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아주 가까운 사람, 정말 사랑했고 또 사랑해야 하는 사람의 행동이

나의 모든 상식을 동원해도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 때는

정말로 우울하고 마음속이 복잡하다.

그래서 반투명 유리를 여러겹 겹쳐서 거의 알아볼 수 없게 하는 것처럼

마음속에서 여러겹의 막을 쳐서 흐릿흐릿 하게 하고 지내는 것일런지도 모른다.

그런데 가끔씩은 여러겹의 반투명 유리가 한 겹의 투명한 유리로 변한 것처럼

뚜렷하게 떠오를 때가 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조금 우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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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이름은김삼순 2006-03-25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내세요^^ 오늘은 기분좋은 주말이잖아요~!!

외로운 발바닥 2006-03-25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격려말씀 고맙습니다.^^ 오늘 나가보니 정말 날씨가 좋더군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

내이름은김삼순 2006-03-26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가 지났네요^^ 제 서재서 보니깐 더 방갑네요~
그냥 편히 김삼순이라 불러주세요^^ 저두 그냥 발바닥님이라 부르면 되죠?^^
오늘 하루도 소중한 추억 만들며 행복하게 보내세요^^자주 놀러오겠습니다~!!

외로운 발바닥 2006-03-26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발바닥님 이라니 좀 어색하지만 ^^ 그렇게 불러주십쇼.
제 서재는 워낙 방문객 수가 적어 한분한분 더욱 소중하답니다.
저도 자주 놀러가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의미있고 즐겁게 보내시길~
 
나니아 연대기
클라이브 스테이플즈 루이스 지음, 폴린 베인즈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시공주니어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충동구매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대다수의 독자들이 그랬겠지만, 반지의 제왕에 버금가는 환타지 대작이라는 나니아 연대기가 영화로 출시된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우연히도 반지의 제왕이 영화로 출시되기 얼마 전 소설을 다 읽고 영화로 반지의 제왕을 접했을 때 느꼈던 감동을 또한번 느껴보고 싶었기에, 나는 알라딘을 검색하여 불과 며칠 차이로 할인쿠폰을 놓치고서도 3만원에 육박하는 육중한 무게의 - 혹자는 이 책을 들고 있으면 아령을 하는 기분이라거나 누워서 책을 읽다가 책을 놓치면 부상이 우려된다고도 하였다 - 이 책을 덜컥 구매하고 말았다.


사실 책을 구매하기 전에도 약간 미심쩍은 구석은 있었다. 똑같은 제목의 책이 7권으로 나누어져 동화책으로 출판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니아 연대기가 원래 동화책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영화개봉에 맞추어 출판사에서 이른바 ‘성인판’을 낸다고 했을 때는 막연히 어린이 동화책과는 무언가 좀 다르겠지 라는 기대가 조금은 있었다. 그런데, 책을 읽어보니 - 사실 책 자체가 그렇게 비난받을 것은 아니다. 원래 동화책이었으니까. 사실 다른 것을 기대한 내 잘못이고, 그런 심리를 알게 모르게 이용하여 똑같은 내용을 성인판이랍시고 웬만한 법서보다도 두꺼운 분량으로(사실 책이 그렇게 두꺼워진 것은 책의 가격을 높여보려는 출판사의 얄팍한 편집기술에 기인한 바가 크다) 출판한 출판사의 상술에 놀아난 것도 내 잘못이다. - 나니아 연대기는 영락없는 동화책이었다. 그것도 기독교적 세계관에 충실한, 거의 기독교 동화책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였다.


물론 조금 흥분하여 서두를 시작한 것은 내가 허황된 정보와 기대를 가지고 책을 접했고, 동화책을 읽으면서 감동을 느낄만한 동심을 잃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후자에 관해서는 나도 안타깝게 생각한다. 나니아 연대기 자체만 가지고 평가한다면 동화책으로서는 꽤 훌륭한 책인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곳곳에 교훈적이고 어린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만한 내용들이 동화에 잘 녹아들어 있다는 느낌도 받았고, 옷장속으로 나니아라는 전혀 다른 별개의 세계로 통할 수 있으며 그 안에 말을 하는 동물들과 요정과 난쟁이들이 있다는 이야기는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할 것 같다.


다만, 앞에서도 밝혔듯이 이 책은 기본적으로 기독교적 세계관에 충실한 책이다. 적어도 이 책을 읽기 전에 그 점에 관해서는 독자들이 분명히 알고 있는 편이 좋으리라고 본다. 동심을 잃어버린 내 자신을 탓하며 내 아이가 이 책을 읽을 때까지 잘 간직해 두어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이가 읽기도 전에 책의 두께와 무게 때문에 질려버리지 않을까 조금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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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06-03-24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기는 한데, 그 기독교적 색채는 별로...-_-;;;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지는 않은데..;

외로운 발바닥 2006-03-25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기독교적 색채가 강하다는 것을 에피소드 두개쯤 읽었을 때 알았지요. 아이들은 배경지식 없이 읽으면 그냥 환타지로 읽지 않을까 해서요 ^^;
 
나니아 연대기 : 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 CE (2disc)
앤드류 애덤슨 감독, 조지 헨리 외 출연 / 브에나비스타 / 2006년 4월
평점 :
품절


반지의 제왕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본 후 크게 감동을 받았던 나는 똑같은 기대로 3만원에 육박하는 나니아 연대기 소설을 구입하여 이번 영화에 해당하는 부분만 먼저 읽고 영화를 보게 되었다. 사실 영화를 본 주위 사람들에게 대충 평을 들은 뒤라 반지의 제왕 정도로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세계 3대 판타지의 하나로서 톨킨의 반지의 제왕을 탄생시킨 계기가 된 톨킨의 절친한 친구인 J.S. 루이스가 쓴 작품을 기본으로 한 영화여서 기대치를 크게 낮추기는 어려웠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반지의 제왕을 기대한다면 분명히 실망할 것이다. 그렇지만, 다른 판타지와 비교하지 않고 ‘나니아 연대기’ 자체만 놓고 본다면 그럭저럭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생각한다. 비록 주인공들이 아이들이고, 등장인물들의 수나 전투의 스케일이 아기자기하여 어른들이 보기에는 좀 싱거울 수 있으나 특수효과는 꽤 볼만하다. 사슴의 다리를 가진 파우누스 툼누스씨나 아슬란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은 거의 어색함을 느낄 수 없다.

 

특히 이 캐릭터가 제일 신기했으나 별 활약은 못한다 -0-

 

그렇지만 본인도 반지의 제왕을 기대하고 보았다가 실망한 관객으로서 아쉬운 점은 좀 지적해야겠다. 무엇보다도 아슬란의 위압감이 소설로 읽었을 때보다 훨씬 못하다고 느껴졌다. 소설에서의 아슬란은 다른 모든 것들을 압도할 정도의 엄청나게 거대하고 온몸에서 빛이 나는 듯한 사자인데 영화에서 아슬란을 보고는 그냥 좀 큰 사자라는 느낌밖에 안들었다.(이것은 순전히 개인적인 느낌이다.) 그리고, 원작의 내용상 어쩔 수 없었기는 하겠지만, 아이들이 전투에서 싸우는 장면은 보기에 편하지도, 멋있지도 않았다. 중학생 정도 되는 아이와 초등학생에게 갑옷을 입혀서 갑자기 군대를 이끌게 해서 어쩌자는 건지...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리고, 영화를 먼저 본 사촌동생이 내가 책을 읽었다고 하자 한 말이 있다. 그 말을 생각하면 아직도 웃음이 나온다. “형, 주인공들이 꼬마 여자애 빼고는 다 안 멋있어. 혹시 책에도 주인공이 못생겼다는 내용이 나와?”

 

정말 캐스팅에 크게 신경 쓴 것 같지는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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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기부기 2006-04-18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뭔가 부족한 거 같어. 애들은 별로 안 이쁘고.. ㅋㅋ

외로운 발바닥 2006-04-19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확실히 반지의 제왕같은 감동은 없었다는...너무 어린이들 보는 영화라는 느낌이 강했지...
 

간만에 큰 맘먹고 인터넷을 검색하여 서래마을에 있는 '떼르메르'를 방문하게 되었다.

이전에 인터넷 검색으로 흙속의 진주같은 '듀파르'를 발견한 것에 한껏 고무되어 있던 나는,

이번에도 막연한 성공을 예상하고 있었다. 물론 일부 평가가 '그저 그랬다'든지, '파스타가 조금 짜다'는

말이 있어, 기대수준을 조금 낮추기는 했었다.

사실 '떼르메르'를 가게 된 것은 얼마전 아는 분이 서래마을로 데이트를 간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전에도 우리 나라 안에 작은 프랑스 마을 같은 곳이 있다고 해서 호기심이 있었고, 그곳에 작지만 맛있는 음식점이 많다는 말도 얼핏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결과는 대 실망이었다. 사실 여러가지로 기분을 잡쳐버려서 정말 음식값이 아깝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우선 장소가 너무 비좁았다. 장소가 좁은 것 자체를 탓할 수는 없으나 다른 손님들과의 거리가 수십센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서 대화도 크게 할 수 없었고, 한마디로 분위기를 전혀 낼 수가 없었다.

가격은 인테리어에 비해서는 결코 싸다고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뭐, 하지만 프랑스 요리가 워낙 비싸니 맛만 있으면 사실 크게 불평할 정도는 아니었다. ...고 생각했다. 샐러드가 15,000원, 양갈비가 40,000원, 파스타가 16,000원 등등...갔다온 지금은 물론 그 돈내고 먹은 것이 엄청 후회스럽지만...

처음 나온 샐러드는 뭐...그럭 저럭 먹을만했다. 사실 아주 맛있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나는 속으로는 아주 조금 실망했지만, 내가 오자고 한 곳이라서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서 더 맛있는 척을 하면서 먹었었다. 그나마 샐러드에 있던 작은 토마토 - 말린 것을 데친 것 같다 - 는 맛있었다. 하지만, 정말 소금 덩어리인 앤초비로 추정되는 물체는 정말 한 조각만 베어 먹어도 입이 쓸 정도로 짰다. 아무리 다른 야채와 섞어 나온다고 해도 어떻게 그렇게 짠 것을 샐러드에 넣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뭐, 그래도 샐러드까지는 그리 나쁜 편은 아니었다.

우리가 시킨 것은 해물파스타와 돼지고기 구이였다. 사실 뭐 그렇게 조리가 어려운 음식도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샐러드를 비운지 한참이 지나고 음식이 좀 안나온다는 생각이 들고도 한참 있도록 음식이 나오지 않았다. 더욱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우리보다 늦게 온 테이블 손님은 이미 음식이 나와서 거의 다 먹은 상태였고 (우리가 조금 먹었을 때쯤 다 먹고 갔던 것 같다 -0-;; ) 그 손님 다음 다음에 온 손님조차 우리보다 먼저 음식이 나왔다. 우리만 차별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우리 다음다음에 온 손님도 한참동안 음식이 나오지 않았으니까...단지 주문 접수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거나 아예 그런 개념이 없는 것이라 생각된다.

참다 참다 음식이 안 나오냐고 가볍게 이야기를 하였더니 거의 다 되었다는 형식적인 대답이 나왔고, 그로부터 다시 한참이 더 지나서 - 최초 음식점에 도착한 때로부터 거의 40분이 되었던 것 같다 - 음식이 나왔다. 그때는 이미 비싼 프랑스 음식점에서 기대했던 분위기는 모두 깨진 상태였다.

그때까지는 분위기를 유지하려고 애쓰던 내가 돼지고기를 썰어 여자친구에게 주었는데 속살이 분홍빛으로 다 익지가 않은 것이었다. 스테이크 비슷한 요리였지만, 고기가 돼지고기였기에 다시 한번 종업원을 불러 고기가 익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 요리 원래 그런 것인데 손님이 원하시면 더 익혀드릴께요.'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모르겠다. 원래 프랑스에서는 돼지고기도 덜 익혀먹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마음이 상할대로 상했던 것은 음식이 늦게 나왔을 때부터 고기의 익힌 정도에 대한 클레임까지 종업원들이 우리를 대하는 무성의한 태도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사실 나는 왠만하면 음식점에서 클레임을 제기하지 않는편인데 그때는 내가 생각해도 좀 클레임을 걸 만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업원들은 겉으로는 친절한 듯 했지만, 그 안에 진심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건성으로 '니가 손님이니까 미안하다고 해준다.' 는 느낌이랄까.

그날 '떼르메르'의 서비스에 불만을 품은 것은 우리뿐만은 아니었다. 우리가 겨우 나온 요리를 먹고 있는 중에 다른 손님은 신용카드 결제가 8만원이 아닌 80만원으로 되었다고 뒤늦게 항의를 했고 - 사실 말도 안되는 큰 실수인데, 종업원은 아무렇지도 않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마무리 했다 - 우리 옆에 앉은 손님도 거의 우리와 비슷한 정도로 음식을 기다려야 했기에 그곳을 오자고 한 것으로 보이는 남자손님이 상당히 난처한 듯 보였다.

음식점 가서 항상 만족할 수는 없는 법이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프랑스 요리사의 솜씨가 소문을 타서 서래마을에서 명물로 자리잡았다.'는 막연한 광고성 문구만 보고 찾아간 떼르메르는 정말 '아니올시다'였다. 고급읍식점에서 요리를 먹고 이렇게 음식값이 아까워 본 것도 정말 오래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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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기부기 2006-03-20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떼르...는 별로였지만, 자기와의 데이트는 좋았어. ^^
 
 전출처 : 바람구두 > 황우석 박사에게 기회를 줄 수 없는 이유

황우석 박사에게 기회를 줄 수 없는 이유
이덕환의 과학문화 확대경
 
 
황우석 박사에게 다시 기회를 주어야 하는지에 대해 과학계와 네티즌의 의견이 크게 다르다고 한다. 과학의 기반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학문적 범죄’에 해당하는 논문 조작의 당사자에게 더 이상의 기회를 줄 수 없다는 과학계의 입장은 분명하고 확고하다.

그러나 황 박사에게 열광하는 네티즌들은 ‘국익’을 위해 그 정도의 잘못은 눈감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실제로 지난 한 달 사이에 ‘황우석 교수 후원회’의 회원이 급격하게 늘어났다고 한다. 황 박사의 감상적인 기자회견이 뜻밖의 영향력을 발휘한 셈이다.

물론 난치병 치료와 엄청난 국익이 곧바로 실현될 것이라고 믿었던 네티즌들의 안타까운 마음은 이해가 된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윤리적으로 완벽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정치인이나 기업가들이 저지른 비리는 이보다 훨씬 더 부도덕하고 반인륜적인 경우도 많았다. 외환위기처럼 우리 모두가 엄청난 피해를 감당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낯선 생명 윤리와 연구 윤리나 힘센 국가가 주장하는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어설픈 명분에 매달리기보다는 눈 한 번 질끈 감고 실리를 챙기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처세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차피 치열한 기술 개발 현장에서는 성과를 얻기 위해서라면 약간의 거짓말이 용납될 수 있고, 황 박사가 거대한 음모의 희생양일 수도 있다는 소문도 있다.

그러나 우리 과학계는 스스로 논문 조작 사실을 인정한 황 박사가 스스로 물러나야만 한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그것이 세계 과학계의 확고한 관행이기 때문이다. 황 박사가 처음부터 논문을 발표하지 않았더라면 사정은 전혀 달랐을 것이다.

세계 과학계의 검증 시스템을 통해서 자신의 결과를 인정받으려 했던 것은 온전히 황 박사 스스로의 판단이었다. 그런 결정은 황 박사가 세계 과학계의 관행에 따른 책임도 유감없이 받아들이겠다는 약속이기도 하다. 단 것만 삼키고, 쓴 것은 뱉어버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뜻이다.

학술 논문을 조작해서 전 세계의 과학자를 속이려 했던 학문적 범죄 행위에 대한 세계 과학계의 관행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과학계에서 스스로 물러나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이 실질적인 사법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세계 과학계가 행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요구다.

만약 우리 과학계가 우리만의 ‘국익’을 위해서 분명하게 확립된 과학계의 관행을 무시한다면 문제는 대단히 심각해진다. 우리 과학계 전체가 세계에서 ‘퇴출’ 당할 수밖에 없다. 우리 과학계 모두가 황 박사의 의도적인 논문 조작의 공범이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세계 과학계가 의도적인 논문 조작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런 조작이 윤리적으로 옳지 않은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불필요한 낭비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과학적 주장을 검증하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새로운 결과를 얻어내는 것보다 더 많은 비용과 노력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의도적으로 조작된 사실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더욱 그렇다. 그렇지 않아도 모자란 자원과 노력을 그런 헛된 일에 낭비하지 않겠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요구다.

더욱이 현대 과학의 영향력은 상상을 넘어선다. 자칫 의도적인 거짓말이 우리 모두의 안전과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다. 물론 그런 거짓말 때문에 과학계의 신뢰에 금이 가게 되면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엄청난 손실이 된다. 과학계가 논문 조작을 특별히 엄격하게 여길 수밖에 없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황 박사에게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 내부의 문제도 있다. 황 박사가 투명 사회를 만들어가려는 우리의 노력과는 반대로 어두운 정과(政科) 유착의 선례를 만들어낸 주역이라는 사실이다. 황 박사에 대한 엄청난 규모의 집중 지원과 인위적인 영웅 만들기는 ‘황금박쥐’로 알려진 몇 사람의 밀실 담합에 의해서 가능했다. 그동안 우리 과학계와 정부가 애써 구축해놓은 연구 지원 절차는 완전히 무시되어 버렸다. 그런 유착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 연구원들까지 동원했다는 사실도 드러나고 있다. 불순한 의도에서 시작된 정치권과의 부당한 유착이 결국 우리 모두가 부끄러워하는 불행한 사태를 만들어낸 것이다.

기업이나 언론에 대한 정부의 부당한 간섭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과학계의 경우에는 막대한 예산을 이용해서 미래 사회의 생존에 필요한 성장 동력을 개발해야 하기 때문에 정부와의 투명하고 합리적인 관계가 더욱 중요하다. 정부와 부당한 유착 관계로 이익을 얻은 기업가나 언론인을 퇴출시키는 것이 당연하듯이, 그런 관계로 온 국민을 수치스럽게 만든 황 박사도 무거운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 만약 국익을 핑계로 황 박사의 그런 잘못이 용납된다면 우리 과학계는 어두운 유착과 더러운 음모에 의해 지배될 것이다.

황 박사가 개발한 기술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매우 어려운 과제다. 그러나 명백한 사실이 있다. 우리 사회가 정직하지 못했던 황 박사를 믿었던 대가는 반드시 치러야 하고, 황 박사가 개발한 기술은 결코 황 박사 개인의 것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황 박사가 진정으로 조국과 민족을 생각한다면 자신이 개발한 기술을 온전하게 우리 사회에 환원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필요하다면 백의종군(白衣從軍)이라도 해야만 한다. 정말 아무 죄도 없는 학생들을 앞세워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해보려는 얄팍한 행동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제 과학은 과학자에게 맡겨야 한다고 간곡하게 당부하고 싶다. 과학은 우리의 꿈이나 희망에 의해 발전하는 것이 아니고, 과학 연구의 결과가 국민의 여론에 의해서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과학은 오로지 정직하고 성실한 과학자의 끈질긴 노력과 남다른 창의력에 의해서 발전하는 것이다. 과학계의 냉정한 판단을 믿고 차분하게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확인할 수 없는 ‘국익’에 눈이 멀어서 우리 모두가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출처 : http://www.science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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