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를 냈다. 다음주 주 중반까지 휴가를 냈는데, 계획한건 아니다. 그냥 갑자기 지난 주 현충일을 보내고 출근했는데, 아침부터 전화가 주구장창 울리는거다. 전화선을 뽑아버리고 싶을 만큼, 사실 난 요즘 이런 충동을 굉장히 많이 느끼는 편인데. 덕분에 핸드폰으로 오는 전화도 별로 받고 싶지가 않다. 그러다가 휴가를 내서 한 일주일쯤 쉬지 않으면 회사를 그만 둘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당장 이번달 내야 하는 카드값과 적금과 다음 취업 같은건 나도 모르겠다는 마음이 들면서 무조건 휴가를 내서 쉬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회사가 그렇겠지만 팀에서 장기로 휴가를 가는 사람이 생기면 분명히 빈 구멍이 생긴다. 어쩔 수 없는 문제이고 당연한 문제지만, 남은 사람들은 정말 힘들다. 어쨌든 나도 휴가를 갈거지만, 내가 휴가를 가지 않은 기간 동안에는 일이 늘어나게 마련이니. 그리고 내가 휴가를 내면서도 분명히 나는 그 생각을 했다. 남은 사람들이 배는 더 힘들어 질지도 모르겠다고. 특히 요즘 팀에서는 일이 하루가 멀다하고 생겨나고 빵빵 터지는 분위기라 지금 시점에 긴 휴가는 조금 부담이 된다. 분명히.  

그런데 솔직히 그런거 어찌되도 난 모르겠다 내지는 상관없다는 마음이 될 정도로 난 휴가를 가야만했다. 휴가를 가기 위해서 업무를 전달하고 걸려있는 일을 대충 정리하면서 휴가를 다녀오면 이 일들 이어가려면 다녀와도 다녀오는게 아니구나라고 생각했지만, 그런건 일 순간 멀리멀리 날아갔다. 그냥 다녀와서 조금 더 고생하지 뭐, 싶은 기분이랄까. 다른 사람들은 휴가를 낼 때 어떤 기분으로 내는지 모르겠지만 항상 휴가를 낼 때마다 - 하루 휴가가 아니라 그 이상으로 휴가를 갈 때 - 난 이런생각을 하곤 하는데, 이번에는 유독 더 많은 생각을 했다.  

금요일에는 퇴근을 밤 10시가 다 되서 했다. 금요일 일을 마무리하고 인수인계를 확인하고, 책상을 정리했다. 페이퍼를 정리해서 버릴건 싹싹 버리고 다녀와서 해야할 일은 다시 가지런히 정리하고, 책도 좀 정리하고 버릴건 과감하게 버리고. 내 자리 근처에 있던 깨끗하던 휴지통 2개를 넘치게 채울만큼 버리고, 파티션에 붙어있던 잡다한 것들을 다 때어버렸다. 버리건 버리고 정리하니 좀 가벼어졌다고 생각했다. 회사일에서 가벼워지고 거리를 둘 필요가 있는게 아닐까. 난 그러기 위해서 책상을 비우고 페이퍼를 버리고, 컴퓨터를 정리하는지도 모르겠다.

난 휴가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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