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불량국가 - 국제금융기구와 외채에 관한 진실, 세계 밖의 세계
다미앵 미예.에릭 뚜생 지음, 조홍식 옮김 / 창비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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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외채라고 하면 부유한 국가가 개발도상국의 필요와 요청에 따라 빌려준 자금을 개발도상국이 경제성장 실패로 인하여 갚지 못하고 있는 채무하고 생각할 것이다. 돈이 없는 국가는 돈을 빌려야 하고 빌린 돈은 갚아야 한다. 갚지 못한 것은 빌려간 돈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채무자 책임이 아닌가? 하지만 외채 문제는 그와 같이 단순한 논리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나도 구조적이고 복잡하며 악랄하다.


외채문제의 발생원인

제2차세계대전 이후 제3세계의 발전가능성이 국제금융질서에 완전히 종속된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불평등한 교역조건과 교역조건의 악화로 예속의 굴레가 형성되었다. 즉, ①달러가치의 폭락과 유가의 폭등으로 인해 서방의 대규모 은행들은 갑자기 늘어난 달러를 잔뜩 보유하게 되었고, 선진산업국들은 넘쳐나는 달러를 제3세계국가들에 경쟁적으로 낮은 이자율로 차관을 제공했다. ②한편 미국은 경제위기를 탈출하기 위하여 이자율을 대폭 높이고 그 영향으로 세계적으로 이자율이 급격하게 상승하였다. 그 결과 변동이자율이 적용되었던 차관은 이자율의 상승과 높은 위험부담의 영향으로 하루아침에 돈을 3배나 더 갚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③남부 국가들은 자금을 상환하기 위하여 원자재 수출을 통하여 달러와 같은 경화를 벌어야 했는데, 남부국가들이 경쟁적으로 원자재 수출에 나서면서 원자재 가격은 1980년대 이래 폭락하였다. 소득은 줄어드는데 더 많은 돈을 갚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여 남부국가들은 외채 상환을 위하여 다시 외채를 더욱 비싸게 얻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p62-65)


차관의 쓰인 곳

그렇다면 남부국가들에 차관으로 제공된 자금은 어떻게 사용되었는가? 제공된 차관이 남부국가 주민들을 위하여 제대로 사용되었다면 차관도입의 명분이나마 세울 수 있겠지만, 불행히도 전혀 그렇지 않았다. 대부분의 차관은 북부 강대국들의 전략적 동맹국의 독재정권에 의해 도입되었고, 부패한 정권은 차관액의 상당 부분을 횡령했다.(자이레를 30년 동안 지배한 모부투 세세 세코의 사망당시 재산은 80억 달러였고 이는 자이레 외채의 2/3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일가의 재산은 400억 달러로 추산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횡령된 자금은 북부국가의 은행에 다시 예치되었다. 그나마 채무국에 도착한 자금은 현지주민의 일상적 삶을 향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남부의 천연자원을 수탈하여 세계시장에 좀 더 쉽게 공급하기 위한 것이었다.(p53-57)


악순환의 고리 -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

위와 같이 생성된 외채의 굴레를 고착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이다. 채권국가들은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을 통하여 채무국들에게 엄격한 재정적 규율을 강요하는데 이는 개발도상국의 산업을 발전시키려는 것이기보다는 이들을 세계시장에 통합시키고 개발도상국의 재정적 균형의 회복을 위해 더 많은 수출과 더 적은 지출을 그 주요 내용으로 한다. 이러한 계획들의 지속적인 추진으로 지난 20여 년간 고통 받은 것은 남부의 주민들이다. 지난 20여 년간 개발도상국들 사이에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빈곤이 확산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며 이러한 정책적 실패는 운이 없다거나 이해의 부족에 따른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정책을 의도적으로 적용한 데 따른 것이다.(p94-95)


부의 이전

일반적으로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에 차관을 제공하므로 자금은 북부에서 남부로 이동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개발도상국에서 자금이 빠져나가 북부로 흘러들고 있다. 1998년 이후 동남아와 라틴아메리카에서의 위기 이후 4,400억 달러가 남부에서 북부로 이전되었다. 공공외채에 관하여 본다면 남부국가들이나 국가가 부채를 보장하는 기관들이 북부로 이전시킨 금액은 1995년부터 2001년까지 2,480억 달러에 이른다. 이런 수치에는 남부 지배층의 자본도피, 다국적 기업의 이윤회수, 민영화 과정에서 저렴하게 팔린 남부 기업들이 북부 지배층 소유로 넘어간 것, 남부 국민들이 생산한 원자재 가격의 하락, 브레인의 탈출, 유전적 자원의 파괴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 결과 개도국들은 100의 돈을 빌려 이미 750을 상환하고도 현재 450의 빚을 지고 있는 상태에 처해 있다. (p132-135)


상식의 전환

외채의 악순환을 보면서 다음과 같은 상황이 떠올랐다.

한 가정에 망나니 가장이 있었다. 매일 술을 마시며 가족들을 폭행하고 가족들이 일해서 모아온 돈을 노름으로 날리고 큰 빚을 지고 잠적해 버렸다. 가족들은 돈을 만져보지도 못한 채 하루아침에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었다. 그러자 채권자들은 수시로 집에 찾아와서 사사건건 가정 일에 간섭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에게는 학업을 당장 그만두고 굶어죽지 않을 정도로만 먹으면서 공장에 가서 돈을 벌어오라고 한다. 그러면서 채권자들은 선심 쓰는 척 돈을 갚을 수 있도록 자기가 돈을 꾸어준다. 자기의 지시에 잘 따르는 것을 조건으로...그리하여 가족들은 죽어라 일을 하면서도 항상 굶주리며 빚은 계속해서 늘어만 갔다...


돈을 빌렸으면 이자까지 쳐서 갚아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며 자본주의의 원칙이다. 이를 원칙으로 여기는 것은 돈을 갚지 않아도 된다면 채무자들은 돈을 갚지 않을 것이고 채권자들은 돈을 빌려주지 않아 자금의 흐름이 끊길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다면 개도국들은 어떻게든 외채를 상환하는 것이 원칙에 맞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독재자가 빌려 횡령한 돈을 국민 전체가 부담하는 것이 상식에 맞는가? 독재자의 부채 상환을 위하여 수많은 국민들이 굶어 죽고 있는데도 그 국가의 독재자가 빌렸으니 해당국가 국민들이 무조건 갚아야 한다는 것이 상식에 맞는가? 게다가 남부는 이미 원금의 7.5배를 갚지 않았는가.


우리는 1997년의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어찌보면 외채 문제를 몸소 체험했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는 단기간에 외채의 굴레를 벗어난 극히 예외적인 예에 속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우리 경제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IMF가 강요한 조치들로 인하여 양극화 심화, 기업들의 헐값 매각, 빈곤층의 증대 등 수많은 문제점들이 발생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대다수 개도국의 예를 보면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의 정책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는 너무도 분명하다. 그들의 정책은 총체적 실패를 가져왔다! 그들의 주장이 허구인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해당 국가가 그들의 정책을 제대로 시행하지 못하고 국민들의 노력이 부족해서 원래 의도된 성과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말만으로 책임을 전가한다.


20여 년간 시행한 정책이 실패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책임을 정책을 시행한 대상에게 전가하는 것이 비상식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최소한의 영양분도 섭취하지 못하여 굶어죽고 있는 나라에서 외채의 상환이라는 명목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과도한 영양섭취에 따른 비만으로 각종질병에 걸리는 나라로 자금을 이전시키는 것이 비상식이다. 독재자를 비호하며 차관을 제공하고 독재자가 횡령한 자금을 예치하는 금고를 제공한 자들이 독재의 피해자인 국민들에게 독재자에 대한 차관의 상환을 요구하는 것이 비상식이다. 그러한 부채가 개도국들의 외채라면, 그것은 전액 탕감하는 것이 상식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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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1-02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위 정치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상식과 비상식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정말 궁금하네요.

외로운 발바닥 2007-01-03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은 무엇이 상식이고 무엇이 비상식인지 헷갈리곤 합니다.
 

메르세데스 - 벤츠 코리아가 28일 출시한 S500 4MATIC L 모델의 국내 판매 가격은 대당 2억960만원으로 책정됐다.

벤츠의 플래그쉽 모델로 배기량 5500cc급 V8 엔진, 자동 7단 변속기를 탑재했다.

이 차량은 특히 최고출력 388마력(6000rpm), 최대토크 54.0kg.m(2800~4800rpm)를 발휘해 승차감이 뛰어나면서도 폭발적인 엔진파워를 지녔다. 

여기에 상시 4륜구동 방식을 적용해 빗길이나 눈길, 미끄러운 노면에서도 차량의 안정적인 주행 성능을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배기량이 같은 동급 모델(S550 4MATIC)은 권장 소비자 가격이 대당 8241만원에 불과하다. 같은 차 두 대를 사고도 남는 2.5배 수준이다.

독일에서는 S500L 4MATIC 모델명으로 판매되는데 소비자 가격이 1억2061만원이며, 일본(S550 4MATIC)에서의 판매 가격은 1억402만원에 불과하다.  

같은 차종이면서도 왜 한국에서만 소비자 가격이 유난히 비싼걸까?

이에 대해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의 김예정 상무는 "미국 자동차 시장은 한국에 비해 규모가 클 뿐만 아니라 경쟁이 치열해 소비자 가격이 낮게 책정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기에 "한국에서는 거의 판매량이 적기 때문에 그만큼 차량의 가격을 높일 수 밖에 없으며, 국내 자동차 소비자들의 취향을 고려한 편의사양이 적용됐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국내 소비자들의 취향을 고려한 편의사양으로는 한국형 DVD 내비게이션과 블루투스 이동전화 장치가 적용된 것을 의미한다.

[카리뷰-하영선기자 ysh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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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발바닥 2007-01-01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황당한 기사다. 약간 낚인 것 같은 기분도...기사를 읽고 나서도 전혀 기사제목의 물음에 답이 떠오르지 않는...한국형 DVD 내비게이션과 블루투스 이동전화 장치가 1억 3천만원 어치란 말인가...-0-;;;
 

사담후세인이 12월 30일 처형되었다고 한다. 일견 독재자의 비참한 최후라고도 볼 수 있지만,

사담후세인의 생포, 재판, 그리고 신속하게 집행된 사형을 보면서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하여 다시한번 씁슬한 생각을 감출 수 없었다.

사담후세인이 걸프전 이전 미국의 강력한 지원을 받는 세력이었다는 아이러니한 사실은 차치하고서라도,

이라크 전쟁에서의 거의 유일한 가시적 성과로 미국이 내세우는 사담후세인의 생포가 결국은 독재자의 처형이라는 대중들에 대한 카타르시스의 제공으로 끝나게 되리라고는 막연히 예상은 했지만, 그토록 법과 원칙, rule of law, due process of law 등을 강조하는 미국이 그토록 재빨리, 그것도 사형절차를 생중계하는 것을 보면서 미국도 크게 다르지는 않구나 라는 실망감이 밀려왔다.

부시가 북한과 이라크 등을 악의 축이라고 빗대고, 툭하면 성경을 인용하며 하나님을 들먹이는 것도 결국은 자신들은 '선'이고 자신들에 반대하면 '악'이라는 이분법적 구조를 창출하고 고착화시키려는 의도임이 보였지만, 사담후세인만큼 권력에 오르고부터 몰락하여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까지 그토록 드라마틱하게 선과 악의 양극단을 오르내린 인물도 흔치는 않을 것이다.

특히, 사담후세인의 사형집행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사담후세인은 바로 미국이 만들어낸 대중에 대한 안티 영웅으로서의 '악의 화신'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중독재의 영웅만들기에 대비되는 안티영웅의 탄생과 그 종말을 나는 사담후세인을 통하여 생생히 목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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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꿀라 2007-01-01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류의 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이 세상에서 악을 행하다 이제는 가야 할 사담 후세인.
죽은 사람에게 용서를 빌어야 할 때가 아닐런지요.
 

‘작심삼일’극복하려면 한가지만 결심하라
[조선일보 2006-12-30 04:24]    

英연구팀 ‘심리학적 5계명’제시

‘금연(禁煙), 절주(節酒), 자격증 따기,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새해는 으레 새로운 결심과 함께 시작된다. 하지만 꾸준히 실천해 목표를 달성하기란 왜 이리 어려운 걸까? 영국 하트포드셔(Hertfordshire) 대학 연구팀이 ‘작심삼일(作心三日)’을 극복할 해결책을 찾는 실험에 나섰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29일 전했다.

연구팀은 새해 목표 달성을 위한 최선의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대규모 온라인 실험을 실시하고 있다. 홈페이지(newyearscien-ce.co.uk)에서 세계 네티즌을 대상으로 참가 자원자를 모집 중이며, 목표 실험 인원은 1만명이다. 연구팀은 지금까지 알려진 새해 목표 달성의 심리학적 비결도 함께 제시했다.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연령·국적 등을 입력한 뒤 ‘빚 갚기’, ‘새 집 사기’, ‘애인 찾기’, ‘인생을 더 즐기기’, ‘더 친환경적으로 살기’ 등 18가지 목표 가운데 하나를 고를 수 있다. 자기만의 결심을 써 넣을 수도 있다. 참가자들은 이후 6개월 동안 정기적으로 연구팀과 이메일로 교신하며 목표 달성 상황을 점검 받는다.

이 대학 리처드 와이즈먼(Wiseman) 교수는 “개인적인 실패와 성공의 경험을 축적하고 통계화하는 것이 실험 목표”라며 “이를 통해 새해 결심을 지켜내기 위한 최선·최악의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훈기자 libr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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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발바닥 2006-12-30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년 반복되는 새해결심과 작심삼일...최근 라디오에서 듣기로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계획과 이를 실천하지 못한데 따른 좌절감을 고려하면 계획을 세우지 않는것이 좋다는 말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내년의 계획을 세우련다...작심** 기간을 조금이라도 늘려야지...위 5계명중 특히 첫번째와 두번째 것에 집중해봐야겠다.^^

짱꿀라 2006-12-31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에는 정말로 한가지만 정해서 결심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꼭 이루어지기를 위해서요. 감사합니다. 좋은 자료 읽고 갑니다. 2007년도 복 많이 받으세요. 행복하시구요.

외로운 발바닥 2006-12-31 2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런데 알면서도 욕심 때문에 그러기가 참 쉽지 않네요. ^^;
 
침묵과 열광 - 황우석 사태 7년의 기록
한재각.강양구.김병수 지음 / 후마니타스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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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광의 전염

희대의 황우석 사태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지도 벌써 1년이 되어온다. 당시 전 국민이 감동과 환희, 그리고 실망과 환멸을 순차적으로 느꼈으리라 본다. 당시 나도 배아 복제나 그 밖의 과학적 배경지식에는 완전한 문외한이었지만 황우석 교수가 ‘세계최초’로 배아복제 줄기세포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대단히 기뻐하고 자랑스러워 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 과학자이신 아버지께서는 황우석 교수 신드롬에 대하여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계셨고 나는 아버지께 오히려 다른 한국 과학자가 잘 되면 아버지도 한국 과학자로서 기뻐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따져 물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회적으로 황우석 교수에 대한 한마디의 비판조차 허용되지 않을 정도로 퍼져있던 황우석 교수에 대한 ‘열광’이 우리 집 안에까지 퍼져 있지 않았나 싶다.


의혹과 좌절...모두 기억 속으로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노성일 원장과 황우석 교수의 치고받기식 기자회견과 Science지에 게재된 논문이 조작된 것일 수도 있다는 보도가 이어지면서 나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었다. 마치 청룡열차를 타고 제일 높은 곳까지 갔다가 한번에 추락한 느낌이랄까...그런데 더욱 놀라웠던 것은 Science지에 실린 논문이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황우석 교수가 인정하고 난 이후에 황우석 교수가 했던 기자회견의 내용과 조작사실이 밝혀지고 난 이후 상당수의 사람들이 황우석 교수에게 한번 더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식의 목소리를 냈다는 점이었다. 당시 나는 도저히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러한 현상에 대하여 꽉 막힌 것 같은 답답함을 느꼈었다.


학자로서의 자격조차 인정받을 수 없을 정도로 근본적인 잘못을 저지르고도 일말의 반성 없이 전국민을 상대로 능숙한 언론플레이를 하는 황우석 교수의 기자회견 모습을 보면서 인간 황우석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해 본다면 학문적으로 의미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리고 황우석 사태가 우리 사회의 어떤 한 단면의 병폐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이 사태로부터 무엇인가 우리 사회가 배워서 한 단계 발전의 계기로 삼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1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사실 황우석 사태는 내 기억에서 빠르게 잊혀져 갔다. 예전에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동이 있었지 라는 정도의 기억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황우석 사태에 관한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추적, 분석한 이 책을 읽고 정말 잊을 수 없는 그 사건에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그리고 그 사건을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에 관하여 다시 깨닫게 되었다.


황우석 사태의 구조적 원인 - 박정희 패러다임과 과학기술동맹..

이 책은 1999년부터 황우석 교수의 행적을 추적한다. 그리고 그가 어떻게 비주류 학자에서 우리 사회의 힘있는 주류들과 인적 네트워크를 맺으며 과학기술계의 거대권력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는지 그 과정을 상세하게 추적한다. 저자들이 ‘과학기술동맹’이라고 일컫는, 황우석 사태에 직간접적인 책임이 있는 정치, 사회, 의학, 언론, 과학 등 각 분야의 주류 실세들이 황우석 교수와 어떤 것을 매개로(give and take의 대상...ex: 논문에서의 공동저자, 국민적 영웅 과학자와의 친분과시 등) 인적 관계를 맺고, 그 대가로 황우석 교수가 자신의 연구관련 분야에서 특권적 권력을 획득해 나가는 과정이 저자들의 치열한 노력으로 상세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그 과정에서 끝나지 않는다. 왜 이런 초유의 사태가 있었으며 이것을 통해서 우리 사회는 어떤 것을 배울 것인가라는 의문에도 나름의 답을 제시한다.


우리 모두가 황우석 교수가 중심이 된 사기극에 그토록 ‘열광’했던 원인 중 주요한 것으로 저자들은 결과주의, 애국주의, 민족주의 등으로 이루어진 박정희 패러다임을 들고 있다.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세계최초’라는 수식어 앞에 황우석 교수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용납될 수 없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난자매매 사실이 수면위로 떠오르고 난자를 제공한 여성 중 연구실내 여성연구원이 포함되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뒤에도 그에 대한 비판은 금기시되었다. 솔직히 그 당시 나도 무언가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워낙 큰 국가적 이익이 걸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사소한 문제는 소위 ‘대승적 차원’에서 넘어가 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보건대 그러한 나의 심리를 형성한 데에는 저자들이 지적한 소위 박정희 패러다임이 결정적으로 작용하였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

 

비록 ‘과학기술동맹’에 의하여 황우석 사건이 전국민을 상대로 한 사건으로까지 확대되고 ‘열광’의 강도가 광신의 수준까지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근본적으로 황우석 사태는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고 우리 사회에 뿌리깊이 박혀 있는 집단적 의식구조의 투영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학기술동맹’이 상징적으로 나타내듯이 법과 절차가 아닌 인맥에 의한 밀실야합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사를 결정하는 민주주의의 후진성이 결정적 기여를 했음 또한 당연하다.

 

‘열광’에서 ‘침묵’으로...

황우석 교수의 사기극이 밝혀진 지금 이를 ‘열광’으로 만든 힘있는 이들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에는 침묵하고 있는 이들의 과거 낯뜨거운 ‘삽질’이 낱낱이 까발려져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그들의 적나라한 삽질은 씁쓸한 구경거리가 된다. 한번의 행동으로 한 사람을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황우석 교수 사건 전체와 관련하여 한 발언이나 행동을 통해 사회적 공인을 판단할 수 있는 부분적인 자료는 얻을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저자들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과학기술시대의 각성한 시민들이 많아지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황우석 교수의 가장 큰 공헌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한 것처럼 황우석 교수 사건이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더 성숙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끝으로 ‘열광’에 휩쓸리지 않고 7년간이나 치열하게 이 사건을 추적, 분석하여 ‘침묵’하는 자들에게 경종을 울린 저자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p.s.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며칠전 과학기술동맹의 주요 일원이었던 이병천 교수가 스너피의 여자친구격인 암캐 세 마리를 복제하는데 성공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그리고 황우석 교수 또한 조용히(?) 연구를 재개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걱정스러운 것은 그런 언론 보도가 황우석 사태 이전과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는 것이다. 황우석 사태는 아직도 진행형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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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29 0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