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 기본권 제약은 나치시절 유행 이론
항명·징계? 위헌적 명령 복종 의무 없다"
[인터뷰] 법무관 '불온서적' 헌법소원 소송 대리인 최강욱 변호사

출처 :
"군인 기본권 제약은 나치시절 유행 이론
항명·징계? 위헌적 명령 복종 의무 없다" - 오마이뉴스

현역 군인 신분인 법무관 7명이 지난 7월 국방부의 불온서적 23종 선정이 행복추구권·학문의 자유·양심의 자유를 침해해 위헌이라며 22일 오후 헌법소원을 내 파문이 일고있다.
 

국방부는 이날 밤 차관 주재로 긴급회의를 여는 등 발칵 뒤집혔다. 그리고 법무관들이 항명을 했다며 징계를 내릴 태세다. 그러나 이번 헌법 소원의 소송 대리인인 최강욱 변호사는 23일 오전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항명·징계 운운은 한마디로 법과 기본권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한 무식한 발상"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군인은 위헌적인 명령이나 지시에 복종해야 할 의무가 없다"며 "위헌이나 위법한 명령에 복종하면 위법이다. 복종하지 않는 게 맞다"고 밝혔다. 최 변호사 자신도 지난 2005년 5월 소령으로 예편한 법무관 출신이다.

 

"군인은 위헌적인 명령에 복종할 의무 없다"

 







  
최강욱 변호사(전 군검찰 고등검찰부장 대리) ,
ⓒ 오마이뉴스 권우성

최 변호사는 불온 서적 23종 선정이 왜 위헌인지 조목조목 설명했다. 그는 "우리나라 헌법 어디에도 기본권 적용과 관련해 군인은 예외라는 조항은 없다. 군인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기본권의 주체"라면서 "국방부는 군인복무규율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는 대통령령으로 국민의 기본적인 헌법상 권리를 제약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국방부는 국감 때 불온 서적 선정이 논란이 되자 '군인들은 (기본권 제약을) 감수해야 한다', '군인은 특별권력 관계에 있다'는 식으로 답했다. 이에 대해 최 변호사는 "특별권력 관계란 군인은 기본권을 제약받아도 된다는 나치 시절의 이론"이라며 "국방부가 아직도 낡은 이론을 내세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군인이 목숨을 걸고 수호해야 하는 국가의 요체가 바로 헌법 질서다, 군인들은 다른 어떤 조직보다 더 헌법 정신을 지켜야 한다"며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군인은 헌법이나 법률로부터 예외적인 존재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법무관이 나선 이유에 대해 그는 "법무관의 존재 이유 자체가 군대 안에서 헌법적인 가치를 지키고 법치주의를 구현하기 위함"이라며 "'국민과 함께하는 튼튼한 국방'을 자랑하는 국방부도 국민 일반의 정서와 떨어지는 일을 안 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다음은 최 변호사와 나눈 일문일답을 요약한 것이다.

 

"군인 기본권 제약은 나치시절 유행한 이론"

 

- 현역 군인들인 법무관이 이번에 헌법소원을 내게 된 까닭은?

"국방부에서 시대착오적인 행동을 했다. 이른바 불온서적 23권을 선정한 것에 대해서는 지난 8월 국가인권위에서도 '헌법정신에 맞게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불온 서적 선정은 군인들의 기본권을 제약할 수 있다. 더 문제는 군인을 기본권을 당연하게 제약받는 존재로 취급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헌법 어디에도 기본권 적용과 관련해 군인은 예외라는 조항은 없다. 군인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기본권의 주체다. 법에 정해진 사유가 있지 아니하면 기본권이 제약받아서는 안 된다. 한편으로 이번 사건이 군인도 기본권의 주체라는 점을 확인받을 기회라고 생각해서 나서게 됐다."

 

- 국방부는 군인복무규율을 내세운다.

"군인복무규율은 대통령령으로 국민의 기본적인 헌법상 권리를 제약할 수 없다.

 

군 인사법을 내세울 수도 있는데… 현재 복무에 관한 사항이 대단히 포괄적으로 규정되어 있다. 하위 법률에 위임할 때는 좁은 범위를 위임해야 하는데 포괄적으로 위임해서 위헌이다."

 

- 헌법소원을 낸 법무관들은 평등권 침해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군인들을 시민들과 다르게 보고 제약하는 것은 평등권 침해다. 국방부는 우리 군인들이 세계적으로 가장 자질이 우수한 인력이라고 자랑한다. 그런데 이런 군인들에게 어떤 책을 읽지 말라고 강제하는 것은 군인들의 인격과 수준을 모욕한 것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군인들이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없다고 규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불온 서적 23종 가운데는 일반 대중들이 많이 읽어 베스트셀러가 된 책도 들어있다. 그런데 국방부는 이런 책에 반미·북한찬양·좌경 딱지를 붙였다. 이는 표현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무시한 것이다."

 

- 불온 서적 23종 선정은 국감 때도 논란이 됐다.

"당시 의원들도 비판적으로 질의했는데, 국방부는 '군인들은 이를 감수해야 한다', '군인은 특별권력 관계에 있다'는 식으로 답했다. '특별권력관계'란 나치 시절에 유행한 것으로 군인·교도소 수감자·학생들은 법에 근거가 없어도 기본권 제약을 감수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이는 헌법 위반이라고 이미 오래 전에 결론났다. 국방부는 낡은 이론을 강변하고 있다."

 

"군대 안에서 헌법적 가치 지키는 게 법무관 존재 이유"

 

- 현역 신분인 법무관들이 나선 것부터가 큰 관심을 끌고 있다.

"법무관의 존재 이유 자체가 군대 안에서 헌법적인 가치를 지키고 법치주의를 구현하기 위함이다.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조용히 의무 복무 기간만 채우는 것은 비겁하다. "

 

- 이번 일로 군 내부 충격이 큰 것 같다.

"군대가 상식에 벗어난 일을 해도 가만히 놔두니까 잘못된 사고 방식이 그대로 내려왔다. 군인은 단지 영토라는 땅만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군인은 국가를 목숨을 걸고 수호해야 한다고 하는데 지키려고 하는 국가의 요체가 무엇인가? 바로 헌법 질서다. 군인들은 다른 어떤 조직보다 더 헌법 정신을 지켜야 한다.

 

이런 인식이 없어서 가장 피해를 끼친 군대가 바로 나치 군대다. 2차대전 뒤 독일 군대가 재건되는 과정에서 군인을 '제복을 입은 시민'이라고 규정했다. 군인은 시민이다. 군대가 지키는 것은 헌법적인 가치·민주적 기본질서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군인과 군대를 마치 헌법이나 법률로부터 예외적인 존재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지난 2004년 12월 국방부 검찰단 고등검찰부장에서 보직해임된 뒤 국방부 브리핑룸에 선 최강욱 변호사(오른쪽)
ⓒ 연합뉴스 진성철



- 국방부는 헌법 소원을 낸 법무관을 징계할 태세다.

"기본권을 침해당했다고 생각해 판단을 요구하면서 헌법소원을 낸 것인데… 한마디로 법이나 기본권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한 무식한 발상이다. 국방부에서 그렇게 나올 것으로 예상은 했다. 그러나 설사 징계를 해도 결국 무효가 될 것이다."

 

- 국방부 쪽에서는 '항명'이라는 소리도 나온다.

"군인은 위헌적인 명령이나 지시에 복종해야 할 의무가 없다. 위헌이나 위법한 명령에 복종하면 위법이다. 복종하지 않는 게 맞다. 항명은 정당하고 합헌적인 명령을 거부했을 때만 성립가능하다. "

 

- 피청구인에 이상희 국방부 장관과 함께 이명박 대통령이 들어있다.

"헌법소원은 원래 국가를 상대로 한다. 행정부 수반이 대통령이고, 위임받은 사람이 국방부 장관이니까 들어간 것이다."

 

- 혹시 법무관들에게 벌써 어떤 압력이 가해지지는 않았나?

"외부에서는 군대에서 바로 법무관들을 잡아갈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그렇게는 못할 것이다. 상대가 법무관이기 때문에 국방부도 법적 검토를 할 것이다. 법적 검토를 해보면 국방부가 잘못했다는 것을 스스로 알 것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군 법무관으로 있을 때인 2001년 헌법소원을 내어서 2004년 위헌 결정을 받았다. 군법무관 임용법을 보면 처우를 판검사와 동일하게 하도록 되어있는데 50년이 지나도록 이를 위한 시행령을 마련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헌법소원을 냈는데 결국 위헌결정을 받았다. "

 

- 일부에서는 가장 기본권 제약을 많이 받는 사병들이 아니라 왜 장교들이 나섰냐고 비난할 것 같은데….

"나서지도 못하게 입을 꼭꼭 막아놓고 나서 왜 못 나서냐고 하는 것은 비겁하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군대에도 상식이 통해야 된다. 국방부 현판에 '국민과 함께하는 튼튼한 국방'이라고 써있다. 이런 국방부가 국민 일반의 정서와 떨어지는 조치를 안 했으면 좋겠다. 베스트셀러라면 일반적으로 국민으로부터 객관적으로 검증을 받은 책이다. 이런 책을 군인들에게 못 보게 막는 것이 과연 국민과 함께 하는 길이 될 것인지, 아니면 더 멀어지는 길이 될 것인지 판단해 보기를 바란다. "

 

출처 : "군인 기본권 제약은 나치시절 유행 이론
항명·징계? 위헌적 명령 복종 의무 없다" - 오마이뉴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외로운 발바닥 2008-10-23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만에 접하는 정말 유쾌, 상쾌, 통쾌한 뉴스. 법무관이 존재하는 의의를 제대로 보여준 정말 용감한 분들이다. 내가 군에 있을 때는 이 정도의 이슈는 없었지만, 이런 일에 선뜻 나설 수 있는 용기기 있었는지 자문하게 된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리고, 지금 제3자로서 쉽게 이야기하는 것일수도 있지만, 법무관, 나아가 법조인이라면 이 정도의 불이익(?)도 감수하지 못하고 숨어 있는 것이 오히려 비겁한 행동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결코 쉽지는 않았을 결정을 내린 그분들의 용기에 다시한번 존경과 박수를 보낸다.

가넷 2008-10-23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통쾌한 뉴스네요.ㅋㅋㅋ;

시원~~합니다.ㅎㅎ
 
대화 -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리영희, 임헌영 대담 / 한길사 / 200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리영희 선생이 어떤 분인지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냥 막연하게 과거 독재정관 시절에 불의에 항거하던 학자 중 한분인 줄만 알았는데, 리영희 선생의 삶과 사상 전체를 살펴볼 수 있는 이 책을 읽고 나자, 리영희 선생이 정말로 어두운 그 시절 한줄기 빛 같은 존재였고, 지금도 뿌리깊이 사회 곳곳에 박혀있는 우상을 그 옛날에 앞장서서 타파해온 정말로 대단한 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뒤늦게나마 이 책을 통하여 우리 근현대사에 큰 역할을 해오신 리영희 선생을 알게 된 점이 무엇보다 감사했고, 그와 함께 가장 역동적이고 또 고단하며 암울했던 시기의 역사적인 순간순간에 몸소 사회적인 부조리와 그것을 둘러싼 정권의 선전논리를 깨뜨려온 선생의 삶을 통하여 우리 근현대사 전반을 조감해 볼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의 큰 매력이었다.


해방직후 우리 국군의 실상(p122 이하), 한국전쟁의 야만성,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서 무수히 사용해왔고 지금까지도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는 빨갱이 만들기의 다양한 사례, 기자생활의 실상 등을 리영희 선생의 담담한 회고를 통하여 비교적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었다.

또한, 신이나 종교에 대한 선생의 생각(p506 이하) 부분을 읽고는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종교관과 상당부분 비슷한 점이 많아 큰 공감을 느꼈으며, 베트남 전쟁의 진실(p339 이하) 부분을 읽고는 최근의 미국의 이라크 전쟁과 관련하여 벌어지고 있는 논쟁이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미국은 과거에나 지금에나, 또 앞으로도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언제든 전쟁을 할 것이고, 미국이 전쟁의 명분으로 삼는 모토가 무엇인지 상관없이 침략당하는 상대국가의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간다는 점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되었다.


리영희 선생이 그토록 치열하게 정권에 의하여 의식화된 국민을 깨우치기 위하여 열심히 활동하시던 때로부터 수십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지금도 너무나 많은 우상이 판치는 시대에 사는 것 같다. 다행히 리영희 선생을 비롯한 많은 분들의 노력과 희생으로 지금은 적어도 우상을 우상이라고 지적하는 것만으로 끌려가서 고문을 당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끊임없이 우상을 만드려는 정권의 생리나, 정권과 지배세력의 이익에 맞추어 우상을 확대 재생산하는 집단은 여전히, 아니 그 어느 때보다도 건재한 듯하다. 그들은 이제, 정권이 아닌, 국민의 이름으로 그러한 우상을 정당화하려 하고 있는 듯하다. 현실은 여전히 우울하지만, 그래도 희망은 있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oonmin 2008-07-20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리뷰 잘 읽었습니다. :)

외로운 발바닥 2008-07-24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는 정말 간만에 쓴 것이라 정말 맘에 안들게 쓴 리뷰인데 민망하구먼~ 암튼 방갑소~

린돌어멈 2008-10-04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냐냐.. 리뷰가 참 재미없다. 재밌게 써봐봐.

쿠자누스 2008-10-09 0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두 동감인데여, JFK를 눈앞에서 보고도 암살사건에 대한 해설이 없어 무지 실망했습니다.

외로운 발바닥 2008-10-12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쿠자누스님. 이 책은 예비군 훈련 중에 주로 읽었는데;;, 여러 면에서 참 감명깊게 읽은 책이었습니다. JFK에 대한 부분은 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네요. 하지만, 다양한 외국 자료를 스스로 리서치하여 글을 쓰셨다는 것이 참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김효순칼럼] 피디수첩과 검찰의 행보
김효순칼럼
 
 
한겨레  
 








 

» 김효순 대기자
 
10여년 전 일선 취재부서의 부장을 맡고 있을 때 검찰에 가서 두 건의 명예훼손 혐의로 조사를 받은 일이 있다. 수사기관에서 받은 조서에 무인을 찍는 것이 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검사나 검찰서기는 접수된 사건을 정해진 기일 안에 매듭지어야 하기에 집요하게 질문을 한다. 일선 기자의 취재내용이 사실이라고 믿은 근거가 무엇이냐, 다른 기사들보다 부각시킨 의도가 무엇이냐, 제목을 이렇게 단 배경이 무엇이냐는 등 꼬치꼬치 캐묻는다.

나의 단편적 경험에서 따져보면 서울중앙지검의 <문화방송> ‘피디수첩’ 수사는 도대체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첫째, 누구의 명예가 훼손됐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검찰이 설마 미국 정부나 축산업계, 아레사 빈슨 모친의 명예를 신경 쓸 리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나 쇠고기 협상단이 제대로 협상을 했는데도 부당한 비난을 받았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데,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협상을 잘했다면 대통령이 두 번이나 나서서 사죄를 하고 내각 총사퇴라는 엄청난 쇼를 벌인 끝에 결국 용두사미 격이 된 7·7 소폭개각에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이 포함된 이유를 설명하기가 마땅찮다.

둘째는 검찰 수사팀이 주시하고 있다는 피디수첩의 의도성 여부다. 피디수첩 취재팀이 유도질문을 해서 사실을 왜곡했는지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피디수첩이 어떤 방식으로 취재를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의도가 없는 취재란 게 있을 수 있을까? 유도질문은 취재원의 상황에 따라서는 중요한 취재기법이 될 수 있다. 수습기자 시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잔소리 가운데 하나가 ‘너 관보 기자냐’라는 힐난이다. 1980년대 중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터지자 경찰은 “탁하고 치니까 억하고 죽었다”고 발표했다. 이것을 그대로 썼다가는 기자 생활은 끝이다. 취재를 직업으로 삼은 사람은 이리저리 찔러보고 다각도로 취재한 뒤 그 의미가 무엇인지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질문 하나하나의 의도를 따지고 든다면 언론의 존립기반 자체가 허물어진다.

셋째, 검찰의 의도 여부다. 명예훼손 혐의라고 하면서도 당사자의 고소 없이 정부기관의 의뢰로 수사를 시작했다. 게다가 무슨 권력형 비리가 아닌데도 수사검사를 이례적으로 5명이나 투입했다. 일부에서는 이명박 정권의 방송장악 음모에 검찰이 하수인으로 나섰다고 하는데, 그런 주장을 선뜻 믿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검찰이 정부·여당의 ‘일벌백계’ 요구나 보수언론의 싸잡이 공세 분위기에 편승했다는 정황은 부인하기 어렵다. 보수언론의 수사 촉구몰이는 분명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은 것이다. 파렴치한 행위를 저질렀거나 비리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면 언론에 대한 권력기관의 강제수사는 최소한으로 억제하는 것이 맞다. 조·중·동의 두툼한 지면에 실리는 기사들도 대부분 나름의 의도를 갖고 쓰이고 제목이 붙여진다. 거기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은 때로는 거친 언사를 사용하더라도 공론의 장에서 문제를 지적하지 검찰에 수사하라고 촉구하지는 않는다.

피디수첩 말고도 촛불집회와 관련된 검찰의 수사가 다방면으로 확대되고 있다. 돌아가는 국면을 보면 검찰이 수사권을 공정하게 쓰고 있는지 깊은 의심이 든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비비케이 사건을 심리하는 담당 판사한테 국정원 직원이 전화를 걸어 재판 진행 상황을 묻고, 법정에 들어와 신분을 위장하는 거짓말을 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제대로 된 검찰이라면 최소한 경위는 알아봐야 할 것이다. 그런 움직임이 전혀 들리지 않으니 검찰의 의도를 생각하게 된다.


김효순 대기자hyoskim@hani.co.kr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외로운 발바닥 2008-07-14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검찰의 피디수첩 수사는 아무리 선해하려고 해도 구린 냄새가 난다. 일부 오역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하여 촛불집회가 결정적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왜 형사처벌의 대상인지? 누구의 명예가 훼손되었는지?

정부의 정책을 비판적으로 보도하는 언론에 되지도 않을 명예훼손의 법리를 씌워 검사를 5명이나 배정하여 수사하는 지금 검찰의 현실은 과거 20여년전 검찰의 행태로 되돌아간 것 같아 씁슬함을 지울 수가 없다. 언제나처럼 수사기관은 정관이 바뀜에 따라 변신도 빠른 것 같다...
 

그들이 "미안하다"를 되뇐 까닭은?
  [왜 삼성은 프레시안을 겨냥했나 ⑥] '삼성 신화', 실체를 폭로한 사제단
 
  2008-03-13 오전 8:02:39

지난 5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김성호 국가정보원장 내정자와 이종찬 청와대 민정수석, 황영기 전 우리은행장이 금품 수수 등 삼성의 관리 대상 인사라고 폭로하면서 "명단 공개의 해당자가 되신 분들에게 지극히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고 했다. 이를 듣는 기자들 사이에선 슬핏 웃음이 나왔지만 성명을 읽는 전종훈 신부의 목소리는 낮고 진솔했다.
  
  보통의 '폭로' 기자 회견에서는 비리를 저지른 당사자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지 않는다. 불법과 탈법을 일삼으며 법망의 밖에 있는 사람을 고발하면서 굳이 '미안하다'고 사과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사제단은 '미안하다'고 했다. 그들이 '미안하다'고 되뇐 까닭을 알아야 왜 신부들이 삼성 비자금 조성을 고발하는 기자 회견에 나섰는지 알 수 있다.
  
  "'3차원적 권력'이 된 삼성"
  
  한국방송(KBS) 1TV <KBS스페셜>은 지난 8일 방영된 '삼성 트라우마, 우리에게 삼성은 무엇인가' 편에서 흥미로운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전국 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삼성이 흔들리면 국가 경제도 위태롭다'는 주장에 공감하느냐를 물었더니 '공감한다'는 응답이 총 77.3%(매우 공감 28.8%, 대체로 공감 48.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KBS스페셜>여론조사 결과 화면ⓒKBS

  또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에 대한 인식'을 묻자 '불법 상속이 드러났다면 승계를 용인해서는 안된다'는 의견이 36.6%, '합법, 불법에 관계없이 경영권 승계에 반대한다'는 의견이 8.6%를 차지했지만 '이사회, 주주총회의 결정에 맡겨야 한다'(35.3%), '경영권 보호를 위해 어느 정도 위법은 문제삼지 말아야 한다'(17.8%)는 대답도 상당수에 이르렀다.
  
  이에 대해 애나 파이필드 <파이낸셜타임스> 서울지국장은 "한국이 곧 삼성이고, 한국과 삼성은 한데 얽혀있다는 신화가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도 "삼성의 비리나 모순을 외부에서 개혁하는 데에 이성적으로는 동의하지만 정서적으로는 반대해 결과적으로 삼성이 지켜지는 묘한 결과가 빚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삼성 비자금 특검으로 삼성이 흔들린다'는 주장은 삼성 측이 중심이 되어 유포하는 것일 뿐, 별다른 근거도 없다. <KBS스페셜>은 증권 애널리스트의 말을 인용해 "가장 민감한 주식시장에서도 삼성 관련주는 흔들림이 없고 오히려 특검 시작 이후 상승세"라며 "특검에 따른 삼성 주가 변동은 거의 없고, 있다고 해도 장기적으로 주가를 결정한 변수는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KBS스페셜>은 한국 사회에서 삼성의 지위는 '경제적 위세'보다는 이를 확대 포장한 '신화화된 권력'의 힘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분석을 전했다. 미국의 사회학자 스티븐 룩스는 이를 "3차원적 권력"으로 규정했다. 그는 "3차원적 권력은 사람의 의식까지도 권력자들의 이익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최고의 권력"이라며 "진정한 권력의 방식은 손가락 하나 치켜들지 않아도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에 순응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과 '공동정범'의 한국사회, 사제단의 일침
  
  이러한 분석은 김용철 변호사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삼성그룹의 비자금 조성 의혹을 폭로할 때마다 우리 사회가 보인 신경질적인 거부감을 잘 설명해 준다. 또 한발 더 나아가면 어느새 한국사회가 삼성과 '공동정범' 관계에 놓이게 됐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사제단은 지난 5일 청와대 금품수수 인사 명단을 폭로하면서 이 점을 바로 지적했다. 이들은 "오늘의 부패상은 지도층 뿐 아니라 모든 국민이 책임져야 할 문제라는 점을 성찰하시면서 상대방에게 미움이나 원망을 돌리는 일이 없이 저마다 영혼의 내면을 살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결국 삼성이 '일개 기업'과 한 사회의 법과 질서를 좌우하는 '왕국'의 수준을 넘어 사람들의 의식까지 흔드는 '신화화된 권력'에 이르렀다는 현실이 사제단을 움직이게 만든 셈이다. 사제단은 단순한 기업의 비리가 아니라 한국 사회에 만연한 '미신'을 폭로했다.
  
▲ 5일 서울 노원구에 있는 천주교 수락산 성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사제단은 이종찬 대통령실 민정수석, 김성호 국정원장, 황영기 전 우리은행장이 '삼성의 관리 대상'이었으므로 공직을 맡아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프레시안

  삼성의 '공동정범'인 사회에서 삼성의 비리를 폭로할 수 있는 곳은 사제단 밖에 없었다. 김용철 변호사가 사제단을 찾아가기까지의 과정이 이를 잘 보여준다. 김 변호사는 사제단을 찾아가기 전 KBS, 문화방송(MBC), <조선일보> 등을 찾았으나 모두 '삼성과 싸울 수 없다'며 제보를 거절했고 여타 삼성 문제를 다룰 만한 몇몇 시민단체들도 역시 '힘들다'는 답변만 내놨다고 한다.
  
  이는 꼭 20년 전 1987년 5월에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조작됐다고 발표하면서 민주화의 횃불을 올렸던 것을 연상시킨다. 공교롭게 김용철 변호사를 처음 만난 사람은 20년 전 고문치사 사건 진실 폭로를 주도했던 함세웅 신부였다. 함세웅 신부는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을 발표하며 1987년 5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조작됐다고 발표할 때의 두려움과 떨림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사제단의 고발을 흠집내기에 여념이 없다. <중앙일보>를 필두로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의 보수신문들은 늘 사제단에 "찔끔찔끔 내놓지 말고 한번에 다 공개하라"고 요구한다. <중앙일보>는 지난 5일 청와대 금품수수 명단 공개에 사설에서 "사제단은 정의가 아니라 정치를 하고 있다"고 맹비난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인국 신부의 답변은 간명하다. 그는 "다 내놓으면 삼성 측에서 수사 기관에서 말할 거짓말을 다 만들어 놓을 텐데 왜 우리가 다 내놔야 하느냐"며 "우리가 리스트를 전부 공개하면 당사자들은 엄청 창피해 할 텐데 그런 모욕은 주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이러한 신문들의 시각과 달리 사제단의 목적은 '삼성을 올바르게 개혁하는 것'이지 개개인을 '징벌' 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답변이다.
  
  "영혼을 판 사람들, 부끄러운 줄 알아야"
  
  사제단에서 대변인 역할을 맡고 있는 김인국 신부는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1조 원을 가진 사람에게 1억 원은 얼마겠느냐"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는 "1만 원" 이라고 자답하면서 "1조 원 가진 사람에게 1억 원을 받은 사람들은 1만 원에 영혼을 판 사람들이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이 질문은 한국 사회는 무엇에 영혼을 팔았느냐는 질문으로 확대된다. <경향신문>과 <한겨레>의 광고 게재 거부에 대해 다른 언론들은 일언반구 보도 하지 않을 정도로 언론은 광고에 영혼을 팔았고, 법조계는 소위 '떡값'에 영혼을 팔았다. 그리고 일반 시민마저도 집단적으로 과장된 삼성 신화, 3차원적인 권력에 영혼을 팔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제단 신부들은 이런 '영혼'을 팔아넘기려는, 아니 넘긴, 한국 사회를 고발하고자 나섰다. 그들이 개개인을 응징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한국 사회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그들이 비리 의혹의 당사자에게 굳이 "미안하다"는 말을 잊지 않은 것은 바로 이때문이다.
  
  자, 이제 우리는 그 사제단 신부의 행동에 어떻게 화답해야 하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유아 수준 영어로 뭘 하겠단 말인가?"
  [인터뷰] 한국문학번역원 윤지관 원장
 
  2008-03-10 오전 8:07:23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더라도 자기 존재의 충일함을 견지하고 실현하는 데 도움을 주는 교육이 영어 지배의 세상일수록 더욱 중요하다."
  
  이명박 정부의 영어 교육 정책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모든 학생이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기본 생활 영어로 대화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공언한 새 정부 영어 교육 정책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냐는 문제를 떠나 목표 자체를 수정해야 한다는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영어 회화'를 목표로 삼은 교육정책은 이른바 '국제화 시대'라 불리는 현대 사회에서 너무나 뒤떨어진 발상이라는 것이다.
  
  영어학자들은 사실 이 같은 논란이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라고 지적한다. 이미 오랫동안 이 문제를 고민해온 학자도 꽤 있다. 이명박 정부의 영어 교육 정책을 비판하는 듯한 위의 발언은 이미 지난 2001년 한 학술지에 실렸던 글이다.
  
  당시 이 글을 썼던 덕성여대 윤지관 교수(영문학과)는 지난해 일군의 영어학자와 함께 <영어, 내 마음의 식민주의>(당대 펴냄)라는 제목으로 한국 사회와 영어와의 관계를 짚는 글들을 엮은 책을 펴냈다.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사이에 쓰여졌던 이들의 주장은 영어 열풍이 더욱 심해진 요즘, 더욱 설득력을 갖고 다가온다.
  
  최근 윤지관 교수의 이름은 전혀 다른 사안으로 여러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그가 원장으로 재직 중인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오는 9월 개원을 목표로 준비 중인 번역아카데미 때문이다. 현재 한국 문학 작품을 외국어로 번역할 수 있는 외국인 번역가는 고작 81명. 번역아카데미를 통해 10년간 300명의 외국인 전문 번역가를 길러내겠다는 번역원의 목표는 지금껏 우리나라의 외국어 정책이 얼마나 불균형적이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지난 3일 서울 강남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윤지관 원장을 만나 현재 영어교육 논란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말만 가르치는 교육으로는 '문맹' 벗어날 수 없다"
  

▲ 윤지관 한국문학번역원 원장. ⓒ한국문학번역원


  "실용영어를 비판할 건 없다. 그런데 실용영어라는 관념을 만들어서 거기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문제다."
  
  윤지관 원장은 '실용영어'를 강조하는 최근의 흐름을 놓고 "언어를 실용과 비실용적 언어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이분법적인 사고"라며 우리나라 영어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일반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영어 교육은 '실용영어'와 '교양영어'로 구분돼 왔다. 기존 독해 위주의 교육은 '교양영어'로 통칭되면서 회화 능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말하기·듣기 위주의 교육이 강화됐다. 이를 '실용영어'라고 불렀다.
  
  윤 원장은 "언어에 실용성만 있다고 생각한다면 아주 낮은 차원, 의사소통 차원에서만 언어의 역할을 한정하는 것"이라며 "그것을 언어 정책의 전부로 삼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영어 회화, 말하기·듣기가 부족하니까 보완하는 교육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은 교육자라면 누구나 과제로 삼고 있다"며 "그러나 교육의 목표를 그렇게 설정하는 것이 곧 올바른 언어 정책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영어 회화가 강조되는 풍토가 조성된 뒤 대부분 대학에서는 기존 교양영어 강의를 회화 위주의 실용영어 강의로 전환했다. 영어로 의사소통을 못하기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논리가 전사회적으로 널리 퍼지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서였다. 이에 대해 윤 원장은 "어느 정도는 맞다. 그러나 말하고 듣는 것이 영어 실력의 전부가 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어린애들이 유식한가? 책을 읽고 문제점도 볼 줄 알아야 경쟁력이 생기는 것이다. 내용은 대충 이해하고 말만 잘 한다고 해서 경쟁력이 생기는 게 아니다. 즉 콘텐츠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문맹을 벗어나는 것이다. 말을 잘한다고 경쟁력이 생긴다는 주장은 참 피상적인 관찰이다. 날씨, 길찾기 등 생존 영어 수준에 촛점을 맞춘 교육이 위주가 되면 정작 필요한 고급 영어를 구사해야 하는 사람까지 길러지지 않게 된다."
  
  "제2외국어 포기하는 외국어 정책은 더 큰 문제만 낳을 뿐"
  
  윤지관 원장이 지적한 우리나라 영어교육의 또다른 문제점은 '영어의 물신화'였다. 그가 말하는 '물신화'는 곧 "영어로 출세하는 사회"다. 그는 이미 2001년의 글에서 우리나라의 영어 광풍을 '영어 숭배'라고 묘사한 바 있다.
  
  "프랑스어에 접근하는 정도에 따라 자신의 식민지적 정체성을 탈각해 서구인에 접근할 수 있다고 착각했던 당시 마르티니크 사람들이 '자기의 땅'에서 유배당한 셈이라면, 영어에 대한 숭배에 빠져 모국어가 자신의 삶에서 가지는 의미조차 망각하는 사람들은, 김남주 시인의 의역을 빌리자면 '자기의 언어에서 유배당한' 것이다. 이산이 하나의 흐름을 이루는 세계화의 시대이지만, 누가 강제한 것도 아닌데 자신의 땅에서 스스로를 이산의 올가미에 빠뜨리는 것이야말로 은밀하게 진행되는 식민화 과정의 한 극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윤 원장은 인터뷰에서도 "한국의 영어 물신화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며 "마치 명품에 대한 숭배처럼, 그것을 '가지게' 됐을 때 얻는 심리적 만족감 같은 것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언어를 언어 그대로 봐줘야지 너무 과잉된 의미를 부착시키는 건 잘못"이라며 "소통하기 위한 외국어를 물신화하는 것에서 외국어 공부의 왜곡이 시작된다"고 지적했다.
  
  "외국어는 소통하기 위한 것이다. 즉 우리 자신의 언어를 잘 가꿔야 소통을 통해 전달할 수 있는 '콘텐츠'가 생기는 것이다. 한국어를 진작하는 정책을 펴면서 영어를 잘하자고 하면 말이 된다. 그런데 영어를 잘하기 위해선 국어가 어떻게 되도 좋다, 심지어 영어를 국어로 하면 어떻겠냐는 주장까지 나온다. 우리 자신의 정체성, 자기 자신의 혼을 넘겨 버리는 것과 다름 없다. 자기 삶의 콘텐츠를 상실하는 것이다."
  
  영어에 대한 숭배는 국어 교육을 소홀히 하는 현상뿐만 아니라 다른 외국어까지 외면하는 풍토를 낳았다. 대학가에서 프랑스어, 독어, 러시아어과 등 소위 제2외국어 학과가 전멸 위기에 처한 건 이미 오래전 일이다. 윤 원장은 "언어 정책에 투여할 수 있는 자원이 한정돼 있는 데 비해 영어에만 지나치게 투자를 해서 다른 언어를 죽이면 오히려 문제는 더 커진다"며 "각국 언어에 각각 관심을 기울이는 식으로 정책이 변형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번역계의 인력난과도 직결된다. 윤 원장은 "과거 프랑스어, 독일어 등이 대학에서도 제법 인기가 높았을 때 배출된 인원이 있어 지금까지는 (번역계가) 그럭저럭 버텼다"며 "다들 영어만 하면 된다는 분위기 속에서 자연히 그런 인력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고, 앞으로는 제2외국어 전문인력도 점점 사라질 것"이라고 우려햇다.
  
  "상거래에 필요한 회화? 중요하지만 국력 기울일 문제 아니다"
  
  윤 원장은 영어 물신의 풍토 속에서 우리 사회가 간과하는 것은 '우리만의 콘텐츠'를 확보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에 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것은 번역원의 이념이기도 하다"며 "판매 차원을 넘어 우리가 도달한 문화적 성취를 교환하고 의견을 나누는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민족문화를 키우고, 번역을 통해 이를 해외에 전달하고, 동시에 해외 문화를 번역해 흡수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우리에게 콘텐츠가 없다는 비판이 있다. 그러나 사실 우리 문화 속에 콘텐츠가 깔려 있는데 그걸 개발할 수 있는 창의력이 없다는 게 진짜 문제다. 아무리 영어를 잘한다고 해도 그 속에 담을 우리만의 콘텐츠가 없으면 경쟁력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영어 교육도 마찬가지다. 영어 속에 있는 내용을 읽어내는 능력을 기르는 게 아니고 상거래 수준에서 필요한 영어 회화만 계속 하면 콘텐츠를 생산하기는 힘들다. 물론 의사소통도 중요하지만 국력을 기울여서 할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부작용만 생긴다."
  
  "번역·해외 인적자원 개발에 대한 투자가 진짜 '선진화'"
  
  윤지관 원장은 "영어를 온 국민이 할 정도로 되지도 않겠지만, 투여한 것에 비해 나오지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굉장히 비실용적인 면이 많을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그는 국제사회에서 경쟁력을 기르기 위해서 국가적 차원의 역량이 투여돼야 할 곳은 다른 데에 있다며 '발상의 전환'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해외 인적자원을 개발해서 한국어를 익히게 하고, 우리 문화의 전파사가 되도록 길러내는 일이 중요하다. 그런 것이 깊은 차원에서 실용적인 정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당장 물건을 파는 것 못쟎게, 우리 문화, 우리의 콘텐츠를 소개할 사람들이 해외에 자리잡고 있어야 하지 않나. 실용의 의미에 대해 더 깊은 연구와 판단이 필요하다. 10년 이상을 내다보고 실용성의 기반을 구축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곧 한국문학번역원이 준비하고 있는 번역아카데미의 설립 목적이기도 하다. 오는 9월 2년 정규 과정(주간)으로 신설되는 번역아카데미는 매년 영어·독일어·프랑스어 등 주요 언어권별로 2∼3명씩 모두 30명 가량을 모집해 전문 번역가를 양성할 계획이다. 중국어 22명, 영어 17명, 프랑스어 7명, 독일어 4명 등 81명에 불과한 외국인 전문 번역가로는 한국 문학의 세계화가 더디기만 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문제는 해외 인력뿐만 아니다. 사회적으로 외국 문학 작품, 또는 문화 상품을 들여오는 데 반해 우리 문화를 '수출'하는 것에 대한 관심은 현저히 낮았다. 윤 원장은 진정한 '선진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번역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지금보다 훨씬 높아질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정책입안자들부터 일단 번역은 2차적인 일, 허드렛일로 생각하는 습관이 아직까지 있다. 또 학술적인 업적으로도 잘 인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논문 한편 쓰는 것보다 책 한 권을 번역하는 일에 더 많은 노고와 지식을 쏟아야 하는데 논문 한편 쓴 것 정도, 혹은 그 이하로 평가된다."
  
  윤 원장은 "번역은 세계화에서 가장 핵심적인 도구"라며 "도구인 만큼 잘 해야 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사회적 투여는 너무나 적다"고 비판했다. 번역에 기울이는 투자는 외국 상황과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가 있다. 윤 원장은 "1970~80년대 일본 이상의 국력을 갖췄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번역계의 현실은 그 당시 일본보다도 뒤떨어진다"며 "일본이 노벨상을 거저 받은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에 번역원이 생긴 것도 지난 2001년으로 약 7년이라는 짧은 역사를 갖고 있다.
  
  윤 원장은 마지막으로 "번역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는 기반을 세우는 데 협조를 해달라"며 "새 정부가 들어섰기 때문에 의욕적으로 그런 일들을 판단할 것이라 본다. 기대를 걸고 있다"고 덧붙였다.

강이현/기자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외로운 발바닥 2008-03-10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어 물신의 풍토...대통령부터 조장하다니 더욱 가속도가 붙을 것 같다. 이런 ㄷ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