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교실
야마와키 유키코 지음, 김현희 옮김, 엄효용 사진 / 웅진주니어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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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학교에서의 집단 따돌림 문제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일본의 상황이 담겨있지만 우리나라 학교의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관심을 갖고 읽었다. 사실 교사보다는 자녀를 기르는 부모를 위해 쓰여진 책이지만, 교사들도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1장에서는 집단 따돌림을 극복한 '유지'라는 소년의 사례를, 2장에서는 학교에서 은밀하게 벌어지고 있는 집단 따돌림의 다양한 사례를 제시한다. 저자는 서문에 집단 따돌림 극복 사례를 맨 앞 장에 실은 이유에 대하여 '아무리 최악의 상황에 놓이더라도, 반드시 그 안에 희망도 함께 존재한다'(p.31)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라고 밝힌다. 부모의 꾸준한 노력, 그리고 학교의 도움이 있다면 집단 따돌림이 최악의 결과로 끝을 맺는 것은 피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리고 뒤이는 3장부터 반 전체가 집단 따돌림의 가해자가 되는 원인을 밝히고 따돌림을 해결하기 위한 실천 규칙과 따돌림이 의심되는 행동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우선 저자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들에게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집단 따돌림의 처음 시작은 그야말로 "그냥"이며 따돌림이 진행됨에 따라 이유가 만들어진다. 즉, 인과관계가 역전되어 있으므로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에게 행동이나 성격을 고칠 것을 권유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교 쪽의 책임을 추궁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권유한다. 집단 따돌림은 부모나 교사가 전혀 알 수 없게 은밀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교사가 집단 따돌림 사실을 몰랐다고 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학교와의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기만 할 뿐,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가해 학생에게 책임을 묻는 것 역시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조언한다. 가해 학생에게 책임을 물으면 그 아이들은 변명으로 일관하거나, 잠깐 반성하는 척 하는 걸로 용서받을 수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 가해 학생 부모들 역시 문제의 재발을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자기 자식을 감싸는 데에만 급급하게 만들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집단 따돌림을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우선 따돌림 사실을 알게 되면 등교를 중지시키라고 권유한다. 그리고 학교에 따돌림 사실을 알릴 때에는 반드시 피해 학생의 동의를 얻어야 하고, 만약 아이가 동의하지 않으면 동의할 때까지 학교에 알리지 말라고 조언한다. 또, 학교에 알릴 때에는 담임교사 뿐 아니라 학교의 관리자까지 함께 한 자리에서 따돌림 사실을 알리고, 따돌림이 일어난 학급의 구성원과 학부모들, 그리고 학교 전체에게도 따돌림 사실을 알리는 게 좋다고 한다. 책임을 추궁하고, 가해 학생이 저지른 잘못의 경중을 따져 처벌하는 것이 아닌 "사실 고지"를 우선시하는 것이다. 그 후에 학부모들이 자신의 자녀들에게 "따돌림을 없애기 위해 학교와 학부모가 함께 노력할 것이다."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하면 그것만으로도 집단 따돌림이 해결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사실 읽으면서 "이거 너무 미온적인 방법 아니야?"라는 불만이 들었다. 학교에서 여러 아이들을 대하다 보면 상담이나 회초리 몇 대로 교정할 수 없는 아이들을 종종 만나기 마련이다. 자신이 어려서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이를 이용하는 아이들 역시 점차 많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그런 아이들을 볼 때면 스스로 깨우치게 해 마음을 움직이는 것보다 강력한 법 또는 처벌을 통해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이라도 교정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실 고지"와 "부모의 관심"이 문제 해결의 핵심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사실 지나치게 순진하고 이상적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 아이들이 공공의 적을 만들어 집단적으로 괴롭히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 수밖에 없도록 만든 어른들의 책임도 크다. 부모와 교사는 말로는 인성이 중요하다고 얘기하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아이들을 가르쳐 왔는지... 실은 성적이 인성도 결정한다고 믿고 그렇게 아이들을 세뇌시켜 오지 않았는지...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아이는 부모의 양육 방식과 인격, 교육 환경을 비롯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길러진다. 학교가 무너지고 있다면, 아이들의 심성이 어긋나고 있다면, 그것은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인 것이다. 집단 따돌림의 문제 역시 다르지 않다. 나쁜 교실을 먼저 고칠 것이 아니라 나쁜 사회를 먼저 고쳐야 한다는 것을 정말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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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za 2009-02-12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현직에 계신 선생님이시니~ 정말 우리나라의 교육계의 큰 희망이시리라 믿어요~ 저도 올해는 더욱 열심히 해서 교육다운 교육을 할 수 있는 교사로 발돋움 해야겠어요^^ 감사합니다

^^ 2009-12-17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도 사범대생이며 곧 교사가 됩니다.^^

제가 학교다닐때 지켜본 결과 문제학생들은 회초리나 벌 효과는 딱 일주일이었습니다 .
대체로 문제 저지르는 학생들은 가정환경에 문제가 많았죠
폭력적인 가정이 대다수 였습니다 그런가정에서 자란 학생들이 자기보다 약한 학생을 희생양삼아 자신의 분노를 투사하여 괴롭히는것이 왕따의 원인 이라 봅니다.
문제는 당하는 쪽은 억울하게 당하는데 분위기가 피해학생도 문제가 있는쪽으로 보는 것이죠
오히려 피해학생보다 가해학생에 대한 상담이나 심리치료가 왕따 해결의 방법일것 같습니다.
문제학생들도 자신에게 관심가져주는 교사에게는 마음을여는것 같더군요 문제저지를 때는
체벌을 하면서 나중에 따뜻한 편지로 마음의 문을 열게하는게하는 방법이 해결방법의 하나일것 같습니다

logos678 2009-12-17 03:42   좋아요 0 | URL
맞는 말씀입니다. 좋은 교사가 되어서 지금 생각하고 계획한 것들을 꼭 실천하시길 바래요.
 
농부와 산과의사
미셀 오당 지음, 김태언 옮김 / 녹색평론사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출산이 채 두 달도 남지 않았다. 임신 6개월 때 조기진통으로 입원할 때는 열 달 꽉 채워 예정일에 딱 맞춰 나오길 두 손 모아 바랬는데, 이젠 제법 맘의 여유를 찾았는지 예정일보다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빨리 나오라고 뱃 속 아기한테 말을 걸곤 한다.

태교보다 출산 방법에 더 관심이 많았던 터라 이 책 저 책 읽으면서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 중이다. 내가 다니는 산부인과는 "아기에게 친근한 병원"으로 뽑히고, 모유수유를 적극 권장하는 병원임에도 불구하고, 분만 환경은 그다지 인간적이지 못한 듯 하다. 링겔을 꽂은 채 분만 대기실의 좁은 침대에서 진통을 하고, 거의 예외없이 분만 촉진제를 투여받고, 대부분 무통 주사를 맞으며, 아기 머리가 보이기 시작하면 그 때에서야 분만실로 옮겨 회음부를 절개한 뒤에 아기를 낳는 일련의 과정이 거의 교과서처럼 굳어져 있는 것이다. 그나마 예전과 달라진 것은 분만 대기실에 남편이 들락거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과, 분만실에도 남편이 들어가 아기의 탯줄을 자를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정도이다.(물론 가족분만을 신청해야 가능한 일이긴 하다.) 다행인 것은 이런저런 이유로 제왕절개를 권유하는 병원은 아니라는 것...

<농부와 산과의사>는 이러한 출산 풍속을 농사와 번갈아 이야기하며 비판하고 있다. 저자는 농사의 산업화가 광우병과 같은 재앙을 가져왔듯이, 출산의 산업화는 신체적 질병과 자살률 증가, 각종 범죄율의 증가와 같은 재앙을 가져오고 있다고 경고한다. "출산시에 기술적 개입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개인은 보다 공격적인 성향의 인간으로 자라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고, 그러한 개인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는 문화는 좀더 폭력적으로 될 잠재적인 경향을 갖고 있다."(p.208)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분만시에 촉진제나 마취제를 사용하는 비중이 높은 국가일수록 자살율과 범죄율이 높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 문명의 미래는 저명한 정치 지도자들보다 미래의 조산원들에게 더 달려있다."(p.136)고까지 말한다. 임산부를 환자로 보는 산부인과 의사가 아니라, 분만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서 충실한 조력자의 역할만을 하는 능숙한 조산원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옮긴이의 말처럼 농사와 출산은 인류가 생존하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중요한 일이다. 농사에서 유기농법이 서서히 그 힘을 얻어가고 있는 것처럼, 출산에서도 자연분만(병원에서 얘기하는 그런 자연분만 말고 진~짜 자연분만)이 점점 확대되어야 미래의 희망을 찾을 수 있을 터이다. 그런 의미에서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글귀는 꼭 임산부가 아니어도, 결혼 생각이 없는 사람이라도 새겨보아야 할 듯 하다.

"개미를 보면 밟아 죽이는 아이가 있는 반면 개미가 쉽게 움직이도록 길을 만들어주는 아이도 있다. 말할 필요도 없지만, 자신의 내면이 평화로운 사람은 남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의 삶은 경쟁, 폭력, 공격성으로 수습 불가능할 정도록 짓이겨져 있다. 이러한 상황을 넘어서기 위해서 아마도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의 하나는 세상에 갓 태어나는 아기들을 어떤 방식으로 맞이할 것인가를 다시 생각해보는 일일 것이다. 폭력 없는 세상은 내면적으로 자유롭고 평화로운 인간만이 만들어낼 수 있고, 인간의 심성은 근본적으로 태어날 때의 분위기에 깊이 좌우된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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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특별한 소방관] 서평단 알림
나의 특별한 소방관 - 희망 가계부 프로젝트
제윤경 지음 / 이콘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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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을 하고 출산을 앞두게 되니 마냥 좋기만 하던 초기와는 달리 아이 교육과 우리 부부의 노후에 대해 걱정을 하게 된다. 더구나 남편 마흔, 나 서른 다섯이라는 많은 나이에 첫 아이를 낳게 되니 퇴직 이후까지 아이 교육자금이며 결혼자금을 마련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고민에 부딪치게 되었다. 남들은 둘 다 정년이 보장되는 안정적인 직장이니 무슨 걱정이냐고 하지만, 남편 퇴직 이후에도 10여 년 간 목돈이 들어갈 일이 생긴다는 것 자체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재작년부터 작년까지 불어닥친 펀드 열풍 속에서 누구는 얼마 벌었다더라... 하는 소리를 듣게 되면 맥이 빠질 수밖에 없다. 대출받아 산 집 값이 두세 배 올랐다는 얘기를 들으면 살짝 질투심이 고개를 들기도 한다. 나도 남들처럼 재테크에 열을 올려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러다가 나만 뒤쳐지는 것 아닌가... 싶은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바야흐로 저축의 시대는 가고 재테크의 시대가 왔으니 그 시류에 몸을 맡겨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주식이나 부동산 위주의 재테크를 비판한다. 아파트 두 채와 오피스텔 한 채를 보유하고, 겉으로 보기에는 재테크에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주인공 가정의 모습을 통해 재테크의 허상을 드러내 보이려 한다. 실제 현금화하기 어려운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것 만으로 상류층으로 편입되었다고 착각하여 소비를 늘리고 쓸모없는 사교육비를 늘려 가정 경제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는 것이다.

저자는 부동산 위주의 재테크보다는 알뜰한 가계부를 통해 새는 돈을 막고, 차분하게 노후를 준비할 것을 권유한다. 자신의 재정 상태를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검토하고, 자녀 교육자금이나 노후에 필요한 자금을 면밀하게 검토하여 젊었을 때부터 준비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단, 이 때에도 노후에 몇 억이 필요하다더라.. 라는 보도에 현혹되기보다는 퇴직 이후에도 꾸준히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 나머지 필요분을 노후자금으로 충당하는 절충안을 제시한다.

사실 퇴직 이후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두 번째 직업으로 택하여 꾸준히 경제활동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저자는 미리 준비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결코 아니라며 용기를 준다. 허황된 재테크가 아닌, 일반적인 급여 소득자의 소득 수준에 맞춰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에 읽다 보면 신뢰가 생긴다. 재테크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는 서민과 중산층에게 돈의 노예가 되지 않으면서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 책을 통해 우리 부부의 노후설계와 곧 태어날 아기의 미래에 대한 대비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부자가 되는 것만을 강조하는 여느 재테크 책과는 달리 이 책은 '선한 부자'가 되는 방법을 제시하는 예쁜 책이다. 요즘같은 불황기에 딱 어울리는 책이 아닌가 싶다.

< 서평단 선정 도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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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 리본의 시절
권여선 지음 / 창비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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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권여선의 책이다. 작가에 대한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책을 집어들었다.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처음엔 '너무 오랜만에 읽는 단편소설이어서 적응이 되지 않았나...' 했다. 그러나 한 편, 또 한 편... 읽어보아도 쉬이 책장을 넘기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에잇, 재미없어!' 라며 그만 읽을 수도 없었다. 낯설고, 그래서 꺼려지는 이야기이지만 그렇다고 재미없다고 단정지을 수도 없는 묘한 매력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들었다.

마지막 책장을 덮고나서도 묘한 매력과 익숙해지지 않는 낯설음..이라는 상대적인 두 감정이 팽팽하게 유지된다. 왜일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기괴하고 내 주변엔 없는 비상식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그야말로 이 소설집 속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정 주기 힘든 밉상들이다. 알레르기로 진물이 줄줄 흐르는 얼굴에 심각한 피해의식과 더불어 상대에 대한 병적인 집착을 보이고('가을이 오면'의 주인공), 심각한 거식증과 대식증으로 자기자신을 학대하며('반죽의 형상'의 주인공), 주변 분위기와 상관없이 주절주절 제 하고픈 얘기만 늘어놓는 진상을 떨기도('문상'의 등장인물)  한다.

그 뿐인가? 소설의 결말들은 어찌 그리 볼일 본 후 밑도 닦지 못하고 급히 나온 뒤의 느낌처럼 찝찝하고 불쾌한지... 뭔가 새로운 인생을 계획해볼까 하는 찰나에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해 산송장이 되고('약콩이 끓는 동안') 느닷없이 사라진 한 사람 때문에 평화롭던 공동체가 서서히 무너지고('솔숲 사이로') 남편의 후배와 밀회를 즐기던 여자가 저녁 산책길에 느닷없이 목이 졸려 납치를 당하는('위험한 산책') 결말은 몇 번을 읽어도 적응하기 힘들다.

그러나 그 밉상 인물들이 구질구질, 찝찝, 불쾌하게 살다가 기괴하게 끝맺는 이야기라도 쉽게 손에서 내려놓을 수 없는 묘한 매력을 풍기는 것은 또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건 상식적이고 비교적 평온한 삶을 살고있다고 자부하는 대다수 사람들의 내부에도 설명할 수 없는 악취와 사악함, 비루함 등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우리들 내부에 존재하는 그늘진 면을 도드라지게 표현하고 있다. 거북하고 외면하고 싶지만 쉽사리 책을 내려놓지 못하는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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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스무 살, 아니 만 열아홉 살 사계절 1318 문고 38
박상률 지음 / 사계절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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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교는 스무 살, 아니 만 열 아홉살 된 청년이다. 그렇지 않아도 어렵던 살림이 아버지의 사망과 함께 더 어려워져 고등학교도 낮에는 일하고 밤에 다니는 야간 고등학교를 나왔다. 공부에 흥미가 있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열심히 배워야 한다는 신념만은 투철해 야간 대학에 다니고 있는 건실한 청년이다. 사회 문제에 큰 관심도 없고, 관심이 있다 해도 팍팍한 살림살이 때문에 관심을 실천할 여력도 없는 형편이다.

그런 영교가 출근길에 총에 맞아 죽었다. 1980년 5월, 광주의 금남로 입구에서 복부 관통상을 입은 채였다. 영교의 어머니 월산댁은 오열 속에 아들의 장례식을 치렀지만, 그 후 넋이 나가 아들의 죽음을 잊어버렸다. 아들이 다니던 직장으로, 학교로 아들을 만나러 찾아다니는 월산댁의 찢어지는 마음이 책을 읽는 사람에게도 구구절절 전해진다.

그러나... 영교를 '너'라고 부르는 작가의 이야기는 책 읽는 재미를 느낄 틈도 없이 시시때때로, 느닷없이 튀어나와 감동을 방해한다. 편지도 아니고, 독백도 아니고, 영교에 대한 추도사도 아닌 듯한 이 뜬금없는 이야기를 굳이 넣은 작가의 의도가 읽는 내내 의심스러웠다. 영교가 실은 광주 민주화 항쟁과 아무 관련없는 가난한 고학생이었다는 것을 매 장마다 강조하는 게 읽는 이에게 무슨 도움이 되었을까? 차라리 그 부분을 완전히 삭제하고 영교의 어머니가 주가 되는 나머지 이야기만으로 소설을 이끌어나가는 것이 오히려 영교의 죽음과 그 죽음에 얽힌 우리 사회의 비극을 알리기에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얇고 읽기 쉽다고 해서 청소년 책이 될 수는 없다. 어른을 위한 책보다 오히려 더 정교하고 잘 짜여진 이야기 구조, 재미를 두루 갖춰야 감수성 풍부한 청소년을 독자로 이끌 수 있을 터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정교하지도 재미있지도 않다. 물론 광주 이야기로 청소년에게 말을 걸고자 한 의도는 높이 살 만 하지만, 그 좋은 의도가 나머지 부분을 모두 감싸기엔 어설프고 부족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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