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이야기에도 말했지만, 차분하게 글을 읽는게 어려운 때가 있다. 분명히 글을 읽고 있는데, 하얀건 종이요 검은 것은 글자라 이런 순간이 있다. 그리고보면 예전에는 글을 읽고 나서 쓰는데만 이런 일이 발생하곤 했는데 이제는 읽는 일에도 발생한다. 노화의 증거인건가 . 정확하게는 몸의 노화가 아니라 정신의 노화겠지만. 결국 이런 일은 노화의 증거.
이런건 약간은 자의적인 혹은 자초한 노화인 셈인데, 글을 잘 읽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쓰지 않다보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일이다. 꾸준히 착실하게 읽고 생각하고 써나가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보면 뒤에서부터 하나씩 문제가 생긴다. 글을 잘 쓸 수 없게 되고, 생각이 잘 안되고 결국 잘 읽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써놓고 보니 조금은 슬프다)
이런 류의 문제가 비슷하게 반복해서 오곤 했는데, 난 항상 비슷한 방법을 써왔다. 쓰고 싶을 때까지 쓰지 않고 읽고 싶을 때까지 읽지 않는다. 이게 내 원칙이다. 무리해서 써봐야 쓸 말도 없도 잘 쓰지도 못하니 굳이 쓸 필요도 없고, 잘 읽히지도 않는데 굳히 읽어서 무엇하랴, 라는게 마음이랄까. 원칙이라고 하면 조금 어색하고 아무튼 그렇다 이런 위기(?)에 봉착하면 항상 이런 방법을 써왔다. 이번에도 그런 방식으로 이런 순간을 타계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항상 이런 방법이면 어떤 식으로든 얼마가 걸리든 극복이 되게 마련이었는데, 점점 이런 방법으로는 잘 극복이 안되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일요일인 오늘은 서울 낮기온이 32도를 넘었다고 하던데, 역시 더운 날이었다. 덕분에 집에서 낮잠도 한숨 자고 둥글둥글 하다가 책장에서 책을 집어 들었다. '역시 이런 날에는 하루키지.' 이러면서.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달리기 이야기 같지만 실은 그의 글쓰는 이야기라고 하는게 더 맞을만큼 글쓰기라는 행위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그래서 읽고 있으면 그가 입에 달고 사는 '착실하게'라는 표현의 의미를 최소한 글쓰기에서는 느낄 수 있다.
새벽에 일어나 오전에 책상앞에 앉아서 해야 할일을 하는 하루키는 평소에 아무 글도 쓰지 않아도 책상 앞에 앉아서 의식을 집중하는 일을 한다고 하는데, 그가 좋아하던 트루먼 카포티도 마찬가지 였다고. 이런 에피소드들이 자잘하게 모여서 결국 하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착실하게'라는 단 한마디. 싫기도 하고 지겹히고 하지만 어쨌든 어쩔 수 없는게 아닌가라는 조금은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앉아서 글을 쓰고 의식을 집중한다. 그는. 결국 책을 읽고 나서 이렇게 나도 마음을 다잡고 쓰고 있다.
하루키의 인생관은 혹은 글쓰기 관은 꽤 마음에 든다.
어쩔 수 없이 내킬 떄까지 내버려두는 것도 좋지만,
마냥 내버려두면 어쩔 수 없어질 수도 있으니 일단 몸에 익게 만들어 버리는게 편하겠다 싶다.
아 그런데, 이런 생각 조금 계략이 가득한 듯 하다고나 할까.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1/0619/pimg_785101144674501.jpg)
+ 일전에 이야기한 집 앞, 앞은 거짓말이고 언저리 , 카페.
아직 대학교가 방학을 하지 않아서겠지만, 믿을 수 없을만큼 넓고 사람도 적고 마음에 든다.
참, 아직 더치 커피는 마시지 못했다.
+ 그야말로 프레임만 있는 책장.
이 가게는 적당한 북카페 컨셉을 추구하는 듯 괜찮은 책들이 많이 있는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