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원고>를 리뷰해주세요
사라진 원고
트래비스 홀랜드 지음, 정병선 옮김 / 난장이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두 영화가 머리 속을 맴돌았다. 하나는 한국 영화 <그 때,그 사람들> - 영화를 제대로 다 보지 못해서 제목이 정확한지는 잘 모르겠다 - 이고, 다른 한편은 독일 영화 <타인의 삶>이다. 두 영화 모두 뒤돌아보면 결코 자유롭다 말할 수 없는 시대였고, 그 때문인지 자유에 대한 고민을, 아니지 자유라기 보다는 인간으로서의 삶 자체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생각하게 하고 행동하게 한 그런 시대였다.  그런 시대였기 때문에 이런 글이, 그런 영화가 나올 수 있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은 무엇이고, 자유란 무엇이고, 삶이란 무엇인지를 조금 더 깊이 그리고 진하게 고민해볼 수 있는 그런 시대 말이다.

 

그 때, 그 시절에는 이런 사람들도 있었다

<사라진 원고>의 배경은 공산당이 지배하는 러시아이고, 주인공은 학교에서 문학을 가르쳤지만 지금은 그 학교에서 해고된, 그리고 지금은 그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아닌, 공산당이 잡아 둔 작가들의 원고를 분류하고 관리하는 - 정확하게 말하자면 원고를 소각하는 일을 하지만 - 일 이다. 그는 자신이 문학선생이었다는 사실을 간간히 잊어가며 그렇게 작가들의 원고를 분류하고 소각하고, 아주 가끔은 자신이 원고를 태워야 하는 작가들과 대면하기도 한다. 학교에서는 좋은 작가이고 좋은 작품이라고 가르쳤던 그 작가의 참혹한 모습을 봐야하고, 그의 작품을 불태워야 하는 것이다. 그는 아내를 열차 사고로 잃었다. 하지만 그녀의 유해는 아직도 확인되지 않았고,  사건을 조사하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그 어떤 확신도 주지 못한다. 또 그의 어머니는 점차 기억을 잃어간다. 그녀 자신과 그녀의 아들에 대한 기억마져도.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이 숨막히는 현실 속에서 그는 살아가고 있다.  

 

그의 삶은 고단함이라는 단어가 적당하다. 사랑했던 아내는 어이없는 사고로 죽었고, 그녀는 아직까지도 자신의 품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문학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자신이었는데, 그가 정말 좋아하고 괜찮다고 생각했던 작품을 쓴 작가를 대면하게 된다. 그것도 감옥에 갇힌 그를 말이다. 자신이 진정으로 의지하고 좋아했던 사람들은 하나 둘씩 공신당치하의 암흑속으로 사라져 간다. 누구는 그 암흑과 어둠에 먹히지 않기 위해 도망가는 길을 선택하고, 누구는 도망가는 일이 부질없음을 알기 때문인지 담담하게 받아들이려 한다. 이런 상황 속에 그는 문득 자신의 손에 한 작가의 원고가 들려있음을 깨닫는다. 정확하게는 어쩌면 불타 없어질지도 모르는 그 원고를 그는 구한 것이지만, 그는 불안감에 시달리게 된다.

 

그의 삶은 우리가 하는 말만 따나 피폐하기 이를데 없다. 하루하루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는 -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 생각을 하며 살아야 하고, 주변 사람들이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살아가야 한다. 더군다나, 그는 그 죽음 외에도 자신의 삶을 자신이 가치있게 여기던 일을 자신의 손으로 하나씩 없애 나가는 일을 살기 위해서 하고 있다. 살아가기 위해서 일을 하지만 그 일은 자신을 조금씩 조금씩 하루하루 죽여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삶을 다양한 아이러니가 존재하지만 이 얼마나 엄청난 아이러니 인가. 살기 위해 조금씩 자신을 좀먹고 있는 일을 해야 하는 그의 운명을.

 

운명, 움직일 운 그리고 목숨 명

그래서 그는 결심한다. 사람들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들을 조금이라도 바꿔보겠다고. 자신의 어머니를 살리고 싶고,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던 사람들을 구하고 싶다고 그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하나씩, 조심스럽게 행동에 옮긴다. 물론 그 일들을 당연하지만 자신을 더욱 옭죄는 일들이다. 자신은 어머니와 친구를 살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그 일을 자신을 본래 그들이 처할 운명으로 몰아갈 것임을 알고 있다. 어쩌면 그 끝이 죽음이 될지도 모르는 그 일을 그는 하나씩 해나가는 것이다.

 

이 과정은 어느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감동적이지도 않고, 대단하게 멋지지도 않다. 그저 조금씩 조금씨 어둡게 그를 옭아매고 있을 뿐이다. 그는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고 멋진 작가의 작품을 자기 집 지하벽에 숨기면서도 생각한다. 이건 어쩌면 다른 사람들에게 발견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그러면 그의 이 소설은 결국 사람들에게 잊혀지고 묻힐 거라고.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소설을 조심스럽게 보관한다. 하나의 작품이라도 불꽃에 사라질지도 모르는 그 운명에서는 최소한 피하게 하고 싶다. 그것이 그를 옭아매는 현실에서 할 수 있는 많지 않은, 정직하게 말하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결말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 결말로 가는 길을 바꾸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운명은 움직일 운자에 목숨 명자를 쓴다. 목숨을 바꾸는 일이라는 뜻인데, 진정 운명이 무엇인지를 가장 잘 알려준다. 우리는 운명이라는 단어를 정해진 끝점으로 결말로 이해한다. 하지만 애초 운명이라는 단어는 움직일 수 있는 유동적인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물론 어쩌면 결말을 같을지도 모른다. 아지 결말은 같을거다. 같은 결말에 이르더라도 그 결말로 가는 길이 다르다면, 인생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살아가는거다. 하루하루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어도 나는 내 의지로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 난 이 시간 살아있는 것이다. 그의 삶은 대단하지도 멋지지도 위대하지도 않았지만 그는 그렇게 그 자신의 하루를 살아낸거다. 그래서 그의 삶을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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