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 - 상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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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시오노 나나미를 좋아한다. 광팬이라고까지 하기에는 멋적지만 시오노 나나미 이름이 보이면 일단 앞뒤 보지 않고 주문을 누를 만큼 그녀의 글은 내가 항상 목말라 하는 글이다. 그녀가 들려주는 역사 이야기에 빠져들고, 그녀가 풀어내는 화려한 지식의 편린들이 즐거운 까닭이다.

 

그리고보니 내가 시오노 나나미를 처음 읽기 시작한건 고등학생 시절이었다. 학교 도서관이 깨끗하게 단장하고 새로 문을 열어 찾아가 보았는데, 사람들이 별로 빌려가지 않았지만 꽤 재미있어 보이는 책이 있길래 골라들었는데, 그 책이 하필 <바다의 도시 이야기>였다. 세상에 하필 그 책이라니. 정말 재미있는 책이어서 꽤 투터운 분량이었음에도 야자 시간을 쪼개가며 책을 읽었다. 찾아보니 그 작가의 책은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 적어도 그때는 그랬다 - 도서관에 있었고, 한권씩 섭렵해가는 즐거움에 홀딱 빠져있었다. 언뜻 돌아보니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난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그 순간까지 시오노 나나미는 르네상스를 전공하는 사람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대학에 들어와서 더 찾아보니 1년에 한권씩 써내겠다고 공언을 하면서 써내려가는 책이 있었는데 그게 참 묘하게도 로마사였다. 일단 출간된 부분까지 찾아서 읽었는데 이게 참 감질맛 나게 한권씩 나오는 바람에 해마다 책이 출간되는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갈 즈음에는 출판사, 인터넷 서점과 학교 도서관 사이트에 문지방(?)이 닳도록 자주도 들락거렸다. 그렇게 잃어나가면서 알았다. <로마인 이야기>를 읽어나가면서 난 생각했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사를 쓰기 위해 르네상스 이야기부터 공부를 시작했다고. 그녀가 그렇게 길고 긴 15권의 이야기를 끝내고 - 난 솔직히 그녀의 글을 다시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 그녀가 말한다. 웃기지 말고 잘 들으라고. 난 항상 로마와 르네상스를 머리속에 같이 넣고 글을 쓴다고. 누가 먼저이고 중요한지를 구분하는건 의미가 없다고.

 

<로마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는 제목이 요약하듯 로마 멸망 이후 1000년의 암흑기라는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를 지나 옹기종기 모여있는 지중해를 벗어나 대항해 시대라는 권력의 중심이 이동하는 사건까지 1500년에 이르는 시간을 단 2권으로 압축했다. 엄청나게 긴 이야기를 압축하다보니 다소 설거운 부분도 있게 마련이지만 결국 핵심은 '기독교와 아랍간에 지중해 패권을 놓고 벌이는 스펙타클 초장기 이야기 요약집'이다. 로마 멸망 이후 무섭게 부흥한 아랍권에 이베리아 반도가 지배된 이후, 지중해 상에서는 끊임없이 아랍의 세력이 퍼져나가면서 기독교의 위기가 찾아온다.

 

이 책의 시작은 로마가 동로마와 서로마 제국으로 쪼개진 이후, 서로마 제국이 무너진 부분부터 시작한다. 로마 제국이라는 거대한 팍스 로마나의 틀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변화된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는 사이, 아랍 세력은 일사분란한 국가대 국가의 전쟁 방식이 아닌 해적이라는 독창적인(?) 방식으로 기독교 국가들과 대적하게 되고 이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결국 이런 배경 하에서 때로는 기독교 국가가 수세에 밀리고, 때로는 반격을 취하면서 공세로 전환하기도 하는 알력싸움이 지중해를 중심으로 벌어진다.

 

찬찬히 긴 역사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은. 제국의 거대한 보호망이 사라진 이후 혼란의 시대를 온몸으로 맞은 사람은 일반 시민들이었다는 점이다. 결국 사람들이 평안하게 살아야 경제가 번영한다는 아우구스투스의 생각이 지배했던 로마 제국이 무너진 이후 역시나 그 여파를 가장 받은 사람들은 일반 시민들이었다. 부유하고 중요한 인사들은 해적에게 잡혀가도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돈이 있었지만 일반 서민들은 그럴수가 없었고, 그들은 먼 아프리카 타국에서 노예로 일하다 죽어간 것이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그런 해적에게 대항할 수 있던 사람들도 결국에는 시민들이었다. 해적들에게 대응할 수 있다는 약간의 확신이 생기고 승산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그들에게는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다. 모든 인간이 그렇듯이 말이다.

 

<로마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로서는 당연한 일이지만, 너무나 방대한 시간을 요약해서 정리하다보니 작가의 기존 작품들에서 많이 인용하기도 하고, 이 책에서는 다룰 수 없으니 궁금하면 그 책의 어느 부분을 읽어보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부연한다. 하지만 시오노 나나미를 <로마인 이야기>부터 읽기 시작한 사람이라면 조금 아연할 것이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그녀의 지난 저작들을 거진 모두 섭렵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가장 기초는 그녀가 사랑해 마지 않는 베네치아의 일대기를 다룬 <바다의 도시 이야기>를 시작으로, 아랍과 기독교 세계간에 피할 수 없는 분수령이 된 주요 전쟁들을 다룬 전쟁 3부작 - <콘스탄티노플 함락>, <로도스 섬 공방전>,<레판토 해전>- 을 읽고 난 후에 그녀답지 않게 다소 가볍게 넘어간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을 다룬 도시 3부작 - 베네치아, 로마, 피렌체- 를 또 읽어야 한다. 하지만 굳이 이 모든 책을 읽어야만히 이 책을 읽을 수 있는건 아니다. 오히려 <로마 멸망 이후 지중해 세계>를 읽으면서 다른 책을 찾아 읽는 솔솔한 재미를 맛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진 당신이 난 참 많이 부럽다. 시오노 나나미가 또 글을 쓸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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