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 - 상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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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시오노 나나미를 좋아한다. 광팬이라고까지 하기에는 멋적지만 시오노 나나미 이름이 보이면 일단 앞뒤 보지 않고 주문을 누를 만큼 그녀의 글은 내가 항상 목말라 하는 글이다. 그녀가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에 빠져들고, 그녀가 풀어내는 화려한 지식의 편린들이 즐거운 까닭이다.

 

그리고보니 내가 시오노 나나미를 처음 읽기 시작한건 고등학생 시절이었다. 학교 도서관이 깨끗하게 단장하고 새로 문을 열어 찾아가 보았는데, 사람들이 별로 빌려가지 않았지만 꽤 재미있어 보이는 책이 있길래 골라들었는데, 그 책이 하필 <바다의 도시 이야기>였다. 세상에 하필 그 책이라니. 정말 재미있는 책이어서 꽤 투터운 분량이었음에도 야자 시간을 쪼개가며 책을 읽었다. 찾아보니 그 작가의 책은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 적어도 그때는 그랬다 - 도서관에 있었고, 한권씩 섭렵해가는 즐거움에 홀딱 빠져있었다. 언뜻 돌아보니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난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그 순간까지 시오노 나나미는 르네상스를 전공하는 사람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대학에 들어와서 더 찾아보니 1년에 한권씩 써내겠다고 공언을 하면서 써내려가는 책이 있었는데 그게 참 묘하게도 로마사였다. 일단 출간된 부분까지 찾아서 읽었는데 이게 참 감질맛 나게 한권씩 나오는 바람에 해마다 책이 출간되는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갈 즈음에는 출판사, 인터넷 서점과 학교 도서관 사이트에 문지방(?)이 닳도록 자주도 들락거렸다. 그렇게 잃어나가면서 알았다. <로마인 이야기>를 읽어나가면서 난 생각했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사를 쓰기 위해 르네상스 이야기부터 공부를 시작했다고. 그녀가 그렇게 길고 긴 15권의 이야기를 끝내고 - 난 솔직히 그녀의 글을 다시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 그녀가 말한다. 웃기지 말고 잘 들으라고. 난 항상 로마와 르네상스를 머리속에 같이 넣고 글을 쓴다고. 누가 먼저이고 중요한지를 구분하는건 의미가 없다고.

 

<로마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는 제목이 요약하듯 로마 멸망 이후 1000년의 암흑기라는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를 지나 옹기종기 모여있는 지중해를 벗어나 대항해 시대라는 권력의 중심이 이동하는 사건까지 1500년에 이르는 시간을 단 2권으로 압축했다. 엄청나게 긴 이야기를 압축하다보니 다소 설거운 부분도 있게 마련이지만 결국 핵심은 '기독교와 아랍간에 지중해 패권을 놓고 벌이는 스펙타클 초장기 이야기 요약집'이다. 로마 멸망 이후 무섭게 부흥한 아랍권에 이베리아 반도가 지배된 이후, 지중해 상에서는 끊임없이 아랍의 세력이 퍼져나가면서 기독교의 위기가 찾아온다.

 

이 책의 시작은 로마가 동로마와 서로마 제국으로 쪼개진 이후, 서로마 제국이 무너진 부분부터 시작한다. 로마 제국이라는 거대한 팍스 로마나의 틀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변화된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는 사이, 아랍 세력은 일사분란한 국가대 국가의 전쟁 방식이 아닌 해적이라는 독창적인(?) 방식으로 기독교 국가들과 대적하게 되고 이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결국 이런 배경 하에서 때로는 기독교 국가가 수세에 밀리고, 때로는 반격을 취하면서 공세로 전환하기도 하는 알력싸움이 지중해를 중심으로 벌어진다.

 

찬찬히 긴 역사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은. 제국의 거대한 보호망이 사라진 이후 혼란의 시대를 온몸으로 맞은 사람은 일반 시민들이었다는 점이다. 결국 사람들이 평안하게 살아야 경제가 번영한다는 아우구스투스의 생각이 지배했던 로마 제국이 무너진 이후 역시나 그 여파를 가장 받은 사람들은 일반 시민들이었다. 부유하고 중요한 인사들은 해적에게 잡혀가도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돈이 있었지만 일반 서민들은 그럴수가 없었고, 그들은 먼 아프리카 타국에서 노예로 일하다 죽어간 것이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그런 해적에게 대항할 수 있던 사람들도 결국에는 시민들이었다. 해적들에게 대응할 수 있다는 약간의 확신이 생기고 승산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그들에게는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모든 인간이 그렇듯이 말이다.

 

<로마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로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너무나 방대한 시간을 요약해서 정리하다보니 작가의 기존 작품들에서 많이 인용하기도 하고, 이 책에서는 다룰 수 없으니 궁금하면 그 책의 어느 부분을 읽어보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부연한다. 하지만 시오노 나나미를 <로마인 이야기>부터 읽기 시작한 사람이라면 조금 아연할 것이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그녀의 지난 저작들을 거진 모두 섭렵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가장 기초는 그녀가 사랑해 마지 않는 베네치아의 일대기를 다룬 <바다의 도시 이야기>를 시작으로, 아랍과 기독교 세계간에 피할 수 없는 분수령이 된 주요 전쟁들을 다룬 전쟁 3부작 - <콘스탄티노플 함락>, <로도스 섬 공방전>,<레판토 해전>- 을 읽고 난 후에 그녀답지 않게 다소 가볍게 넘어간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을 다룬 도시 3부작 - 베네치아, 로마, 피렌체- 를 또 읽어야 한다. 하지만 굳이 이 모든 책을 읽어야만히 이 책을 읽을 수 있는건 아니다. 오히려 <로마 멸망 이후 지중해 세계>를 읽으면서 다른 책을 찾아 읽는 솔솔한 재미를 맛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진 당신이 난 참 많이 부럽다. 시오노 나나미가 또 글을 쓸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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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도무지 헤어나올 수 없는 아홉 가지 매력>을 리뷰해주세요.
자전거, 도무지 헤어나올 수 없는 아홉 가지 매력
윤준호 외 지음 / 지성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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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전거라는 단어를 들으면 생각하는건 어릴적 아버지를 따라 근처 공원에 갔다가 자전거를 배웠다는 것과, 고생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쉽게 배우지는 않았다는걸, 그리고 나보다 꽤 잘타는 동생을 보면서 꽤 질투했다는 것 정도이다. 그리고 자전거 1대를 가지고 동생과 서로 타겠다고 참 많이도 싸웠던 기억이 남아있다는 것 정도이다. 그리고보면 한 물건에 꽤나 다양한 기억을 가지고 있고, 추억이라는걸 가지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보면 어제 비가 내린 후로는 갑자기 날이 서늘해지면서 야외활동을 하기에 최적의 날씨가 되고 있는데, 자전거가 하나쯤 있으면 자주는 아니어도 주말에는 성실하게 타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자전거, 도무지 헤어나올 수 없는 아홉가지 매력>은 순수하게 자전거를 성실하게 타는 아홉명의 사람들이 자전거에 대한 매력을 하나씩 꺼내놓은 말 그래도 읽고 있노라면 자전거를 탈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물론 책은 시작부터 끝까지 자전거 예찬론이기는 한데, 그 안에 있는 내용은 기존에 예찬론이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단순히 '자전거는 건강에도 좋고, 지구를 아끼는' 그런 도구가 아닌 그야말로 애증(?)의 대상쯤 되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우선 MB정권에서 녹생성장이라며 나타난 강요받는 자전거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자전거에 대한 새로운 시각, 자전거는 녹생 성장이기도 하겠지만 즐거움이라는 담론을 만들어 준다는 이야기들이 하나. 어릴 적 추억부터 시작해서 정말 소소하게 자전거 바퀴를 굴리는 순수한 즐거움을 이야기하는 이도 있고, 진정한 녹생 성장과 자전거가 환경이라는 단어와 만났을 때, 진정으로 우리에게 줄 수 있는 담론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직접 몸소 실행해본 도시의 사례는 어떠한지를 '하~'라는 탄식이 나올 정도로 진지하고 절절하게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요즘은 많은 것들이 유행이라는 이름으로 너무나 빠르게 빛을 보고 빠르게 사라져간다. 흐름이라는 말이 있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급속도로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이동하는 듯하다. 어쩌면 자전거도 그런 존재가 아닐까 싶다. 어릴적부터 왠만한(?)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모두 타봤을 법한 자전거지만 요즘처럼 붐을 맞은 적은 이전에는 없었고, 이후에는 잘 모르겠다. 어릴 적 자전거를 그리 비싸지 않게 살 수 있었던 걸로 기억하지만, 요즘 자전거는 기덜트라는 이름으로 어른들의 취미생활이 되어서 그런지 그리 가격적으로 만만하지 않은게 사실이다. 건강에 대한 관심과 녹생성장 구호 등 여러가지가 뒤섞여버린 대상이 자전거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자전거는 어릴 적 아직 자동차를 모르던 시절 내 발로 속력을 즐길 수 있던 유일한 도구가 더 이상은 아닌 듯 하다. 너무나 많은 것들이 들어가버린 녀석은 어린 시절 내가 알던 녀석인가 싶다.
 
하지만 그런 내게 <자전거, 도무지 헤어나올 수 없는 아홉가지 매력>은 자전거가 왜 그렇게 많은 의미를 가질 수 밖에 없는지를 조곤조곤 이야기해준다. 환경이라는 거창한 단어와 녹생성장이라는 버거운 단어에서 벗어나 자전거가 그런 단어와 혹은 가치와 만나기 이전부터 가지고 있는 이야기와 추억을 전해준다. 그리고 그 추억 이야기가 지나고나면, 우리 시대에 자전거에 대해서 조금은 진지하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건강이라는 이름과 환경이라는 이름에 가려진 자전거가 아닌, 좀 더 자전거가 가지고 있는 순수한 본래 가치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전달하기 때문인지, 이 책은 내 마음에 쏙 든다. 자전거를 사서 타기에는 주변이 여의치 않지만 조금은 성실하고 꾸준하게 타보고 싶고 타보아도 되지 않을까라는 그런 생각이 들게 한다.그리고보면 정말 책 제목 잘 지었다. 헤어나올 수 없는 매력덩어리가 자전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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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인문사회의 균형

그리고 책에 매몰되지 말 것, 생각하고 살 것 

★★★★ 이상 : 꼭 읽어보기를
★★★ 이상 : 나쁘지는 않으나 취향을 좀 탐
★★ 이상 : 서점에서 휘리릭 넘겨보기를

 
35. 도가니 / 공지영 / 창비   ★★★☆
36. 이성의 한계 -극한의 지적 유희 / 다카하시 쇼이치로 / 박재연 / 책으로보는세상  ★★★★☆
37. 그건 사랑이었네 / 한비야 / 푸른숲   ★★★
38. 사라진 원고 / 트래비스 홀랜드 / 정병선 / 난장이 ★★★☆
39. 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 (상) / 시오노 나나미 / 김석희 / 한길사 ★★★★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하지만 그것치고는 재법 열심히 읽었다고 생각한 7월.(그리고보니 항상 이말이로군-_-)
5권을 읽었는데 별표는 많은걸 보니 제법 괜찮은 책으로 읽은 듯 하여 뿌듯하다. 

<이성의 한계>는 별 다섯개를 주고 싶지만 흠(-_-)하는 마음에 반개를 뺐고,
시오노 나나미의 오랜만에 나온 신작 <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는 책장이 줄어드는걸 안타깝게 부여잡으면서 하권을 거의 읽었다.
<사라진 원고>는 읽으면서 계속 <타인의 삶>을 생각하게해서 이런저런 그야말로 상념이 많은 책이었다.

아, 8월은 휴가도 있으니 더 착실하게 읽을 수 있을 듯 하다.
헤죽 ^___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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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담 수집가>를 리뷰해주세요
기담 수집가
오타 다다시 지음, 김해용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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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일요일 아침이면 TV에서 하는 <서프라이즈>라는 프로그램을 보곤 한다. TV를 거의 챙겨보지 않는 내가 꼭 챙겨보는 걸 보면 굉장한 프로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생각해보면 별로 대단할 것 없는 이야기들 뿐이다. 공포라고 하기에는 2%쯤 부족한 보고 있으면 "정말?"이라는 단어가 나오고야 마는 그런 이야기를 모아서 방송을 해주는데, 참 작가들이 그 이야기들을 모으르나 고생 좀 많이 하겠다싶은 프로그램이다.  그리고보면 기담이라는 말을 참 애매한 단어라고 생각한다. 굉장히 기이한 일이라는 사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기이한 이야기라고만 하기에는 5%쯤 아쉬움이 남는 단어이다. 무서운 이야기도 아니고, 재미난 이야기도 아니고 그저 기묘한 이야기인 기담이란 말이다.

<기담 수집가>는 그 기이한 이야기를 모으는 사람과 그가 듣게 된 이야기에 대한 소설이다. 소설은 전형적으로 단편을 모은 단편 모음집 같지만 단편 모음집이라고 하기에는 소설 한권이 유기성을 가지고 있어서 구성면에서는 꽤 나쁘지 않다. 소설 속에서 기담을 들려주는 사람들은 모두 기담 수집가 에비스 하지메에게 기담을 들려주기 위해 찾아와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다. 진정한 기담에게는 사례를 하겠다는 그의 신문광고를 보고 찾아온 사람들로, 누군가는 정말 돈이 필요해서 그를 찾아온 사람도 있고, 또 누구는 돈 따위는 필요 없고 내가 겪은 기묘한 이야기를 그저 믿어줄 사람이 필요해서 온 사람도 있다. 이야기를 듣고 진정한 기담인지를 판명해줄 사람은 에비스 하지매와 그의 조수 히사카 두명이다.

 
소설은 비슷한 구조를 돌리고 돌린다. 기묘한 이야기를 가진 사람이 스트로베리힐(Strawberry hill)로 에비스 하지메를 찾아 온다. 찾아와서 에비스에게 각자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묘한 이야기를 전한다. 에비스는 감탄하며 이야기를 듣다가, 조수 히사카가 그 기담을 논리적으로 풀어준다. 거울 속에 들어있는 영혼이 사실은 소녀가 반사된 모습이라던지, 장미정원 속에 살고 있는 사람과 고용인에 대해서라던지 등등. 기담을 전하러 온 사람은 깜짝 놀라서 납득하며 돌아간다. 투털거리는 에비스와 당연하다는 듯 이야기하는 히사카를 마지막으로 이야기는 끝. 처음부터 시작해서 거진 마지막 장까지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읽는 사람에게 '뭐 이런 소설이 다 있어'라는 생각이 들만큼 오차도 없이 이야기는 똑같은 흐름으로 연결된다. 에비스가 찾아오는 사람에게 이야기를 시작하기 직전에 늘어놓는 이런 구절까지도 똑같다.  

 

   
   "이야기야, 그것도 소중히 간직해온 기담. 나는 그것을 찾고 있어. 도저히 이 세상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피도 얼어붙을 것 같은 무서운 이야기. 상식을 뒤집어 놓을 만한, 믿을 수 없을 만큼 황당한 이야기.
한 번 들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허황한 이야기. 당신은 그런 이야기를 알고 있나?" 
 
   

소설은 6가지의 개별적인 이야기를 각 사람이 에비스에게 전달하고, 마지막 7장에 가서 이 모든 이야기를 듣고 에비스의 존재를 밝히고 에비스의 존재 자채를 기담으로 하려는 한 사람의 이야기로 막을 내리는데, 이 마지막 장이 없다면 이 소설은 읽다가 중단해도 상관없을 만큼 싱겁다. 사실 마지막 장이 이 소설을 완결하는 장이자 시작하는 장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니. 꾹 참고 마지막장까지 읽어보기를 권한다. 앞에 6개 이야기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그 이야기들을 포괄하는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낸 마지막 장에 작가의 신선함이 보인다. 구성이 단연 돋보이지만, 그 구성을 채우는 이야기가 다소 허망한 이야기라는 점이 아쉬운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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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원고>를 리뷰해주세요
사라진 원고
트래비스 홀랜드 지음, 정병선 옮김 / 난장이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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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는 내내 두 영화가 머리 속을 맴돌았다. 하나는 한국 영화 <그 때,그 사람들> - 영화를 제대로 다 보지 못해서 제목이 정확한지는 잘 모르겠다 - 이고, 다른 한편은 독일 영화 <타인의 삶>이다. 두 영화 모두 뒤돌아보면 결코 자유롭다 말할 수 없는 시대였고, 그 때문인지 자유에 대한 고민을, 아니지 자유라기 보다는 인간으로서의 삶 자체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생각하게 하고 행동하게 한 그런 시대였다.  그런 시대였기 때문에 이런 글이, 그런 영화가 나올 수 있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은 무엇이고, 자유란 무엇이고, 삶이란 무엇인지를 조금 더 깊이 그리고 진하게 고민해볼 수 있는 그런 시대 말이다.

 

그 때, 그 시절에는 이런 사람들도 있었다

<사라진 원고>의 배경은 공산당이 지배하는 러시아이고, 주인공은 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쳤지만 지금은 그 학교에서 해고된, 그리고 지금은 그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 공산당이 잡아 둔 작가들의 원고를 분류하고 관리하는 - 정확하게 말하자면 원고를 소각하는 일을 하지만 - 일 이다. 그는 자신이 문학선생이었다는 사실을 간간히 잊어가며 그렇게 작가들의 원고를 분류하고 소각하고, 아주 가끔은 자신이 원고를 태워야 하는 작가들과 대면하기도 한다. 학교에서는 좋은 작가이고 좋은 작품이라고 가르쳤던 그 작가의 참혹한 모습을 봐야하고, 그의 작품을 불태워야 하는 것이다. 그는 아내를 열차 사고로 잃었다. 하지만 그녀의 유해는 아직도 확인되지 않았고,  사건을 조사하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그 어떤 확신도 주지 못한다. 또 그의 어머니는 점차 기억을 잃어간다. 그녀 자신과 그녀의 아들에 대한 기억마져도.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이 숨막히는 현실 속에서 그는 살아가고 있다.  

 

그의 삶은 고단함이라는 단어가 적당하다. 사랑했던 아내는 어이없는 사고로 죽었고, 그녀는 아직까지도 자신의 품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문학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자신이었는데, 그가 정말 좋아하고 괜찮다고 생각했던 작품을 쓴 작가를 대면하게 된다. 그것도 감옥에 갇힌 그를 말이다. 자신이 진정으로 의지하고 좋아했던 사람들은 하나 둘씩 공신당치하의 암흑속으로 사라져 간다. 누구는 그 암흑과 어둠에 먹히지 않기 위해 도망가는 길을 선택하고, 누구는 도망가는 일이 부질없음을 알기 때문인지 담담하게 받아들이려 한다. 이런 상황 속에 그는 문득 자신의 손에 한 작가의 원고가 들려있음을 깨닫는다. 정확하게는 어쩌면 불타 없어질지도 모르는 그 원고를 그는 구한 것이지만, 그는 불안감에 시달리게 된다.

 

그의 삶은 우리가 하는 말만 따나 피폐하기 이를데 없다. 하루하루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는 -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 생각을 하며 살아야 하고, 주변 사람들이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살아가야 한다. 더군다나, 그는 그 죽음 외에도 자신의 삶을 자신이 가치있게 여기던 일을 자신의 손으로 하나씩 없애 나가는 일을 살기 위해서 하고 있다. 살아가기 위해서 일을 하지만 그 일은 자신을 조금씩 조금씩 하루하루 죽여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삶을 다양한 아이러니가 존재하지만 이 얼마나 엄청난 아이러니 인가. 살기 위해 조금씩 자신을 좀먹고 있는 일을 해야 하는 그의 운명을.

 

운명, 움직일 운 그리고 목숨 명

그래서 그는 결심한다. 사람들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들을 조금이라도 바꿔보겠다고. 자신의 어머니를 살리고 싶고,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던 사람들을 구하고 싶다고 그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하나씩, 조심스럽게 행동에 옮긴다. 물론 그 일들을 당연하지만 자신을 더욱 옭죄는 일들이다. 자신은 어머니와 친구를 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그 일을 자신을 본래 그들이 처할 운명으로 몰아갈 것임을 알고 있다. 어쩌면 그 끝이 죽음이 될지도 모르는 그 일을 그는 하나씩 해나가는 것이다.

 

이 과정은 어느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감동적이지도 않고, 대단하게 멋지지도 않다. 그저 조금씩 조금씨 어둡게 그를 옭아매고 있을 뿐이다. 그는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고 멋진 작가의 작품을 자기 집 지하벽에 숨기면서도 생각한다. 이건 어쩌면 다른 사람들에게 발견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그러면 그의 이 소설은 결국 사람들에게 잊혀지고 묻힐 거라고.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소설을 조심스럽게 보관한다. 하나의 작품이라도 불꽃에 사라질지도 모르는 그 운명에서는 최소한 피하게 하고 싶다. 그것이 그를 옭아매는 현실에서 할 수 있는 많지 않은, 정직하게 말하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결말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 결말로 가는 길을 바꾸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운명은 움직일 운자에 목숨 명자를 쓴다. 목숨을 바꾸는 일이라는 뜻인데, 진정 운명이 무엇인지를 가장 잘 알려준다. 우리는 운명이라는 단어를 정해진 끝점으로 결말로 이해한다. 하지만 애초 운명이라는 단어는 움직일 수 있는 유동적인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물론 어쩌면 결말을 같을지도 모른다. 아지 결말은 같을거다. 같은 결말에 이르더라도 그 결말로 가는 길이 다르다면, 인생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살아가는거다. 하루하루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어도 나는 내 의지로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 난 이 시간 살아있는 것이다. 그의 삶은 대단하지도 멋지지도 위대하지도 않았지만 그는 그렇게 그 자신의 하루를 살아낸거다. 그래서 그의 삶을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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