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와 산과의사
미셀 오당 지음, 김태언 옮김 / 녹색평론사 / 2005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출산이 채 두 달도 남지 않았다. 임신 6개월 때 조기진통으로 입원할 때는 열 달 꽉 채워 예정일에 딱 맞춰 나오길 두 손 모아 바랬는데, 이젠 제법 맘의 여유를 찾았는지 예정일보다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빨리 나오라고 뱃 속 아기한테 말을 걸곤 한다.

태교보다 출산 방법에 더 관심이 많았던 터라 이 책 저 책 읽으면서 관련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 중이다. 내가 다니는 산부인과는 "아기에게 친근한 병원"으로 뽑히고, 모유수유를 적극 권장하는 병원임에도 불구하고, 분만 환경은 그다지 인간적이지 못한 듯 하다. 링겔을 꽂은 채 분만 대기실의 좁은 침대에서 진통을 하고, 거의 예외없이 분만 촉진제를 투여받고, 대부분 무통 주사를 맞으며, 아기 머리가 보이기 시작하면 그 때에서야 분만실로 옮겨 회음부를 절개한 뒤에 아기를 낳는 일련의 과정이 거의 교과서처럼 굳어져 있는 것이다. 그나마 예전과 달라진 것은 분만 대기실에 남편이 들락거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과, 분만실에도 남편이 들어가 아기의 탯줄을 자를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정도이다.(물론 가족분만을 신청해야 가능한 일이긴 하다.) 다행인 것은 이런저런 이유로 제왕절개를 권유하는 병원은 아니라는 것...

<농부와 산과의사>는 이러한 출산 풍속을 농사와 번갈아 이야기하며 비판하고 있다. 저자는 농사의 산업화가 광우병과 같은 재앙을 가져왔듯이, 출산의 산업화는 신체적 질병과 자살률 증가, 각종 범죄율의 증가와 같은 재앙을 가져오고 있다고 경고한다. "출산시에 기술적 개입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개인은 보다 공격적인 성향의 인간으로 자라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고, 그러한 개인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는 문화는 좀더 폭력적으로 될 잠재적인 경향을 갖고 있다."(p.208)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분만시에 촉진제나 마취제를 사용하는 비중이 높은 국가일수록 자살율과 범죄율이 높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 문명의 미래는 저명한 정치 지도자들보다 미래의 조산원들에게 더 달려있다."(p.136)고까지 말한다. 임산부를 환자로 보는 산부인과 의사가 아니라, 분만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서 충실한 조력자의 역할만을 하는 능숙한 조산원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옮긴이의 말처럼 농사와 출산은 인류가 생존하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중요한 일이다. 농사에서 유기농법이 서서히 그 힘을 얻어가고 있는 것처럼, 출산에서도 자연분만(병원에서 얘기하는 그런 자연분만 말고 진~짜 자연분만)이 점점 확대되어야 미래의 희망을 찾을 수 있을 터이다. 그런 의미에서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글귀는 꼭 임산부가 아니어도, 결혼 생각이 없는 사람이라도 새겨보아야 할 듯 하다.

"개미를 보면 밟아 죽이는 아이가 있는 반면 개미가 쉽게 움직이도록 길을 만들어주는 아이도 있다. 말할 필요도 없지만, 자신의 내면이 평화로운 사람은 남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의 삶은 경쟁, 폭력, 공격성으로 수습 불가능할 정도록 짓이겨져 있다. 이러한 상황을 넘어서기 위해서 아마도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의 하나는 세상에 갓 태어나는 아기들을 어떤 방식으로 맞이할 것인가를 다시 생각해보는 일일 것이다. 폭력 없는 세상은 내면적으로 자유롭고 평화로운 인간만이 만들어낼 수 있고, 인간의 심성은 근본적으로 태어날 때의 분위기에 깊이 좌우된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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