 없으니 읽기는 쉬웠지만, 단순히 맞는 말, 모두 아는 얘기, 이렇게 읽히기도 했다. 자기계발서 류의 책들이 그렇듯 실천을 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긴 하지만 말이다.
 솔직히 인상깊은 책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말과 글 간결히 전하기'를 포함해 못하는 부분들이 있는데 '이런 건 도대체 왜 잘할 수 없는걸까'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기도 했다. 이 책의 심화편으로 해서 각 조언에 대한 예시나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구체적 연습 방법도 나오면 좋겠다. 


실패는 해보는 게 좋으며, 실패를 하지 않으려고 지나치게 애쓸 필요는 없다.

필요 이상의 자극을 구하지 않고 지금 해야 할 일을 착실히 하는 사람의 인생은 의미가 있다. 힘든 일이 있어도 그대로 받아들이고 다음에 무엇을 할지만을 생각하자. 그러면 다소의 고통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네가 살아 있는 것에는 다 의미가 있단다. 네가 지금 여기 있는 이유는 앞으로 뭔가를 하기 위해서일 거야."
마음속으로 내 삶을 부정하고 있던 나에게 선생님의 이 말은 정말 충격 그 자체였다. ‘살아 있어도 괜찮다. 사는 건 다 의미가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장문의 메일은 바쁜 상대방에게 잘 전해지지 않는다. 원래 바쁘게 일하는 사람은 장문의 메일을 읽을 시간이 없다.
게다가 상대방에게 ‘길게 메일을 쓰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심어주는 것은 위험하다. 괜히 이미지만 나빠지고, 전해야 하는 정보도 올바로 전달하지 못해 메일을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시간만 낭비하게 된다.

보기에 화려하지 않아도, 성과가 좀처럼 보이지 않아도 한발 한발 착실하게 노력을 계속해나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저렴한 물건이라도 막 쓰는 게 아니라 잘 쓰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니 즐겁게 쓸 수 있을지, 잘 쓸 수 있을지를 생각하고 물건을 사는 습관을 들이면 좋을 것 같다. 그렇게만 해도 낭비를 꽤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일을 하면 힘들어지는 이유는 ‘완벽하게 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무릇 우리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다. 완벽할 수 없고 잘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못 하는 걸 인정하고 ‘그럼 어떻게 해야 좋을까?‘를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신기하게도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인정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혼자 일을 떠맡기 일쑤인 사람이라면 부디 직접 하는 게 빠르겠다고 생각할 게 아니라 반대로 자신이 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볼 것을 권한다. 그렇게만 해도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고, 이것이 또 다른 출발이 된다는 점도 알게될 것이다.

회사에서 친해지기 힘든 사람을 대할 때는 그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이쪽에서 먼저 마음을 여는 일이 중요하다. ‘친해지기 힘들다‘고 느껴도 굳이 그걸 의식하지 말고, 대신에 ‘이 사람은 어디에 관심이 있을까?‘, ‘이 사람은 뭘 좋아할까?‘ 하고 상대방을 알려고 노력해본다.

그 사람의 관심사를 알게 되었다면 그것을 계기로 "~에 대해 잘 아는군요.", "~를 좋아하세요?" 라고 가볍게 물어본다. 그때 상대방이 그 질문에 더욱 관심을 보이면 십중팔구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이다. 자신과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해 다소나마 마음을 열 가능성이 생긴다는 말이다.

물론 처음에는 그 사람이 나를 상대도 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래도 포기하지 말고 "그렇군요. ~라서 ***를 좋아하는 줄 알았어요"라는 식으로 질문한 이유를 알려주는 것이 좋다. 그에게 내가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라도 전해질 수 있게 말이다.

‘뭔가를 전하려고 할 때는 심플함, 간결함, 군더더기가 없는 것이 기본이다.‘

‘내가 하는 편이 빠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진지하고 성실한 사람일수록 세세하게 공을 들여 자료를 작성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진지하니까, 성실하니까, ‘정확하게 전달해야 해!‘, ‘빈틈없이 만들어야 해!‘라는 생각이 앞서는지도 모른다.

이런 사고방식의 바탕에는 ‘자세하게 기재해야 이해하기 쉽겠지?‘라는 생각이 깔려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역효과만 낳을 뿐이다.

중요한 건 핵심을 전달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료에 들어갈 내용을 되도록 심플하게 정리해야 한다. 여기에서 ‘심플‘이란 쓸데없는 부분이 떨어져 나갔다는 뜻이다. 필요한 것만 남은 상태라는 말이다.

자료를 작성하는 동안에는 몇 번의 ‘틈새 시간‘을 두어야 한다. 활짝 기지개를 켠다거나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안을 천천히 걸어보거나 어떤 행동을 해서 기분전환을 한 뒤 책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런 다음 작성하고 있던 자료를 다시 살펴보면 거슬리거나 필요 없는 부분이 보일 것이다. 그 부분을 수정하고 삭제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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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같은 장편소설이다. 단편인 줄 알았지만,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 실로 얽혀져 있었고 그렇게 얽힌 전체의 인물들은 정세랑 작가가 구축한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었다. 마치 어느 장면에서 카메라가 줌인(zoom-in)되며 한 인물, 혹은 한 가족을 비춘 뒤 서서히 옆으로 이동하면서 다른 인물, 혹은 다른 가족,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는 듯 했다. 즉 단편처럼 보이는 어느 한 세계도 단독적이지 않고 어딘가에 이어진 세계로써 존재하는 듯 했다. 그렇게 신기하고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A의 가족 이야기에서 시작되었다면, 그 다음엔 B, 그 다음에는 C 이렇게 이어지지 않는다. 피프티피플 세계 속 이야기는 병원 응급실에서 시작되는데 처음에서는 D라는 사건이 서술되지만 다음엔 D라는 사건을 해결한 E의 이야기, 그리고 E의 동료 혹은 교수인 F의 이야기가 나오고, 다시 F의 아내 이야기가 한참 뒤에 다시 나오는 식이다. 다시 D라는 사건이 벌어질 때 함께 응급실에 있었던 G의 이야기가 나오고, G의 친구의 동생인 H가 어딘가 뒤에서 다시 서술되는 식이다. 그렇게 얽히고 섥혀서 마치 거미줄처럼 약하지만 강한 하나의 촘촘하고 강한 세계가 구축되고 있었다.

어느 순간에는 인물의 관계도를 그려보고 싶단 마음이 굴뚝처럼 일어났다. 하지만 이미 읽은 부분이 절반이라서, 대충이라도 다시 읽기엔 부담스러웠고 또 주인공 외 잠깐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이 나올 것 같아 섣불리 시도할 수도 없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인물 관계도가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이 간절해지긴 했지만, 어찌저찌 잘 참아내고 글을 마저 읽었다.

작가의 말을 통해 더 감동받기도 한다. 작가들의 마음은 늘 어찌 이리 고울까, 항상 생각한다. 마음을 잘 쓰고 마음의 소리를 잘 듣고 그 마음을 내어서 표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이야기와 아픔에, 나와 너의 이야기와 아픔에 쉽게 공감하고 위로하는 사람들이라 더 고맙고 감사하다. 짧은 이야기를 통해서도 애잔한 마음을 전해서 사람을 울리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아파하는 마음을 혼자 간직하지 않고 글로 써서 더 나은 세계를 꿈꾸는 강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인 것 같다.

"... 늘 지고 있다는 느낌이 어렵습니다."

모든 곳이 어찌나 엉망인지, 엉망진창인지, 그 진창 속에서 변화를 만들려는 시도는 또 얼마나 잦게 좌절되는지, 노력은 닿지 않는지, 한계를 마주치는지, 실망하는지, 느리고 느리게 나아지다가 다시 퇴보하는 걸 참아내면서 어떻게 하면 지치지 않을 수 있을지 현재는 토로하며 물었다. 압축이 쉽지 않았다.

나는 작가가 구현해놓은 이 세계를 반의 반도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리뷰를 쓰기 위해 다시 앞을 살짝 넘겨보니 익숙한 이름들이 나와서 그제야 조금 더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책을 다 읽은 이후에도 다 읽은 것 같지 않고 더 읽어야만 할 것 같은, 나의 부족한 기억력이 안타까워지는 소설이었다.

다양한 사람들과 그들의 다양한 시각, 다양한 생각들과 직업과 가정형편 등의 사정이 나오면서 내가 몰랐던 세계에 대해서도 한층 더 알 수 있게 되었다. 단편보다 더 단편같은 짧은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그 장면들과 상황이 너무 선명히 그려져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경험도 할 수 있었다. 감동적이고 너무 거대한 작품이지 않았나 싶다. 열심히 다 읽어도 차마 다 이해할 수는 없는 그런 작품.

서른은 사실 기꺼이 맞았다. 도무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20대가 너무 힘들어서 서른은 좋았다. 마흔은, 마흔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삶이 지나치게 고정되었다는 느낌. 좋은 수가 나오지 않게 조작된 주사위를 매일 던지고 있다는 느낌 같은 게 있다. 아직 중년처럼 보이진 않지만 중년인 것이다.

작품 배경이 뉴스에 나올만한 커다란 사건이면서 병원 응급실에서 마주할 수 있는 사건과 사람들의 이야기다보니 죽음에 연관된 이야기들이 종종 나왔다. 살면서 한번쯤은 생각해봐야 할 죽음이지만, 미처 그 생각을 해보기도 전에 사고로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게 되는 사람, 서서히 죽음에 점점 더 가까워지는 사람,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행동하는 사람의 경우도 나와서 마음이 아파질 때도 있었다.

죽음은 너무 가깝다. 언제나 너무 가깝다. 전철에서 지나치게 몸을 밀착하는 기분나쁜 남자처럼 가깝다.

MRI 기계에 들어가는건 관에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죽는 건 이렇게 춥고 좁은거겠지. 숨이 막히는 거겠지.

내가 개인적으로 공감을 많이 했던 이야기는 '김의진'의 이야기였다. 가장 마음에 남는 장소는 '베이글 가게', 중요하지 않은 줄 알았는데 거미줄의 중심부 실 같은 역할을 하던 소재인 '도마뱀', 마음이 시리고 울컥했던 이야기는 '정다운'의 이야기, 왠지 등장할 때마다 유쾌하고 시원한 기분이 들었던 이야기는 '진선미'씨의 이야기였다. 51명이 등장하면서 각 사람의 이야기는 아주 짧게 펼쳐질 뿐인데 이런 놀라운 서사를 전하고 그것들을 엮고 엮어서 하나의 큰 세계를 만들며 인상깊은 글을 쓰신 정세랑 작가님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이번 책은 대여를 해서 봐서 다시 한번 읽진 못하겠지만, 나중에 시간을 내서 꼭 다시 한번, 또 다시 한번 읽으면서 진지하게 감상을 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고, 내 곁의 좋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며 소개해주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하나도 기억 못하겠지? 네가 자기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 우리가, 한 사람 한 사람이 기억하지 못하는 사랑의 기간들이 얼마나 길까.... 우리가, 한 사람 한 사람이 기억하지 못하는 사랑의 기간들이 얼마나 길까.

호감. 가벼운 호감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일들이 시작되는지.

가장 경멸하는 것도 사람, 가장 사랑하는 것도 사람. 그 괴리 안에서 평생 살아갈 것이다.


결혼식을 가장한 장례식이었다. 근사한 장례식이었다.

... 승희에게 고함을 질러댔다. 이혼하고 올 테니 제발 헤어기지 말아달라고 매달리듯 윽박질렀다. 유부남이었다니. 이런 남자들은 뚜껑 열린 맨홀처럼 인생에 잠복하여 어린 여자들을 삼킨다. 어리고 똑똑지 못한 여자들을 삼킨다.

고장 난 트렁크를 친절하게 들어주는 사람이 집에 가면 자기 가족에게 어떤 얼굴을 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거짓말 너머를 알고 싶지 않다. 이면의 이경(異) 따위, 표면과 표면만 있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싶다.

나빠지는 것만 가득, 그런 생각이 들어 윤나는 속이 상했다. 완만하게 나빠지는 게 아니라 구덩이가 발밑에서 열리듯이 갑작스럽게, 격하게 나빠지고 있었다.

삶의 불공평함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뚱뚱한 여자아이에게 친절한 나라는 별로 없지만 한국은 그중에서도 가장 혹독한 곳이 아닐까.

"있잖아, 마음에 갈증 같은 게 있는 사람은 힘들다?"
영린과 함께 산 지 얼마 안 되어 새엄마가 말했었다.
"네?"
"그런 사람은 항상 져. 내가 보기엔 네가 힘든 게 몸무게 때문도 아냐. 마음 때문이야."

어째서 고르는 족족, 혹은 영린에게 먼저 다가오는 족족 좋은 사람이 아니었을까. 영린은 스스로의 형편없음이 다른 사람의 형편없음을 끌어당기기도 하고 증폭시키기도 한다는 걸 깨달았다. 짧거나 긴 연애가 끝날 때마다 생활이 무너졌다.

괜찮아, 예뻐.
스스로 말해본 건 처음이었다.

결혼은 그 나름대로의 노력이 계속 들어가지만, 매일 안도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마음을 다 맡길 수 있는 사람과 더이상 얕은 계산 없이 팀을 이루어 살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어둡고 어색했던 소개팅의 나날을 지나왔다는 점이 무엇보다 가장 큰 안도였다.

"사회생활을 오래 하다보면 사람에 대한 기준을 각자 세우게 되잖아요? 제 기준은 단순해요. 좋은 사람이냐 나쁜 사람이냐, 마음의 마개가 잘 닫혀 있느냐 덜컥거리며 쏟아지느냐. 상대방을 고려 않고 감정을 폭주시키는 걸 너무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아요. 선하면서 스스로를 다잡는 사람, 드물고 귀해요."

그러고 있다보면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욕구가 참을 수 없는 갈증처럼 들곤 했다. 몸의 욕구라기보다는 친밀감에 대한 욕구였다.

우리도 그렇게 변하면 어쩌지? 엉뚱한 대상에게 화내는사람으로? 세상은 불공평하고 불공정하고 불합리하고 그속에서 우리가 지쳐서 변하면 어쩌지?

그 젊음. 기억나지 않는 젊음.

"눈이 닮았네요."

"안 닮았는데요."
"닮았어요. 눈 안에 심지가 있어요. 가장 의지했던 딸인거 알지요?"
듣기 좋은 말을 잘하는 할아버지네, 승화는 웃었다. 오래된 상처를 그 말들이 연고처럼 덮었다. 승화는 한마디도 믿지 않고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고마웠다.

"젊은 사람들은 착각을 해요. 노인들이 해답을 가지고 있다고 믿지. 별거 없어요."

"그냥…… 우리가 하는 일이 돌을 멀리 던지는 거라고 생각합시다. 어떻게든 한껏 멀리. 개개인은 착각을 하지요.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사람의 능력이란 고만고만하기 때문에 돌이 멀리 나가지 않는다고요. 그런데 사실은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있는 게 아닙니다. 시대란 게, 세대란 게 있기 때문입니다. 소 선생은 시작선에서 던지고 있는 게 아니에요. 내 세대와 우리의 중간 세대가 던지고 던져서 그 돌이 떨어진 지점에서 다시 주워 던지고 있는 겁니다. 내 말 이해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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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code 2022-06-20 0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뽕님 이렇게 서재에도 끊임없이 글을 쓰구 계셨군요ㅎ. 책도 일과 관련된것, 편중된 것만 읽다가 이리 뽕님 블로그나 서재에 들르면 눈 동그랗게 뜨고 글을 공유하며 즐겁게 읽어요^^ 이 책두 주문해서 읽어봐야겠어요. 오늘도 감사해요ㅎ. 뽕님 나름의 힘듦을 이리 늘 덤덤하게 항상 글로 서평으로 나눠주고 계신데 제가 늘 받고만 가네요ㅎ 지난 블로그에서 뽕님이 물어봐주신 소소한 행복.. 전 아마도 그냥 이리 이 모양대로 하루 하루 살아가고 있는 모습에서 안도를 찾으려하는게 아닐까.. 그리고 조금 욕심을 품는다면 늘 생각하고 있는 작은 바람 원래 염세적이면서 본질적인 제가 가진 작은 기대.그런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뽕님 항상 평안한 모습이시길. 이번주도 응원합니다^^

milibbong 2022-06-26 21:35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와주셨네요.. ^^ 두부님 오시기를 고대하며 천천히 천천히 저도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글을 옮겨적고 있었답니다. ㅎㅎ 오늘도 아주 오랜만에 이 곳을 방문해서 한참 글을 적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책 리뷰를 남기러 왔어요 ^^ 하루하루의 삶과 안정과 안도... 저로서는 너무 부러울 뿐인걸요 ^^ 두부님 답고 너무 좋네요 ㅎㅎ 커피 한잔과 잠깐의 시간이 허락되는 주말에 아주 가끔씩 들러서 글귀 한구절씩 읽고서 기분전환 하고 가시면 그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좋습니다. ^^ 장마철 이제 시작인 것 같아요. 우산 잘 챙기시고~ 뜨거운 여름, 화이팅하세요~^^
 
그런 날도 있다
마스다 미리 지음, 이소담 옮김 / 북포레스트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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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스다 미리는 한국에서도 유명하다고 알고 있다. 그녀의 작품을 직접 접하진 않았지만 (대충 스쳐 봤던 것 같다) 유명하다고 느낄 정도니까. 굿즈에 홀려 어쩌다 구매해 읽었는데,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일러스트 작품도 그랬던 것 같다.
 우선 작가와 사는 국가가 다르면 사회문화적 감성 코드가 다른 게 꽤 크게 느껴진다. 서유럽쪽 작품이 많이 와닿지 않았을 때도 그랬지만, 비교적 가까운 나라인 일본 역시 마찬가지였다.
 또 글 자체가 (신문에 연재했던 짧은 에세이라서 그런지) 너무 당연하면서도 허무하고 가벼운 일기나 중얼거림 같았다. 한국에서도 이 작가가 인기 있다면 왜 그런건지 궁금해진 순간이 많았달까.
 원래 제목은 '내일 일은 모릅니다'로 매일의 느낌, 깨달음을 간단하고 자유롭게 적은 작가 자신다운 글이라고 한다. 의도는 알겠지만, 내겐 너무 가볍고 공감이 안되서 아쉬웠던 게 사실이다. 


나이에 맞게, 남자답게, 여자 주제에, 이 얼마나 답답한 말인가. 굳이 답답함 속에 자신을 밀어 넣고 살 필요가 있을까.
적어도 나는 그런 말을 안 하면서 살고 싶다. 그러는 편이 즐겁게 살 수 있고 또 훨씬 멋있으니까.

느리더라도 자기 속도로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묵묵히 갈 수 있다는 데 피트니스의 매력이 있다.
"어리석은 자가 그 어리석음을 고잡허더 보면 현명해진다"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구처럼 말이다.

삶이 지루하다 해서 늘 익사이팅한 경험을 만들고 매일 여행을 떠날 순 없지 않은가. 살아가려면 늘 고만고만한 일상과 맞물려 돌아가는 소소한 성취에서 기쁨을 찾을 줄 알아야 한다. 피트니스의 지루함은 삶의 그런 모습과 닮아 있다.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다정하게 배려해주거나 부드럽게 맞장구를 쳐주면 마음이 모락모락 따스해진다. 밤에 집에 돌아와서도 문득 그때의 따스함이 떠올라서, 그 사람과 또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

언젠가, 언젠가는, 이라고 생각만 하다가 시간이 흐르는 것을 나도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했다. 서른일곱 살은 아직 젊지, 이렇게 말하며 내 어깨를 두드리고 웃는 사람도 있지만, 서른일곱 살인 나 나름대로 늙어가는 불안이 있다.

쓸쓸함은 혼자서 어떻게든 해야지.

둘이 정한 것이 있다. 상대방이 해준 것에 반드시 고맙다고 말하는 것이다. "빨래해줘서 고마워", "쓰레기를 버려줘서 고마워", "차를 타줘서 고마워" 등등.
일부러 말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고맙다는 말을 듣고서 비로소 깨달았다.

그렇지만 내가 굳이 싫은 사람을 위해서 계속 상처받을 이유도 없다. 내게는 그런 강인함이 필요하다고, 지금은 이렇게 생각한다.

웬만하면 다른 사람 앞에서 나를 부정적으로 말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 같은 건 어차피 안 돼요"라고 말하기 싫다. 그러면 내가 너무 불쌍하다. 굳이 작게 보이려고 하지 않는다. 딱 적당한 정도가 좋은데~ 싶긴 하지만 그게 참 어렵습니다.

사람은 상처를 주려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상처를 줄 수 있다. 그런 하루하루를 힘차게 극복하면서 살아가는 나 자신에게, 가끔은 ‘수고가 많아‘라고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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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피트니스 - 나는 뭔가를 몸에 새긴 것이다 아무튼 시리즈 1
류은숙 지음 / 코난북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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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래 읽으려던 책이 아니었지만, 우연에 우연을 겹쳐 내게로 왔다. 헬스에 관한 답정너 결론도 별로지만, 운동하는 사람이면 당연히 언급할 수 밖에 없는 딱딱한 도구같은 트레이닝 이름과 방법도 싫었다. 당장 시작해야 하고 핑계 대지 말아야 하고 꾸준히 해야 하는 거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딱히 큰 재미는 못 느꼈지만, 그래도 글쓴이의 첫 시작이 나만큼이나 어렵지 않았을까, 어려운 첫 시작의 고단함을 노력으로 이겨내지 않았을까 하는 존경의 마음과 부러운 마음으로 읽게 되었다. 아마도 지금은 더 건강하게 활력 가득한 상태로 지내시겠지. 나도 무턱대고 뭐든 지르는 스타일이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도 원칙이 있다. 나의 원칙은 단 하나, ‘나에게 맞는대로 꾸준히‘다.

"나는 선천적으로 재능이 부족했지만 연습과 노력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나는 이것을 내가 하는 모든 일에 적용했다." - 넬슨 만델라 -

내 전도의 요지는 일단은 운동하는 습관을 만들라는 것이다. 제대로 시작해보겠다고 미루지 말고 하루라도 빨리 ‘그냥‘ 시작하라고 한다.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일들을 일단 좀 끝내고 나면, 이것 좀 마쳐놓고 저것 좀 마련해놓고 나면, 이런 식으로라면 ‘그날‘은 오지 않는다.

당장 운동을 하지 못할 이유, 정말 많다. 그러나 이유와 핑계는 다르지 않을까. 우리가 어깨에 짊어진 것이 어디 한두 가지겠는가. 그 어깨에 운동 같은 걸 하나 더 얹으려면 분명 어깨에서 내려놓아야 할 것 또한 생기기 마련이다. 뭘 내려놓아야 할지는 사람마다 어깨에 얹힌 종류와 가짓수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리고 넣고 빼기는 저마다의 몫이다.

다른 일이 꼬였는데 운동만 잘 하는 건 불가능하다. 생활의 힘이 고루 안배되어야 운동도 해나갈 수 있다. 일상을 잘 유지하는 것, 그것이 잘 사는 것 아니겠는가.

몸을 쓰는 활동이 가장 필요한 청소년 시절에 하루 열 시간 넘도록 책상 앞에 묶여 있던 엉덩이, 엉덩이로 이름 쓰기 같은 굴욕적인 벌을 받아야 했던 엉덩이, 쪼그려 뛰기를 하거나 매찜질을 당해야 했던 엉덩이, 그 와중에 몸매 풍기 몸매 품평을 당할 때, 1순위가 되어온 엉덩이.... 이제 내 엉덩이에 평화를 주고 싶다.

고통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내 몸의 소리를 경청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믿는다. 이 신호를 무시하고선 타인의 고통에 귀 기울일 에너지 같은 건 생성되지 않는다.

늙지 않는 걸 바라는 대신 나이듦과 더불어 살아가자. 운동을 하면서 ‘성공적인‘ 나이듦 같은 걸 생각하지도 말자. 노화는 질병이 아니라 삶을 의미한다.

몸을 힘차게 움직이는 삶에서 누구도 스스로를 배제하거나 타인을 배제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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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 김려령 장편소설
김려령 지음 / 창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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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의도가 궁금했다. 작가는 '완득이'로 작품 데뷔를 화려하게 했지만 아쉽게도 난 그녀의 작품 중 제일 유명한 작품을 읽지 않았다. 내가 읽은 그녀의 작품에서는 그녀만의 어두움과 우울감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 느낌을 좋아했었는데, 이 작품에선 작가의 목소리가 애매했다.
동의하는 것일까, 반대하는 것일까. 사실 그 모두가 맞는 이야기긴 하겠지만.
 그리 큰 각오가 없다해도 요즘은 함께보다 혼자가 자연스러운 시대이다. 함께여서 좋은 것보다 어려운 것들이 더 많은데, 글로써 그려지는 부분은 언제나 좋게만 보인다. 그들이 주인공일수록 더욱 더. 하지만 이 시기가 희망적이고 아름답고 잠깐 빛나는 시절일 수 있기에, '멋지고 딱 맞고 천생연분 같은' 이야기는 잘 믿지 않게 된다. 그래서 그녀의 어두운 분위기를 좋아했을 수도 있다.
 비록 이 작품은 내가 좋아하는 느낌이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호기심을 가지고 읽을 수 있었다. 이들은 앞으로 계속 행복할까. 그래도 고통 없는 행복은 없으니, 이전에 아팠던 것만큼 더 노력하기도 할테지. 고통 없는 행복은 없으니, 다투면서도 더 행복할 수 있겠지. 아마 그럴 것이다.  


‘고통을 품지 않은 행복은 없다.‘

‘누구는 늙으면 그래도 아내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나 젊어 미운 것이 늙는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미움에 늙음이 붙어 더 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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