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로쟈 > 아이리스 장과 난징대학살

올해는 1937년 난징 대학살이 일어난 지 70주기가 되는 해이고 이 사건을 다룬 영화들이 제작될 거란 소식은 작년 11월에도 전한 바 있다(http://www.aladin.co.kr/blog/mylibrary/wmypaper.aspx?PCID=2040276&paperId=1007817). 오늘자 프레시안의 '할리우드 통신'은 그 영화들이 대거 개봉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기사에서는 우리에게 '아이리스 장'이라고 소개된 <역사는 힘있는 자가 쓰는가>(원제는 <난징의 강간>)의 저자가 '아이리스 창'으로 표기되고 있다('Iris Chang'이니까 영어로는 그렇게 읽히겠다). 만지면 덧나는 상처 같은 역사적 상흔이지만 우리와 무관하달 수도 없기에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 국내에서도 개봉되는 것인지...  

프레시안(07. 03. 08) 아이리스 창의 <난징대학살> 영화화

"미국 하원이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키더라도 사과하지 않겠다"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발언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과 중국은 물론이고 일본 야당 및 진보세력, 그리고 미국 정가 일각에서도 아베 총리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이 일본의 과거사 인식 문제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는데는, 올해가 난징 대학살(1937~38) 70주기를 맞는 해란 점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타임지는 최근호(12일자)에서 난징 대학살 70주기를 맞아 미국, 일본, 홍콩, 중국 등에서 관련 극영화, 다큐멘터리들이 대거 제작, 개봉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일본군에 의해 학살당한 난징 주민은 무려 26만명. 강간 피해여성만 2만명이 넘는다. 그러나 일본정부와 보수파는 난징대학살의 실상이 왜곡됐거나 과장됐다는 입장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난징대학살 관련 영화들이 속속 선보이는 것을 계기로 세계각지에서 이 사건에 대한 관심이 크게 고조될 가능성이 높다고 타임은 전망했다.

난징대학살 관련 영화 중 가장 먼저 개봉되는 영화는 빌 구텐타그, 댄 스터언 감독의 <난징>. 지난 2003년 9.11테러 관련 다큐멘터리 <쌍둥이 빌딩>으로 아카데미 장편다큐부문상을 수상했던 두 감독의 극영화 데뷔작이다. 우디 해럴슨과 마리엘 헤밍웨이가 1930년대말 난징에 거주하다가 일본군에 의한 현지 중국인 학살을 목격하게 되는 미국인들로 등장한다. 두 감독은 사건 당시의 기록필름, 생존자 및 목격자들의 증언, 극중인물들처럼 난징에 살았던 외국인들의 서신 및 일기 등을 기초로 영화를 만들었다. 이 작품은 지난 1월 미국 선댄스영화제에 처음 선보여 호평받았으며, 이번달 말 홍콩 국제영화제에도 출품될 예정이다.
  
<난징>제작 뒤에는 아메리칸온라인(AOL) 부회장 테드 레온시스의 재정적, 정신적 뒷받침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2004년 카리브해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베스트셀러 <난징대학살(원제 : 난징의 강간)> 저자인 아리리스 창이 자살했다는 사실을 우연히 신문기사를 통해 알게됐다"며 "그때까지 내가 그처럼 끔찍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었다"고 영화 <난징>제작에 뛰어들게 됐던 계기를 털어놓았다.


  
레온시스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난징대학살>은 지난 97년 미국에서 출간돼 무려 10주간이나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목록에 올랐던 저서. 중국계 미국인인 저자는 난징에서 직접 발굴한 광범위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사건의 실상을 상세하게 재구성해냈다. 이 책은 난징대학살에 대해 알지못했던 미국 독자들 사이에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아이리스 창은 당시 나이 29세로 유명 작가반열에 올랐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7년뒤인 2004년 아이리스 창은 갑작스럽게 자살로 생애를 마쳐 다시한번 독자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는 아직도 베일에 싸여있다. 하지만 주변인물들은 창이 생존시 일본 보수우파로부터 많은 협박을 받아 극심한 고통을 겪었으며, 그것이 그의 죽음에 한 원인이 됐을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미국사회에 난징학살의 진상을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던 창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도 현재 제작 중에 있다. 캐나다 감독 빌 스파힉의 <잊지 못하는 여자 : 아이리스 창 스토리>가 바로 그것. 그런가하면 창의 책도 곧 영화화된다. 제작자인 제럴드 그린은 <난징대학살>의 영화화 판권을 3800만달러에 구입, 곧 촬영에 들어갈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감독은 <툼레이더>를 만들었던 사이몬 그린.

이 밖에 올리버 스톤 감독, 홍콩 감독 스탠리 통, 중국감독 류추안 등도 난징 관련 영화를 준비중이거나 크랭크인을 앞두고 있다. 타임에 따르면, 아이리스 창의 어머니 잉잉창은 "영화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난징의 비극을 알리려는게 아이리스의 소원이었다"며 딸의 책을 기초로 한 작품 등 관련 영화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고 있는데 대해 감격을 나타냈다.
  
그런가하면 일본에서도 난징 영화가 만들어진다. 지난 1월 미시마 사토루 감독은 기자회견을 열고 빌 구텐타그 감독의 <난징>을 "중국의 조작된 자료만을 토대로 한 작품"으로 맹비난하며, 자신의 영화<난징의 진실>이 "사실있는 그대로"를 관객들에게 알리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우파인 미시마 감독은 " 30년대 말 난징에서 일본군에 의한 조직적 학살, 강간이 자행됐다는 증거가 없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한편, 구텐타그 감독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수많은 법의학적 증거,수많은 사진증거, 수많은 필름 증거, 그리고 수많은 목격자들의 증언이 존재한다. 난징의 참상을 입증하는데 이 이상 더 어떤 증거가 필요한가"라며, 역사의 진실을 거부하는 일본을 날카롭게 비판했다.(신영 기자)

07. 03. 08.

P.S. 난징대학살에 관한 다큐멘터리는 http://www.youtube.com/watch?v=YoW2WYdOsvg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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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사 4 - 386세대에서 한미FTA까지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4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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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한홍구는 끊임없이 과거사, 군대문제 등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해왔다. 대한민국사 1,2,3에 이어 나온 4권은 과거 독재 정권시절 언론, 기업인에 대하여 행해진 악랄한 탄압, 언론과 기업의 강취에서부터 노근리학살, 한미 FTA, 386세대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약간은 두서없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결국 한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서문에서 밝혔듯이 미워해야 마땅할 자들에 대한 정당한 공분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그들의 만행을 까발리는 것이다. 저자가 서문에서 분노 뒤의 상황을 걱정하면서 희망의 역사를 이야기 하고 있지만, 아직도 이 책의 방점은 앞부분에 찍혀 있지 않나 싶다.


미워해야 마땅할, 아니 엄중한 법적 처벌을 받고 사죄하며 부끄러움에 얼굴도 제대로 들고 다니지 못해야 할 자들이 오히려 사회적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고 자신들을 벌주어야 할 세력을 탄압하고 자신들의 어두운 과거를 감추어온 우리 역사의 아이러니를 저자는 바로잡고자 하는 것이다.


올해로 소위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지도 10년째가 되었다. 미워해야 마땅할 놈들이 주류를 이루었던 세력이 정권에서 물러나고 소위 민주화 세력이 정권을 잡은 지 이미 10년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미워해야 마땅할 놈들이 자신들의 죄과를 반성하고 그들을 한번 정당하게 미워해보는 과거사 청산은 아직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응당 죄를 짓고 부끄러워 해야 할 자들이 오히려 목청을 높여 역공세를 펼치고,

공과에 대한 일률적 판단은 어렵다 할지라도 수많은 탄압과 폭정에 대한 명백한 책임이 있는 독재자, 의 딸이 독재자의 후광만을 등에 업고 독재자의 그림자는 짊어지지 않은 채 대권에 도전하고 있을 정도로 미워해야 마땅할 놈들의 기득권은 아직도 강력하고 사회적으로도 그들은 충분히 미움 받고 있지 않다.


물론 미워해야 마땅할 놈들과 연계된 세력은 무조건 악이고 민주화 세력은 무조건 선이라는 도식적인 이분법은 타당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 어디까지가 미워할만한 놈인지 구분하기도 애매하고(단적인 예로 독재자의 잘못을 독재자의 딸의 잘못으로 바로 연결지을 수는 없는 것이다.) 미워해야 마땅할 놈들이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사회적으로 기여한 바가 적지 않을 것이다. 소위 민주화 세력도 잘못도 많고 그들 자체가 이미 기득권이 된 그들이 과거의 잣대로만 언제까지나 순수성과 민주성을 담보한다고 볼 수도 없다. 그리고 과거에 연연하는 것보다는 현재와 앞으로의 우리사회가 어떻게 발전해 나갈 것인가가 더욱 중요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인정하더라도 잘못한 자들이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고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큰 잘못을 하여 사회적으로 미워해야 마땅할 놈들이 오히려 떵떵거리며 사는 사회는 기본적인 규범이나 틀조차 갖추고 있지 못한 것이다. 최소한 사회적 잘못에 대해서는 벌을 주고, 벌을 줄 수 없다 하더라도 소위 정당한 사회적 공분을 받도록 해야 할 것이다. 과거가 미래보다 더 중요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과거에 대한 진지한 반성 없이는 밝은 미래가 있을 수 없다.


저자는 일부 이슈에서는 주관적이고 때로는 편향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북한에 대한 맹목적 무비판이라든지 김대중 정부에 대한 특별한 이유 없는 높은 평가(북한과의 6.15.선언 때문인 것 같은데 그 자체의 역사적 가치나 평가는 제쳐두고서라도 그것만으로 김대중 정부의 사회, 경제정책의 실패에 대한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고 본다.), 같은 운동권(?) 출신으로서의 386에 대한 편애(마지못해  386이나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도 비판은 하는데 비판의 알맹이가 없고 결국 문제의 원인을 과거 독재정권에 돌리는 듯한 느낌이다) 등이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주류사회에 대한 삐딱한 시선은 여전히 가치 있다고 본다.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많고, 저자 자신이 민주화세력으로서 언제나 도덕적, 이념적 우월성을 가진다는 듯한 태도가 조금 거슬릴 때도 있지만, 아직은 우리사회가 한홍구와 같은 삐딱함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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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경제 산책 - 정운영의 마지막 강의 Economic Discovery 시리즈 7
정운영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자본주의와 20세기의 역사, 그리고 앞으로의 전망에 대한 고 정운영 선생의 글 몇 개를 모은 것이다.


첫째 장인 20세기 경제산책에서는 제국주의에서 전후 자본주의의 황금기 및 사회주의와의 냉전을 거쳐 세계화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로 이어지는 자본주의의 흐름을 분석하고 새삼 인간의 탈을 주문할 만큼 막가는 세기말 자본주의의 탈선(p52)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세계화는 한마디로 자본의 효율성에 맞춘 경제 질서의 폭력적 개편을 가리킨다. 자본에 이익이면 사회에 이익이 된다는 논리를 바탕으로 자본의 활동에 완벽한 자유를 부여하려는 시대의 추세이다. (p49)


두 번째, 세 번째 장에서는 본격적으로 세계화에 대한 논의가 이어진다.

헤일브로너의 ‘21세기 자본주의’라는 책에 대한 독후감으로 세기말 자본주의인 세계화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는데 헤일 브로너는 각각 경제활동에 대한 차별적인 이론을 가졌던 저명한 경제학자들 - 애덤스미스, 칼 마르크스, 케인즈, 그리고 슘페터 -을 분석의 틀 삼아 자본주의의 미래를 전망한다. 이 경제의 대가들은 대체로 자본주의의 미래를 어둡게 전망했는데 문제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는 이들도 제대로 예상치 못한 변수라는 것이다.


세계화가 그 신봉자들의 주장대로 무역 장벽을 철폐하여 교역 증대의 건지와 국물을 같이 나누려는 노력이라면 별로 반대하고 싶지 않다...그러나 세계화는 강대국 이기주의를 은폐하고 변호하며, 그것을 강요하는 조류라는 점에서 분명히 ‘편파적으로’ 작동한다.(p72)


세계화의 실체가 이러할 진대 저자의 지적처럼 ‘세계화의 정체를 진지하게 파헤치려는 노력조차 없이 세계화만이 살길이라고 몽유병 환자처럼 외치는 오늘의 세태(p81)'가 정말 걱정스럽다.


세계화와 관련한 논의 중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둘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세계화와 지역화’ 였다. 세계화의 문어적 의미와는 역설적이게도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지역화가 더욱 활발해진다. 그리고 더욱 큰 문제는 이러한 지역화가 차별적 효과를 지닌다는 것이다. 즉 강대국은 세계화를 공격의 무기로 이용하고, 지역화를 방어의 완충장치로 활용한다. 반면 개발도상국은 세계화를 통해 세계경제에의 미숙한 편입이 강요되고, 강대국의 지역화 때문에 선진 시장에 접근하려는 노력이 차단된다.(p121) 자유무역협정이라는 FTA도 결국은 FTA를 맺지 않은 국가에 대하여는 차별적으로 불리하게 대하고 FTA를 맺은 국가들간의 지역화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결코 자유무역적이지 않다는 역설과도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겠다.


다른 하나는 전통적인 국가의 임무를 국제기구 등에 위임함으로써 국가 고유의 기능이 무장해제되는 ‘국가의 국제화’ 였는데(p85), 최근에 정부의 개입이 사회적으로 해악을 초래한다는 터무니없는 내용을 명시한 전경련 교과서까지 등장한 것을 보면 정운영 선생의 식견에 감탄하면서도 동시에 씁슬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세계화 시대의 국가는 자본과 시민에게 일종의 기피인물로 선전된다. 시장 자율은 선이고, 정부 개입은 악이라는 따위의 그럴듯한 소문이 자본에 의해 의도적으로 유포되기도 한다.(p125)


매년 수치적인 경제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큰일이 나는 자본주의 사회. 그 마저도 실물경제와 관계없는 자본거래가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파괴적 힘을 남용하고 있는 지금의 자본주의는 무엇이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세기말 자본주의든 무엇이든 자본주의가 이러한 것들을 교정하지 못한다면 거시적으로 볼 때 지금 몰아치고 있는 세계화의 광풍이 자본주의의 수명을 단축시킬 것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1980년대 한국사회의 정체성에 관한 글은 우리 사회의 형태를 분석하기 위한 이론적 틀로써 당시 우리 사회를 국가독점자본주의라고 전제한 뒤 논의를 진행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80년대 상황에 대한 무지와 경제학적, 경제사적 배경지식의 부족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앞으로 추가적인 공부가 필요한 부분이다. ;;


남북 경제의 장래와 미국의 관심에서는 미국의 이해관계를 무시할 수 없는 현 남북관계에 있어서 남한이 취할 수 있는 현실적 수단들을 차분하게 분석하였다. 남북한 화해와 통일은 현상태의 유지를 바라는 미국의 이해관계에 상충된다는 것을 전제한 뒤 결국은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 점진적으로 남북관계를 개선해 나갈 수밖에 없지 않겠냐는 것이 정운영 선생 말씀의 요지다. 특히 남북한 경제교류 활성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깊이 있는 내용의 글이 아닌 컬럼 형식의 글이었지만 신선한 내용도 있었고 막연하게 추상적으로 느껴졌던 남북관계에 대한 생각이 어느정도 구체화되는 느낌이었다.


한반도의 이해는 때로는 대북 공조의 이해와 다를 수 있고, 대미 공조의 이해와도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정치로 막힌 것을 경제가 뚫도록 하자. 그러나 그 경제가 정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므로 벽은 여전한 셈이다. 애초에 길이 있어서 사람이 다닌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꾸 다니다 보니 길이 생긴 것 아니겠는가? 이 지혜는 남북 경제의 장래와 미국의 관심이라는 우리의 논의에도 빌릴 만하다. 길이 안 보인다고 주저앉을 것이 아니라 자꾸 부딪치면서 길 자체를 만들어가는 것이 한민족의 고단한 운명이기 때문이다.(p254)


부끄러운 말이지만 정운영 선생이 고인이 되신 다음에야 선생을 알게 되었다. 선생을 너무 늦게 알게 된 것이 아쉽고 선생이 또 너무 빨리 고인이 되신 것이 아쉽다. 고 정운영 선생이 걱정하던 세기말 자본주의가 더욱 맹위를 떨치고 있는 것 같다. 선생이 꿈꾸던 사회에 우리 사회가 우리 시대에 조금이라도 가깝게 다가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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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사람들
김영현 지음 / 실천문학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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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그리 크지 않은 동네에서 동네 유지인 최문술이 잔인하게 살해당한다. 과도로 가슴을 찔리고 도망가던 그를 범인은 목까지 졸라 살해한다. 외부 침입의 없다는 점에서 최문술을 잘 아는 면식범, 즉 그의 가까운 가족 중에 범인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유력한 용의자가 체포되고 최문술의 어두운 가족사가 하나씩 드러난다...


흡사 추리소설 같은 구성으로 작가는 피해자의 아들인 성연이 사건을 재구성해 가면서 자기 가족의 어두운 과거와 그로 인한 죄악의 씨앗이 한 가정을 파멸로 이끄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이끌어나간다.


예비신부였던 성연은 자기 가족의 숨겨진 죄악을 알게 되고 예기치 않게 더욱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옴으로써 신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된다. 그렇다고 성연이 무신론자가 된 것은 아니다.

성연이 ‘나의 하느님...그이는 이 세상과 함께 있는 분이라는 걸 이번 일을 겪으면서 깨달았어요...그이가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사랑이야말로 때로는 지옥처럼 고통스럽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우리의 생에 그이가 준 축복이자 선물이었어요.(p295)’라고 말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수도원이 아닌 속세에서도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거나 수련이 더 필요하다고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관련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소설을 읽고서 평소 가끔 하던 생각이 또 들었다. 정말로 큰 시련이 나에게 닥쳤을 때, 예컨대 가족의 죽음이나 건강의 상실 또는 불의의 사고 같은 것을 겪었을 때 그것을 신이 주신 시련이고 그것이 결국 신의 은총이자 사랑이라고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신에 대한 믿음을 더욱 공고히 한 채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 말이다.


‘지선아 사랑해’를 보면 정말 끔찍한 화상 사고를 당한 지선양은 사고가 있기 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지만, 그 책을 읽고 나서 나는 그녀의 그런 말이 진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속적 행복과 세속적 행복의 상실로 인한 큰 깨달음...큰 깨달음은 없더라도 세속적으로 행복하게, 그러나 깨달음의 큰 방향은 벗어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좋겠지만 세속적 행복의 상실로 인한 깨달음 이후에 두 개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어떠할 지...참 어려운 문제 같다.


이 소설에서 작가가 던지는 물음 ‘나의 생은 과연 가치 있는 그 무엇일까?’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이라 할 수 있는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라네.’라는 말은 간단하지만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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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7-03-08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의 물음에 저도 망설여지네요..지선이처럼 깨달음에 행복을 느낄수 있는 자는 현명하고 지혜롭고 진정 행복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아는 자임에 분명해요.
살면서 저는 그 경지에 언제쯤 도달하려는지..
늘상 욕심때문에 또 무너지는 게 아닌가 싶어요..

외로운 발바닥 2007-03-09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로 그러한 경지에 이르기는 쉽지 않겠지요. 그래도 배꽃님처럼 욕심때문에 또 무너진다는 인식을 하고 노력하시는 것만도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
매일 한 발자국씩이라도 그 경지에 가까이 다가가시길...
 

대한민국 대통령,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한미FTA 뜯어보기 246 : 기고] 교조적 좌파가 아니라 교조적 시장주의자가 문제
  2007-02-21 오전 9:24:59

노무현 정부의 책임과 차기 정부의 성격 등을 둘러싼 최장집-조희연-손호철 교수 등의 이른바 '진보 논쟁'에 노무현 대통령 본인이 가세했다.
  
  노 대통령은 지난 17일 청와대 브리핑에 게재한 '대한민국 진보, 달라져야 합니다-진보적 가치 실현 위해선 유연성과 책임성 중요'라는 제목의 글에서 스스로를 '유연한 진보주의자'로 규정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현 정권의 주요 정책에 반대하는 진보진영을 '교조적 진보주의자'로 규정했다.
  
  이와 관련해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 비서관이 노무현 대통령이 비판한 '교조적 진보'가 문제가 아니라 한미 FTA와 사회투자 국가라는 두 가지 모순된 정책을 한꺼번에 추진하는 '교조적 시장주의'가 문제라는 지적을 담은 기고문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내는 서신을 보내왔다. 이 글은 인터넷매체 <레디앙>에 동시에 게재된다. <편집자>
  
  '한나라당 집권론'은 통렬한 반어법
  
  중도란 말이 유행이다. 누가 봐도 한 쪽 끝에 서 있는 사람들이 중도를 외친다. 마치 이념이 없는 것이, 따라서 철학도 정책기조도 없는 것이 자랑이라는 듯 실용주의를 내세운다. 심지어 이른바 진보진영 일각에서도 "모든 진보는 중도"라는 해괴한 테제(?)를 별 논리적, 역사적 근거도 없이 슬그머니 들이민다.
  
  현재의 정치지형에서 지식인들이 중도를 표방하는 건 단순 논리로는 이해가 된다. 이른바 '호텔링의 가게 세우기' 논리가 그것이다.
  
  하나의 거리에 가게를 내려는 사람이 둘 있다. 이 거리에는 모든 집들이 같은 간격으로 서 있고 두 가게의 상품은 별로 다를 바가 없어서 사람들은 가까운 가게를 이용한다. 그렇다면 어느 위치에 가게를 세우는 것이 두 가게 각각에게 가장 큰 이익을 가져다줄까? 답은 두 가게를 거리 한 가운데 나란히 세우는 것이다.
  
  정치인들도 선거에서 이와 마찬가지로 좌우로 선명한 정책을 내세우기보다는 가운데쯤 되는 정책을 내놓고 사람들을 현혹한다. 이른바 '중도통합'에 목매는 열린우리당의 행태는 이 논리 그대로 설명된다.
  
  그래서 주목되는 건 오히려 중도를 표방하지 않는 사람들의 사고다. 최장집 고려대 교수,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손호철 서강대 교수, 이병천 강원대 교수가 인터넷과 신문 지면을 오가며 흥미로운 논쟁을 벌이고 있다. 네 교수의 현실 인식에는 큰 차이가 없는데 결론은 뭔가 확연히 다른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정치에 무지할 뿐 아니라 무관심하기까지 한 나에게도 최장집 교수나 손호철 교수의 '한나라당 집권론'은 그저 통렬한 반어법으로 들린다. 실제 차이가 있다면 '반(反)한나라당 연합전선'의 현실성에 관한 인식 정도이다.
  
  굳이 콕 집어 말하자면, 정대화 상지대 교수의 미래구상에 대한 의구심이라고나 할까? 정 교수의 미래구상이 어떻게 나아갈지 정확히 알 도리는 없지만, 내가 믿기로 최장집, 손호철 이 두 교수가 원칙 있는 연대(예컨대 손 교수의 경우 '반(反)신자유주의 연대')에 반대할 리 없다.
  
  

▲ 전 청와대 국민경제 비서관인 정태인 씨는 지난해 200회가 넘는 대중강연을 통해 한미 FTA의 위험성을 전국 방방곡곡에 알렸다.ⓒ연합뉴스

  '중도'는 없다…'잡탕'만이 있을 뿐

  
  그렇다면 '연대의 원칙이 무엇이어야 하는가'가 앞으로의 핵심 주제다. 경제 측면에서 연대의 원칙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찬반 여부 △양극화 해소를 위한 재분배 정책에 대한 찬반 여부 등 2가지로 최소화해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진보진영은 한미 FTA에 반대하고 재분배 정책에 찬성해야 정상이다. 역으로 보수진영이라면 당연히 한미 FTA에 찬성하고 재분배 정책에 반대해야 정상이다. 민주노동당이 전자의 대표이고, 후자의 대표는 한나라당이다.
  
  핵분열 중인 열린우리당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천정배 의원 그룹이 전자에 가깝고 김한길-강봉균 그룹은 지금 당장 한나라당에 입당해도 욕할 사람이 없을 정도로 후자에 가깝다.
  
  이제 남은 사람들이, 말하자면, 진정한 중도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바로 거기에 현재의 열린우리당이 있다. (문제는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한미 FTA 반대 및 재분배 정책 찬성 그룹에 대해 "현실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는 것인데 이 부분은 뒤에 언급하겠다.)
  
  이 둘 사이에 중도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사이에 뭔가 있다면 그건 중도가 아니라 '잡탕'이다. 모든 사회경제 시스템의 요소와 제도들 사이에는 보완성이 있어야 하는데, '잡탕의 경제학'은 친화성 없는 제도들 간에 불협화음을 낼 수밖에 없다. 예컨대 한미 FTA를 주몽의 강철검처럼 여기는 동시에 요즘 부쩍 '사회투자 국가'를 들먹이는 참여정부의 정책이 그렇다.
  
  (나는 제도 간의 완벽한 논리적 보완성을 믿지 않는다. 때로는 그 안의 사람들이 공동체적 협력으로 가뿐하게 제도적 마찰을 넘어서기도 한다. 참여정부의 진정한 실패는 바로 이 지점에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도 뒤에 언급하겠다.)
  
  사회투자 국가에 대해 관대함?…레임덕 증거!
  
  사회투자 국가란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영국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가 보수당의 마가렛 대처에게 승리하기 위해 정치적 수사로 뻥튀기해서 그렇지, 교육과 주거, 의료 등에서 기회의 평등을 부여하는 정책, 즉 '공급 측면(supply side)의 복지 정책'은 이미 스웨덴 등 북구 국가가 실행해 왔던 것들이다.
  
  에스핑 안데르센이 이미 지적했듯이 이른바 '제3의 길'은 북구 사회민주주의 정책을 선별적으로 수용한 데 불과하다. 그뿐만 아니라 이 정책의 핵심 중 하나인 사회적 일자리 창출이나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 시절부터 이미 한국노동연구원을 중심으로 논의돼 온 것이다.
  
  나라마다 정책의 폭과 깊이에 차이가 나는 것은 그 나라의 사회경제 구조가 이같은 정부 정책에 얼마나 부합하는지, 정책 인프라가 얼마나 갖춰져 있는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공공 보육시설이 얼마나 있는지,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추진할만한 제도가 갖춰져 있는지, 심지어 계층별 소득 실태가 얼마나 파악되어 있는지, 더 근본적으로는 그 나라가 사회적 타협을 할 준비가 돼 있는지, 그 나라의 정치-이데올로기 지형이 어떠한지 등이 관건이 된다.
  
  물론 이런 정책을 시행하기 가장 좋은 곳은 이미 관련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는 북구형 국가들이며, 그렇게 하기 가장 어려운 나라는 영미형 시장주의 국가이다.
  
  아마도 지금 사회투자 국가론을 갈고 닦는 사람들은 이런 정책이 보수당 집권 12년 동안 철저히 신자유주의 경제가 된 영국에서 유행하는 정책이어서 매력을 느낄 것이다. 가장 '소극적' 정책이니, '급진적' 개혁에 두려움을 가진 사람들이 눈여겨 볼만 하다는 것이다.
  
▲ 한미 FTA 협상 때마다 한미 양국 수석대표는 악수를 하는 것으로 협상을 시작한다. 이 악수 속에 '유연한 진보'가 들어가 있을까? ⓒ연합뉴스

  하지만 아무리 논란이 많은 정책이라 하더라도 (복지국가를 둘러싼 이론적 쟁점이 모두 문제가 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토지보유세를 강화하자는 주장을 하는 사람마저 좌파로 몰리는 이 나라에서 이런 사회투자 정책이 시행될 수 있다면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정의론 차원에서 사회적 투자국가의 이론적 자원이라 할 수 있는 아마티야 센의 '능력 이론(capability theory)'에 '네트워크 이론'을 접목해 사회투자 국가론보다 더 현실적인 정책을 담은 보고서가 이미 노무현 정부에 제출된 바 있다. 이 정부에 참여한 수많은 학자들이 위원회 등을 통해 낸 보고서가 대개 그렇겠지만, 이정우 당시 정책기획위원장(현 경북대 교수)의 지휘로 작성된 '동반성장의 길'이 그렇다.
  
  그러나 이 보고서에 김병준 당시 정책실장(현 정책기획위원장), 김영주 당시 정책수석(현 국무조정실장), 정문수 당시 경제보좌관이 붙인 대통령 참조용 댓글은 똑같았다. "사상적 시비에 걸릴 수 있으니 정책 기조로 채택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철학적 깊이는 몰라도 현실 정책에선 큰 차이가 없는 사회투자 국가가 이런 사람들의 포위망을 뚫었다면 그건 확실히 발전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정권 초기 이정우 교수가 유럽 기준으로는 가장 시장주의적인 모델 중 하나인 네덜란드의 '폴더 모델(노조가 임금인상 요구를 자제하는 대신 사용자는 노조의 부분적 경영 참여 등을 보장하는 상호 협력적 노사관계)'을 언급했을 때 보수언론들이 그야말로 '난동'을 부린 것에 비하면 사회투자 국가론에 대해 이렇게 관대한 것도 흥미롭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레임덕의 증거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당장 시행될 것 같지 않은 정책에 무관심한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니 진보진영이 '비전 2030'에 그다지 흥미를 보이지 않는 것도 노무현 대통령이 그리 상심할 일은 아니다. (이 점에 대해서도 후술하겠지만, 나는 이들의 무(無)대응은 예의 비일관성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대통령의 '유연한 진보'는 존재하지 않는다
  
  큰 줄기로 돌아와서 보면, 역시 문제는 정부가 양극화를 극단으로 밀고 가는 급진적 신자유주의 정책인 한미 FTA를 추진하면서 동시에 사회투자 국가를 외치고 있다는 데 있다.
  
  한미 FTA가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치유한다고 주장한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정권 초기에는 김영주 당시 수석마저 한미 FTA로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극복책까지 두 개의 정책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 한 바 있다.
  
  불행하게도 당장 시행해야 할 양극화 극복 정책은 중장기 정책 또는 차기 정부의 정책 과제로 밀려났다. 대신 원래 중장기 정책이었던 한미 FTA가 초단기 정책의 자리를 차지했다.
  
  캐나다 서비스 노조는 미국과의 FTA를 추진하는 집단의 정치적 목표는 공공성의 강화를 영원히 불가능하게 만드는 데 있다고 갈파한 바 있다. 사회투자 국가 역시 만능의 강철검이 아니다. 사회투자 국가 정책은 전통적인 소득 재분배 정책의 강화로 상호 뒷받침해야 한다.
  
  강둑부터 터뜨리고는 범람한 물을 퍼낼 바가지를 당장 생산해야 한다는, 2030년까지는 양수기도 만들어 내야 한다고 역설하는 그런 중도, 그런 실용, 대통령의 언어로 '유연한 진보'는 존재하지 않는다. 연대의 대상은 더더구나 아니다.
  
  <대통령께 드리는 글>
  
  (이 글을 쓰는 도중에 대통령이 "대한민국 진보, 달라져야 합니다"라고 일갈했다. 경어체의 편지글 형식이므로 나도 예를 갖추어야 마땅할 터이다)
  
  '하얀 거탑'의 진실은 곧 밝혀집니다
  
  학자들을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드라마 작가에 비유하면서 글을 시작하셨으니 저도 드라마 이야기부터 하려 합니다. '하얀 거탑'이라는 주말 연속극이 있습니다.
  
  온갖 술수를 동원해 외과과장이 된 한 실력 있는 의사가 실수를 해서 한 환자가 목숨을 잃습니다. 세계외과학회 회장 부인의 수술에 온 정신이 다 팔렸기 때문이죠. 고인의 부인은 민변 소속쯤 되는 '운동권' 변호사의 도움으로 소송을 합니다. 여기서부터는 의료 드라마가 법정 드라마가 됩니다.
  
  실제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드라마에서 병원 과장의 권한은 가히 무소불위입니다. 전문의와 전공의 모두가 말을 맞춰 뻔한 사실을 왜곡하는 현실 앞에서 환자 가족과 한 양심적 의사가 법정에서 흥분합니다. 노 대통령께서도 과거에 판사를 하셨으니 잘 아실 테지만 결국 진실이 궁지에 몰리고 맙니다.
  
  저는 대통령이 언급한 '진보진영'이 등을 돌리게 된 결정적 계기는 노 대통령이 한미 FTA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많이 반복한 얘기지만, 대통령의 육성으로 다시 한 번 여러 가지 사실을 확인해 보고 싶습니다.
  
  먼저 한미 FTA을 추진하기 시작한 시점에 대해, 청와대와 정부 모두가 말을 맞춰 2003년 8월 이른바 'FTA 로드맵'을 만들 때부터 한미 FTA를 구체적으로 추진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대통령께서는 2005년 8월에 한미 FTA에 대한 첫 보고를 받았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무려 2년의 시차가 납니다.
  
  2005년 2~5월 사이 저는 FTA 정책을 업무의 일부로 하는 국민경제 비서관이었습니다. 이 일을 처음 맡기시던 2월 1일 새벽에 특별히 저에게 지시한 것은 한일 FTA의 재개 여부를 검토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한미 FTA에 대한 말씀은 한 마디도 없으셨습니다. 그 때는 비밀리에 한미 FTA를 추진 중이어서 저에게 말씀하지 않으신 건가요?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나 청와대 경제보좌관실은 제가 한미 FTA를 알 수 있는 자리에 있지 않아서 몰랐을 뿐이라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확인된 바와 같이, 통상교섭본부는 그 때 이미 'FTA를 전제로 하지 않은 실무협상'이라는 이름으로 한미 FTA 협상 개시의 전제조건을 미국 측과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그 협상 결과가 바로 '4대 선결조건'입니다.
  
  정부는 이것이 단지 통상현안이어서 FTA 추진 전에 해결하려 했을 뿐이라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상대방의 요구를 미리 들어주고 협상에 임하는 바보 같은 선수가 있다면 당연히 선수 교체 대상인데도 말입니다.
  
  그러나 진실을 영원히 땅 속에 묻어 버리는 건 불가능합니다. 한 방송사에서 대외경제위원회 문건을 공개하고 나서야 정부는 이른바 '4대 선결 요건'의 실체를 인정했습니다.
  
  무엇을 위한 선결인가요? 미국과 FTA를 추진하기 위해서 미리 해결해야 할 네 가지 과제, 즉 스크린쿼터 축소,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약값 결정 시 미 제약회사의 발언권 보장, 배기량 기준 자동차 세제의 폐지 등을 사전에 다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었나요?
  
  최근 정부는 한미 FTA에 대한 연구가 충분히 있었다면서 상당히 긴 연구목록을 제시했습니다. 이것들이 정말 정식으로 정부와 계약을 맺은 용역연구로 보고 받으셨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일일이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뉴스레터 같은 간략한 보고도 모두 포함시켰을 겁니다.
  
  제가 알기로는, 또 언론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한미 FTA의 핵심 연구원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도 2005년 11월까지 한미 FTA가 실제로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일본이나 중국과 같은 거대 경제권과 FTA를 할 때 당연히 거치는 절차인 민간연구기관 간 공동연구나 산관학 공동 연구도 생략됐습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한국개발연구원(KDI), 산업연구원(KIET)의 협동 연구는 2005년 12월에야 발주됐습니다.
  
  한미 FTA와 같은 어마어마한 정책이 2003년 하반기부터 착실히 준비됐다는데, 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세 연구기관이 FTA 개시를 목전에 두고서야 연구를 시작했을까요? 정부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세 연구기관장 모두 사표를 내게 하는 것이 정상적인 인사일 것입니다.
  
  언론에 따르면 대통령께서는 지난해 8월에 이르러서야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투자자-국가 소송제(ISD, 투자자-국가 간 분쟁해결절차) 문제를 검토하라고 지시했습니다. 3년이나 검토를 하고서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미처 몰랐다는 건가요?
  
  또한 이 TF에 참여한 민간위원이 위헌 가능성을 제시했을 뿐 아니라, 법무부와 건교부, 심지어 재경부마저도 이 조항의 삭제나 축소를 요구했다는 사실은 보고 받으셨나요?
  
  이미 여러 번 얘기한 것이라서 '졸속성 문제'는 더 이상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차라리 한미 FTA를 성급히 추진했다고 인정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드라마 '하얀 거탑'의 의사들처럼 충분한 대비를 했다고 입을 맞춰 거짓말하는 것이 과연 정부의 올바른 전략일까요?
  
  '하얀 거탑'의 진실은 아마 내주쯤이면 밝혀질 겁니다. 한미 FTA도 그리 오래 갈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정의일 테니까요.
  
  이익의 균형은 맞추셨나요?
  
  청와대와 정부는 결과도 보지 않고 아직 진행 중인 협상을 비판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합니다. 물론 3년간 협상 내막을 공개하지 않을 테니 비판을 하지 말라는 말과 같습니다만, 수백 쪽이 넘을 협상 결과를 과연 국회의원들이 충분히 이해하고 이에 대한 비준 동의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어쨌든 대통령은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않겠으니 걱정 말라고 국민들에게 여러 번 약속하셨습니다. 협상이 막바지에 이른 지금 대차대조표를 작성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인수위 회의실 정면에 걸렸던 현수막을 저는 지금도 기억합니다. "국민이 대통령입니다." 국민들이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선 정부가 목표로 했던 미국의 비관세 장벽 중 무너뜨린 것이 있습니까? 수출기업들이 가장 관심을 가진 부분은 미국의 자의적인 덤핑 판정을 조금이라도 완화시킬 수 있느냐 입니다. 바로 무역구제 분야의 문제인데, 이 분야의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보고를 받으셨습니까?
  
  제로잉(Zeroing, 수출가격이 국내가격보다 낮은 경우만 덤핑마진에 산입하고 수출가격이 국내가격보다 높은 경우는 마이너스로 계산하지 않고 제로(0)로 간주해 덤핑관세율을 높이는 것), 일몰 재심(Sunset Review, '반덤핑관세 부과는 관세 부과 개시 후 5년이 지나면 자동으로 종료된다'는 WTO 반덤핑 협정의 원칙을 어기고 미국만의 독자적인 반덤핑 재심제도를 운영해 계속 반덤핑 관세를 매기는 것), 버드 수정안 경과규정(미국이 외국업체로부터 거둔 반덤핑관세 및 상계관세 부과금을 국내 피해업체들에게 재분배하는 것) 등 미국의 몰상식한 반덤핑 조치들은 다 빼고, 그것도 모자라 미국의 법을 고치지 않아도 되는 사항만 요구했는데도 미국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데 사실입니까?
  
  섬유 부문 수출의 가장 큰 걸림돌인 얀포워드(원사기준) 원산지 기준은 바꿀 수 있다고 하던가요? 연안 해운업은 인정받으셨나요? 전문직 자격증의 상호인증은 어떻게 됐나요?
  
  반대로 우리가 얻어내야겠다고 한 것 중 이뤄진 것이 있나요? 개성공단산 제품을 한국산으로 인정해달라는 우리 측 제안을 미국이 받아 들였나요? 농업 특별 세이프가드(Safeguard, 임시 수입중단조치)는 어떻게 됐나요?
  
  미국은 주(州)정부로 구성된 연방국가인데 이번 FTA에서 주 정부의 비(非)합치 조치까지 바꿀 수 있다고 협상단이 보고했습니까? 미국 주정부 법률이 포괄적으로 유보된다면, 실제로는 개별 주정부를 상대로 무역과 투자를 하는 우리 기업은 도대체 어떤 경로로 FTA의 이익을 볼 수 있을까요?
  
  '최혜국 대우'를 미래의 FTA에만 적용하자는 미국의 요구, 가령 향후 한일 FTA에서 미국보다 일본에 더 유리한 조항이 들어간다면 자동적으로 미국에도 적용하자는 요구는 단호히 물리치셨나요?
  
  지적재산권을 사실상 3년 이상 연장하고 우리 전문가 그룹의 능력을 의심하는 재심위원회를 도입하기로 한 의약품 분야의 보고는 어떻게 받으셨는지요? 이익의 균형을 이뤘다고 하던가요?
  
  도대체 우리의 숙원 중 관철한 것은 무엇이고 미국의 요구 중 수용하지 않은 것이 뭐가 있나요? 기어코 광우병에 감염됐을 의심을 지울 수 없는 뼈 있는 쇠고기도 수입할 작정이신가요?
  
  한미 FTA를 하지 않으면 어쩔 것이냐고 대통령은 묻습니다만, 한미 FTA가 없었다면 최소한 이런 일들은 벌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도대체 왜 이런 FTA를 해야 하는 걸까요?
  
  대통령께서는 한미 FTA는 한국경제가 선진경제가 되기 위한 지름길, 외부쇼크에 의한 내부개혁, 즉 산업 구조조정이라는 답을 준비하셨을 겁니다.
  
  그런데 미국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나프타)을 맺은 후 12년이 지난 지금, 멕시코나 캐나다에서 과연 대통령이 상상하는 환상적인 그림이 현실화됐나요? 서비스 산업의 획기적인 발전이 일어났나요?
  
  한미 FTA처럼 어마어마한 정책을 추진하면서 예상 시나리오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물론 지난 1년 동안 각 연구원에서 엄청난 양의 보고서를 만들었을 텐데 국민들도 납득할 수 있게 '이러저러한 경로를 통해 산업이 재편될 것이고, 여러분은 이런 변화에 이렇게 대응하면 된다, 그리고 정부는 이런 정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알려 줘야 하는 건 아닐까요?
  
  '스스로 대통령인' 국민은 미래의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고 싶습니다. 분명 '포괄적이고 높은 수준'의 변화가 밀어닥칠 텐데 우리는 그냥 '국민을 믿는다'는 대통령 말만 다시 믿고 베개를 높여 잠만 자면 되는 건가요?
  
  사실상 협상에서 완패한 협상단은 대통령께 이렇게 보고할 겁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 했고, 미국의 관세 인하만으로도 얻을 것을 충분히 얻었다'고 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 수많은 내용을 대통령이 세세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제발 반대 쪽 전문가들의 평가에도 귀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모든 개방이 성공했다니요?
  
  할 얘기는 쌓이고 쌓여 있지만. 새해 첫날 날아온 대통령의 편지에 대해 몇 마디만 더 하고 마치려고 합니다. 대통령께서는 '민족경제론'을 잘못된 '사상과 논리 체계'로 꼽았습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민족경제론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고(故) 박현채 선생의 제자입니다.
  
  대통령께서 언급한 <민족경제론>은 1978년에 발간된 책입니다. 이 책이 발간된 지 무려 30년이 지났습니다. 어느 누구도 30년 전의 주장, 그것도 그때그때의 현실을 '온 몸으로' 분석한 평론을 현재에 비춰 평가하지는 않습니다.
  
  대통령 말씀이 맞습니다. 70년대까지의 이론이 소련 쪽의 전반적 위기론에 고유한 파국론을 짙게 깔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때의 파국론을 교조적으로 받아들여 현재의 경제를 분석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언제 진보진영이 개방을 할 때마다 "개방으로 나라가 무너질 것"이라고 했습니까? 대통령 말씀대로 사실을 제시하고 하나하나 따져 볼 문제입니다. 진보진영을 쇄국으로 몰아가는 낡은 수법에 이미 대통령도 깊이 물든 모양입니다. 제가 비서관으로 재직하던 당시 모든 개방에 반대했었나요?
  
  우리 경제가 모든 개방에서 성공했다는 주장은 또 무슨 근거에서 나온 것입니까? 성공의 정의를 어떻게 내려야 할 지 모르겠지만, 직전의 과거에 비춰 가장 전면적인 개방이었던 근세의 개방은 한일합방으로 이어졌습니다. 이건 망하지 않은 건가요? 물론 일제 강점기의 경제 성장율이 그 이전 개항기의 경제 성장율보다 높을 겁니다만, 그러면 성공한 건가요?
  
  개방의 속도로 봐서 한일합방 직전의 개방 다음으로 획기적인 개방은 1994년 김영삼 정부의 자본시장 개방입니다. 그 결과는 잘 아시다시피 외환위기였는데, 이건 나라가 망한 것이 아닌가요?
  
  결국 외환위기를 극복했으니 재경부 주장대로 '보약'이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그 와중에 단지 돈이 없다는 이유로 비참하게 죽어가고,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받은 사람들은 무슨 죄입니까?
  
  나라를 망하게 했던, 이 두 개방의 공통점은 자의든 타의든 준비도 하지 않은 채 전면적인 개방을 했다는 것입니다. 박정희 시대의 경제를 떠올리시겠지만, 이와 관련해 가장 널리 인용되는 세계은행(World Bank)의 보고서도 '동아시아의 기적'을 일군 발전국가형 정책의 특징을 "선별적 개방과 산업정책의 조합"이라고 설명합니다.
  
  한미 FTA는 적절한 산업정책도 준비하지 않은 채 역진 불가능한 전면적 개방을 하자는 겁니다. 이건 단순히 개방이 아니라, 이미 한미 FTA 협상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미국 초국적기업의 이해를 위해 우리의 법과 제도를 바꾸는 개방입니다. 왜 우리 국민과 기업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쪽으로 저작권법을 개정하고, 의약품 특허 관련 제도를 바꿉니까?
  
  FTA 반대 세력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들이 지적하는) 사실은 인정합시다."

  
  
▲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03년 5월 뉴욕 증권거래소를 방문해 그라소 회장(노 대통령 바로 왼쪽) 등 관계자들에게 대한(對韓)투자 확대를 부탁했다. ⓒ연합뉴스


  적어도 민족경제론은 세계화나 시장경제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저는 세계화가 대세이지만 이는 지역주의의 형태로 관철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글을 써 왔습니다. 대통령의 말씀 그대로 "세계시장이 하나로 통하는 방향으로 가는 시대의 대세는, 중국의 지도자들도 거역하지 못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중국의 지도자들도 미국과의 FTA를 추구하지는 않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지극히 일반적인 명제와 아주 구체적인 정책 사이에 있는 만리장성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제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테지만, 그렇다고 진보진영의 어느 누구도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맹신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개방을 거부하자"고 주장한 바가 없습니다. 제가 한일 FTA를 거부하자고 했나요? 진보진영이 대대적인 한일 FTA 반대 시위를 한 적이 있습니까? 산업구조의 유사성이나 서비스업 및 농업의 발전 격차에 비추어 볼 때 그 충격이 크지 않고, 각국의 고유한 역사 때문에 협상력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에 한일 FTA에는 반대하지 않았던 겁니다.
  
  대통령께서 한일 FTA에 관한 지시를 내렸을 때도 말씀드렸지만, 우리의 산업발전 방향을 먼저 설정하고 거기에 맞춰 FTA를 체결할 나라도 선택하고, 그 협력 수준이나 내용도 결정해야 하는 겁니다.
  
  '외부쇼크에 의한 내부개혁'이란 지극히 무책임한 발상입니다. 그저 흔들어 놓으면 똑똑한 국민이 알아서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는 이런 발상이 어떤 혼란을 가져 왔는지 동구권의 체제 전환 과정에서 이미 목도한 바 있습니다. 아직 10년도 채 지나지 않은 외환위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바로 그 때문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도 한미 FTA에 반대하는 겁니다. 경제발전에 있어 우수한 성적을 거둬 왔고, 스웨덴형의 발전을 꾀하는 것이 바람직한 한국이 도대체 왜 미국과의 FTA를 통해 훨씬 효율성이 낮은 경제체제로 전환하려고 하느냐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설마 세계은행 부총재를 지낸 사람까지 개방 반대론자나 쇄국론자로 몰지는 않으시겠지요?
  
  그런 우려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닙니다. 대통령께서는 당선자 시절 스티글리츠 교수를 만난 자리에서 그에게 해외경제자문단장을 제의했고 스티글리츠 교수도 흔쾌히 승낙했던 것을 기억하시나요? 역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티야 센 트리니티대 교수나 프랜스만 하버드대 교수, 심지어 헤지펀드 운용자로 '악명이 높은' 조지 소로스 펀드매니지먼트 회장까지 포함된 10여 명의 해외경제자문단 명단을 제시하고 스스로 교섭까지 하겠다며 적극적으로 나서던 스티글리츠 교수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아시다시피 현실에서 우리는 이 세계적인 인사들을 해외경제자문단으로 모시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전해들은 바지만, 조윤제 당시 경제보좌관 등 청와대 참모들이 월 스트리트가 스티글리츠의 성향을 문제 삼을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스스로 굴러 들어온 복을 차버렸습니다. 우리가 월스트리트에 무슨 큰 빚이라도 있나요? 설마 월 스트리트가 소로스를 기피할까요? 지금 생각해 보면 여기서부터 일은 어긋나기 시작했던 겁니다.
  
  뜬금없이 이렇게 오래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그만큼 대통령 주위의 시각이 편협하다는 걸 지적하기 위해서입니다. 새해 벽두의 편지를 보면, 대통령 역시 좁디좁은 골짜기에 이미 깊숙이 빠져 버렸습니다. 바로 여기에 진정한 문제가 있습니다. 대통령께 진정 문제가 되는 사람들은 '교조적 좌파'가 아니라 '교조적 시장주의자'입니다.
  
  '유연한 진보'를 위하여
  
  대통령 분류에 따르면 교조적 좌파에 속할 고 박현채 선생은 모름지기 경제학이란 민중의 삶을 개선시키는 데 복무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국민의 삶의 질'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진보의 기준입니다.
  
  위원회를 비롯해 참여정부가 진보적인 정책을 생산하기 위해, 보다 구체적으로는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름대로 무지 애를 쓴 사실을 왜 제가 모르겠습니까? 참여정부가 단기적인 성장 정책의 유혹을 뿌리쳤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부동산 정책으로 대표되듯, 참여정부 초기의 아이디어는 청와대와 재경부 및 건교부, 그리고 열린우리당을 거쳐 국회에 이르기까지 이리 찢기고 저리 터져서, 결국 시장에 혼란스러운 신호를 보냈던 것도 사실입니다. 대통령께서 부동산 분양원가 공개에 관해 말을 바꾼 것도 결국 이 과정에서 흔들렸기 때문이죠.
  
  잘 아실 테지만 내외의 비토 세력은 서로 연결돼 있습니다. 한 고비 넘으면 이들끼리 연락해서 다음 고비에 또 문제를 제기하고 동시에 밖에서도 사상 공세를 하는 식입니다.
  
  새롭게 시행하는 정책이나 부동산 문제처럼 급박하게 다가오지 않은 정책은 더욱 힘든 경로를 거쳐야 했습니다.
  
  예컨대 근로장려세제(EITC, 저소득 근로소득자의 생계비를 세금으로 보전해주는 제도)와 같은 정책은 하위 계층의 소득실태 파악이라는 정책 인프라부터 갖춰야 하는 문제에 부닥쳤고, 지역 내 투자 정책은 금융의 원리를 거스른다는 이유로 간단히 무시됐습니다. 둘 다 미국에서 널리 시행되는 정책인데도 그렇게 됐습니다. 남북 간 철도 및 대륙 간 철도 연결은 북한 철도의 실태를 모르고, 따라서 예산을 세울 수 없다 해서 흐지부지 됐습니다.
  
  결국 재경부 등 정부 부처가 내 놓는 성장정책이 조중동과 재벌들도 원하는 정책일 수밖에 없으니 질적, 양적으로 이른바 '진보적 정책'은 밀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양극화 해소 정책을 체계적으로 제시했던 이정우 교수의 '동반성장의 길'이 처했던 운명은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바깥의 보수 언론들만 문제가 아니라 내부에 더 '교조적인 시장론자'들이 잔뜩 포진해 있었다는 걸 인정하셔야 합니다.
  
  청와대만 보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재작년 초에 대통령께서는 한미 FTA와 양극화 해소가 앞으로 전념할 두 개의 정책기조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청와대 국정브리핑부터 되살펴 보십시오. 초기에는 양 쪽의 글이 균형 있게 올라왔지만 (물론 한 쪽에서는 미국형 시스템을 찬양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미국형 시스템을 비판하는 식으로 서로 모순적인 글이 동시에 올라왔습니다) 5월이 지나면서 양극화 쪽 기사는 사라졌습니다. 이건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지금 강조하고 계신 사회투자 국가, 즉 공급 측면의 복지국가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이미 부분 부분 정책이 세워지고 또 시행된 것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최근 서울시에서 차상위 계층의 개인구좌를 지원하기로 한 정책도 이런 정책에 속합니다. 다만 정책 인프라, 전달체계 등이 정비되어야 하니 앞으로 이 정책이 자리를 잡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그래서 더 더욱 한미 FTA는 최소한 '일단 중지'돼야 합니다. 개방은 곧 산업 구조조정인데 현재는 그에 대한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습니다.
  
  사회투자 국가란 결국 세계화 및 고령화라는 변화에 맞서서 개인과 공동체가 이 충격에 부드럽게 적응할 수 있도록 아동의 교육 기회 확대, 직업훈련 및 재교육 확대 등 스웨덴식 사회민주주의 정책을 받아들인 겁니다. 이들 정책만이라도 자리를 잡을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열심히 하면 3년 정도 걸릴 겁니다. 이렇게 사회의 적응 능력이 향상된 뒤에 다시 시도해도 결코 늦지 않습니다. 한국의 경쟁 상대 중 어느 나라가 미국과 FTA를 맺었습니까?
  
  마찬가지로 마치 맞불을 놓듯이 시작한 유럽연합(EU)과의 FTA, 중국과의 산관학 공동 FTA 연구도 최대한 천천히 진행시켜야 합니다. 민간 연구기관 간 연구를 거친 중국과의 FTA는 조금 낫지만, EU와의 FTA 역시 충분히 준비돼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동시다발적 FTA는 동시다발적 산업 구조조정을 의미합니다. 어느 나라와 경쟁해도 이길 수 있는 부문만 남게 되는데, 극단적으로 말해 도대체 반도체산업 하나 가지고 4000만 인구를 다 먹여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너무 많은 FTA를 한꺼번에 맺어서 결국 FTA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멕시코도 이렇게 무모하지는 않았습니다.
  
  앞에서 다소 과장된 비유를 했지만 한미 FTA를 하지 않으면 호미로 양극화를 막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덜컥 체결을 해 버리면 이제 가래로도 감당할 수 없게 됩니다.
  
  이뿐만 아니라 한미 FTA라는 국제협정은 의료 민영화와 건강보험 강제지정제의 폐지, 공교육의 약화, 철도 등 공기업 민영화 등 공공성을 파괴할 정책을 잔뜩 준비하고 있는 정부 내 시장 만능론자들의 입지를 대폭 확장시킬 겁니다. 이 부분도 점검해 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습니다.
  
  이미 시작을 하지 않은 것만 못하게 됐지만, 잠긴 비용이 아까워 계속 나가는 건 단지 비용을 증폭시킬 뿐이라고 경제학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진보진영이 등 돌린 것에 상심하지 마시고, 왜 그들이 등을 돌렸는지 스스로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탄핵에서 대통령을 극적으로 구출해 냈던 국민들 거의 모두, 과거의 지지자 대부분이 반대하는 그런 정책(대선 때의 대통령 지지율과 현재 한미 FTA 반대 비율은 거의 비슷합니다)을 말 그대로 일사천리로 진행시키면서 이들의 지지를 받으려고 하는 건 과욕이 아닐까요?
  
  제가 전국을 다니면서 200회가 넘게 한 강연에서 자주 받았던 단골 질문이 있습니다. 이 질문은 제가 한 번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도대체 이런 FTA를 왜 다른 사람도 아닌 노무현 대통령이 추진하느냐'는 것입니다.
  
  명색이 경제학자인 제가 모르는데 어찌 일반 국민들이 그 심오한 이유를 알겠습니까? 대한민국에 진보진영만 사는 것은 아니지만, 한미 FTA로 이익을 볼 것으로 예측되는 상위 20% 가량만 사는 것은 더더구나 아닙니다.
  
  참여정부가 실패했다면 그것은 대통령 스스로 대통령을 지지하는 국민들의 열망을 저버렸기 때문입니다. 꼭 바람직한 정책이라면 내외부의 공격이 아무리 크더라도 국민들의 힘으로 밀고 나갔어야 합니다. 예컨대 양극화 극복을 위한 증세 정책이 그렇습니다. 보유세는 더 빨리 강화할 수 있었습니다만, 최근 또 계획을 늦췄더군요.
  
  국민의 정부가 온갖 논란 속에서 타협을 하면서도 국민기초생활보장제와 의약분업의 기본 틀을 갖췄듯이, 참여정부는 '사회투자 국가' 또는 '공급 측면 복지정책'의 틀이라도 제자리에 놓으면 그만입니다.
  
  당장 FTA를 멈추고 양극화 극복 정책에 전념하는 것이 살 길입니다. 국민의 합의를 끌어내서 공동체적 협력을 바탕으로 난국을 헤쳐 나가는 것이 정치적으로도 활로입니다.
  
  대한민국이 살려면, 대한민국 대통령, 당신이 결단을 내릴 때입니다.

정태인/전 청와대 국민경제 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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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발바닥 2007-03-07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통령께 드리는 글은 예전에 충신이 머리를 찧으며 임금께 고하는 상소문을 읽는 느낌이다...상소문이 임금의 마음을 움직였으면...

정말로 궁금한 것 하나...다른 사람도 아닌, 진보를 자처하는 노무현이 왜 한미 FTA를 추친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