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자본주의 경제 산책 - 정운영의 마지막 강의 ㅣ Economic Discovery 시리즈 7
정운영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자본주의와 20세기의 역사, 그리고 앞으로의 전망에 대한 고 정운영 선생의 글 몇 개를 모은 것이다.
첫째 장인 20세기 경제산책에서는 제국주의에서 전후 자본주의의 황금기 및 사회주의와의 냉전을 거쳐 세계화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로 이어지는 자본주의의 흐름을 분석하고 새삼 인간의 탈을 주문할 만큼 막가는 세기말 자본주의의 탈선(p52)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세계화는 한마디로 자본의 효율성에 맞춘 경제 질서의 폭력적 개편을 가리킨다. 자본에 이익이면 사회에 이익이 된다는 논리를 바탕으로 자본의 활동에 완벽한 자유를 부여하려는 시대의 추세이다. (p49)
두 번째, 세 번째 장에서는 본격적으로 세계화에 대한 논의가 이어진다.
헤일브로너의 ‘21세기 자본주의’라는 책에 대한 독후감으로 세기말 자본주의인 세계화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는데 헤일 브로너는 각각 경제활동에 대한 차별적인 이론을 가졌던 저명한 경제학자들 - 애덤스미스, 칼 마르크스, 케인즈, 그리고 슘페터 -을 분석의 틀 삼아 자본주의의 미래를 전망한다. 이 경제의 대가들은 대체로 자본주의의 미래를 어둡게 전망했는데 문제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는 이들도 제대로 예상치 못한 변수라는 것이다.
세계화가 그 신봉자들의 주장대로 무역 장벽을 철폐하여 교역 증대의 건지와 국물을 같이 나누려는 노력이라면 별로 반대하고 싶지 않다...그러나 세계화는 강대국 이기주의를 은폐하고 변호하며, 그것을 강요하는 조류라는 점에서 분명히 ‘편파적으로’ 작동한다.(p72)
세계화의 실체가 이러할 진대 저자의 지적처럼 ‘세계화의 정체를 진지하게 파헤치려는 노력조차 없이 세계화만이 살길이라고 몽유병 환자처럼 외치는 오늘의 세태(p81)'가 정말 걱정스럽다.
세계화와 관련한 논의 중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둘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세계화와 지역화’ 였다. 세계화의 문어적 의미와는 역설적이게도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지역화가 더욱 활발해진다. 그리고 더욱 큰 문제는 이러한 지역화가 차별적 효과를 지닌다는 것이다. 즉 강대국은 세계화를 공격의 무기로 이용하고, 지역화를 방어의 완충장치로 활용한다. 반면 개발도상국은 세계화를 통해 세계경제에의 미숙한 편입이 강요되고, 강대국의 지역화 때문에 선진 시장에 접근하려는 노력이 차단된다.(p121) 자유무역협정이라는 FTA도 결국은 FTA를 맺지 않은 국가에 대하여는 차별적으로 불리하게 대하고 FTA를 맺은 국가들간의 지역화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결코 자유무역적이지 않다는 역설과도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겠다.
다른 하나는 전통적인 국가의 임무를 국제기구 등에 위임함으로써 국가 고유의 기능이 무장해제되는 ‘국가의 국제화’ 였는데(p85), 최근에 정부의 개입이 사회적으로 해악을 초래한다는 터무니없는 내용을 명시한 전경련 교과서까지 등장한 것을 보면 정운영 선생의 식견에 감탄하면서도 동시에 씁슬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세계화 시대의 국가는 자본과 시민에게 일종의 기피인물로 선전된다. 시장 자율은 선이고, 정부 개입은 악이라는 따위의 그럴듯한 소문이 자본에 의해 의도적으로 유포되기도 한다.(p125)
매년 수치적인 경제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큰일이 나는 자본주의 사회. 그 마저도 실물경제와 관계없는 자본거래가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파괴적 힘을 남용하고 있는 지금의 자본주의는 무엇이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세기말 자본주의든 무엇이든 자본주의가 이러한 것들을 교정하지 못한다면 거시적으로 볼 때 지금 몰아치고 있는 세계화의 광풍이 자본주의의 수명을 단축시킬 것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1980년대 한국사회의 정체성에 관한 글은 우리 사회의 형태를 분석하기 위한 이론적 틀로써 당시 우리 사회를 국가독점자본주의라고 전제한 뒤 논의를 진행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80년대 상황에 대한 무지와 경제학적, 경제사적 배경지식의 부족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앞으로 추가적인 공부가 필요한 부분이다. ;;
남북 경제의 장래와 미국의 관심에서는 미국의 이해관계를 무시할 수 없는 현 남북관계에 있어서 남한이 취할 수 있는 현실적 수단들을 차분하게 분석하였다. 남북한 화해와 통일은 현상태의 유지를 바라는 미국의 이해관계에 상충된다는 것을 전제한 뒤 결국은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 점진적으로 남북관계를 개선해 나갈 수밖에 없지 않겠냐는 것이 정운영 선생 말씀의 요지다. 특히 남북한 경제교류 활성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깊이 있는 내용의 글이 아닌 컬럼 형식의 글이었지만 신선한 내용도 있었고 막연하게 추상적으로 느껴졌던 남북관계에 대한 생각이 어느정도 구체화되는 느낌이었다.
한반도의 이해는 때로는 대북 공조의 이해와 다를 수 있고, 대미 공조의 이해와도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정치로 막힌 것을 경제가 뚫도록 하자. 그러나 그 경제가 정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므로 벽은 여전한 셈이다. 애초에 길이 있어서 사람이 다닌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꾸 다니다 보니 길이 생긴 것 아니겠는가? 이 지혜는 남북 경제의 장래와 미국의 관심이라는 우리의 논의에도 빌릴 만하다. 길이 안 보인다고 주저앉을 것이 아니라 자꾸 부딪치면서 길 자체를 만들어가는 것이 한민족의 고단한 운명이기 때문이다.(p254)
부끄러운 말이지만 정운영 선생이 고인이 되신 다음에야 선생을 알게 되었다. 선생을 너무 늦게 알게 된 것이 아쉽고 선생이 또 너무 빨리 고인이 되신 것이 아쉽다. 고 정운영 선생이 걱정하던 세기말 자본주의가 더욱 맹위를 떨치고 있는 것 같다. 선생이 꿈꾸던 사회에 우리 사회가 우리 시대에 조금이라도 가깝게 다가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