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나를 만나러 가는 길 - 아무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 날을 위한 셀프카운슬링북
바바라 포르스터 지음, 이덕임 옮김 / 열음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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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말대로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의 기복을 겪는다. 아침에는 밝은 태양과 맑은 공기 덕분에 힘차게 집을 나온 사람이 점심을 먹고 나서부터 나른해 지더니 저녁때는 ‘내가 왜 이렇게 살지?’하는 허무감으로 풀이 죽는다.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니고 특별히 나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자기 혼자 흥이 났다 풀이 죽었다 하며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상황을 자신도 많이 겪었고, 또 누구에게나 생기는 것이기에 큰 문제는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자주 그런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책 앞 ‘들어가는 말’에 보면 우울한 상태를 측정하는 간단한 질문이 있다. 거기에 의하면 ‘한 달 동안 아무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 날이라고 느끼는 날이 5일 정도면 ’정신차려야 할 1단계‘라고 한다. 한 달 동안 5일이라면 평균 잡아 일주일에 한번 꼴인데.

어쨌든 우리는 세상 사람이 자신만을 주시하는 듯 느끼며 혼자 조심스러워하고, 힘들어한다. 실제는 전혀 그렇지 않는데도 말이다. 그저 잠깐 실수한 것도 다른 사람이 자신을 지켜보며 책망이나 하듯이 두려워하고, 말 한 마디에도 실수할까 겁나 말을 더듬는다. 문제는 이와 같은 강박관념이 자신을 더욱 안으로 움츠리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 책은 사람들이 평소 느끼는 감정을 적절하게 처리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 말대로라면 음식 만들 때 사용하는 레시피 처럼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면 책 내용을 보고 따라 하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현재의 상황과 이에 대한 진단, 그리고 즉각적인 처방과 장기적인 처방을 별도로 작성해 놨기 때문이다.

책에는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해 설명되어 있다. 자기 스스로를 평가 절하하는 상황에서 벗어나는 법, 자신도 잘 이해가 안 되는 복잡다단한 감정을 정리하는 법, 자기 안에서 동시에 살고 있는 여러 개의 자아를 다독거리는 법. 외롭고 쓸쓸할 때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법. 쓸데없는 고민으로 인해 머리 아플 때 이를 해소하는 법, 그리고 실연으로 인해 상처받는 마음을 치료하는 법과 아무도 자신을 사랑해 주지 않는 것 같은 날에 스스로를 위로해 주는 법이다.

이들 중에 가장 관심 있게 봤고, 책을 덮은 후에도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3장인 여러 개의 내면 자아를 관리하는 방법이다. 내용은 사람 마음속에는 3개의 분리된 자아에 대한 것으로 어린 아이 모습의 자아, 부모로서의 자아, 어른으로서의 자아이다. 어린 아이 모습의 자아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자아로 어린아이처럼 충동적이고 감정적인 모습이다.

또 하나 부모로서의 자아는 어린 자아를 관리하는 역할의 자아로 어린 자아가 문제를 일으키거나 말썽을 피우면 실제 부모처럼 그를 나무라고 훈계하는 자아다. 저자는 이 자아가 무척 중요한 데 이 모습은 자신의 부모를 보고 그대로 닮는다고 한다. 따라서 부모에게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경우 이 자아가 무척 약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른으로서의 자아다. 이 자아는 앞의 두 자아를 조정하고 제 3자의 입장에서 자아의 의견을 판단하는 자아로 어른스러운 태도를 통해 사람의 모습을 성장시킨다. 하지만 어른 자아의 능력과 어른스러움도 개인마다 달라 어떤 때는 문제를 야기 시키기도 한다.

사람들은 평소 이 세 개의 자아들끼리 싸우기도 하고, 토론을 벌이기도 하면서 살아가지만 이들이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거나 조정하지 못하게 되면 당사자는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누구 말이 올바른지 판단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는 자신안의 목소리가 들릴 때에는, 특히 여러 가지 목소리 중에서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를 알기 위해서는 평소 각각의 소리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얘기해준다. 즉 계속해서 솔직하고 자유롭게 자신을 관찰하면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라는 말이다.

우리는 항상 즐거울 수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어려움과 고통은 외부에서보다는 내면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처방을 갖고 있다면 얼마나 편리하겠는가. 이 책이 이런 기능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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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의 맥 - 돈의 흐름을 간파하는 기술
정진건 지음 / 청림출판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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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돈을 벌려면 무엇인가 해야 했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뭔가를 만들거나, 서비스해야만 거기에 상응하는 대가로 돈을 가질 수 있었다. 물론 귀족들이나 토지를 가진 사람들은 그것을 남에게 빌려주고 가만히 앉아 먹고 살기도 했지만.

그러나 경제규모가 커지고 시장이 단순한 교환구조를 떠나 인간들의 생활터전이 되면서 기업들은 그곳을 차지하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이때 부족한 자기자본을 메우기 위해 남의 돈을 빌려야만 했다. 이를 편리하게, 언뜻 볼 때는 공평한 구조로 만든 것이 바로 주식이다. 내가 만든 기업이 아니더라도 돈을 갖고 그 회사의 수익과 의사결정권을 가질 수 있는 묘한  종이조각이다. 게다가 정부 역시 돈을 찍어 이를 시장에 공급하고 회수하는 방식을 통해 시장규모를 좌지우지했고, 은행 역시 돈 빌려주는 이자율을 조정하면서 기업과 서민들의 돈 씀씀이를 통제했다. 돈이 돈을 통제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요즘에 투자라는 것을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최소한 주식 한 장이라고 갖고 있지 않을까 싶다. 어떤 사람은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이 직접 구입하고, 어떤 사람은 회사에 충성하겠다고 자사주를 매입하고, 또 어떤 사람은 부모에게 물려받기도 해서 말이다.

하지만 어디에나 승하는 사람이 있으면 망하는 사람도 있듯이 투자라는 것이 꼭 돈벌이가 되는 건 아니다. 특히 요즘 같은 경제 불황상황에서는 갖고 있던 주식이 쓰레기로 변했고, 이도 부족해 집마저 날린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단지 큰 소리를 내지 않는 것뿐이다. 자기 스스로 돈 벌겠다고 쏟아 부은 것이니 말이다.

어쨌든 투자, 재테크는 이제 일반화된 돈벌이의 한 방식이다. 예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직접 자신의 몸을 활용해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돈이 나에게서 남에게 가고, 다시 그것이 나에게 돌아오면서 수익이 발생하는 것뿐이다. 즉 실체도 없는 것이 스스로 커지는 것이다. 내가 이 글에서 ‘돈벌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아무리 고상한 표현을 쓴다 해도 이것도 현대사회에서는 분명히 돈을 벌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세상을 바라보면 이해 안 되는 것이 많다고 한다. 분명히 안 될 것 같은 것인데 사람들은 된다고 생각하며 불나방처럼 뛰어들고, 세상 어디선가 불황이라고 떠들어 대는데도 우리나라 은행은 금리를 올린다는 것이다. 돈이 잘 안도는 상황에서 금리를 올리는 건 저자 말대로 ‘간이 부은 것’ 아니겠는가. 물론 그들의 ‘깊은 속마음’은 잘 모르겠지만.

따라서 저자는 세상을, 투자대상을, 기업과 시장을 정확히 보려면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가서는 안 된다고 한다. 특히 기존 경제이론은 더더욱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요즘 경제는 과거처럼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되지도 않을뿐더러 설명한다 해도 극히 일부분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귀찮아서인지, 자신의 이론을 주장하고 싶어서 바로 옆집에서 자신의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경제가 움직이는 데도 꿈쩍 않고 기존 논리만을 역설한다. 결국 피해는 우리 같은 개미들만 보는 것 아니겠는가.

이 책을 보면 평소 알고 있던 시장경제와 투자에 대한 것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평소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정보나 지식들의 내면을 다른 시각으로 전달해 주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 중에 재미있는 게 있는데 ‘바닥 밑에는 지하실이 있다’는 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바닥을 쳤는지에 관심 갖고 있는 상황에서 누군가 “아. 이제 바닥이예요. 하지만.....그 아래 또 하나 층이 있는데요.”라고 말한다면 그때 당신의 기분은 어떻겠는가? 하지만 이제 현실이다.

올바른 투자는 이론이 아니라 현실에 입각한 시각에 의해 이뤄진다. 그리고 현실이란 여러 가지 시장요소들의 원리를 아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 책에서 배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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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SON 에디슨 법칙 - 성공을 몰고 올 아이디어를 찾는 놀랍게도 단순한 방법
옌스-우베 마이어 지음, 원미선 옮김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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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슨. 아마도 이 사람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현대 과학문명의 대부분이 이 사람의 머리에서 나왔고, 지금도 그가 설립한 회사는 세계에서 몇 번째 안 가는 거대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바로 GE다.

그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발명품이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전구이고, 또 하나는 전화기다. 하지만 이것들 모두 에디슨이 처음 만든 것은 아니다. 그 전에 이미 전구(괴벨)와 전화기(벨)는 존재했다. 다만 용도나 기능 상 문제가 많았을 뿐이다. 그렇다면 왜 다른 사람들은 에디슨처럼 그것들을 실용화시키지 못했을까? 마치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사람이 번다고 다른 사람들이 고생해서 만든 것을 갖고 실제 명성과 돈은 에디슨이 다 가진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바로 이와 같은 상황을 만들어 낸, 에디슨만이 가진 창의적인 사고방법을 단계적으로 설명한다. 창의력이란 것이 추상적인 것이고 유동성이 심해 그것을 일반화시킨다는 게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저자의 말을 들어보니 머리가 끄덕인다. “아! 그렇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내가 어디서 창의력을 제한시켰는지, 내가 한 생각들이 왜 에디슨처럼 발전하지 못했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에디슨이 말한 대로 “천재는 1퍼센트의 영감과 99퍼센트의 땀으로 완성된다.”는 말을 실감한 순간이다.

저자는 에디슨의 창의력 방법을 갖고 많은 사람을 교육시켰는데, 그가 강의할 때마다 안타까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고지식한 틀을 고수하며 그에 따라서만 행동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당연히 그런 태도는 창의력을 개발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내가 봐도 고지식한 것은 눈앞에 놓인 문제를 쉽게 풀 수 있는, 결과가 보장된 방법이긴 하나 거기서 창의적인 문제해결책을 찾기는 어렵다다.

저자는 에디슨의 창의력 방법을 그의 이름을 따 EDISON법칙이라고 정의했다. 그것들을 이야기해보면 ‘E: 성공의 기회를 파악하라.’ ‘D: 생각의 틀을 벗어나라.’ ‘I: 영감을 찾아라.’ ‘S: 긴장감을 조성하라.’ ‘O: 제 자리를 찾아주고 최적화하라.’ ‘N: 이익을 극대화하라’ 이다.

책을 읽다보면 역시 에디슨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경의로운 마음도 든다. 인간이면 누구나 갖고 있는 조그마한 두뇌를 갖고 이런 방식으로 남들과는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구나 하는 것에 대한 감탄이다.

하지만 그가 더욱 돋보이게 하는 점은, 일반적인 창의성이란 개념 속에서 볼 때, 첫 부분 ‘ 성공의 기회를 파악하라’는 말과 마지막의 ‘이익을 극대화하라’는 부분이다. 사람들은 창의성이란 천재성이고 놀라움 그 자체이기에 이를 통제하거나 관리하는 것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따라서 창의성과 논리성, 조직성은 서로 융합할 수 없는 것이고 창의적인 사람은 이를 상품화하거나 조직화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에디슨은 자신의 창의력을 실제 행동으로 옮길 때는 제일 먼저 이것을 어디에 쓸 것인가, 개발한 후 시장성이 있는가에 대해 판단했고, 이런 판단과정에서 통과한 것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저 머리에 떠오른다고 “아!” 하며 좋아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새로운 발명품을 만든 후에도 거기서 멈춘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하면 더 좋고 낫게 만들 수 있는지 지속적으로 고민하며 개발해 나갔다. 즉 그가 가진 6단계 방법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기존의 발명품을 지속적으로 개량했다. 내가 만든 것의 한계가 무엇이며,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은 또 무엇인가? 좀 더 낫게 만들 방법은 없는가? 그리고 이를 위해 다시 몰입하곤 했다. 그러다보니 그의 상품은, 일반대중들은 느끼지 못하겠지만, 항상 오늘과 다른 새로운 것으로 변신해 갔고, 이것이 바로 에디슨의 이름과 그의 상품을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창의성, 이제 이 능력의 중요성을 다시 이야기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분명히 깨달은 것은 창의성이란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필요한 곳에서 발휘해야만 그 가치가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100년 전, 누군가가 해 냈다면 지금 우리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복음과 같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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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장의 백지수표>를 리뷰해주세요
19장의 백지수표 -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는 19가지 특별한 주문
페기 맥콜 지음, 김소연 옮김 / 서돌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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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현대사회에서 돈을 무시하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돈은 자신이 만들어낼 수 있는 오만가지 것들과 자유롭게 교환할 수 있는 유일한 가치원이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들은 ‘돈’의 가치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은 이유는 언제, 어디서나 자신이 원하는 것과 바꿀 수 있는, 카드로 치면 조카와 같은 기능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결국 돈 자체가 가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수행하는 역할이라는 것이다. 어떤가? 말이 되는 것 같은지.

오랜 전 우리는 ‘쌀’을 돈처럼 사용했다. 당시 만석꾼 같은 말이 이런 상황에서 유래된 것 아닌가. 쌀만 있으면 무엇과도 바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임금 아니라 그 이상 되는 사람도 먹고 살려면 반드시 필요했으니 그것과 맞바꿀 수 없는 게 무엇이겠는가! 하지만 요즘은 쌀에 대한 가치가 많이 떨어졌다. 생산량이 소비량을 초과했다고 처리방안을 고민할 정도이니 옛날 사람들이 이 광경을 봤으면 뭐라고 했을까? 앞의 이야기와 비교해보면 쌀 가치 하락은 쌀에 대한 대안품이나 대체품들이 많아 교환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쌀밥은 싫고 패스트푸드가 최고라는 아이들도 많고, 밥 먹으면 살찐다고 야채만 먹어대는 여성들도 늘고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돈은 필요하고, 때에 따라서는 중요하다. 게다가 이제는 교환가치를 떠나 ‘돈’ 그 자체가 인간의 품격과 삶의 기쁨을 제공해 주는 것처럼 인식되어 돈만 벌면 모든 게 다 이뤄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이 생겼다. 아마도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에서 모리교수가 한 말처럼 현대인들은 마음이 허전하고 의지할 곳이 없다보니 돈이란 것에 맹종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람은 아무리 많아도 믿을 수가 없다. 언젠가는 나를 배신하고, 속이고 괴롭힐 수도 있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 누구를 믿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돈은 일단 호주머니에 들어오면 나를 주인으로 섬기며 무엇이든지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마치 알라단의 마술램프처럼 말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들은 돈을 벌기 위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하고, “내가 뭐 때문에 살고 있지?” 푸념하며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간다. 가끔 학생들이 보낸 메일에도 이런 말이 있다. “교수님. 요즘 제가 왜 사는지 모르겠네요. 하루 종일 몇 푼 안 되는 돈 때문에 이리 뛰고 저리 뛰다보면 하루가 그냥 지나가죠.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요?” 이런 내용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려오는 이유는 나도 한 때 이런 생각을 하며 내 자신을 학대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물론 지금도 이런 상태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돈이 있어야 먹을 것을 살 수 있고, 돈이 있어야 결혼을 하고, 돈이 있어야 집도 장만하고, 돈이 있어야 아이들 과외공부도 시키고, 돈이 있어야 남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인간답게 살 수 있지 않는냐 하는 사람들의 말에 “그렇지 않다. 돈은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야.”라고 대답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돈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한 부류는 과거에는 ‘돈이 최고야!’하고 외치며 고급, 최고급만 주장하다 돈 없어지니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며 세상을 원망하며 사는 사람이고 또 한 부류는 젊었을 때는 ‘돈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야!’ 라고 외치며 자기 하고 싶은 일만 하다가 나이가 드니 돈 문제 때문에 심각하게 고민하며 두려움에 빠져있는 사람이다.(이 경우들은 조금 극단적인 예를 든 것이다)

우리는 어디쯤에 속할까? 아마도 이 두 부류의 중간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에 속하든지 간에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돈’ ‘부’에 대한 가치가 있는데 이 중의 하나가 ‘돈은, 부는 제한된 것이다. 따라서 네가 가지면 나는 가질 수 없다’는 것이고(이런 생각이 시기와 질투를 만든다), 또 하나는 ‘돈을 버는 사람은 나와는 다른 남다른 사람이다’라는 것이며(이런 생각이 나는 왜? 하며 자기부정을 하게 만든다), 마지막 하나는 ‘돈을 벌려면 정상적인 생각으로는 안 된다’는 부정적인 생각이다. 즉 그 정도 돈을 벌었을 때는 틀림없이 세금 포탈했을 것이고, 남을 속였을 것이고, 다른 사람이 가질 돈을 포탈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이런 사람들은 돈 없음을 자랑하며 자신을 합리화시키기도 한다).

아마도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한, 돈은 무슨 수를 쓰던지 간에 내가 먼저 잡아야 하는 것이고, 특정의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제한된 것이며, 따라서 돈과 부는 상대를 눌러 이긴 노획물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돈’은 더럽고 지저분한, 고귀한 사람은 가까이 하면 안 되는 피뭍은 무엇이 된다. 마케팅이란 인간 친화적이고 고객 지향적인 사고가 자신이 살기 위해 남을 죽여야만 하는 전쟁터에서 사용하는 기법처럼 변했듯이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 위의 관념들이 모두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는 제한된 것도, 특별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것도, 사람과 사람을 구분하기 위해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돈은 돌고 돈다. 그리고 부를 측정하는 것은 ‘돈’ 하나만이 아니다. 잠깐 머리를 돌려 돈을 가지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즉 ‘부’는, ‘돈’은 풍요로움을 얻기 위한 수단이지, ‘부와 돈’ 자체가 풍요로움 그 자체는 아니다. 백만장자는 모두 풍요로운가? 지갑 속에 1000만원이 들어있으면 풍요로울까? 물론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내가 가진 돈 액수 그 자체가 내 정신을, 내 마음을 풍요롭게 만들 수는 없다. 이 책을 읽어보면 왜 그런지 이해할 수 있다. 풍요로움을 얻는 방법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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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비치 - 꿈꾸던 삶이 이루어지는 곳
앤디 앤드루스 지음, 강주헌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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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쓴 책을 본 것이 이것으로 3권 째다. 맨 처음 본 것이 ‘폰더씨의 위대한 하루’였고, 두 번째 본 책이 ‘폰더씨의 실천하는 하루’, 그리고 세 번째로 본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저자가 쓴 책을 보면 내용이 간략해서 저자가 독자에게 무슨 말을 전해주고 싶은 지 분명히 알 수 있지만, 소설처럼 흥미진진한 부분은 조금 떨어지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외국에서 나온 스토리텔링 책이 대부분 이런 식인 것 같다. 이야기로서의 재미 보다는 저자가 독자에게 전해주고 싶은 주제를 분명히 규정짓고 이를 직접적으로 설명했다. 누군가 제 3자의 입을 통해. 즉 설명문으로 쓸 내용을 군더더기 없이 독자가 알기 쉽게 약간의 이야기를 더해 설명한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나온 것들은 조금 스토리 전개 자체가 복잡하다. 뭐라고 할까. 감정이입을 위해 앞뒤좌우에 여러 가지 보조물들을 붙였다고 할까. 좌우간 좀 길고, 어떤 것은 일부러 감정을 자극하려 애쓴 흔적도 보인다.

어쨌든 저자는 오렌지비치라는 독특한 지역 하나를 선정하여(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곳)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문제를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소개한다. 어떻게보면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자주 부딪치는 문제들이다. 저자는 존스라는 노인을 통해 그 동네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그들에게 기쁨을 선사한다. 저자가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들어보면 ‘아! 맞아’하는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평소 우리가 보던 세상을 또 다른 시각에서 보여주기 때문이다.

몇 가지 이야기를 요약해 보면, 한 남자가 있는데 그의 문제는 걱정과 고민거리가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격이 주변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존스는 그에게 묻는다. 혹시 머리가 좋다는 소리를 듣지 않느냐고. 그 남자가 그렇다고 하자 존스는 똑똑하고 상상력 풍부한 사람들이 고민도 많고 걱정거리도 많다고 한다. 이유는 똑똑하고 창의적이어서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런저런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될까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지 않은가?

존스는 그 남자에게 당신이 하는 고민 중에 대부분은 쓸데없는 고민이란 것을 인정하기만 하면 된다고 하면서 고민을 구체적으로 해부한다. 즉 전체 고민거리 중에서 40%는 앞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 30%는 대부분 과거에 이미 일어난 일, 12%는 건강과 관련된 일, 그리고 10%는 남의 생각에 대한 쓸데없는 걱정이다. 그럼 남은 게 8%인데 존스는 이게 그 남자가 고민해야 할 진정한 걱정거리라고 한다. 당신은 어떤가?

또 하나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손자까지 본 70대의 할머니가 자기 집 앞에 있는 나무의자에 앉아 한숨을 쉬고 있다. 남편은 죽었고, 아이들은 이미 손자까지 본 상태에서, 자신이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생각하며 한숨 쉬고 있다. 그때 존스가 나타나 할머니에게 이야기를 한다. 우리가 호흡하는 한 살아있는 것이고, 아직 살아있다는 것은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을 끝내지 못했다는 의미다. 즉 우리의 목표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목표를 아직 이루지 못했으면 그건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아직 살아보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따라서 이제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다고 고민하기보다 아직 살아있는 자신을 보며 내가 앞으로 무엇을 이뤄야 할 것인지 생각해 보라고 한다.

존스의 말을 들어보자.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아직 살지 않았다면, 최악의 시기를 맞았더라도 앞으로 더 크게 웃을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겁니다, 더 큰 성공을 기대하고, 더 많은 아이를 가르치고 도와주며, 더 많은 친구를 만나 좋은 길로 인도할 거라고 확신할 수 있는 겁니다, 그게 희망의 증거입니다.”

[아직 살아있다는 것은 아직 삶의 목표를 이루지 못한 것이다.] 예전에 영혼과 관련된 책에서 비슷한 문장을 봐서인지 무척 인상 깊은 내용이다. 그 책에서는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자신이 세상에 태어나 해야 할 일을 완수했을 때라고 한다. 물론 사람들은 아직도, 아직도 하면서 아쉬워하지만 영혼이 인간으로 태어날 때 하기로 한 것을 완료했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나도, 당신도 아직 세상에 태어난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는 의미가 되며 존스 말대로 가장 중요한 삶의 부분을 남겨두고 있다는 말도 된다. 멋지지 않은가!

저자가 이 책에서 전달하고자 한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세상은, 자신의 위치는, 상대방의 모습은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데 사람들은 그 중에 하나만을 보면서 진리라고 우긴다는 것이다. 따라서 삶이 불만스러우면, 삶의 의미를 못 느낀다면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예전과는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이 책에 나온 주인공 존스의 말을 듣다보면 관점을 바꾼다는 게 어떤 것인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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