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협상 ‘두 얼굴의 美’…한국엔 무자비한 개방 요구
[경향신문 2007-03-29 08:42]    

미국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농업 분야 협상에서 우리나라에 모든 농산물의 예외 없는 관세 철폐와 미국산 쇠고기의 전면 재수입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들은 다른 나라와의 FTA 협상에서 자국의 농산물 시장에 피해가 우려되는 품목은 철저하게 보호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다른 나라와의 FTA 협상에서는 민감한 자국 농업을 지키기 위해 보호막을 친 미국이 우리나라의 민감품목인 쌀과 쇠고기, 오렌지 등에 대해 완전 시장 개방을 요구하는 ‘이중적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미국은 우리 측에 시장 개방에 예외를 인정하지 않겠다며 압박하고 있지만 멕시코와의 FTA 체결 때는 관세 철폐 예외를 인정하기도 했다.

28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과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미국은 세계 농산물 수출 1위 국가이긴 하지만 다른 나라와의 FTA 체결시 자국의 농산물 시장에 피해가 우려되는 품목은 개방에서 예외로 취급해 온 것으로 분석됐다. 호주처럼 농업 경쟁력을 갖춘 나라와의 FTA에서는 설탕 등과 같은 민감품목을 예외로 남겨둔 채 협정 체결을 이끌어냈고, 농업 경쟁력이 취약한 중미 국가들과의 FTA에서는 모든 품목의 개방을 요구하면서도 미국의 민감품목은 최소한 양보하는 데 그쳤다.

미국은 호주와의 FTA 협상에서 자국의 최대 민감품목인 설탕과 설탕 제품을 양허(개방) 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전체 대상 품목의 19%인 342개 품목을 관세 철폐 예외 품목으로 인정받았다. 또 쇠고기는 18년차까지 관세할당제도(TRQ)를 유지하고, 19년차부터 철폐하는 쪽으로 FTA 협상을 타결했다. 호주로부터 수입되는 양파·마늘 등 33개 품목에 대해서는 수입가격이 낮을 경우 추가로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농업 긴급구제조치를 적용하기도 했다.

농촌경제연구원 최세균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은 그동안 FTA 상대국에 대해 시장 개방을 강하게 요구하는 전략을 취했고, 특히 농업 분야에서 불균형한 상태로 협상을 타결한 사례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또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시 멕시코에 대해 수입금지 품목을 포함해 모두 81개 품목(전체 대상 품목의 7.8%)에 대한 관세 철폐 예외를 인정하는 이중성을 보였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국제관계학)는 “미국이 우리 측에 요구하는 예외 없는 농산물 시장 개방 요구는 과거 다른 나라와의 협상에서 뚜렷한 원칙 없이 상황에 따라 변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이교수는 “FTA 체결 자체에 목을 매는 우리 측의 협상 태도로 볼 때 ‘쌀만 지키자’는 쪽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며 “이럴 경우 쌀을 제외한 다른 농산물 분야에서 농민들의 막대한 피해가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미 FTA 체결로 관세가 즉시 철폐되면 쌀을 제외한 주요 농산물 25개 품목에서만 매년 평균 1조8600억원가량의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예외 없는 관세 철폐 원칙을 쉽사리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미국이 향후 다른 나라와의 FTA 협상을 대비한 명분 축적용으로 삼고 있는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예외 없는 농산물 시장 개방에 대한 미국 의회의 압력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어서 미국 FTA 협상단의 농산물 관세 철폐 요구는 지속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오관철기자 @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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