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주의의 위대한 선각자들 - 비밀스러운 종교의 역사
에두아르 쉬레 지음, 진형준 옮김 / 사문난적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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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갖고 있다.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종교 있는 사람 손들어 보라고 하면 70~80%가 손을 드는 것을 보아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 이상의 종교를 갖고 있는 게 틀림없다. 물론 이들 중에는 자발적으로 종교를 선택한 사람도 있고, 태어나자마자 부모의 뜻에 의해 종교인이 된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어쩔 수 없이 종교를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도 천주교 신자이지만 내가 선택했다기보다 부모님 모두 천주교 신자이기에 태어나자마자 영세를 받은 경우다.

하지만 종교를 가진 것과 종교의 교리를 믿는 것, 또 이 책에서 말하는 종교의 본질인 신비주의를 인정하는 것은 다르다. 하나의 예식으로, 또 습관적으로 일주일에 또는 일 년에 한  두 번 교회, 성당, 절에 가는 사람과 죽음이후의 세계를 믿고 종교의 교리를 인정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자신의 성격에 맞지 않아, 자신의 가치관과 달라, 친한 사람이 믿는 종교란 이유로 쉽게 종교를 바꿔버리기도 한다. 마치 운전자격증이나 영어테스트 성적표를 받듯이 말이다.

하지만 어떤 종교이든지 공통된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신비적인 요소로 삶과 죽음에 대한 시각, 인간을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정신, 영혼, 육체)다. 이것은 인간의 모습을 정의할 때, 그리고 동물과 다른 인간만의 가치를 설명할 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기준이자 종교로서 위치를 얻기 위한 핵심적인 내용이다.

그렇다면 종교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이 내용을 인정하는가? 우리가 신비주의라고 하는 것은 과학으로 설명할 수없는, 육체적인 감각을 통해서는 접할 수 없기에 잘 모르겠다고 고백하는 무엇이다. 따라서 이해할 수 없고, 사고할 수 없는, 일상적으로 생길 수 없는 무엇인가를 설명할 때 신비주의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하지만 종교의 핵심이 신비주의라면, 그리고 그것을 이해해야만 종교를 이해하는 것이라면 우리가 믿는 종교는 무엇인가? 예를 들어 믿는 대로 이뤄진다는 교리를 알지만 인정하지 않는 것, 사랑하는 말을 알고는 있지만 실천하지 않는 것, 천상과 지옥이 있다는 교리에 대해 문제 삼지는 않지만 그것은 단지 교리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는 것. 이런 상태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신비주의라는 단어를 바라볼 때 생기는 관념적인 문제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나는 종교를 가진 것이지 미신을 믿는 게 아니라는 시각 말이다.

이 책에는 종교가 갖고 있는 ‘신비주의’라는 개념을 세계 종교의 흐름 속에서 찾아보고 있다. 고대종교에서 가장 최근에, 물론 최근이라고 해봐야 일천년 정도 이전의 이야기지만, 생긴 기독교까지 그 안에 내재된 신비주의의 내용을 정리했다. 결론은 인간은 ‘정신과 영혼, 육체’로 구성되어 있으며, 영혼은 신의 모습이자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연결하는 중재자이고, 이를 통해서만이 신비주의의 핵심인 무엇과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대부분의 종교가 이 내용을 담고 있고, 또한 동의하지만 시대에 따라, 종교 자체의 특성에 따라 어떤 종교는 영혼을 강조함으로써 현세와의 관계를 차단했고, 또 어떤 종교는 육체를 강조함으로써 신비주의적인 요소를 반감시킨 것이 다를 뿐이라고 한다.

저자는, 기독교적인 사고를 갖고 책을 써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기독교 정신 아니 특정종교로서의 기독교가 아니라 예수의 행적과 표현이 담긴 종교로서의 기독교 교리를 통해 신비주의가 완성되었다는 표현을 쓴다. 즉 정신과 육체를 인정하며, 동시에 이들을 연결시키는 영혼의 존재도 함께 인정하는 것은 기독교 정신밖에 없다는 식이다.

하지만 나도 천주교, 넓은 의미로 말하면 기독교, 신자이지만 기독교 정신만이 모든 종교 중에서 최상의 가치를 지닌 종교라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유는 종교라는 것 자체가 우리가 모르는 어떤 절대자에 의해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가 자기 나름대로의 필요에 의해 만들었고, 그 과정 속에서 조직이란, 제도라는, 형식이라는 틀을 통해 신비주의의 순수성을 일정 부분 제거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책을 통해 한 가지는 분명히 깨달았다. 종교를 믿는다는 것은 신비주의를 인정한다는 것, 인간은 영혼과 정신과 육체로 구성되어 있고, 영혼은 내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무엇인가가 연결된 존재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신비주의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종교를 믿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갈 때 필요한 일정의 자격증 같은 것은 하나 더 장만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점이다. 필요에 의해 바꿀 수 있는.

역사책처럼 정리되어 있어 오랜 시간의 신비주의 변화상을 손쉽게 볼 수 있게 만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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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희망, 미래>를 리뷰해주세요.
꿈, 희망, 미래 - 아시아의 빌 게이츠 스티브 김의 성공신화
스티브 김 지음 / 21세기북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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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만장자. 누구나 꿈꾸는 모습이다. 비록 내가 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기는 하겠지만. 하지만 될 수만 있다면 누구인들 싫다고 하겠는가. 하지만 억만장자가 그리 쉽게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아무리 돈이 흔하다 해도 돈 버는 사람에게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이 책 소개 면에 자신의 회사를 엄청난 금액에 팔아 억만장자가 된 스티브 김이라는 소개가 나와 있어 한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며 머리속에 떠 오른 생각은 ‘백조’의 모습이었다. 우아한 자태로 물 위를 여유롭게 떠가는 백조. 하지만 물 아래에 있는 다리는 한 없이 움직인다고 한다. 자신의 몸을 물 위에 띄어놓기 위해, 중심을 잡기 위해, 그리고 앞으로 전진하기 위해서. 백조는 다리가 몸에 비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책을 보며 다양한 것을 느끼리라 본다. 어떤 사람은 저자가 자신이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을, 어떤 사람은 그가 억만장자가 된 과정을, 또 어떤 사람은 저자가 자신의 꿈을 위해 어떻게 살아왔는지의 모습을. 하지만 이 책 내용 중에서 내 가슴에 와 닿은 부분은 그가 처음 미국에 건너가 고생하던 시절의 이야기다. 페이지 상로는 얼마 안 되는 분량이지만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몇 달러를 더 벌려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 그리고 그런 와중에서도 공부를 하며 학위를 받았던 시절 이야기다.

사람들은 누구나 꿈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꿈이 반드시 이뤄지길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 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저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이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당연히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그 꿈이 실제로 이뤄지기를 바라는가 하는 점이다. 단지 꿈이 아닌.

나는 저자의 위대함이 여기에 있다. 어떤 때는 눈물이 나고, 어떤 때는 더 이상 참기 어려운 상황까지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향해 오늘도 한발의 발걸음을 내 디디는 것. 이것이 바로 꿈이 현실로 변하는 비밀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나는 책 앞부분에서 그가 대기업을 그만두고 중소기업을 선택한 것이 어쩌면 그의 성공에 가장 핵심적인 요인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주위사람들의 인정, 안정된 직장, 일하기 좋은 환경 등 대기업은 중소기업은 줄 수 없는 다양한 혜택을 직원들에게 제공한다. 하지만 이런 것에 맛을 들이면 더 이상 그것을 벗어나지 못한다. 널찍한 책상과 아늑한 사무실, 은행에 가서 사원 증만 보여줘도 손 쉽게 대출 받을 수 있는 그런 자리를 어떻게 박차고 나올 수 있겠는가. 게다가 가족이 있고 자식이 커감으로 인해 쓸 돈이 하루가 멀다 하고 커지는 상황에서 말이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중소기업 나름대로 대기업은 주지 못하는 소중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사람과 사람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서로 도우면 살아갈 수 있다는 것, 대기업에서는 부속품처럼 느끼는 업무라도 그곳에서는 독자적인 능력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것, 자신이 열심히 하기만 하면, 그리고 그 일에 성과가 있기만 하면 반드시 보상받을 수 있다는 것. 물론 이 보상을 돈으로만 받아야 한다면 조금 문제가 있을 수 있겠지만 저자처럼 자신의 존재감과 중요성이란 가치로 평가할 수만 있다면 중소기업은 저자처럼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천국과 같은 곳이다.

억만장자인 스티브 김. 그는 억만장자가 되려는 꿈을 갖고 있지 않았다. 단지 자신과 가족이 불편 없이 살 수 있는 정도의 경제력, 하지만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을 인정받고 그것을 통해 세상에 기여하고 싶다는 소명의식만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그를 억만장자로 만들었고 오늘의 스티브 김으로 만들었으며, 어려움 속에서도 고통과 두려움보다는 기쁨과 만족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힘차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 핵심 동력이 아닌가 생각한다.

책 소개에 나온 대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한번 읽어보라고 추전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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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수기업열전 - 국내 최강 기업의 라이벌전 그리고 비하인드스토리
정혁준 지음 / 에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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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든 기업이든 혼자서 살아가는 것보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이 좋다. 항상 뭔가에 자극을 받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안정과 평화가 좋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항상 오늘이 내일이고, 내일 역시 오늘과 다를 바 없다면 무슨 재미로 살겠는가. 물고기를 잡아 이동할 때도 천적을 하나 어항에 집어넣어 가져가는 이유는 천적이 있음으로 해서 물고기들이 이를 피하기 위해 계속 움직이기 때문이다. 결국 맞수가 있다는 것은 힘들게 사는 것 같지만 서로가 서로를 의식하며 끊임없이 변신하게 도와주는 활력소이다. 이런 점에서 맞수대결만큼 흥미로운 것도 없다.

세계시장을 봐도 항상 맞수가 있다. 혼자서 잘난 척하며 살기보다 누군가와 경쟁하다보면 자연스럽게 크기 때문이다. 가장 맛이 없는 음식, 가장 서비스가 나쁜 매장. 이런 것들 대부분이 공산권에 있었다는 사실은 공개된 비밀 아닌가. 경쟁이 없으니 싫으면 안사면 되지 않겠느냐는 그들의 마음 상태가 이런 상황을 자초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를 보자. 콜라시장의 코카와 펩시, 피자시장의 피자헛과 도미노피자, 햄버거시장의 맥도널드와 버거킹, 한국으로 눈을 돌려도 롯데와 신세계, 삼성과 엘지, 현대와 기아(두 회사는 하나의 그룹이긴 하지만), KT와 SKT,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중앙일보 등 각개 분야에서 두 개 내지는 세 개 기업이 서로를 의식하며 싸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즐거운 것은 소비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제목, [맞수기업열전]은 독자의 흥미를 자아낼 충분한 이유가 있다. 어떻게보면 편집기획력의 승리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사람이 시장에서 서로 경쟁하는 기업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들이 앞서거니 뒷 서거니 하며 싸우는 모습이 재미있고, 또 다른 면에서는 서로의 경쟁을 통해 더 좋은 질의 상품을 더욱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

하지만 책의 내용은 조금 기대에 어긋난 면이 있다. 평소 맞수대결, 그것도 기업전쟁이라면 서로의 강점과 약점을 분석해서 상대방의 문제점을 공격한다든지, 동일한 시장 내에서 시간적인 우위를 점하기 위해 뭔가를 했다는 기록 같은 것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맞수대결과 같은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했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단순히 신문지상에서 읽을 수 있는 사소로운 몇 개의 내용을 나열한 것 이상의 정보를 찾아볼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삼성과 LG의 싸움에서 삼성의 이병철회장과 엘지의 구씨 집안이 사돈이라는 것, 삼성이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자 엘지도 그 시장에 뛰었고, 그로 인해 두 집안은 원수가 되었다는 것, 하지만 엘지는 김대중 정부 시절, 기업의 구조조정으로 인해 자신의 반도체 사업을 현대에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는 것, 이게 다이다. 저자는 이 내용을 통해 독자에게 무엇을 전달하고자 했는지 제대로 이해를 못해서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얻은 게 없다. 그저 두 회사가 있었고... 그게 다인 것 같다.

편의점 시장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세계에서 편의점을 가장 먼저 한 곳이 있는데 그곳을 편의점이라 부른 이유는 당시 가게들보다 먼저, 그리고 오랫동안 문을 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국내 편의점은 일본계 편의점에 로얄티를 주고 가져온 것이 많은데 엘지, 즉 지금의 GS25는 그 돈이 아까워 자체 개발했다는 것, 편의점에서 막걸리가 많이 나가는데 이유는 일본인들이 많이 사 먹기 때문이라는 것, 언제부터인지 편의점에서 김밥이 잘 나가는데 싼 가격에 다양한 김밥제품이 공급되기 때문이라는 것, 한 업체가 편의점매출이 떨어져 알아보니 가맹점관리에서 문제가 있어 가맹점들과 대화시간을 늘려 사업을 정상으로 돌렸다는 것, 이게 다이다. 이 내용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책을 쓴다는 건 무척 힘들고 고된 작업이다. 언뜻 보기에는 별 것 아니지만 내용 하나하나에 신경을 써야 하고, 문장을 고치기를 수십 번 반복해야 한다. 게다가 저자 혼자서 만족한다고 될 일도 아니고, 다양한 시각의 사람들이 이리저리 재보면서 수없이 고치는 작업을 계속 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힘들게 써 놓은 책에서 얻을 게 별로 없다면.

맞수기업열전이란 제목으로 인해 한층 기대를 갖고 책을 열었지만 시장에서 맞수가 누군지 이외에는 특별히 얻은 것이 없는 책이다. 차라리 책에 집어넣을 회사를 줄이고 단 몇 개의 회사라도 그들이 맞수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경영이나 마케팅 전략 같은 것을 좀 더 전문적으로 써 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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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즐거움 - 은퇴 후 30년… 그 가슴 뛰는 삶의 시작!
김열규 지음 / 비아북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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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서두에 보면 노년은 ‘삼광의 나이’라는 말이 나온다. 하나는 노숙, 즉 삶이 완벽하게 성숙한 것을 의미하고, 또 하나는 노련, 즉 솜씨나 재주가 최고의 경지에 다다라 있는 것을 의미하고, 마지막으로 노장, 즉 노숙과 노련을 겸한 상태를 말한다. 젊은이들은 가질 수 없는, 나이가 들을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보배와도 같은 것이라 한다.

하지만 이 말을 듣고 ‘아! 그래’ 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지. 아무리 나이듦을 사람들이 찬양해도 우리들은 어쩔 수 없이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곧 세상에서 은퇴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단정 짓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나이 40이면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에서는 이 나이가 인생끝이라고 생각하기 않겠는가. 그 뒤의 나이는 어쩔 수 없이 죽지 못해 사는 나이이고. 그러다보니 아무리 나이든 것을 찬양하는 말을 해봐야 당사자 스스로가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헛일이 되고 만다.

인생 80의 시대. 싫으나 좋으나 예전사람들보다는 거의 20년 이상을 더 살아야하고 그 동안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그저 과거처럼 60까지 자식 키워놓으면 그들이 먹여 살리리라 기대했다가는 쪽박 차기 십상이다. 내 나이 50이지만 지금 나이 20인 내 아들이 나를 부양할 것인가? 글쎄다. 내 머리 속에는 자식에서 부양받겠다는 생각은 아예 없고, 오히려 하루라도 빨리 독립해서 자신의 먹을 것을 찾기를 바랄 뿐이다. 아마 나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생각 외로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남은 30년을 어떻게 살 것인가? 나이듦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고민하지만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한다. 인간이 오랜 세월동안 지구상에서 살아가며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기에 예전에는 그토록 바랐던 장수의 기쁨마저 왜소해진다. 어떻게 맞이하는 게 좋은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이를 먹어가면서도 내가 살고 싶어 사는 게 아니니 나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체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가끔 나이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정말 나이가 들었다. 이제 뭔가를 하는 것도 귀찮고, 할 힘도 없고, 할 일도 없다는 표정. 책을 보라면 눈이 아프고, 밥을 먹으라면 잇몸이 안 좋고, 운동을 하라면 힘이 없고, 놀러가자면 돈이 없다는 사람들이다. 마치 나이가 들면 당연히 이렇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며 나를 바라볼 때면 나 역시 할 말이 없어진다. 모두를 정상인 상황에서 나 혼자 피터팬처럼 살고 있는 것 같으니 말이다.

이 책을 보면 노익장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늙다리라는 말을 통해 노인의 멋을 재미있게 표현했는가하면, 행복한 노년을 위한 5금과 5권을 실감나게 설명하기도 한다. 저자가 설명한, 행복한 노년을 위한 5금은 ‘잔소리와 군소리를 삼가라’ ‘노하지 마라’ ‘기죽는 소리는 하지마라’ ‘노탐을 부리지마라’ ‘어제를 돌아보지 마라’다. 특히 어제를 돌아보지 마라는 말은 노년의 삶은 지금 이 순간부터 미래의 삶이 중요하지 과거에 내가 어쩌구 저쩌구 해봐야 아무런 도움도 안 되기 때문이다.

도리어 저자는 노년이 되면 다섯 가지를 적극 실현하라고 말하는데, ‘큰 강물이 흐르듯 차분한 상태에서 유유자적한 모습을 유지하라고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젊었을 때처럼 꼬장꼬장하게 굴지 말고 관대하라고 한다. 또 무엇보다 소식이 건강에 무척 중요하기에 먹는 것에 욕심내지 말며, 생각난다고 바로 움직이기보다는 머리와 가슴으로 세상의 원리를 이해하면서 움직이라고 한다. 당연히 운동은 열심히 하라고 하고.

저자의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노년의 삶이란 평소 고민하던 것처럼 외롭고 쓸쓸한 삶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단지 우리 머릿속에 부모의 삶이 자리잡다보니 그 모습과는 다른 새로운 노년의 삶을 미처 그리지 못한 것뿐이다. 하지만 이제 노년은 인생의 30% 이상을 남긴 또 하나의 길이고, 이 속에서 과거에는 느껴보지 못한 노숙한 삶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하다.

어차피 거쳐 가야 할 노년의 삶. 그 길을 어떤 생각과 모습으로 걸어갈 것인지는 자신이 결정할 문제이지만 결코 힘들고 고통스러운 길만은 아니라는 것을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독자에게 분명히 전달한다. 노년의 삶에 대한 그림이 없다면 이 책속에서 저자의 삶을 보라. 젊었을 때의 연장선이 아닌 노년만이 만끽할 수 있는 새로운 즐거움이 책 구석구석에 녹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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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빈치의 인문공부 - 세상을 뒤바꾼 통합지성의 발견
슈테판 클라인 지음, 유영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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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드 다 빈치. 왠만한 사람이면 다 아는 이름이다. 어떤 때는 철학자로, 어떤 때는 과학자로, 또 어떤 때는 화학자로 말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가장 깊이 각인된 인상은 ‘모나리자’를 그린 화가의 모습일 것이다. 눈썹을 그리지 않은 것인지, 원래 없는 것인지 아리송하게 만드는 한 여인의 그림. 미소를 짓는 것 같기고 하고 뭔가를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한 묘한 느낌을 주는 그림이다. 프랑스에 있는 세계적인 박물관, 루브르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그래서 사람들의 접근을 통제하기 위해 방탄유리 속에 들어 있는 그림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나리자가 왜 그런 느낌을 주는지는 잘 모른다. 책이나 우편엽서, 사진첩에서 자주 봤지만 실제 그림으로 본 적이 없어 비평가들이 하는 말을 듣고는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갈 뿐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보면 모나리자의 모습이 왜 그런 느낌을 주는지 이해할 수 있다, 오랜 시간 완성하지 않은 채로 갖고 다니면서 계속 수정했던 그림. 모나리자의 존재가 실제 인물인지 다빈치 자신을 그린 것인지, 아니면 창녀의 모습인지를 떠나 그 그림이 가진 위대한 발견의 뒷모습을 상세하게 그려줬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아주 꼼꼼하게 그 이유를 추적했고, 그 내용을 보면 일반사람들은 실행으로 옮기기 어려운, 아주 오랜 시간의 투자와 노력 때문이란 것을 많은 증거자료를 통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내용을 통해  다빈치의 열정, 즉 그가 그 그림을 그리기 위해 쏟아 부은 시간과 노력을 느끼게 된다.

모나리자의 모습에 담긴 비밀은 화가의 천재성은 당연하지만, 그보다 다빈치가 갖고 있던 빛에 대한 지식 덕분이다. 태양빛이 사람의 어떤 면에 도달하면 각도가 어떻게 달라지는 지, 먼 거리와 가까운 거리의 명암은 어떻게 표현하면 되는지, 사람의 표정은 어떤 근육에 의해 움직이며, 이것이 평소 어떻게 작용하는지 등에 대한 정밀한 지식이다. 요즘 세상에서야 뇌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알 수 있는 일이기에 우뇌와 좌뇌가 통제하는 부분이 다르고, 따라서 얼굴의 오른쪽 표정과 왼쪽 표정이 같지 않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지만, 뇌의 구조는 당연하고 그들의 기능조차 몰랐던 르네상스 시대에 이를 발견한 다빈치라는 인물은 너무나도 위대해 보였다. 아마도 그의 호기심, 세상을 이해하고 그것을 자신의 손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열망이 그를 미지의 세계로 이끈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다빈치에 대한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는데 그 중에서도 두 가지 내용이 나에게 크게 와 닿았다.

우선 첫 번째는 그리는 사람이 아닌, 보는 사람의 시각을 인식했다는 점이다. 당시 르네상스 시대에는 자연 그대로를 묘사하는 게 최선이라 생각했기에 화가의 눈에 보이는 그대로 묘사하는 게 중요했다. 하지만 다빈치는 자신의 눈 역시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내가 아닌 내 그림을 보는 사람의 눈을 의식했다. 남들에게 이 그림을 어떻게 보이고 싶으냐의 문제다. 그러다보니 보는 사람의 시각적인 원리를 알아야 했고, 그 지식을 그림에 그대로 반영했다. 내가 보는 것보다 남이 느끼길 원하는 것, 그리고 이를 표현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어떤 지식도 마다하지 않은 그의 정신이다.

두 번째는 그의 관찰 능력이다. 수학의 ‘수’자도 모르는 사람이 물을 이용한 도구를 만들고, 다양한 물체의 운동역학을 알아야만 가능한 전쟁무기를 개발했다. 나에게 궁금했던 것은  교육을 받은 적도 없는 그가 어떻게 그런 것을 이해할 수 있었고, 게다가 교육을 받았다 해도 당시 지식으로는 물체가 날라 가는 원리 자체를 모르던 시절이었으니 어떻게 그런 것들을 구상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었다.

해답은 다빈치는 자신의 궁금증을 남에게서 찾기보다 직접 실험했다는 것이다. 무기의 활공역학을 이해하기 위해 자루에 구멍을 뚫고 물을 넣어 물이 떨어지는 각도를 이해했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하나의 지식을 한 곳에만 활용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로 확대해 나갔다.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둘이 되는 게 아니라 셋, 넷 이상의 결과가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넘쳐나는 정보, 검색 한두 번이면 자신이 원하는 정보 이상을 얻을 수 있는 현대사회에서 다빈치의 사고방식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게 우스운 말이지만, 이 책을 보면 왜 우리가 거의 500년 전 사람보다 더 모르는 게 많은지 짐작할 수 있다. 바로 정보에 길들여져 있다는 점이다. 주어진 것에 만족하는, 아니 주어진 것조차 버거워하는 우리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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