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청와대가 정부의 특별한 직책이 없는 측근인사에게 대북 접촉을 지시한 사실이 드러남으로써, 사적인 ‘비선 라인’을 대북관계에 동원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호철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은 “북한에서 안씨를 만나고 싶어했고, 보안 차원에서 다른 사람은 곤란해 안씨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한 과정을 맹비난하면서, 비공식적인 남북관계 추진에 비판적 자세를 보여 온 노무현 정부로선 신뢰성에 타격을 받는 게 불가피하다.

안희정씨가 사실상 ‘대북 특사’ 자격으로 북쪽 당국자를 만난 것이라면, 2005년 12월 국회를 통과한 남북관계발전법을 어긴 것이다. 이 법 시행령 14조 3항은 ‘통일부 장관은 대통령이 대북특사를 임명하고자 하는 때에는 임명절차 및 임무수행에 관하여 필요한 지원을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청와대와 통일부는 안씨의 대북 접촉과 관련해 이 법에 따른 어떤 절차도 밟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애초 이 법을 두고는 정부의 비밀 대북협상 통로를 봉쇄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대북특사의 임명 등을 법적으로 규율함으로써 그간 통치행위 차원에서 이뤄져 온 대북정책을 법치행정의 영역으로 전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남북 정상회담 추진 여부도 논란거리다. 이호철 국정상황실장은 당시가 북한 핵실험 직후라 남북 정상회담을 거론할 시기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씨의 대북 접촉을 처음 폭로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출신의 권오홍(47)씨는 <주간동아> 인터뷰에서 “안씨가 북한 리호남 참사를 만나 ‘특사 교환과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최근 이해찬 전 총리의 방북이 성사된 것을 보면, 청와대 쪽 해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긴 어렵다.

손원제 임석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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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29일 (목) 03:05   조선일보

일본 오사카 S은행의 경력 10년차 직원 모치다 하루미(持田晴美·32)씨. 싱글(독신)인 그녀는 월 22만엔(약 180만원)의 수입 중 15만엔(120만원) 정도만 쓰고 매달 7만엔(56만원)씩 저금한다. 1년에 두 번 받는 120만엔(960만원)의 보너스도 몽땅 저축한다. 현재 그녀의 저축액은 1000만엔(8000만원)에 이른다. 2002년부터는 해외여행도 끊었다. 그녀는 “예전엔 보통 1년에 한번 꼴로 해외여행을 했는데, 노후를 생각하면 저축이 부족한 것 같아 씀씀이를 더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의 싱글인 그래픽 디자이너 장모(여·35)씨의 생활은 사뭇 다르다. 그녀의 월급은 약 300만원으로 모치다씨보다 120만원이나 많다. 하지만 저축은 연금보험 1500만원으로 모치다씨의 5분의 1도 안된다.

장씨는 이달 초 친구와 함께 6박7일짜리 일본 여행을 다녀왔는데 여행경비로 140만원을 썼다. 도쿄에서 유명 음식점을 찾아다니며 먹는 데 30만원, 옷, 음반, 와인, 그릇 등을 사는 데 50만원 가량을 썼다.

◆엄청난 國富 격차, 씀씀이는 비슷

국내총생산(GDP) 4조7117억달러 vs 7875억달러, 1인당 GDP 3만5757달러 vs. 1만6306달러(2005년 말 기준)….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일본과 한국의 경제력 격차는 하늘과 땅 차이다.

그런데 지난해 여행수지 적자액은 일본 185억달러, 한국 129억달러로 그다지 차이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일본인은 국민 7명 중 1명만 해외여행을 즐긴 반면 우리 국민은 4명 중 1명이 국제선 항공기를 탔기 때문이다.

지난해 서울 시내 면세점의 일본인 구매액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6% 가량 감소했다. 그러나 매출액 감소분을 한국인 출국객들이 메워주었기 때문에 면세점 전체 매출액은 비슷했다. D면세점 ‘구찌’ 매장 직원 A씨는 “몇년 전만 해도 일본인과 한국인 고객 비중이 7대3 정도였는데 요즘은 5대5로 한국인 비중이 높아졌다”고 전했다.

한국인의 ‘과도한 씀씀이’는 ‘부유층’만의 문제도 아니다.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일본의 하위 10% 소득계층은 2001년 불황이 닥쳤을 때 소득 중 지출의 비율(평균 소비성향)을 85% 수준에서 억제했다. 반면 한국의 하위 10% 계층은 외환위기가 닥쳤는데도 평균 소비성향이 140%대로 치솟았다.

◆‘개미 제국’ 일본

일본은 개미(국민)들이 땀 흘려 모은 돈으로 자산 제국을 이뤘다.

1992년 경상수지 흑자 1000억달러를 돌파한 이후 매년 800억달러 이상 흑자를 내왔다. 이렇게 쌓인 국부(國富)는 해외자산(주식·채권·부동산 등) 투자로 연결됐다.

현재 일본의 대외 순자산은 1조5339억달러. 전 세계에 뿌려놓은 종잣돈은 막대한 투자수익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2005년 일본의 대외 소득수지(외국에서 급여와 배당·이자 등으로 순수하게 벌이들인 돈)는 1035억달러 흑자를 기록, 사상 최초로 상품수지(수출에서 수입을 뺀 것) 흑자(945억달러)를 넘어섰다. ‘무역을 통한 외화 획득?해외 자산·기술 투자?소득 증가’의 선순환 구조가 안착돼 안정적인 국부 증식 시스템을 갖게 된 것이다.

또 일본은 2003년부터 특허권 사용료 흑자국이 돼 작년 한해 동안에만 47억달러를 순수하게 벌어들였다.

이 정도면 느긋하게 ‘삶의 질’을 즐길 법하지만 일본 국민들은 여전히 개미처럼 아등바등 산다. 일본의 여행수지 적자는 1996년(330억달러) 이후 꾸준히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베짱이 나라’ 한국

반면 우리 국민들은 지난해 해외여행(유학 포함) 경비로만 182억달러를 썼다. 작년 한해 수입보다 수출을 더 많이 해 번 외화(292억달러)의 60%에 해당하는 돈이다. 사정이 이러니 종잣돈이 쌓일 틈이 없고 소득수지도 마이너스다. 특허권 수수료도 우리나라는 벌기는커녕 25억달러 적자를 봤다. 그런데도 지난해 한국의 연구·개발(R&D) 투자비는 235억달러로 일본(1663억달러)의 7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금융연구원 박종규 박사는 “우리 경제는 여전히 기초가 불안한 상태”라며 “1회성 소비 지출은 줄이고 기술개발, 해외투자에 자원을 더 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홍수 기자 hongsu@chosun.com]

[이경은 기자 div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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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27일 (화) 08:07   경향신문

美와 ‘FTA 줄다리기’ 너무 다른 두 나라

- 한국, 손해 나도…‘목매는 협상’ -

협상 개시 선언 후 1년여를 끌어온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종착역을 눈앞에 두고 있다. 통상장관급 협상 결과에 따라 결렬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의 그간 태도로 미뤄 결국 타결에 이를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지난 1년여 협상은 미국이 정한 협상 타결시한(4월2일)에 맞춰 협상타결을 지상 최대 목표로 내세운 정부가 철저히 미국이 정한 구도에 끌려다니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을 필두로 한 정부 협상단의 ‘나를 따르라’식 협상 추진에 국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따라갔다.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FTA 반대 목소리 속에서도 정부의 ‘브레이크 없는 질주’는 계속되고 있다.

반덤핑 규제 완화 관련 무역구제 5개항, 전문직 비자쿼터 확보, 미 연안의 승객·화물 수송을 미국적 선박에만 허용하는 제도(존스 액트) 수정 등 우리측 핵심 요구는 미 의회 소관(법개정사항)이라는 이유로 번번이 막혔다. 그러나 미국은 투자자·국가소송제, 자동차 세제개편, 케이블TV 프로그램 공급업체(PP)의 외국인 지분 제한(49%) 완화 요구 등을 통해 국내법령의 제·개정을 촉구했다.

협상 타결에 ‘목맨’ 정부는 쟁점마다 양보에 양보를 거듭하며 미국의 성의를 기대했지만 그럴수록 미국의 요구수위는 더 높아갔다.

우리측의 자동차 세제개편 약속에도 미국의 자동차 관세 철폐 계획안은 오리무중이고, 협상 의제도 아닌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검역 문제가 쇠고기 관세(40%) 철폐와 연계되는 희한한 풍경이 빚어지기에 이르렀다.

관세는 관세대로 내리고, 국제수역사무국(OIE) 5월 총회 이후 뼛조각 쇠고기도 수입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린 게 우리의 현실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미 의회가 행정부에 부여한 무역촉진권한(TPA)에 따른 협상 시한에 덜미를 잡혀 제대로 반론을 펴보지도 못한 채 종착역을 향해 치닫고 있는 형국이다.

참여연대 이태호 협동사무처장은 “정부가 협상시한을 넘기면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 양 국민들을 공포로 몰아가고 있다”며 “조건이 안 맞으면 협상을 중단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나라의 명운이 걸린 협상에 나서면서 시한을 설정한 것 자체부터가 무모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고 비판했다.

〈권재현기자〉

말레이시아, 손해 나면…‘당당한 포기’ -

지난해 6월 공식협상을 시작한 미국과 말레이시아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과정에서 주도권을 쥔 쪽은 말레이시아였다.

말레이시아는 총리, 통상장관 등이 번갈아 가며 “판을 깰 수도 있다”고 큰소리를 쳤다.

지난 1월18일 라피다 아지즈 통상장관은 “미국은 3월 말까지 협상을 끝내고자 하나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아 (그때까지) 타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미국이 자동차 및 금융시장 개방을 강하게 요구하자, 그는 “협상의 장래가 비관적”이라며 미국의 주장을 순순히 수용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미국 의회에서 말레이시아가 이란에서 추진하고 있는 160억달러 수준의 대규모 가스전 개발을 중단하지 않으면 FTA 협상을 하지 말라는 권고가 나왔을 때는 압둘라 바다위 총리가 직접 나서 반격에 나섰다.

바다위 총리는 2월2일 “미국의 (내정간섭) 압력에 굴복하지 않겠다”며 “미국은 (무역 협상에) 정치적인 문제를 들고 오지 말라”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미국은 말레이시아의 강경 자세에는 별다른 유감 표명을 하지 않고 협상을 이어갔다. 말레이시아는 지난달 5차 협상 이후에도 미국 측의 요구안에 대해 “내부 합의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답변을 미뤄 결국 미국은 지난 23일 “3월내 타결은 불가능하다”는 발표를 하기에 이르렀다.

말레이시아가 강경 자세를 견지한 것은 ‘협상 타결’에 몸이 단 쪽은 미국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1993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파나마 등 경제 규모가 작은 일부 나라와 FTA를 체결했을 뿐 덩치 큰 통상협상은 이뤄내지 못했다.

이런 상태에서 지난해 5월 다자간 통상협상인 도하개발아젠다(DDA)가 무산됐다. 미국의 소극적인 자세가 결실을 못 본 주요 원인으로 지적됐다. 미국으로서는 번듯한 FTA를 이뤄내야만 DDA 무산에 따른 국제적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반면, 말레이시아는 일본 등과의 FTA를 이미 성사시켜 느긋한 입장에서 당당하게 협상에 임할 수 있었다.

〈김용석기자 kimy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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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막바지, 여의도와 워싱턴은 사뭇 다르다. 한국 국회의 한·미 FTA 특위 회의장은 늘 비어있다시피 한다. 소신파 의원 몇몇만 고군분투할 뿐, 정치권 대부분은 오불관언이다. 고작 의원들의 관심을 끈 것은 FTA 관련 대외비 문서 유출이었다. 미국 하원은 자국 협상단에 “더 세게 나가라”고 조직적으로 밀어붙인다. 내년 11월로 다가온 대통령선거도 FTA에 비하면 뒷전이다. “미국은 의회에 FTA 협상권이 있고 정보공개도 더 활발하다”며 한국 의원들은 ‘면피’하기 바쁘다. 의지는 있는데 권한이 없는가. 의지조차 없는 건가.

- 美 의회에선 청문회 개최 ‘벌떼 공세’ -

20일(현지시간) 미국 하원 세출위원회 무역소위가 개최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청문회는 막바지 협상 국면에서 지역구 주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의원들의 노력이 유감없이 과시된 자리였다.

미 자동차 산업의 메카 미시간주 출신 샌더 레빈 위원장은 “한국은 (협상) 처음부터 미국산 제품에 대해 관세와 세금, 규제를 합한 ‘경제적 철의 장막’을 쳐왔다”면서 자동차시장의 완전개방을 촉구했다. 13선의 관록을 자랑하는 레빈 위원장이 한·미 FTA가 미국경제에 미치는 함의를 모르지는 않을 터. 하지만 국회의원이 누구의 대표이며, 무엇을 위해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미 무역대표부(USTR) 캐런 바티아 부대표는 협정이 체결되면 미국이 얻을 잠재적 이익이 170억~430억달러에 달한다고 경제적 효과를 강조했지만, 보다 강한 협상을 요구하는 의원들의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묻혔다.

벤 넬슨 상원의원(민주·네브라스카)은 최근 이태식 주미대사를 만나 “쇠고기 없으면 FTA는 없다”면서 엄포를 놓기도 했다. FTA 협정 비준권을 휘두르며 자국 산업의 이익을 엄호하기 위한 노력들이다. 일부 미 의원들은 8차까지 벌여온 협상 과정에서 서울의 미국측 협상단에 전화를 넣어 핵심 쟁점에서 “절대로 양보하면 안된다”는 압력을 넣는 등 적극 개입하고 있다.

미국 역시 내년 대선을 앞두고 힐러리 클린턴, 배럭 오바마 등 유력 대권주자들의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하지만 적어도 한·미 FTA 쟁점 산업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상·하 의원들에게 대통령 선거는 뒷전이다.

〈워싱턴|김진호특파원〉

- 한국 국회는 들러리 행위 ‘천하 태평’ -

국회 한·미 FTA 전체회의가 열린 지난 16일. 정부측의 8차협상 결과 보고가 있었지만 특위 위원 30명 중 14명이 참석했다. 의결 정족수 15명도 채우지 못한 것이다. 그나마 질의를 한 의원은 11명에 그쳤다. 지난달 26일 7차협상 보고 때는 11명만이 참석했다. 게다가 툭하면 개인적 관심사안만 질의하고 회의장을 비우기 일쑤다.

‘부실 보고’ 언쟁도 단골 쟁점이다. 7차협상 때 정부 협상전략을 담은 대외비 문건이 언론에 공개된 후 얼굴을 붉히는 횟수가 더 많아졌다. “국민을 대변하는 국회가 사안의 핵심을 ‘알 권리’보다 ‘기밀유출’ 쪽으로 본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생정치모임 최재천 의원은 “특위는 보고만 받고, 심사·의결은 통일외교통상위에서 하도록 한 게 맹점”이라며 “미 의회와 달리 국회의 전문적인 도움은 없고, 의원들의 개인기에 맡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다보니 국회 특위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다. 정부 협상과정을 감시·통제하고, 국익의 마지노선이 돼야 할 특별기구의 역할과 신뢰를 잃은 것이다. 한·미 FTA가 대선 정국에서 각 정파의 방치로 인해 ‘시한폭탄’ 성격만 짙어지고 있다.

관심은 미 행정부의 무역촉진권한(TPA) 마감시한인 4월2일 이후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은 “미 의회가 4월부터 철저한 검증에 돌입하지만, 국내에선 협정문을 그 이후에 보고한다고 한다”며 “들러리 역할에 머물고 있는 특위를 해체하고, 전문가들로 구성된 실질적 검증·자문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가이드라인도, 구체적 정보도 없는 국회는 주요 협정 내용을 미 의회에 의존할 상황이라는 자조가 일고 있다.

〈이기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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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결 임박한 한-미 FTA] 주고 또 주고…한국 보따리 ‘바닥’


[한겨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수석대표간 고위급 회의를 마치고 다음주 서울에서 최종 장관급 회의만 남겨놓은 상태지만 주요 쟁점에서 합의 내용이 미국 쪽으로 계속 쏠리고 있다. 막판 초읽기에 접어든 만큼 미국이 양보하는 것도 보여야 하는데 눈에 띄는 것은 한국의 양보 뿐이다.

양보의 불균형 갈수록 심화=정부가 공식 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미국 쪽에 안겨준 ‘전리품’인 스크린쿼터가 타결 임박 시점에 다시 ‘미끼’로 전락했다. 우리 협상단이 국산영화의 의무 상영일을 더 늘리지 않도록 못박아줄테니 미국의 요구사항 가운데 뭔가를 접어달라며, 밀고 당기기가 진행중이다.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 여부도 협정 체결 뒤 협의하기로 물러섰다. 지난해 말에는 협상력을 집중하겠다고 공언했던 반덤핑 제재의 비합산조처(덤핑피해 판정 때 더 싼 중국산 등과 분리해 조사) 등 미국의 통상보복 제도 개선을 위한 핵심 요구는 협정문 반영을 포기했다. 미국의 특허권 연장 요구도 사실상 합의해줬다. 우리 쪽의 강력한 요구사항인 전문직 비자쿼터는 에프티에이의 의제에서 빼기로 했다.

농산물이나 식품의 ‘위생검역절차’나 ‘기술장벽’ 관련 분야에서는 “협정 이행을 감독할 상설 위원회를 두자”는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앞으로 정부는 국민 식생활 안전조처나 산업정책을 펼 때 미국 정부나 업자들과 사전에 긴밀히 협의해야 한다.

자동차에서도 국내 배기량 기준 세제 개편은 물론, 자동차위원회와 표준작업반 설치 등 미쪽 요구를 대폭 들어줬다. 섬유 협상에서도 우리 업체의 의무적이고 정기적인 경영 정보 제출과 미 세관당국의 한국 업체 현장조사 보장 등 미국 요구를 원칙적으로 수용했다.

하지만 미국은 한국이 협상 막바지에 집중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자동차 관세 철폐에 대해 아직까지 묵묵부답이다. 또 이번 고위급 회의에서 미국이 내놓은 섬유의 수정 양허안(개방안) 또한 “진전시켜야 될 여지가 굉장히 많다”고, 협상 대표였던 이재훈 산업자원부 2차관은 밝혔다.

허울만 따낸 한국=한국이 고위급 회의에서 얻은 것도 더러 있다. 하지만 ‘종이 호랑이’가 많다. 협정문에 명시는 되는데 상당수가 의무 규정이 아니어서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무역구제협력위원회’ 설립 합의이다. 비합산 조처 등 한국의 무역구제 관련 핵심 요구를 미국 쪽이 “법 개정 사항”이라는 이유로 버텨 협정문 반영은 포기하고 얻은 차선책이다. 비합산조처 도입 등을 협정 체결 뒤 이 위원회에서 다시 다루자고 한국이 요구하면 미국은 협의해야 한다. 그러나 수용할 필요는 없다.

미국의 다자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발동 때 한국산 상품은 제외해달라는 우리 요구도 ‘제외해야 한다’가 아니라 ‘제외할 수 있다’로 합의됐다. 부동산·조세정책은 투자자-국가 소송제도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하는 문구를 어쨌든 협정문에 반영되는 쪽으로 의견이 좁혀지고 있다. 그러나 협상단 관계자는 “미국이 이를 무시해도 되는 임의조항은 아니지만 100% 의무조항이라고 말하긴 어렵다”고 애매하게 설명했다.

워싱턴/송창석 기자 number3@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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