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동이 <시사저널> 사태에 침묵하는 이유는?"
[프레시안 2007-01-22 12:03]    
[방담]전·현직 기자ㆍ언론운동가가 본 <시사저널> 사태

 [프레시안 정리=강이현/기자]

   어찌보면 한 주간지의 내부 홍역으로 치부될 수도 있는 문제였다. 지난해 6월 <시사저널> 금창태 사장이 삼성 기사를 일방적으로 삭제하며 불거졌던 금 사장과 기자들 간의 갈등은 이윤삼 편집국장의 사표, 이 사태에 반발하는 기자들에 대한 잇따른 징계로 이어졌다. 기자들이 '편집권 독립'을 주장하며 제기했던 단체협상은 결렬됐다. 지난 5일부터 파업에 돌입한 기자들은 금창태 사장 퇴진과 심상기 회장의 사태 해결 노력을 요구했다.
  
  그러나 <시사저널> 사태는 지난 9일 기자들이 빠진 채 잡지가 발행되면서 또 다른 국면을 맞았다.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있는 금창태 사장의 지휘 아래 편집위원 및 외부 필자들의 기고로 채워진 잡지가 지난 9일 899호에 이어 지난 16일에는 900호로 발행됐다.
  
  기자들과 독자들은 이를 '짝퉁 <시사저널>'이라고 부르며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금창태 사장은 편집인인 자신이 지휘하는 이상 아무런 법적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며 '짝퉁'이란 용어를 쓴 필자들과 언론들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이번에는 독자 및 일반 시민들이 '나를 고소하라'며 행동에 나섰다. 이들은 19일 저녁 서울 충정로 <시사저널> 사옥 앞에서 '부활하라! 진품 시사저널' 문화제를 열었다. 고종석 전 <한국일보> 논설위원, 홍세화 <한겨레> 시민편집위원,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 등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꾸린 독자 및 언론계 인사들은 앞으로도 사태 해결을 위해 앞장서겠다는 의견을 곳곳에서 밝히고 있다.
  
  이번 사태를 관심있게 지켜보고 있는 이들은 모두 '초유의 사태'라고 말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시사저널>의 문제가 결코 우연히 발생한 일이 아니라고도 말한다. 또 결코 한 주간지의 내홍 정도로 치부할 일도 아니라고 한다.

  
  <시사저널> 사태는 민주화 이후 언론을 통제하는 가장 막강한 권력으로 군림하고 있는 자본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이기 때문이다.
  
  <프레시안>은 언론과 자본의 관계를 화두로 이번 <시사저널> 사태가 갖고 있는 함의 등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류이근 <한겨레21> 기자, 최성진 전 <뉴스메이커> 기자, 이송지혜 민주언론시민연합 기획부장, 신호철 <시사저널> 기자가 참석한 이 방담은 지난 16일 서울 마포의 한 사무실에서 열렸다. <편집자>

  
  <시사저널> 사태 뜯어보기
  
  프레시안 : 여기 모인 분들은 현재 <시사저널>의 사태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잘 알고 계신 분들이라 편하게 얘기했으면 한다. 다양한 각도에서 사태를 바라볼 수 있을 듯 하다. 이번 사태의 성격을 어떻게 보고 있나? 현재 발행되고 있는 잡지에 대한 소감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신호철: 지난 899호에는 '조중동 죽이려다 친여 매체 다 죽이나'라는 제목이 뽑혀 있었다. 이분법적으로 조중동과 친여매체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초등학생과 같은 사고다. <시사저널>이 산업잡지가 되는 것은 상관이 없는데 정치적인 성격이 변해가니까 문제가 있는 거다.
  
  
▲ <한겨레21> 류이근 기자 ⓒ프레시안

  류이근 :
'짝퉁' <시사저널>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기존 우리가 읽어 왔던 <시사저널>이 진품이었다는 얘기다. 지금의 <시사저널>을 메꾸고 있는 기사들이 진품과 어울리지 않게 돼버렸는데 앞으로도 이런 일이 되풀이 될 것 같다. 크게 보면 국민들이 원하는 잡지가 아니라고 믿고 싶다.
  
  그런데 <한겨레>도 자유롭지 못한 편인데 다른 언론들이 이 문제에 너무 침묵해 왔다. 어느 언론사도 지금 <시사저널>이 겪고 있는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즉, 자본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미시적으로는 언론사 내 편집권 독립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지켜지고 있는지도 회의적이다. 대부분 언론들이 대기업 광고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다.
  
  그래서 언론들이 스스로 발언할 용기도 없을 뿐더러 발언할 때 불이익을 겪을 수도 있다. 구조적으로 그런 것들을 기자들이 발언할 수 없는 위치에 처해 있다는 얘기다.
  
  서명숙 전 <시사저널> 편집장과 김선주 전 <한겨레> 논설위원 등 전직 언론인 선배들이 칼럼 등을 통해 '이게 기사가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게 기사가 되는 것이냐'며 직접적으로 현직에 있는 기자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제 기자들이 답해야 되지 않나 생각한다.
  
  
▲ 민주언론시민연합 기획부장 이송지혜 ⓒ프레시안

  이송지혜 :
저도 이번 사태가 참 가슴아프다. 언론재단이 지속적으로 기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과거에는 언론 자유를 침해하는 가장 큰 세력이 (정치)권력이라는 답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그러나 87년 이후 민주화 과정 속에서는 1위가 사주, 2위가 재벌 또는 광고주의 입김이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다. <시사저널> 사태는 그것과 딱 맞닿아 있다. 삼성이라는 대기업의 외압을 경영진이 방어해줘야 할 텐데 오히려 기사를 빼고 편집권을 훼손했다. 그동안 언론재단의 조사에 나타났던 언론자유 침해의 가장 큰 두 가지 요소가 단적으로 드러난 것으로 본다.
  
  "더 이상 상식과 선의에 기댈 수 없는 문제"
  
  최성진: 899호 이후부터 굉장히 혼란스러워졌다. 그 이유는 기자가 마지노선으로 생각하고 의지해 왔던 부분은 법보다는 상식이라는 잣대였고 그것을 믿고 기사를 썼는데, 899호 만드는 시점부터 사측에서 상식을 가지고 잡지를 만들고 있는 건지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삼성 기사 삭제 문제가 불거져서 장기간 파행을 겪고 있는 이때에 삼성 측과 관련된 인사가 와서 편집에 개입한다든가, 전직 <중앙일보> 기자들이 와서 편집을 한다든가 하는 부분은 또 다른 문제인 것 같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현직 중앙일보 기자가 커버스토리 썼는데 이런 행태가 상식 수준에서 이해될 수 있는 건지 근본적인 회의가 든다.
  
  류이근: 상식에 지나치게 기대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사실 899호를 이렇게 만들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우려했던 대로 만들었다. 자칫 상식에 기대하면 문제의 성격이나 사태의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 1인 사주의 선의를 기대하긴 참 어렵기 때문이다. 1인 사주가 운영하는 매체들의 폐해를 우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봐 왔다. 정권, 자본의 압력이 그대로 편집국이나 기자들에게 투영되어 문제가 부각된 사례들은 많이 있었다. 사주들의 선의는 어디까지나 기업으로서의 매체를 운영하고 관리하는 데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편집국과는 많이 다르다. 그것을 제도화시켜내지 못했을 때 편집권은 쉽게 위험에 노출된다. 최소한 사주가 갖는 소유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면 기자들은 편집권 문제를 제도화, 명문화 하지 않았을 때 사주의 선의에 쉽게 배반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최성진: 류 기자는 '선의'라고 했고 나는 '상식'이라고 말했다. 상식이면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것'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류이근: 취재 과정에서 금창태 사장을 만나서 깜짝 놀랐다. 편집국장의 사표를 수리하고, 기사를 들어낸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편집국 간부와 기자들을 징계조치 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었다. 형식 논리로 보면, 또 사주의 상식으로 보면 자신이 발행인 겸 대표이사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주장했다.
  
  또 놀랐던 것은 지난번 899호 발행 뒤 사태가 새롭게 전개된 점이다. 초유의 일이라고 하던데, 일을 저지른 것에 대한 뒷감당을 할 수 없어서 그런지 현재 잡지를 만들고 있는 책임있는 사람들이 아무도 말을 안하고 언론을 피하고 있다. 그 이전까지 인터뷰 등에도 떳떳하게 응하던 태도에서 바뀌었다.
  
  신호철: 폭풍이 지나가길 바라는 것 아닌가 본다.
  
  류이근: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금 사장이 원하는 것이 이런 형태의 잡지가 계속 생산되는 것인지, 아니면 기자들로부터 양보를 받아내기 위해 강행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만약 전자라면 가장 비극적인 결과가 나올 것 같다.
  
  이송지혜: 금 사장이 공동대책위원회로 꾸려진 시민단체들의 면담도 거부했다.
  
  최성진: <중앙일보> 기자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류이근: <중앙일보> 계열사가 899호부터 많이 참여했다. 실제 만들고 있는 편집위원들의 상당수가 <중앙일보> 출신이고, 그런데 정작 <중앙일보> 지면을 통해서는 시사저널 사태를 볼 수 없다.
  
  "언론의 자유 외치던 조중동은 왜 아무 말도 없을까?"
  
  최성진: 899호가 나오기 전까지는 냉정하게 말하면 <시사저널>의 문제였는데, 이제 더 이상 <시사저널>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언론에는 '왠만하면 다른 회사의 문제는 그냥 넘어가거나 침묵한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류이근: 경쟁사 혹은 타 언론사의 문제이기 때문에 침묵하는 것은 비겁한 태도라고 본다. 취재하면서 '이제 그만해라', '경쟁지에 대해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침묵하는 것이 관행 아니냐, 이걸 깨도 되는 건가' 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굉장히 불편했다.
  
  문제에 대해 방관, 동조, 침묵하라는 말이다. 기자가 갖고 있는 사회적인 역할이 사회 감시라면 그 사회라는 공간 안에는 언론도 들어간다.
  
  
▲ 전 <뉴스메이커> 최성진 기자 ⓒ프레시안

  최성진:
애초 이 사태의 발단이 삼성 기사에 있었고, 상식적으로 <중앙일보>와 삼성의 관계가 충분히 오해의 소지를 안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사태의 와중에 <중앙일보> 기자가 <시사저널> 기사를 쓴다는 것이 문제다.
  
  이송지혜: 언론의 자유에 대해 목소리 높이고 있는 조중동이 시사저널 사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는 것도 우습다.
  
  류이근: <시사저널> 자체가 한국 사회 내에서 가지는 독특한 역할이 있었다. 그런 잡지가 없어지는 것에 대해 조중동은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지만 좋아하는 것 아닌가? 언론의 자유를 말했는데, 조중동은 이 문제를 언론의 자유라기보다는 자본의 자유로 인식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편집권은 기자의 근로조건이다"
  
  프레시안: 이번 사태를 대강 아는 독자들은 '기자들의 파업은 결국 독자들의 손해가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류이근: 노사갈등으로 보더라도 <시사저널>의 행태는 문제가 있다. 임명된 적 없는 편집위원들의 기사는 독자들에게 손해가 되고 있다. 독자들에게 제대로 된 인식을 제공해야 하는 것이 언론이다. 그런데 조중동은 정확한 정보 제공을 하지 않고 아예 악의적인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송지혜: 또 사측이 대화 자체를 거부하지 않나?
  
  신호철 : 미온적이다. '이거 이거 안 받으면 너네 맘대로 하라'는 식이다.
  
  이송지혜 : 답답한 것이, 지금 시사저널 기자들은 과도하게 월급을 올려달라거나 후생복지와 관련된 파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 문제로 하는 파업도 정당하지만, 이번 문제는 그것이 핵심이 아니라 삼성이라는 기업의 압력을 받아 편집권이 부당하게 유린당한 점이다. 문제의 본질이 제대로만 전달된다면 대부분의 국민들이 사측이 잘못됐다고 할 수밖에 없다.
  
  
▲ <시사저널> 신호철 기자 ⓒ프레시안

  신호철 :
편집인은 편집권을 경영의 문제로 본다. 그런데 편집권은 기자의 근로조건이며, 노동의 권리 중 하나다. 노사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근로조건이다.
  
  류이근: 기자들의 요구사항이나 정당한 편집권에 대해 명시적인 장치를 <시사저널>에서는 갖고 있지 않았다. 이것이 문제가 될 수 있을 수 있는 경우에 대한 대비가 너무 소홀했던 것 같다. <한겨레>는 사장이 발행인까지 맡고 있다. 그러나 편집인과 편집국장이 따로 있고, 편집국장이 최후 보루로서의 역할을 하고 편집인은 징검다리와 같은 역할을 맡는다.
  
  "오만하고 예민한 기업의 '언론 검열'"
  
  프레시안 : 물론 편집인, 편집국장의 편집권 문제도 언급돼야 한다. 그러나 결국은 경영과 맞물리는 광고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을까?
  
  류이근: 사실 현업에 있는 기자들도 거기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사실 언론사의 광고국와 광고주는 통상적인 갑을관계가 역전돼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한 기업에 대한 기사가 크게 다뤄지면 광고국의 의견이 곧바로 기자한테 또는 데스크한테 간다. 이에 대한 명시적인 규정이 없다. 언제든지 그런 일이 재발할 수 있고, 가장 약한 고리 중 하나다.
  
  최성진: 기자로서 재벌 관련된 기사 쓰는 것은 매우 어렵다. 보통 미담이나 선행으로 기사를 쓰는 경우가 아니라 재벌의 비리 문제 등에 관한 기사를 쓸 때면 필수적으로 해당 기업의 입장을 들어보기 위해 취재해야 한다. 그럴 때 홍보실을 통해 취재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인데 그렇게 되면 바로 광고국으로 접촉이 들어와 일종의 딜을 제의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래서 기자 개개인 스스로도 일종의 자기검열 비슷하게, 최소한 귀찮아서라도, 재벌관련 기사는 잘 쓰지 않게 된다.
  
  프레시안 : 예전에는 권력을 가진 기관이 검열을 했다면 이제는 결과적으로 재벌들이 검열을 하는 격인 것 같다.
  
  류이근: 재미있는 것이 사람들이 부당한 권력에 대한 저항은 쉽게 받아들이지만, 자본의 횡포나 부당한 압력에 대해서는 조금 느낌이 다른 것 같다.
  
  또 우리가 잡지를 만들어서 파는 과정도 일종의 자본의 행위이기도 하다. 자본주, 재벌들의 문제제기와 간섭에 대해 기자들이 체감적으로 가장 큰 압력 중의 하나라고 꼽기도 하지만 역으로 그에 대한 문제의식은 덜하다.
  
  이송지혜: 이번 사태를 촉발시킨 삼성은 언론인들을 잘 관리하기로 유명하다. 쟁쟁한 언론인 출신들이 그 홍보실에서 활동하고 있고, 이렇게 밖으로 표출된 <시사저널> 사태 외에 드러나지 않은 삼성과 관련된 이런 일들이 굉장히 많을 것 같다. 어제 에버랜드에서 사고가 났는데 몇몇 언론에 의해 알려졌는데도 '모 놀이동산'이라고 한 언론도 있었다.
  
  최성진: 심지어 몇몇 경제지는 이 에버랜드 사고를 쓰지도 않았다.
  
  류이근: 대기업들이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기사를 막으려는 것은 본능에 가까운 몸부림이다. 당위적으로 그러지 말라고 얘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설득력이 없다. 결국 문제는 기자들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것 같다. 사주, 조직이 그런 압력을 이겨내야 한다. 모기가 들어오지 못하게 모기장을 촘촘히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최성진: 해당 기자가 대응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피땀 흘려서 생산한 기사를 끝까지 지켜내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기자 개인의 영역이나 시사저널처럼 상대적으로 작은 조직에서 그걸 지켜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일 수도 있다. 내 생각에는 민언련, 기자협회, 언론노조 등에서 기구나 제도적 차원으로 접근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송지혜: 그런 측면에서 공영방송이나 특정한 사주가 없는 <한겨레> 같은 매체에 기대를 가질 수밖에 없다. 기업은 물론 자신의 이해관계와 관련해 회사에 불이익이 돌아가는 기사를 막는 데에 나설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지만, 삼성같은 그룹은 우리나라 최대의 기업이라는 점에서 그에 따른 사회적 책임도 분명 있다.
  
  따라서 언론으로부터 감시받고, 사회의 여러 다른 관계 속에서 감시받고 견제받는 가운데 운영해 나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이것을 부당한 개입이나 외압을 통해 해결하려 한 것은 삼성이 마땅한 비판 받아야 할 문제다. 삼성은 'X파일' 사건부터 시작해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는데 제대로 단죄받지 않고 유야무야 넘어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자꾸 이런 식으로 편법으로라도 자신과 관련된 부당한 기사를 막으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 같다. 이런 기업이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이라는 것이 가슴아프다. 누구로부터도 비판받고 평가받지 않겠다는 태도는 정치권력보다 더 오만한 태도다.
  
  최성진: 기업에 해가 되는 기사를 막는 것도 있지만 사주와 관련된 평범한 기사들마저도 무조건 내지 말라고 요구한다. 오만한 자세와 더불어 상식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예민한 자세라고 본다.
  
  "실제보다 더 무서운 건 사람들이 상상하는 '삼성의 힘'이다"
  
  프레시안 : 요즘 언론의 경제적 종속의 문제는 꼭 기업에 의해서만 제기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최근 <한겨레>나 <경향신문>이 금속노조의 의견 광고를 거절했던 일도 있다. 이미 언론 자체 내부에 상당히 기업 또는 재벌의 속성이 들어와 내면화된 결과가 아닌가 생각되는데….
  
  류이근: 기본적으로 수입의 80~90%를 광고에 의존하니까 발생하는 문제다.
  
  신호철 : 그 중에서도 삼성과 기타의 기업은 차원이 다른 것 같다. 이번 사태가 진행되는 가운데 사람들을 접촉하면서 곳곳에 삼성의 힘이 계측된다. '시사모' 등에 이름을 넣어달라고 얘기해보면 그 사람이 얼마나 삼성을 의식하는가, '삼성 의식지수'가 나타난다. 삼성의 일이라 그런 일은 안 하겠다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었다. 당장 오늘 방담도 섭외하는 과정에서 두 명이 안 됐다.
  
  사람들은 삼성의 실제적인 힘을 의식하는 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있는 힘을 상상한다. 그래서 더 무서운 것이다. 다른 기업하고는 차원이 달라지는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명시적인 편집권 규약과 사회적 기구 마련, 대안 될 수 있다"
  
  프레시안 : 삼성이라는 권력이 언론과 닿아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는 광고 때문 아니냐. 그 고리를 끊기 위해 언론사의 수익구조를 개편해야 하나?
  
  류이근: 상당히 본질적인 문제다. 모든 잡지들 마찬가지일 텐데 삼성의 광고가 수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수익구조 개편은 현재의 사태를 해결하는 방식이 될 수는 없으며 대략 열 발자국쯤 앞서나간 생각인 것 같다. 삼성으로부터 광고를 받으면서 발생하는 긴장감, 이것을 어떻게 관리해 나가느냐의 문제다.
  
  사주의 의지도 중요하고 편집권을 지켜내려고 하는 기자의 의지도 중요한 것 같다. 미시적으로는 광고주와 관련된 기사를 넣고 빼고, 톤을 조절하는 문제와 관련해 편집국과 광고국 간에 어떤 관계가 설정되어야 하는지 좀 더 명시적으로 규정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송지혜: 재벌의 언론관리가 단지 광고만 갖고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연수 등으로 언론인들을 관리하는 수단은 많다.
  
  류이근: 어쩔 수 없는 현실적인 모순이다. 영세한 언론사에 종사하는 기자들의 경우는 자본주들이 제공하는 기회를 통해서 연수도 가고 때로는 그들의 협찬을 통해 취재를 할 수도 있다. 그런 것을 모두 떠나 청정지역에 살고 싶다? 현실성이 없다. 오히려 돈 많은 언론사는 현실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
  
  최성진: 지금 <시사저널> 사태와 같은 일을 어떤 개인의 영역이나 하나의 매체에서 막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것 아닌가. 연대의 틀을 모색해보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기자협회라든지 관련 단체들이 많이 있지 않나. 재벌 관련 기사로 인한 연대 같은 것을 하나 설치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겠다 생각한다.
  
  이송지혜: <시사저널> 공대위가 사실 그 두 가지에 대한 고민을 같이 안고 있다. 당면해서는 '시사저널 편집권 독립'과 관련된 공대위이지만 그 공대위에서 근본적으로 고민하는 것은 '자본으로부터 언론 독립'이다.
  
  <시사저널>의 건강한 기자들이 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문제가 제기되고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로 던져진 것 같다. 암담하지만 쓰레기통에서 핀 장미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그냥 묻히고 넘어갈 수도 있던 문제였는데 한가닥 희망을 본 것 같다.
  
  프레시안: 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하다.

정리=강이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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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산자부 3월31일 ‘위해성 평가 생략 등 추진한다’
‘미, 우리 입장 따라 양허개선’ 섬유와 연계 시사


<한겨레>가 입수한 협상단 내부 문건(‘한-미 자유무역협정 연장 1일차 협상계획’)을 보면, 협상이 타결되기 직전에 섬유 관세양허(개방)와 유전자 조작 생물체(LMO)가 연계돼 논의됐다는 정황이 명백히 드러난다. 또 한국 협상단이 섬유 관세양허 품목을 더 확보하려고 엘엠오의 위생검역 절차 간소화 합의를 추진한 것으로 나와 있다. 하지만 정부는 잇따른 해명자료를 통해 이런 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문건에 나온 표현들을 통해 정부 해명의 허구성을 짚어본다.

‘섬유-엘엠오 연계’ 없었다?=산업자원부는 ‘섬유-엘엠오 연계’ 의혹에 대해 6일 해명자료에서 “섬유협상에서 미국 쪽으로부터 엘엠오의 수입규제 완화를 조건으로 자국의 섬유시장 개방을 확대하겠다는 제안을 받은 바 없다”고 밝혔다.



또 “미국 쪽이 섬유산업 희생을 바탕으로 다른 분야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김종훈 한국협상단 수석대표도 5일 밤 <문화방송> ‘100분 토론’에 출연해 “엘엠오 문제는 전문가들끼리 기술협의에서 논의됐지, 섬유분과나 수석대표 차원에서 거론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협상단 문건에는, ‘어제(3월30일) 퀴전베리 미 섬유수석협상관은 엘엠오에 대한 우리쪽 입장 개선 여부에 따라 양허 개선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돼 있다. 또 ‘향후 엘엠오 이슈는 잔여 핵심쟁점인 농산물·섬유 등과 연계되어 논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나와 있다. ‘3월30일 수석대표 회의 때 미국이 (엘엠오) 수정안을 제시했다’는 표현도 있어, 김종훈 대표 발언의 사실 여부도 의심스럽다.

실제로 미국의 섬유 관세철폐 수준은 8차 협상 때까지 대미 수출액 기준 35%에 불과했는데, 최종 합의는 61%였다. ‘섬유-엘엠오 연계’ 의혹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엘엠오 위생검역 절차 간소화 합의 없었다?=산자부는 지난 4일 해명자료에서 “엘엠오 사안은 에프티에이와는 별도로 기술협의가 추진됐고, 협의 결과는 회의록 양식으로 정리했다”고 밝혔다. 또 “협의에서 국내 제도 변경 관련 사항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관철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문건을 보면, 미국 쪽은 8차 협상 첫날인 지난달 12일에 이어 최종 장관급 협상이 진행중이던 30일 양국 수석대표 회의 때 엘엠오 관련 수정안을 제시했다. 이는 ‘미국에서 안전성이 확인된 식용·사료용·가공용 엘엠오 수출 때 한국내 위해성 평가 생략’ 등 국내 안전검사와 수입승인 권한을 무력화시키는 조항 6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지난달 31일 새벽 1시 산자부는 미국 쪽의 수정안에 대해 우리의 최종 입장을 전달했는데, 핵심 쟁점인 한 가지만 제외한 나머지에 대해서는 ‘양국간 원칙적으로 내용에 대해 이해를 같이하고 문안에 대한 세부 합의를 추진한다’고 문건에 명시돼 있다. 다만 양쪽의 합의가 실제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는 이 문건에 나와 있지 않다. 김수헌 기자 minerva@hani.co.kr






* 유전자 조작 생물체(Living Modified Organisms: LMOs) = 유전공학 기술을 적용해 다른 종의 유전자를 섞거나 변형시켜 자연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는 형질을 지니도록 만들어진 생물체다. 이런 유전자 뒤섞기는 종은 물론 식물과 동물의 경계까지 넘나든다. 해충에 저항력이 강한 작물을 만들기 위해 미생물의 독소 유전자를 집어넣는 것이 그런 예다. 그 과정에서 변형된 유전자가 인간과 환경에 위험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국제적으로 생산과 유통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는 추세다. 지엠오(Genetically Modified Organisms: GMOs)란 이런 유전자 조작 농산물의 줄임말이다.






정부 · 협상단 궁해진 해명
“설명했다” → ‘협의‘ ‘합의’로


미국의 유전자 조작 생물체(LMO) 수입과 관련해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테이블에서 어떤 합의를 해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정부가 실체적 진실을 감추고 있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이렇게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정부 스스로 제공했다. 관련 당사자들의 발언이 서로 맞지 않고, 심지어 같은 사람의 입에서 어제와 오늘 다른 말들이 나오기까지 하고 있다.

애초 이 문제와 관련한 보도(<한겨레> 4월2일치 1면 참조)가 나온 뒤, 담당 부처인 산업자원부 실무자는 “에프티에이와는 별도의 양국 위생검역 관련 기술협의를 통해 국내 관련 제도의 변경을 설명해 줬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다가 이틀 뒤인 4일 산자부는 해명자료를 내, “기술협의가 추진되었고 협의결과를 회의록 양식으로 정리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같은 날 김종훈 협상단 수석대표가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 좀더 진전된 발언을 했다. 그는 무소속 최재천 의원이 정부의 대외비 협상 문건을 보여주며 추궁을 하자, “(합의는) 사실이다. 그 부분은 별도 합의됐고 유관부서에서 별도 합의문 형태로 작성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다만) 6개 항 중 5개 항은 전혀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고 나머지 1개 항은 생물다양성 협약으로 우리가 현재 가입하려 하고 있는데, 가입한다는 전제 하에 이행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계류중”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엘엠오 수입 조건과 관련해 애초는 “설명했다”고 했다가 점차, ‘협의’와 ‘합의’ 등으로 수위가 높아진 셈이다.

환경운동연합 임지애 생명안전본부 부장은 “정부의 대외비 문건을 보면 미국의 섬유시장을 좀더 개방하려고 국민들의 식탁 안전과 생명을 팔아먹지 않았느냐는 의혹이 든다”며 “정부가 이런 의혹을 씻으려면 엘엠오 작물과 관련해 한-미 에프티에이 협상 과정에서 오간 문건들을 모두 공개하고, 필요할 경우 감사원 감사나 국회 차원의 국정감사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순빈 기자 sbpark@hani.co.kr




표시 없애고 국제규제강화 허물기
미국이 LMO에 목매는 까닭은


미국이 에프티에이 협상과 ‘유전자 조작 생물체’(LMO) 문제를 연계시킨 것은 점차 두터워지는 유전자 조작 생물체에 대한 국제적인 규제 장벽에 구멍을 내는 한편으로, 최근 몇년 사이 감소해온 대한국 ‘유전자 조작 작물’(GMO) 수출을 늘려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미국은 세계 최대 유전자 조작 작물 생산국이자 수출국이다. 세계 유전자 조작 농작물 생산면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승인된 유전자 조작 작물 품목수도 2006년 1월 말 현재 111건으로 세계 최대다.

이런 생산·기술력 우위는 미국 내에서 유전자 조작 농산물이 일반 농산물과 구성성분, 특징 등의 면에서 큰 차이가 없을 경우 안전성 면에서도 두 가지를 동일한 것으로 보는 ‘실질적 동등성의 원칙’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원칙에 따른 미국의 유전자 조작 작물 수출은 세계 곳곳에서 소비자들의 저항에 부닥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은 유럽연합, 일본과 함께 유전자 조작 작물의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는 한 위험성이 있다고 간주하는 ‘사전예방의 원칙’에 따라 유전자 조작 농산물 표시제를 시행하고 있는 국가다. 미국이 한국에 실질적 동등성의 원칙 쪽에 기울어 있는 세계무역기구(WTO)의 기준을 따르라고 요구하는 것은 바로 이 ‘사전예방의 원칙’을 허물려는 의도가 숨겨진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유전자 조작 작물 표시제가 완화될 경우 감소 추세인 대한국 옥수수와 콩 수출량이 증대될 것이라는 계산도 깔려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미국은 옥수수 자급률이 1%에 불과한 한국에서 2001년까지 브라질과 함께 수출국 1위를 다투었다. 하지만 2001년 67만1438t이던 미국의 대한국 옥수수 수출량은 2005년에는 5만9136t으로 10분의 1 이하로 줄어들었다. 유전자 조작 작물에 대한 소비자들의 거부감이 확산되면서 대한국 콩 수출량만 해도 2003년 118만6645t에서 2004년 101만2650t, 2005년 79만4322t으로 줄어드는 추세다.

이번 협상에서 유전자 조작 생물체 문제를 연계시킨 또다른 의도는, 한국의 유전자 조작 생물체에 대한 관리가 현재보다 강화되는 것을 막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국내 ‘유전자변형생물체법’ 발효 이전에 미국과 별도 협정을 체결하라는 요구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한국의 유전자 조작 작물 수입검사는 서류심사로만 진행되며, 유전자 조작 농산물의 비의도적 혼입률도 유럽연합의 3배인 3%까지 인정해 주는 등 허술하게 이뤄지고 있다.

김은진 환경농업단체연합회 정책위원은 “환경·소비자 단체들에서는 바이오안전성 의정서 비준 뒤 이뤄질 하위 규정 정비 때 시험재배 의무화와 비의도적 혼입률 축소 등을 이뤄내겠다고 벼르고 있다”며 “미국이 이런 움직임을 파악하고 쐐기를 박으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정수 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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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 산책 1970년대편 3 - 평화시장에서 궁정동까지 한국 현대사 산책 11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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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단 한사람의 인물을 꼽으라고 한다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박정희를 꼽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우리 현대사, 더 나아가 현재 우리의 삶에 끼친 영향의 공과의 평가문제는 아직도 우리사회에서 가장 첨예하게 의견이 대립되는 주제 중의 하나이다.


수년 전, 내가 우리 현대사에 대하여 본격적인 관심을 갖기 이전에 텔레비전에서 칠레의 독재자 피노체트에 관한 뉴스를 본 적이 있었다. 독재자였음에도 아직도 추종자들이 건재하고 사회가 그에 대한 평가와 처리 문제로 격렬하게 대립하고 있다는 것을 보고 칠레라는 나라는 참 한심한 나라라는 생각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떻게 독재자, 그것도 수많은 사람을 고문, 납치, 살해한 독재자에게도 추종자가 남아 있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가에 대한 순수한 의구심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현 시대를 살고 있는 한국인들 중 절대다수가 박정희 시대의 경제발전의 수혜자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시대의 경제발전이 전적으로 박정희 개인 덕분이었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수십년에 걸친 사회, 경제적 변화에는 무수한 요소와 변수가 작용하기 마련이고 단적으로 말해서 그 시대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당한 노동자들의 노고가 없었다면 그와 같은 경제성장은 절대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박정희 시대에 그가 추구한 경제 정책이 수많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는’ 70년대 상황에서는 효과적이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정부 주도의 선별적, 산업육성 정책과 온 국민을 효과적으로 동원하여 짧은 기간 전세계적으로 유래없는 고도성장을 이룬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나는 적어도 그러한 경제 성장의 결과에 대하여 정책결정의 최고 책임자로서의 박정희의 공은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박정희 아닌 그 누구라도 그와 같은 경제성장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는 주장에는 쉽게 동의할 수 없다. 그런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나 박정희에게 경제성장에 대한 어느 정도의 공을 인정해 준다고 할지라도 그 시대에 그의 직간접적 영향 아래 일어난 수많은 인권탄압과 고문 등에 대한 면죄부를 박정희에게 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절!대!로! 특히 박정희 시대 말기의 암울한 단상들을 서술하고 있는 이 책을 읽고 나서 그런 생각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박정희의 지지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 시대에는 국가 비상사태에 북한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서, 반공을 위해서, 먹고 살기 위해서, 국익을 위해서, 고문이나 인권탄압은 어쩔 수가 없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고문이나 인권탄압을 정당화해 준다는 그 목적에는 사실 어떠한 것도 들어갈 수가 있다. 그러한 목적에 명확한 실체가 없더라도 권력을 가진 자들은 추상적인 언사로 그럴 듯한 목적을 만들어서 선전하기만 하면 된다. 지금 테러와의 전쟁을 치루고 있는 미국사회를 보면 그 생생한 예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책에 나오는 잔인한 고문에 대한 회고 부분을 읽으면서 며칠 전에 읽은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에 이런 부분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이 자신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그와 관련해서 나는 이런 상상을 해보았다. 그 시대의 국익을 위해서 고문이나 인권탄압도 정당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스스로가 스크루지에 나온 것처럼 그 시대 고문과 인권탄압 피해자들의 상황을 몸소 겪고 그 경험을 머리와 가슴으로 체화할 수 있게 하는 기계가 있다면 그들에게 그러한 체험을 간접적으로, 그러나 뼛속 깊숙이 해보게 했으면 좋을텐데...그런 경험을 하고서도 그들이 고문이나 인권탄압도 정당화될 수 있다는 말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고 사람들의 기억은 주관적이다. 박정희의 후계자들은 지금껏 승자로서 우리 사회의 지배세력을 형성해 왔다. 그리고 공식적인 역사, 교육, 문화의 형성을 독점해 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도 직, 간접적 피해자이면서도 그 시대의 고문과 인권탄압, 박정희의 엽색행각, 박정희 사후 청와대 금고에서 발견된 수백억원의 자금, 자신의 부하 뿐 아니라 야당 국회의원에게까지 자금을 직접 하사했던 박정희의 통치 스타일은 기억하지 않고 청렴하게 생활하며 국민을 제일 먼저 생각하고 경부고속도로를 깐 박정희만 기억하고 있는 듯하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하지만, 박정희 시대는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아직도 그 시대의 권력자, 권력의 하수인들이 사회의 지배계층으로 건재하고, 그 시대가 강요하던 인간형이 우리의 의식구조에 깊숙이 뿌리박혀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우리사회에서 대놓고 고문이나 인권탄압이 자행되지는 않는다. 자유롭게 원하는 정보에 접근할 수도 있고, 반대의 목소리를 낼 수도 있다. 경제발전의 달콤한 열매를 주었지만 암울했던 그 시대를 정당하게 평가하고 극복하는 것은 이제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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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자누스 2008-10-09 0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준만씨는 박통 암살에 대해서 어떤 얘기를 하고 있나여?
 
타인의 고통 이후 오퍼스 10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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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잔혹한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노출시키는 사진을 중심으로 하여 특히 이미지 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피사체가 된 타인들의 고통에 대하여 느끼는 반응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책의 내용을 단락별로 요약하거나 전체의 주제를 한 문장으로 제시하기는 무척 어렵다. 책을 절반이상 읽고도 전체적인 내용을 머릿속으로 그리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요즘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수많은 전쟁 관련 이미지, 제3세계 국가들의 기아에 관한 이미지 등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먼저 사진은 기계적 편집이 없는 한 그러한 사실의 역사적 실재에 대한 증명이 되지만 그러한 이미지 자체가 역사적 사실의 진실 자체를 말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깨닫게 되었다. 사진 작가가 피사체를 선택하는 것, 그 사진과 함께 전시하는 다른 사진과의 관계 등 무수한 변수에 따라(작가의 의도가 개입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관람자는 사진을 보면서 실제 일어났던 일과 전혀 다른 이미지로 사진을 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작가의 주관적 의도의 개입과 관련하여 초기 전쟁 사진들 중 상당수가 정교한 연출에 의한 사진이었고, 적 전사자의 얼굴은 사진에 노출시켜도 아군 전사자는 엎어져 있는 모습으로 촬영한다는 식의 검열기준이 있었다는 사실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저자는 또한 잔혹한 영상의 피사체로서 소위 서구와 제3세계의 차별성에 대한 문제제기도 한다 기아와 전쟁으로 고통받는 것은 언제나 아시아, 아프리카를 비롯한 제3세계다. 대부분의 관람자가 속해있는 유럽이나 미국은 피사체가 아닌 관찰자로서 존재하고 그렇기에 그들은 더욱더 타인의 고통을 닮고 있는 잔혹한 이미지에 무관심해질 수 있게 된다.


저자의 보스니아인 친구의 말이다.1991년 세르비아인들이 부코바르를 부수는 광경을 텔레비전에서 봤을 때 정말 끔찍한 일이지만 저기는 크로아티아지, 이곳 보스니아에서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야. 그리고는 채널을 돌렸다고. 그 이듬해 보스니아 전쟁이 발발하자 그녀는 다른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이제는 자기 자신이, 다른 사람이 힐끔 쳐다보고는 ‘아, 정말 끔찍한 일이군’이라고 말하면서 채널을 돌려버리는 그런 텔레비전 뉴스의 일부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말이다.(p229)


관찰자들이 잔혹한 이미지에 무감각해지는 주요한 원인 중의 하나가 그러한 이미지들의 과잉 이외에도 관찰자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 공포, 무기력감이라는 저자의 지적에도 공감이 간다.(p153)


앞선 말했듯이 책 전체의 내용을 요약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저자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라 생각되는 부분을 옮겨본다.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는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 주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연민은 어느 정도 뻔뻔한(그렇지 않다면 부적절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우리가 상상하고 싶어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p154)


정말이지 우리는 그들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우리는 전쟁이 얼마나 끔찍하며,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그런 상황이 당연한 것처럼 되어버리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해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다.(p184)


이 책의 저자인 수전 손택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다.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순전히 이책의 자극적 제목과 리뷰의 좋은 평가 때문이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기회를 갖게 된 것도 고맙지만 수전 손택과 같은 지식인을 알게 된 것이 사실 더 고맙다.


특히 부록으로 첨부된 글 중에는 9.11 공격 이후 미국사회와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테러와의 전쟁의 핵심 - 전시를 가장하여 정부에 무제한적 권력을 허용해달라는 수사이자 명령 - 을 바로 집어내는 그녀의 날카로운 분석이 포함되어 있는데, 9.11 공격이 있고 2주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사태를 정확히 진단하고 적(?)에 대한 분노와 맹목적 애국주의에 휩쌓인 미국 사회에서 제 목소리를 내었다는 점만 보더라도 그녀의 가치를 알 수 있었다.


논란이 있는 국제적 이슈에 대하여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기 어려울 때 수전 손택의 목소리를 유용한 판단 기준의 하나로 삼을 수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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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포토저널리즘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 시선 <타인의 고통>
    from 風林火山 : 승부사의 이야기 2007-08-07 03:48 
    타인의 고통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이후(시울)전반적인 리뷰2007년 8월 5일 읽은 책이다. 이 책의 리뷰를 적으면서 처음 안 사실이 지금 현재 내가 갖고 있는 책의 표지와 지금의 표지가 다르다는 것이다. 뭐 이 책의 발간일이 2004년 1월이긴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에는 이 책이 다루고 있는 것을 보면 기존의 책 표지 자체도 타인의 고통을 드러내는 그림이었기에 이 책에서 얘기하고 있는 바와 약간은 상충되는 부분도 없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
 
 
 
일본 문화의 힘 - 세계는 왜 J컬처에 열광하는가
윤상인 외 지음 / 동아시아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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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일본에 짧게 여행을 가기 전 일본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고 가자는 목적으로 사서 읽은 책이다. 일본 여행을 떠나기 전날 서점에서 그냥 둘러보다가 아무런 사전 정보없이 대충 훑어보고 산 책이었는데 이 책을 읽기 직전에 읽은 ‘일본 들춰보기’라는 책과 비교되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무척 만족스러웠다. 수많은 책이 진열되어 있는 흙속에서 진주를 우연히 찾아낸 느낌이랄까...


이 책은 일본에서 공부를 하였고 해당 분야의 일본 문화의 매력에 푹 빠져 그 분야의 소위 ‘달인’이 된 저자들이 그래픽 디자인, 소설, 영화, 애니메이션, 건축, 패션, 하이쿠, 요리의 8가지 분야의 일본 문화에 대하여 개괄적으로 쓴 글을 모아놓은 형식이다. 일단 시각적 자료가 풍부해서 눈에 바로바로 들어오고 글을 읽으면서 정말로 그 분야의 전문가가 쓴 글이라는 것이 생각이 많이 들었다. (각 분야의 글 말미에 저자의 양력이 나오는데 양력을 읽으면 해당 일본문화에 대한 저자의 공력이 느껴진다.)


글은 대부분 현대 일본 문화를 대표하는 각 분야의 거장과 그의 작품, 작가관 등을 소개하면서 각각에 깃듯 일본문화를 살펴보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읽다보면 정말로 이 책의 제목처럼 ‘일본 문화의 힘’을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특히 일본을 실제로 여행하면서 다나카 잇코의 스모 요코즈나의 모습을 그린 포스터(p37)가 지금도 실제 포스터에 사용되고 있는 것이나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본의 스트리트 패션(p173) 등 책에서 읽고 보고 느낀 것을 실제 일본에서 보고 느낄 수 있어 정말 좋았다.


헐리우드 영화를 보다보면 일본 문화에 대한 거의 맹목적인 호의가 느껴진다. 킬빌이나 라스트 사무라이를 보면 일본 문화에 대한 환타지가 느껴지기도 한다. 동양하면 떠올리는 것이 일본이고 일본문화에 서양인들이 무의식적인 동경이나 환상을 갖게 된 이면에는 일본문화를 만들어나간 각 분야의 거장들의 힘과 그에 대한 사회적 뒷받침이 있었다. 아직도 헐리우드 영화에 트렁크에서 자면서 2교대를 하는 택시기사나(택시), 영어도 제대로 못하면서 무식하게 호들갑 떠는 선원들(아웃브레이크), 미군과 결혼하여 이민온 극성엄마(핫칙) 등 부정적 이미지로 그려지는 우리로서는 일본은 배워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은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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