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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석 박사에게 기회를 줄 수 없는 이유
이덕환의 과학문화 확대경
 
 
황우석 박사에게 다시 기회를 주어야 하는지에 대해 과학계와 네티즌의 의견이 크게 다르다고 한다. 과학의 기반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학문적 범죄’에 해당하는 논문 조작의 당사자에게 더 이상의 기회를 줄 수 없다는 과학계의 입장은 분명하고 확고하다.

그러나 황 박사에게 열광하는 네티즌들은 ‘국익’을 위해 그 정도의 잘못은 눈감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실제로 지난 한 달 사이에 ‘황우석 교수 후원회’의 회원이 급격하게 늘어났다고 한다. 황 박사의 감상적인 기자회견이 뜻밖의 영향력을 발휘한 셈이다.

물론 난치병 치료와 엄청난 국익이 곧바로 실현될 것이라고 믿었던 네티즌들의 안타까운 마음은 이해가 된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윤리적으로 완벽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정치인이나 기업가들이 저지른 비리는 이보다 훨씬 더 부도덕하고 반인륜적인 경우도 많았다. 외환위기처럼 우리 모두가 엄청난 피해를 감당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낯선 생명 윤리와 연구 윤리나 힘센 국가가 주장하는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어설픈 명분에 매달리기보다는 눈 한 번 질끈 감고 실리를 챙기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처세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차피 치열한 기술 개발 현장에서는 성과를 얻기 위해서라면 약간의 거짓말이 용납될 수 있고, 황 박사가 거대한 음모의 희생양일 수도 있다는 소문도 있다.

그러나 우리 과학계는 스스로 논문 조작 사실을 인정한 황 박사가 스스로 물러나야만 한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그것이 세계 과학계의 확고한 관행이기 때문이다. 황 박사가 처음부터 논문을 발표하지 않았더라면 사정은 전혀 달랐을 것이다.

세계 과학계의 검증 시스템을 통해서 자신의 결과를 인정받으려 했던 것은 온전히 황 박사 스스로의 판단이었다. 그런 결정은 황 박사가 세계 과학계의 관행에 따른 책임도 유감없이 받아들이겠다는 약속이기도 하다. 단 것만 삼키고, 쓴 것은 뱉어버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뜻이다.

학술 논문을 조작해서 전 세계의 과학자를 속이려 했던 학문적 범죄 행위에 대한 세계 과학계의 관행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과학계에서 스스로 물러나도록 하는 것이다. 그것이 실질적인 사법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세계 과학계가 행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요구다.

만약 우리 과학계가 우리만의 ‘국익’을 위해서 분명하게 확립된 과학계의 관행을 무시한다면 문제는 대단히 심각해진다. 우리 과학계 전체가 세계에서 ‘퇴출’ 당할 수밖에 없다. 우리 과학계 모두가 황 박사의 의도적인 논문 조작의 공범이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세계 과학계가 의도적인 논문 조작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그런 조작이 윤리적으로 옳지 않은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불필요한 낭비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과학적 주장을 검증하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새로운 결과를 얻어내는 것보다 더 많은 비용과 노력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의도적으로 조작된 사실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더욱 그렇다. 그렇지 않아도 모자란 자원과 노력을 그런 헛된 일에 낭비하지 않겠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요구다.

더욱이 현대 과학의 영향력은 상상을 넘어선다. 자칫 의도적인 거짓말이 우리 모두의 안전과 생존을 위협할 수도 있다. 물론 그런 거짓말 때문에 과학계의 신뢰에 금이 가게 되면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엄청난 손실이 된다. 과학계가 논문 조작을 특별히 엄격하게 여길 수밖에 없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황 박사에게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 내부의 문제도 있다. 황 박사가 투명 사회를 만들어가려는 우리의 노력과는 반대로 어두운 정과(政科) 유착의 선례를 만들어낸 주역이라는 사실이다. 황 박사에 대한 엄청난 규모의 집중 지원과 인위적인 영웅 만들기는 ‘황금박쥐’로 알려진 몇 사람의 밀실 담합에 의해서 가능했다. 그동안 우리 과학계와 정부가 애써 구축해놓은 연구 지원 절차는 완전히 무시되어 버렸다. 그런 유착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 연구원들까지 동원했다는 사실도 드러나고 있다. 불순한 의도에서 시작된 정치권과의 부당한 유착이 결국 우리 모두가 부끄러워하는 불행한 사태를 만들어낸 것이다.

기업이나 언론에 대한 정부의 부당한 간섭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과학계의 경우에는 막대한 예산을 이용해서 미래 사회의 생존에 필요한 성장 동력을 개발해야 하기 때문에 정부와의 투명하고 합리적인 관계가 더욱 중요하다. 정부와 부당한 유착 관계로 이익을 얻은 기업가나 언론인을 퇴출시키는 것이 당연하듯이, 그런 관계로 온 국민을 수치스럽게 만든 황 박사도 무거운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 만약 국익을 핑계로 황 박사의 그런 잘못이 용납된다면 우리 과학계는 어두운 유착과 더러운 음모에 의해 지배될 것이다.

황 박사가 개발한 기술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매우 어려운 과제다. 그러나 명백한 사실이 있다. 우리 사회가 정직하지 못했던 황 박사를 믿었던 대가는 반드시 치러야 하고, 황 박사가 개발한 기술은 결코 황 박사 개인의 것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황 박사가 진정으로 조국과 민족을 생각한다면 자신이 개발한 기술을 온전하게 우리 사회에 환원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필요하다면 백의종군(白衣從軍)이라도 해야만 한다. 정말 아무 죄도 없는 학생들을 앞세워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해보려는 얄팍한 행동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제 과학은 과학자에게 맡겨야 한다고 간곡하게 당부하고 싶다. 과학은 우리의 꿈이나 희망에 의해 발전하는 것이 아니고, 과학 연구의 결과가 국민의 여론에 의해서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과학은 오로지 정직하고 성실한 과학자의 끈질긴 노력과 남다른 창의력에 의해서 발전하는 것이다. 과학계의 냉정한 판단을 믿고 차분하게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확인할 수 없는 ‘국익’에 눈이 멀어서 우리 모두가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출처 : http://www.science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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