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4월 1주

1. 영화배우 윤정희씨의 우아한 모습을 또 한 차례 볼 수 있었어요. 영화 <시>의 주연배우 윤정희씨가 프랑스 문화커뮤니케이션부에서 프레데릭 미테랑 문화부장관으로부터 문화예술공로훈장 오피시에(Officier dans l'ordre des Arts et Lettres)를 수상했죠. 어떤 상인가요?  


윤정희
<만무방>,<석화촌>,<효녀 심청>,<청춘극장>,<시>

우선, 이런 말이 있었는데요, “윤정희 이전에도, 윤정희 이후에도, 윤정희만 한 배우가 없다.” 미당 서정주 시인이 생전에 했던 말이었습니다.

윤정희씨. 1960년대 문희, 남정임씨와 함께 한국영화 황금기를 대표하는 배우였는데요, 지난해 <시>로 오랜만에 우리에게 돌아왔던 천생 배우죠. 프랑스에 살고 있는 그녀가 최근 프랑스의 문화예술공로훈장 오피시에(Officier dans l'ordre des Arts et Lettres)를 받았습니다. 

오피시에는 프랑스의 국가공로훈장인 레종 도뇌르의 한 종류인데요, 예술과 문학 발전에 공헌하고 문화 보급에 노력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입니다. 윤정희씨가 이 상을 탄 것도 영화 <시>덕분인데요, 당초 윤정희씨는 오피시에보다 한 단계 낮은 훈장인 슈발리에(Chevalier)를 받을 예정으로 알려졌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프랑스에서도 개봉돼 관심을 모았던 <시>에서의 연기와 영화배우로서의 공로가 인정돼 훈장이 한 단계 격상됐습니다. 프랑스 영화계에서 윤정희씨를 추천했다고 하네요.

재밌는 건, 윤정희씨의 남편이자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인 백건우씨 역시 10년 전 2001년, 슈발리에 훈장을 받은 바 있습니다. 이에 따라 윤정희-백건우 부부는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을 받은 최초의 한국인 부부가 됐습니다.

2. 문화평론가 진중권씨가 심형래 감독 주연의 영화 <라스트 갓파더>의 미국 개봉을 두고 또 독설을 퍼부었죠?

지난 1일 미국에서 <라스트 갓파더>가 개봉했는데요, 국내에서 개봉했을 때 한 마디 던졌던 진중권씨가 <라스트 갓파더>의 미국 개봉 형태에 대해 쓴소리를 남겼습니다. 

진중권씨는 최근 자신의 트위터에, <라스트 갓파더>가 미국 간다고 국내에서 홍보해놓고선, 교민밀집지역에 50개 개봉관은 대국민 사기 아니냐는 글을 남겼습니다.

특히 12억원을 지원하고 40억원의 대출보증을 한 국내 굴지의 대기업 배급사에 대한 비판도 함께 했습니다. 이에 심형래 감독이 대표로 있는 영구아트 관계자는 개인의 가치관이니만큼 별다른 대응을 하고 싶지 않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한편 <라스트 갓파더>의 현지 평도 그리 좋진 않습니다. 이야기 전개가 단조롭고 서양에서는 통하지 않는 코미디라는 얘기도 있고요. 일부 영화 관계자는 올해 미국에서 개봉한 최악의 영화라는 혹평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국내에선 지난 연말 개봉해 253만명의 관객을 모은 바 있습니다.

3. 지난달 말 영화 <타짜>의 최동훈 감독이 신작 <도둑들>(가제)에 김윤석, 김혜수, 전지현, 이정재, 오달수, 정말 초호화 캐스팅으로 화제가 되면서 출연료를 누가 제일 많이 받았을까, 라는 궁금증이 증폭됐었는데요. 사실, 영화배우들 출연료는 말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라면서요?

이게 참 딜레마인데요, 액수가 크면 눈치가 보이고, 작으면 다음 출연료 협상에서 불리하다는 거죠. 그래서 영화 출연료는 ‘1급 비밀’에 속하는데요. 김윤석, 김혜수, 전지현, 이정재, 오달수 등의 배우들이 한 영화에 출연한다면 대체 얼마를 써야할까요. 이들이 출연하는 한국판 ‘오션스 일레븐’인 <도둑들>에 대중들의 호기심이 발동한 이윱니다.

혹시 예상이 가능하세요? 20억원 가량이라고 알려졌는데요. 이 정도 규모면, 요즘 예산이 크지 않은 상업영화 두 편도 제작이 가능한 액수입니다. 어마어마하죠? 배우들 출연료만으로 영화 두 편을 제작하니까요.

그런데, 누가 제일 많이 받았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이건 영화계 관행인데요. 얼마를 받았다는 게 퍼지면 다음 출연료 협상에 지장이 있다는 얘기도 있고요, 반면에 출연료가 너무 많으면 열악한 영화 제작 환경 때문에 비난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출연료는 가급적 밝히질 않는다는 겁니다.

배우들로서도 이래저래 고민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고요. 반면 미국 할리우드에서는 출연료가 대부분 공개가 되는데요, 이건 대중들과 영화계가 그만한 가치가 있음을 인정해주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4. 가수 겸 배우 비가 전투기 조종사로 완벽 변신한 사진을 공개했죠. 뭘 입혀놔도 멋지더라고요?

혹시 전투기가 등장하는 영화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가 있으세요? 저는 탐 크루즈가 주연한 <탑건>이 가장 기억에 남는데요. 최근 드라마에 이어 영화 촬영에 몰두하고 있는 비가 전투기 조종사로 변신을 꾀하고 있습니다.

영화 제목은 <레드 머플러>고요, 비는 자신의 트위터에 “요즘 촬영하는 게 참 즐겁다”는 말을 남기면서 사진도 함께 공개했는데요. 공군 전투복에 보잉 선글라스를 착용해 비행기에 오르는 모습을 찍은 사진, 배우 김성수씨와 함께 정면을 응시하는 사진 등을 올려놨습니다.

최고의 공군 전투 영화가 될 듯하다고 비가 촬영 현장의 즐거움을 토로한 <레드 머플러>는 한반도에 위기상황이 오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전투 비행을 펼치는 공군 조종사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영화고요. 비 외에도 신세경, 김성수, 유준상, 이하나씨 등이 함께 촬영하고 있습니다.   

5. 3월 관객수와 점유율이 최악이었다면서요? 이번 주 박스오피스와 개봉작들도 함께 정리해 주시죠.

3월 한국영화 관객수와 점유율이 급락했는데요. 관객수는 273만9487명으로 2월의 856만3409명에 비해 무려 600만명 가량이 줄었습니다. 점유율도 32.6%로 2월의 63%에서 급락했습니다.

사실 3월은 극장가 비수기이기도 하고요, 3월 개봉했던 <마이 블랙 미니드레스>나 <로맨틱 헤븐> 등이 저조한 흥행을 기록하면서 한국영화 점유율이 전반적으로 낮았습니다. 해외 영화를 합친 전체 관객수도 838만5453명으로 2월의 1358만1557명에서 500만명 가량이 줄었습니다.

박스오피스를 보시면, 송새벽씨와 이시영씨가 주연한 지역감정코미디 <위험한 상견례>가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습니다. 50만명에 약간 못 미친 관객을 동원했고요, 이번주에도 예매율 1위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2~4위는 도토리 키재기식이었는데요, <킹스 스피치>가 2위, 스페인의 스릴러 영화 <줄리아의 눈>이 3위를 차지했습니다. 누적관객 150만을 향하고 있는 장기흥행작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4위였고요, 이번주 예매율에서도 6위로 선방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건, 자폐증 남자의 감동스토리를 그린 인도 영화 <내 이름은 칸>이 입소문을 타고 스크린수를 늘리면서 앞선 주보다 3단계 상승한 7위에 올랐는데요, 이번주 예매율에서도 4위로 껑충 뛰었습니다.  



키이라 나이틀리
<슈팅 라이크 베컴>,<킹 아더>,<오만과 편견>,<어톤먼트>,<공작부인 : 세기의 스캔들>

이번주 개봉작들을 보면, <캐리비안의 해적>1~3편에서 히로인이었던 키이라 나이틀리가 주연한 영화 두 편이 나란히 선보였습니다. 한 편은 복제인간의 사랑과 우정을 그리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생각하게 만드는 <네버 렛미고>이고요, 다른 한편은 한 커플이 다른 장소에서 각기 다른 상대와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는 설정의 멜로물인 <라스트 나잇>입니다. <라스트 나잇>은 자극적인 소재 덕분인지, 예매율에서 3위에 올라 있고요.

<마농의 샘>에서 인기를 끌었던 엠마뉴엘 베아르가 주연한 <파리, 사랑한 날들>도 스크린에 걸렸습니다. ‘성인용 E.T’라는 타이틀을 내세운 <황당한 외계인 폴>도 주목할 만한 작품입니다. 제목 그대로 황당하고 엉뚱한 모험담이 웃음을 보장합니다. 예매율 5위입니다.  

비극적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을 코믹한 애니메이션으로 패러디한 <노미오와 줄리엣>도 웃음을 원하는 관객들에겐 좋을 것 같고요.

이밖에 여성판 <300>이라는 얘기를 듣고 있고요, 이번주 예매율에서 2위를 달리고 있는 <써커 펀치>, 할리우드 SF 액션영화 <에일리언 VS 헌터>, 국내 영화인 신현준씨 주연의 <우리 이웃의 범죄>가 개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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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3월 5주

1. 작년 칸 영화제 소식을 전한 것이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올 칸 영화제 소식이 들리고 있네요. 제64회 칸국제영화제가 5월 개막을 앞두고 있는데요. 올해 과연 어떤 한국영화들과 스타들이 칸을 찾을지 윤곽이 드러나고 있나요?

작년 5월, 칸 영화제에서 이창동 감독의 <시>가 각본상을 탔었죠. 정말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1년이 다 돼 갑니다. 올해 제64회 칸 영화제는 5월11일부터 22일까지 열리는데요, 아무래도 어떤 한국 영화와 배우들이 레드카펫을 밟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우선 몇몇 작품이 칸 영화제에 출품을 하고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요. 홍상수 감독의 <북촌방향>, 이정향 감독의 <오늘>, 전재홍 감독의 <풍산개> 등이 그 주인공입니다. 작년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 대상을 수상한 바 있는 홍상수 감독이 올해도 다시 칸의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미술관 옆 동물원> <집으로..>를 만든 이정향 감독의 신작인데요, 송혜교씨가 주연을 맡고 있습니다. 이정향 감독은 지난 2002년 <집으로..>가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된 바 있습니다. <풍산개>는 고위 탈북자의 부탁을 받은 남자가 여인을 탈북 시키는 과정을 그린 작품인데요, 윤계상씨와 김규리씨가 주연을 맡았습니다. 이들 영화는, 4월 중순에 나올 칸 영화제 참여작 발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들 작품의 영화제 상영 여부에 따라, 배우들도 칸을 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가 결정이 날 텐데요. 이밖에도 장동건씨와 전지현씨도 칸을 방문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장동건씨가 출연한 강제규 감독의 신작, <마이웨이>가 칸에서 제작발표회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고요.

전지현씨가 주연을 맡은 <설화와 비밀의 부채>도 칸에서 제작발표회를 추진 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는 휴 잭맨, 리빙빙 등이 함께 출연하고 있고요. 이 두 작품은 물론 공식 초청은 아니고요, 글로벌 프로젝트인만큼 칸 영화제라는 전 세계적인 이벤트를 빌어 영화를 널리 알리겠다는 취지가 있습니다. 
 


2. 눈물샘을 자극했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제작보고회가 있었죠?

1996년 MBC 창사특집드라마로 방영됐던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며느리, 아내, 어머니의 이름으로 가족을 위해 삶을 희생한, 한 여자의 일생을 그린 작품이죠. 저도 그랬지만 많은 분들이 주룩주룩 눈물을 흘렸습니다.

노희경 작가의 이 원작이 민규동 감독에 의해 스크린에서 다시 태어났습니다. 3월30일, 제작보고회가 있었는데요. 민규동 감독을 비롯해서 김갑수, 배종옥, 유준상, 서영희, 박하선씨 등이 참석했습니다.

민규동 감독은, 그 전에 만들었던 작품 역시 긴 제목의 영화로 많은 사랑을 받았었는데요. 아마 많은 분들이 보셨거나 무릎을 치실 겁니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인물 내면에 대한 섬세한 심리묘사가 돋보인 영화였는데요, 그래서 이번 영화도 한껏 기대가 됩니다. 

뭣보다, 이 작품에는 배종옥이라는 든든한 배우가 엄마 역할을 맡았는데요. 제작보고회에서 이 역할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한편으로 이 역할을 통해 배우로서 한층 더 성숙해지고 싶다는 마음을 내비쳤습니다. 또 베테랑 연기자인 김갑수씨도 영화를 위해 몸을 바쳤다며, 관객들의 호응을 기대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영화를 한마디로 정의해 달라는 질문에 민규동 감독은 “잠시라도 정말 위로가 되는 영화”라고 말했고요, 배종옥씨는 “이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영화”라고 전했습니다. 이 영화는 4월21일에 개봉합니다.  


3. 드디어 10년 시리즈의 막을 내리는 <해리포터>의 최종회 티저 포스터가 공개됐죠?

머글. 마법을 쓰지 못하는 보통의 인간을 일컫는 용어인데요, <해리포터>시리즈가 이 말을 널리 퍼뜨렸죠. 그 머글들이 볼 수 있는 <해리포터>의 최종 완결편이 곧 다가옵니다. 지난 2001년 1편이 만들어졌으니, 벌써 10년이 됐습니다.

작년 12월 최종회의 전단계인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1부가 상영됐었고요, 이번에는 시리즈의 완결편입니다.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 2부. 이 작품이 포스터를 공개해서 영화팬들의 기대를 높이고 있습니다. 포스터는 비장미가 넘치는데요, 해리 포터와 볼트모트의 마지막 대결을 암시하듯, 두 주인공의 얼굴이 서로를 마주보도록 배치했습니다.

10년 전 꼬마였던 해리 포터는 사춘기를 거친 것은 물론, 악과 맞서는 전사로 훌쩍 커버렸는데요. 총 8편으로 마무리되는 최종회는 오는 7월에 만날 수 있습니다. 해리 포터와 함께 한 10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위해서는 극장에 가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4. 봄 극장가, 왠지 어디서 본 듯한 영화들이 좀 많은 것 같습니다. 비슷한 소재를 다룬 지난 흥행작들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들, 트렌드인가요? 이번 주 박스오피스와 개봉작들도 함께 정리해 주시죠.

우선 박스오피스에서는, 아카데미 수상 효과를 업은 <킹스 스피치>가 약 17만명을 동원하며 1위에 올랐습니다. 누적 관객 수 50만명을 넘어섰고요, 이번주 예매율에선 2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킹스 스피치>의 선전으로 이에 앞서 2주 연속 1위를 기록했던 <월드 인베이젼>은 2위로 밀렸습니다.

3위는 이십대 여성들의 일과 사랑을 그린 <마이 블랙 미니드레스>가 차지했고요, 입소문을 타고 장기 상영에 들어간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뒤를 이었습니다. 지난달 17일에 개봉했으니, 5주 차가 됐고요, 누적 관객수는 120만명을 넘어섰습니다. 이번주에도 예매율 3위를 지키면서 강력한 뒷심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대로 최근 어디서 본 듯한 영화들이 속속 선을 보이고 있는데요. 우선 이번 주 개봉 영화들을 보면, 최근 아마추어복싱선수권대회에서 챔피언을 먹은 배우죠. 이시영씨. 작년 각종 영화제에서 조연상을 휩쓴 송새벽씨와 커플을 이룬 <위험한 상견례>가 개봉했습니다. 이번주 예매율에서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1980년대를 배경으로 전라도-경상도 커플이 결혼하기 위해 벌이는 고군분투를 다뤘는데요, 함께 개봉한 <미트 페어런츠3>의 초기 설정을 떠올리게 합니다.

2000년 첫 선을 보인 <미트 페어런츠>는 사위가 되고 싶은 남자가 장인의 허락을 받기 위해 애를 쓰는 내용인데요, 11년의 시간이 흐른 <미트 페어런츠3>는 장인과 사위의 갈등을 다뤘습니다.

이 밖에 김승우씨가 주연을 맡은 <나는 아빠다>는 MBC의 <나는 가수다>를 연상케하는 제목을 갖고 있는데요, 작년 최고의 흥행작인 <아저씨>를 떠올리게 하는 내용입니다. 4월 14일 개봉하고요, 김주혁씨와 정려원씨가 주연한 <적과의 동침>은 2005년 800만 관객을 동원한 <웰컴 투 동막골>과 닮은꼴입니다. 한국전쟁 가운데 인민군 일행이 마을을 찾으면서 벌어지는 일을 코믹하게 그려낸 영화로, 4월28일 개봉합니다. 

이번주 스크린에 선보인 영화로 주목할 만한 작품은 일본영화인 <고백>입니다. 작년 일본에서 큰 화제를 모았는데요, 자신의 반 학생에게 딸을 잃은 어머니이자 교사가 벌이는 복수극입니다. 아주 흥미진진한 스릴러고요, 또 한 편의 일본영화인 <수영장>은 슬로 라이프의 일상을 보여줍니다.

또 공포 영화들도 나왔는데요, 국내 영화팬들에겐 다소 생소한 스페인 영화 <줄리아의 눈>은 잘 만들어진 스릴러 영화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국 영화인 <베니싱>은 실제 사건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된 공포 영홥니다.

 

4월1일 장국영의 8주기였는데요, 그가 출연한 작품 중 가장 보고 싶은 영화로 꼽힌 <천녀유혼>의 리메이크작이 오는 5월에 국내에 개봉할 예정입니다. 이에 신청곡 하나 하고 싶은데요. <천녀유혼>에서 장국영이 부른 ‘노수인망망’이 가능하다면, 부탁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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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먹는 게 삼대를 간다 - SBS 스페셜 생명의 선택
신동화.이은정 지음 / 민음인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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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스페셜 <생명의 선택> 3부작을 다 보진 못했다. 한 편만 봤는데, 그 한 편이 인상 깊었다. 특히 미 버지니아 주 폴리페이스 농장 조엘 농부의 가치관과 인식이 참 좋았다. 그랬던 차, 이 다큐가 책으로 묶였다. 이 어찌 반갑지 아니할쏜가! 책을 만났다. <<당신이 먹는 게 삼대를 간다>> . 이어 신동화 PD의 강연에도 참석했다. 푸근한 인상의 그는, 조곤조곤 다정하게 먹을거리의 중요성에 대해 말을 건넸다.  

공정무역 커피를 제공하고, 입과 몸에 좋고 즐거운 먹을거리 다루고자 노력하는 카페를 운영하는 나로선, 반가운 자리다. 책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가장 몰입했던 분야는 3부였다. '페어푸드, 도시에 실현되다'. 페어 트레이드(공정무역)와 함께 시작된 나의 커피(푸드)노동자의 삶과 꿈은, 커피(푸드) 민주주의였다. 1등만 좋은 것 먹는 더러운 세상, 먹을거리도 계급간 차등을 받아야 하는 현실이 나는 불편하고 짜증이 났다.

나는 그 새벽을 기억한다. 새벽 첫 지하철 무렵에서 만났던, 피곤함과 찌들림이 가득한 얼굴로 고단한 몸을 누이고 있던 노동자들. 아마도 그들은 대부분 블루칼라였으리라. 청소노동자나 화이트칼라보다 일찍 세상을 깨운 사람들. 그 고단함에, 나는 커피를 건네고 싶다는 생각했다. 고단함에서 살짝 미소를 띄우고 싶었다. 내 커피가 그들에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아주 자그마한 힘이라도 줬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커피로 시작한 나의 여정은 먹을거리에도 관심을 쏟으면서, 푸드 저스티스(Food Justice), 음식 정의에도 조금씩 시선을 주고 있다. 당장 도시를 떠나진 못하지만, 도시에서 행할 수 있는 농업적 실천을 해보고 싶다. 즉, 도시 농부로서 첫 발을 올해에는 내딛고 싶은 바람이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용기를 주고, 내 바람을 부추긴다. 내 몸을 움직여 다른 생물과 함께 호흡하는 일. 세상을 살아가는 재미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신PD가 강연에서 언급했다. 사람 아닌 동식물에도 '의식'이 있다고. 의식에 대한 정의를 어떻게 내릴 것인지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나는 그의 말에 동의한다. 모든 것은 모든 것의 방식이 있고, 사람의 잣대만으로 다른 생물을, 자연을 재단해선 안 된다. 모든 생물에는 (하물며 무생물에도) 영혼이 있으며, 그 영혼의 교감이 먹는 행위를 통해 나타날 수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른 생물을 먹어야만 살 수 있는 것이 인간이다. 음식 비슷한 것, 고기 비슷한 것, 채소 비슷한 것 따위의 화학물질이나 첨가물 덩어리, 가공 식품은 생명이 없다. 지금의 도시 문명에서 늘 생명만 있는 것만 먹을 순 없다. 나쁜 것도 불가피할 때가 많다. 허나 가급적 피할 수 있다면, 산업화된 먹을거리 시스템의 자장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커피는 농약을 많이 치는 농작물이다. 플랜테이션 농업에서 대규모 수확을 해서 이윤을 많이 남기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경우가 많다.(물론 그것도 커피 노동자들의 의지가 아닌 농장을 소유하거나 중간 소비처인 거대 커피 체인들의 욕망에 의한 것이다.) 나는 그것에 발 담그고 싶질 않아서, 자연농(동티모르 사메 사람들의 커피) 유기농(멕시코 치아파스 사람들, 에티오피아 시다모 사람들의 커피) 공정무역 커피를 다루고 있다. 

무언가를 대표하기보다 지키기로 마음 먹은 것을 지킬 수 있길, 음식 정의와 함께 나의 꿈이 자라나길. 좋은 다큐, 좋은 책 내 준 신동화 PD가 고맙다. 나도 그처럼 세상에 쓸모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커피 만드는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책을 읽은, 두서 없는 거친 소감을 긁적이자면,  

#1. 우리집 셰프인 어머니는, 옥수수 앞에 사족을 못 쓰는 날 보고, 말씀하셨도다. “너, 전생에 옥수수 농부였냐?” 어머니가 농담처럼 던진 그 단어, 농부. 거지발싸개 도시적 가치에 길들여진 내가, 농부라는 말을 들어도 되는 것일까. 비록 전생이라지만! 행여나 전생이라는 것이 있다면, 나는 정말 농부였으면 좋겠단 생각을 한다. 대통령 따윈 비교도 되지 않는, 더 큰 세상과 우주를 다루는 진짜 생명의 존재, 농부.
 
그런데, 다시 돌아가서 옥수수. 참 좋아하는데, 올해 옥수수 시즌이 오면 약간은 옥수수를 달리 보게 될 것 같다. 《당신이 먹는 게 삼대를 간다》에 언급된 옥수수 때문이다. 잠깐, 그 언급을 엿보자.

옥수수, 지금 거대해진 농산업 체제의 영웅이란다. 능력이 출중하기 때문이라는데, 얼핏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것을 확인 사살했다. 옥수수만큼 많은 유기물과 칼로리를 생산할 수 있는 식물은 없단다. 보관과 비축이 용이해 많이 키우면 키울수록 더 많은 돈이 굴러들어오는 지점도 있다.

따라서 산업 농업은 옥수수에 집중했다. 다양한 품종의 옥수수를 다뤘다는 게 아니다.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는 단일 품종을 재배했다. 미국 아이오와 주에는 콩나물처럼 빽빽하게 자라는 옥수수를 볼 수 있다. 조밀하게 심어서 엄청난 수확을 한단다.

그렇다면 땅은? 이 오밀조밀 빡빡한 옥수수를 견뎌낼 땅은 없다. 산업 농업은 또 다른 돌파구를 만들어냈다. 비료. 많은 양의 화학 비료를 투입, 옥수수의 영양분 부족을 해결했다. 단종 재배를 통해 무조건 많은 양의 옥수수를 거둬들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좋지 않다. 위대한 식량학자 니콜라이 바빌로프(《지상의 모든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가》 참조)가 농업생물다양성을 주창했듯, 단종 재배는 생물학적 다양성을 줄인다. 이는 해충과 질병을 확대시키고 잡초에도 취약하게 만든다. 이는 곧 농약을 부른다. 악순환의 시작이다. 제초제, 농약 등이 뿌려진 생물이 먹을거리가 돼서 인간의 몸속으로 투입된다.

옥수수는 더불어 ‘석유 먹는 하마로 변’했다. 옥수수용 비료를 만들기 위해 열, 압력, 수소를 발생시켜야 하는데, 이는 화석 연료를 필요로 한다. 책은 1칼로리의 음식을 생산하는데 1칼로리 이상의 화학 연료 에너지를 써야한다고 말한다. 기가 찰 노릇이다.

그것뿐이랴. 옥수수는 바이오 에너지를 만드는 데도 사용된다. 대체 에너지 만든답시고, 되레 석유 에너지를 쏟아 붓는 모순. 옥수수는 가공식품에 들어가는 구연산, 포도당, 과당, 엿당 등의 성분들을 만드는데도 쓰일뿐더러, 청량음료, 맥주, 케첩, 사탕, 핫도그 등등 패스트푸드나 편의점에 진열된 상품 곳곳에 암약(?)해 있다.

들으면 놀랄만한 것도 있는데, 치약, 일회용 기저귀, 쓰레기봉투, 표백제, 성냥, 배터리, 식물성 왁스, 살충제, 잡지 광택제, 건물 벽판, 이음재, 유리 섬유, 접착제 등에 옥수수는 투입된다. 책은 “인간도 옥수수”라고 말하면서, 옥수수는 ‘거대 농산업 체제의 슈퍼스타’라고 덧붙여준다. 그야말로 지금 옥수수는, 세상을 지배하는 작물이다. 전생이었기에 다행이지, 지금 옥수수를 재배한다면 나는 더 이상 농부가 아닐 것이다. 그저 옥수수 공장의 하수인에 불과했을 것이다.

#2. 가끔, 패스트푸드점에서 아이에게 먹을 것을 먹이는 어른을 보면 섬뜩하다. 아마 선의(아이에게 맛있는 것을 먹이고 싶은, 혹은 배고픈 아이의 배를 채워주겠다는)에 의한 것이겠지만, 결과적으론 그건 아이들의 건강, 몸에 대한 학대이며 아이들에게 자연과 세상에 대한 감각을 마비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패스트푸드에 길들여진 아이들은 감각이 둔화된다. 소금과 지방이 많은 패스트푸드의 맛은 사람의 섬세한 미각을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대부분 모르고 그런다지만, 아이가 크면서 몸과 마음에 문제가 생기면, 부모를 원망할 텐데… 아니, 어쩌면 소송을 거는 일도 생기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혼자 염려하는, 오지라퍼(공연히 오지랖이 넓은 사람)가 된다. 아이에게 음식도 아닌 음식 비슷한 것을 먹이는 어른. 화학 물질과 첨가물이 범벅된 공장형 음식 시스템에 의해 공산품처럼 뽑아져 나온 음식 비슷한 것으로 아이와 후손의 삶에 악영향을 미치다니, 불끈. 괜히 아이까지 불쌍해 뵈는, 나는 지질한 오지라퍼. 아이를 진짜 생각한다면, 더 낫고 좋은 음식을 고민할 지어다. 

책은 말한다. “특히 아이들의 미각 교육에 힘을 쏟고 있다. 어려서부터 좋은 음식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아이들이 신선한 채소와 과일의 맛을 접할 수 있게 늘 시식회를 연다. 입맛이야말로 조기 교육이 중요하다.”(p.197)

영어? 수학? 조기 교육 말짱 필요 없는 것 갖고 힘 빼고 돈 처바르지 말고, 진짜 조기 교육을 해라. 미각 교육. 아이가 행복하길 바랐던, 처음을 기억하라. 지금은 나쁜 음식, 나쁜 먹을거리 천국이다. 정크 푸드니 패스트푸드니, 나쁜 음식이 창궐한다. 헌데, 이건 과거에는 떠올리지도, 생각하지도 못한 것이다. 음식을 향해 누가 ‘나쁘다’고 말한단 말인가. 생명과 영양의 원천인 숭고한 먹을거리를 향해 감히!

인간을 지탱시켜주는 고마운 존재이자 늘 좋은 것일 수밖에 없던 음식을 변질시킨 건 인간이었고, 인간은 먹을거리에 의해 위협을 받는 처지에 취했다. 부메랑 효과. 음식도 아닌 음식 비슷한 것들이 사람을, 세계를 좀먹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저널리스트인 마이클 폴란의 말을 인용하자. “음식 비슷한 물질 대신 음식을 먹어라.”
 




“가공식품은 식품의 다양성, 음식의 맛과 향미를 몰아냈다. 가공식품의 원재료인 옥수수와 대두가 엄청난 물량 공세로 밀어닥치면서 다른 식물들은 식탁에서 쫓겨났다. 가공식품은 가공 단계에서 본래 원료에 포함된 영양소가 없어지거나 감소된다. 또 다량의 식품 첨가물이 들어간다. 대부분 짜고 매콤하고 달콤한 맛이 난다.”(p.221)

#3. 《당신이 먹는 게 삼대를 간다》는 동물 공장 시스템에 대한 비판과 우려도 함께 전한다. 지금 대학살 당하고 있는 소, 돼지, 닭 등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수밖에 없다. 인간은 참으로 가혹한 존재다. 가령, 수평아리의 계생(鷄生)을 보자. 그는 달걀은 생산하지 못하고 사료만 축낸다는 이유로 태어나자마자 분쇄기로 향한다. 다시 강조하자. 태.어.나.자.마.자. 어떤 가능성도 차단당한 채 죽어가는 존재. 좀 더 근본적인 이유도 간단하다. 돈을 버는 데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미친 짓이다.

협소하게 건강만 놓고 따져도, 책은 이것은 좋지 않다고 말한다. “음식 속의 스트레스가 먹는 사람의 몸에도 전달이 된다”는 주장을 알려준다. 

책의 물음은 그래서 독자의 사유를 자극한다. 당연한 것임에도, 당연하게 떠올리지 못했던 것들.

“왜 우리는 사육과 도축 과정에서 불필요한 고통에 시달리는 동물들의 불행한 처지를 보고도 눈감는가?
왜 수천 년 동안 농약과 제초제 없이 먹을거리를 길러 왔는데 이제는 아닌가?
왜 우리는 가족이 살아갈 안전하고 건강한 환경을 기업에 헐값으로 내주는가?
왜 사람이 먹는 생명을 기르는 일을 단지 돈벌이 수단으로 보는 자들에게 맡기는가?
왜 우리는 소중한 우리의 어린것들을 살리는 생명의 밥상을 정체불명의 화학 밥상으로 바꾸려 하는가?”(pp.126~127)

다른 생물을 먹어야만 버티고 견딜 수 있는 인간은 참 후안무치에, 안하무인하고 몰염치한 존재가 됐다. 다른 생명에 대한, 자연에 대한 예의를 잊은 것이다. 다시 자신들에게 돌아올 것인데도, 사람들의 시야는 참으로 좁아졌다. 소를 먹든, 돼지를 먹든, 그것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그들이 구제역에 걸렸다고 무조건 학살을 시켜야한다는 주장 이전에, ‘돼지를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만들까’와 같은 생각을 먼저 해야 했었다. 고작 한다는 게, ‘어떻게 하면 돼지를 빠르게, 더 살이 많게, 더 크게, 더 싸게 키울 수 있을까’만 생각하니, 자본이 인간을 삼킨 것, 맞다.




미국 버지니아 주에 있는 방목 농장인 폴리페이스(polyface)의 ‘풀을 농사하는 사람’ 조엘 샐러틴의 말도 귀담을 필요가 있다. “미래에는 닭의 부리를 아예 없애는 유전자를 사용하거나 돼지의 스트레스 유전자를 제거한 뒤 더 좁은 우리에 돼지를 가둬 두는 일도 가능할 겁니다. 하지만 식물과 동물을 불경스럽게 보는 문화는 사람도 마음대로 조정하려 듭니다. 우리가 닭을 존중하는 것이 우리가 사람들의 사람다움을 인정하는 철학적, 윤리적, 도덕적 근간이 된다고 봅니다.”(p.159)

#4. 자, 우리의 지금 밥상을 보자. “출처를 알 수 없는 원재료에 식품 첨가물이 뒤엉킨 가공식품, 안전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유전자 조작 식품(GMO), 공장과 같은 대단위 시설에서 길러지는 가축과 그로부터 나온 육류, 농약과 화학 비료로 범벅이 된 과일과 채소 등이 우리 밥상을 점령했다. 그마저도 귀찮을 때는 전자레인지에 데운 인스턴트 음식으로 그저 한 끼를 때우는 데 그친다.”(pp.8~9)

고로 밥상은, 이미 시장이 됐다. 자고로 밥상은 하나의 세계요, 우주였다. 칼로리 이상의 정보와 언어가 있는. 산업 시스템은 그것을 지웠다. 이윤을 최대화하려는 목적에 생명과 음식은 외면했다. 저자이자 다큐PD인 신동화 PD는, 우리는 음식을 완성체가 아닌 원료로 보는 편견에 물들었다고 지적했다. 완전 동의한다.

“음식은 단지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과 같은 영양소의 기계적인 조합이 아니라 그밖에 아직 과학이 밝혀내지 못한 수많은 요소가 역동적인 상호 작용을 통해 협업하는 진화의 완성품으로 봐야 마땅하다.”(p.230)

음식을, 생명을 바라보는 시각을 다시 예전의 것으로 되돌려야 한다. 너무 멀리 와서 잊어버린 것을, 다시 머리와 몸에서 끄집어내야 한다. 나는 책에서도 언급된, 무척이나 유명한 이 문구를 믿는 편이다. 당신이 먹는 게 당신을 만든다.(You are what you eat.) 먹을거리가 발휘하는 힘에 대한 믿음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그것을 옳다고만 주장하는 건 아니다.

먹을거리와 음식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으면 좋겠다. 도시는 물론 농촌까지 산업화된 먹을거리 시스템이 장악한 지금, 그 공고한 시스템을 깨기 위한 시도에 나는 관심을 갖고 있다. 화학 물질에 대한 둔감증을 야기하고, 유전자 조작에 기를 쓰는 자본의 폭주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자본의 침이 고인 먹을거리가 화학물질과 GMO에 우리는 농락당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음식은 ‘생명의 양분을 공급해 주는 성찬(聖餐)’이 아니다. 음식은 제품으로 자리를 굳히면서 우리의 몸 자체도 시장이 됐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몸은 이미 자본의 식민지다.”(p.154)

#5. 책에서 가장 인상 깊고, 관심 있게 펼쳐본 테마가 ‘페어푸드’였다. 공정무역 커피를 다루는 나는, 생산자도 생산자지만, 그것을 향유할 수 있는 계층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하고 있다. 억지로 말을 붙이자면, 커피 민주주의. 또한 어떤 커피를 마시는가가 정치적인 행동이 될 수 있다. 거기에는 사회와 경제 구조, 정치의 방향을 결정하는 지점이 있다.

의무(무상)급식 논쟁도 넓게 보면 포함이 될 텐데, 음식을 놓고서도 벌어지는 계급 간의 마찰계수는 꽤나 높다. 무슨 말인고 하니, 소득불균형에 의해 나타난 먹을거리의 질적 차이가 결국 건강의 불균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경제적 하위 계층은 값싸고 질 낮은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는, 국가의 개념 상실 혹은 정신줄 놓기가 계속 이어지는 실정이다.

“한 사회의 시스템과 문화가 약해지고 무너질 때는 가장 약한 곳부터 영향을 받는다. 음식의 생산과 공급 시스템이 변하면서 생기는 부작용도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약한 사람들부터 공격한다.”(p.190)

내가 눈 번쩍 뜨인 장면은 이것이다. 저소득층이 많이 거주하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웨스트 오클랜드 지역에서 펼쳐진 굿거리 장단! 몇몇 청년들이 한적한 주택가 한쪽 공터 앞에 사무실 탁자 두 개를 잇대어 만든 채소 가판대를 연다. 이 가판대에선 신선한 유기농 제철 채소와 과일을 공급한다. 이들은 ‘피플즈 그로서리(people's grocery)’의 멤버들이다.

인근의 놀고 있는 땅을 빌려 도시 농업을 시작한 이들은, 좋은 음식은 단순한 먹을거리와 영양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정의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 피플즈 그로서리의 설립자인 브라함 아마디는 소외받는 사람들의 식생활이 새로운 사회 운동의 의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야말로, 푸드 저스티스, 음식 정의!

“음식은 건강으로 이어지고 건강은 행복한 삶과 직결된다. 이것이 바로 음식이 인간의 기본적인 인권이자 정의의 문제가 되는 이유라고 아마디는 역설했다. "음식 정의 운동은 인권 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건강한 식품에 대한 동등한 접근권에 관한 운동이지요. 생활 방식과 문화는 환경과 인간 모두의 존엄성을 지켜 주는 땅의 이용, 음식을 생산하는 방식과 직결됩니다."”(pp.197~198)

음식을 통해 우리는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 나도 그런 운동에 동참하고 싶다. 내가 만드는 커피가, 내가 손 댄 음식이 세상을 아주 조금이라도 덜 슬프게 만들 수 있다면 좋겠다.

“음식은 사람들의 건강만이 아니라 세상을 치유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운동은 음식을 맛있고, 순수하게 만드는 활동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우리가 구매하는 음식과 연결된 정의의 시스템을 되살리는 일이다. 먹을거리를 둘러싼 온갖 문제를 밥상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의 문제로 인식하는 일이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이 소득과 관계없이 건강한 음식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찾아 줄 수 있다. 음식은 인권이다. 현재의 음식 시스템은 저소득층이 살아갈 수 있게 건강한 음식을 공급하는 데 실패했다.”(p.198)

아마 공정무역 커피는 음식 정의를 완성하는 두 번째 기둥에 해당할 터인데, 농민에게 정당한 몫을 찾아주는 것에서 시작되는. 아울러 내 봄은 도시 텃밭, 베란다 텃밭과도 같은 생물과 함께 호흡하는 것에도 중점을 두고 싶다. 나의 카페, 우리의 카페 Soul 36.6 앞에 나는 녹색 생물이 자랄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마련해서, 그 생물과 이야기를 나누고 세계를 향해 페달을 함께 밟고 싶다.

책을 통해 거듭 다짐한다. 함부로 내 입과 몸을 학대하지 않도록 노력하자! 마음껏 먹고 마시자가 아니라, 삼대가 함께 먹고 있다, 라는 생각도 아주 가끔은 할 수 있기를. 생명을 위한 선택이다. 푸드 저스티스를 향한 작은 걸음이고. 그거 아니? 먹으면, 시를 짓고, 노래가 나오는 음식이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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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3월 3주

1. 박찬욱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작 영화 <스토커>, 시나리오를 <프리즌 브레이크>의 히어로죠. 앤트워스 밀러가 써 관심이 모아졌는데요. 주연 역시 콜린 퍼스와 니콜 키드먼으로 확정됐네요?

네, 박찬욱 감독이 할리우드 진출을 앞두고, 날개를 달 것 같습니다. 미국의 한 언론은 최근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쥔 콜린 퍼스가 박찬욱 감독, 니콜 키드먼과 함께 새 영화를 찍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박찬욱 감독측이 2, 3주 내에 공식발표를 할 것이라고 보도했는데요. 그야말로 좌청룡 우백호죠. 아카데미 주연상을 탄 배우들이 출연하는, 박찬욱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작인 <스토커>가 완성될 것으로 보입니다.

콜린 퍼스는, 이번주 국내에서도 개봉했죠, <킹스 스피치>로 올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요, 니콜 키드먼은 2003년 <디 아워스>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탄 적이 있습니다. 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출연했던 미아 와시코우시카도 함께 출연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2. 이 소식 역시 박찬욱 감독과 뗄 수 없는 얘긴데요. 스마트폰 필름 페스티벌, 단편영화제 치고는 이례적으로 많은 인원이 몰렸다고요?

박찬욱 감독은 지난 2월, 베를린 영화제에서 동생 박찬경 감독과 함께 연출한 <파란만장>으로 단편영화 경쟁부문의 황금곰상을 수상한 바 있었죠. 스마트폰으로 연출한 영화라 더욱 화제가 됐었는데요, 이 덕분에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영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습니다.

<파란만장>은 최초의 극장 상영 스마트폰 영화에 이어, 세계 최초로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한 스마트폰 영화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됐는데요. 국내에서도 스마트폰 영화제가 열리거나 열릴 계획입니다. 누구나 손쉽게 휴대폰을 통한 영화 만들기에 나설 수 있다는 장점 덕분인데요.  

최근 열린 한 스마트폰 영화제에서는 떠나간 첫사랑과 고양이를 비유한 민병우 감독의 <도둑고양이들>이라는 작품이 최고상을 받았는데요, 자신이 키우는 고양이를 배우로, 자취방을 세트로 활용한 이 영화의 촬영비는 총 20만원이었다고 합니다. 촬영 기간도 일주일이었다고 하네요. 민 감독은 스마트폰 영화는, 적은 제작비와 적은 인원으로 충분히 촬영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행사는 단편 영화제치고는 이례적으로 많은 인원인 470명이 몰렸고요, 영화학도 뿐 아니라 주부와 중학생도 참가하는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열기를 이어, 오는 4월28일 개막하는 전주국제영화제도 ‘JIFF 폰 필름 페스티벌’을 열고 작품을 공모하고 있습니다. 심사를 거쳐 선발된 작품은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중 공식 상영됩니다. 작품 공모는 3월20일까지 진행되고요, 기존 영화 형식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기획물로 스마트폰을 이용해 5분 정도 촬영한 영상물이면 출품이 가능합니다. 


3. 한국판 <오션스 일레븐>을 겨냥한 영화 <도둑들>, 캐스팅라인이 정말 화려합니다.

도둑들의 한바탕 놀이가 펼쳐졌던 영화입니다. <오션스 일레븐>. 할리우드 호화 캐스팅의 결정판이었죠. 국내에서도 이런 영화를 만날 수 있게 될 것 같은데요. 제목부터 한국판 <오션스 일레븐>을 겨냥했다는 냄새가 납니다. <도둑들>.

이 영화의 주요 배역에 쟁쟁한 이름들이 나옵니다. 김윤석, 김혜수, 이정재, 전지현, 김해숙, 오달수 씨 등. 이들이 출연을 확정지었다는 소식입니다.

연출은 <범죄의 재구성> <타짜> <전우치> 등으로 유명한 최동훈 감독이 맡았는데요. 마카오 카지노 특실에 보관된 ‘태양의 눈물’이라는 420억원짜리 다이아몬드를 훔치기 위한 한중 연합 도둑들의 행각을 담는다고 합니다. 최근 시나리오는 마무리됐고 오는 5월, 촬영에 들어갈 계획으로 알려졌습니다. 


4. 제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올핸 9월에 열릴 예정인데요. 서서히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는 것 같네요?

DMZ, 분단의 상징인데요. 이 DMZ를 콘셉트로 다큐멘터리영화의 가치를 재조명하면서 주목받는 영화제로 커 왔죠.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배우 조재현씨가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데요. 최근 유지태씨와 씨너스극장의 정상진 대표가 부집행위원장으로 선임됐습니다.


조재현 집행위원장은,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가 한국의 영화제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거라고 기대했고요. 올해 제3회 행사는 파주 출판도시 등 경기도 파주시 일원에서 9월22일부터 28일까지 열립니다. 

이들 부집행위원장 선임은 아시아의 대표 다큐멘터리영화제로 도약을 뒷받침할 수 있는 ‘실무형’ 부집행위원장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의미고요. 두 사람은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대한 열정과 전문성이 돋보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5. ‘한국 영화계의 살아있는 전설’이죠. 임권택 감독이 101번째 영화로 관객들과 만날 준비를 하고 있죠? 이번 주 박스오피스와 개봉작들도 함께 정리해 주시죠.

우선, 박스오피스에서는 UFO를 다룬 SF액션물인 <월드 인베이젼>이 개봉과 동시에 정상에 올랐습니다. 관객 45만명을 동원했고요. 이번주에도 예매율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이어 나탈리 포트만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 효과를 보고 있는 <블랙 스완>이 20여만 명이 들어오면서 누적관객 120만명을 넘어섰습니다. 예매율에선 4위로 약간 주춤한 상태고요.

3, 4위는 청장년층의 사랑을 다룬 영화들이죠. 임창정, 김규리씨 주연의 <사랑이 무서워>와 이순재, 김수미씨 등 쟁쟁한 배우들이 등장한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차지했습니다. 특히 노년의 사랑을 그린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누적관객 80만명을 넘어섰고, 이번주 예매율에서도 5위를 기록해 꾸준히 사랑받고 있습니다. 이어 애니메이션인 <랭고>가 5위를 기록했습니다.

이번주 개봉작을 보면, 한국 영화계의 거장들과 신예 감독들의 영화가 한꺼번에 선을 보입니다. 먼저 말씀하신 임권택 감독의 <달빛 길어올리기>는 100편의 영화를 채운 노감독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죠. 천년 가는 종이를 만들기 위한 이 이야기에는 노감독의 오랜 문제의식이 녹아있는 동시에 강수연, 박중훈, 예지원 씨 등 쟁쟁한 배우들의 열연이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또 이미 거장으로 올라선 감독이죠. 장률 감독의 신작 <두만강>도 선을 보였는데요, 탈북자 소년의 이야기를 통해 관객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줍니다.

신예 감독들의 작품도 대거 개봉했습니다. 놀라운 상상력을 보여주는 조성희 감독의 <짐승의 끝>을 비롯해서, 한국사회를 바라보는 젊은 감독들의 시선이 담긴 <간증> <집> <심도> 등도 선을 보였습니다. 옴니버스 영화인 <환상극장>을 통해선 독특한 감수성을 맛볼 수 있고요, 북한 아이들의 넉넉한 마음을 보여주는 <량강도 아이들>도 있습니다. 일본에서 활동 중인 최양일 감독이 유명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만든 <카무이 외전>도 선을 보였고요. 

이번주에도 아카데미 수상작들의 행진이 계속 되는데요, 올 아카데미 최고의 화제작인 <킹스 스피치>가 개봉했습니다. 좀 전에 말씀드린 콜린 퍼스가 신경성 말더듬증에 시달리는 영국왕 조지 6세역으로 남우주연상을 탔죠.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까지 휩쓴 감동적인 작품입니다.

또 <킹스 스피치>와 예매율에서 2~3위를 다투고 있는 작품인데요, 그림형제의 《빨간모자》를 재해석한 <레드 라이드 후딩>입니다. 게리 올드만의 호연을 볼 수 있고요.  

이밖에 시베리아 강제노동수용소에서 탈출한 수감자들의 실화를 그린 <웨이 백>, 오랜만에 만나는 해리슨 포드를 비롯해 다이앤 키튼, 레이첼 맥애덤스 등을 만날 수 있는 <굿모닝 에브리원>, 10대판 ‘미녀와 야수’라고 할 수 있는 <비스틀리> 등이 개봉했습니다.  




<스토커>는 아버지가 죽은 이후 삼촌이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뤘는데요, 뱀파이어 영화라는 얘기도 떠돌았으나 뱀파이어를 다루진 않는다고 하네요.

콜린 퍼스가 출연한다면, 의문의 삼촌 역을 맡게 될 것 같습니다. 이 삼촌을 맞닥뜨리는 소녀 인디아역으로 미아 와시코우시카가, 인디아의 어머니로 니콜 키드먼이 등장하게 될 것 같고요. 한때 두 사람 역으로 캐리 멀리건과 조디 포스터가 물망에 오르기도 했는데요, 지금의 캐스팅 조합도 결코 이에 밀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또 언급해 주셨듯, <프리즌 브레이크>의 주연, 우리에겐 ‘석호필’로도 알려진 앤트워스 밀러가 시나리오를 담당했는데요. 그는 <스토커>의 시나리오를 ‘테드 폴크(Ted Foulke)’라는 필명으로 썼는데요, 자신이 삼촌 역으로 출연하고 싶어 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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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퀴엠 - Requiem for a Dream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블랙 스완>의 히로인은 나탈리 포트만이지만,
숨겨진 히어로는 감독인 대런 애로노프스키가 아닐까.
지금은 없는, 종로의 코아 아트홀에서 내가 본 그의 첫 영화, <레퀴엠>.
그 때 받았던 충격은 상당했다. 흔들리는 스크린은 충격에 휘둘린 내 심정이었다. 


 


그나저나, 제니퍼 코넬리는 뭘 어찌해도 치명적이고, 아름답다. 여신, 맞다. 
'치명적 지성미'라는 그녀를 수식하는 말에 나도 한 표 보탠다.
 

중독된 당신에게 고함, 꿈은 죽었다!



<레퀴엠>은 ‘중독’된 인간들의 비참함을 때론 현란하게, 때론 고통스럽게 보여준다. 영상을 대면하는 동안 먹먹해지는 가슴은 감독의 의도인 듯하지만, 심장이 아래로 뚝 떨어지는 듯한 감정을 피할 수 없다. 피폐함이 밀려오고 갈증도 수반된다. 데뷔작, <파이>로 미국 독립영화계의 앙팡테리블이 된 대런 애로노프스키의 두 번째 장편인 <레퀴엠>의 원제는 <Requiem for a Dream (꿈을 위한 진혼곡)>.

중독된 자들의 추락사

<레퀴엠>은 중독된 인간들의 비극과 같은 꿈을 다룬다. 현대사회의 ‘중독’에 대한 가감 없는 표정과 뜨악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절망에 대한 보고서다. 중독이란 ‘늪’에 한발씩 다가서면서 파멸로 향하는 등장인물들의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현대사회의 빛과 어둠사이 간극을 접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중독의 이면에 존재하는 ‘결핍’까지.

<레퀴엠>은 도입부에서 아들과 어머니의 신경전을 통해 각자가 집착하는 -내면적 고통을 줄이기 위한 방편으로서- 중독을 한 꺼풀씩 드러낸다. TV다이어트쇼 시청이 유일한 낙인 어머니와 그 TV를 팔아 마약비용을 마련하는 아들간의 허무맹랑한 핑퐁식 공방은 차츰 외연을 확대하는 모양새다.

어머니, 사라(엘렌 버스틴)는 TV다이어트쇼와 다이어트약에 빠져들면서 환상에 빠진다. 아들, 해리(자레드 레토), 여자친구, 마리온(제니퍼 코넬리)과 친구 타이론은 마약과 본격적인 거래를 튼다. 그들에게 마약은 정신적인 만족뿐 아니라 폼나는 삶을 꿈꾸게끔 만드는 ‘무기’다. 그들은 불을 향해 뛰어드는 불나방이나 다름없다.

중독의 확장성은 놀랍다. 차츰 일상과 환상의 경계를 허물게끔 유도한다. 그 과정은 계절의 바뀜을 통해 드러난다. 뜨거운 여름의 뙤약볕은 중독을 향해 숨 가쁘게 달려가는 그들의 경쾌한 발걸음처럼 빠르고 희망적으로 채색되지만,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가을을 지나 겨울에 도달하면 그들은 만신창이가 된다. 결국 그들에게 ‘봄날’은 오지 않는다. 만물의 소생을 알리는 봄은 결코 그들에게 돌아오지 않을 계절로 망각되고 만다.

그 절망의 끝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희망, 꿈은 바로 여기에 있어’라고 간드러진 울림으로 그들 삶의 구심점이 됐던 중독은 단숨에 갈라진 목소리로 ‘카운트 블로’를 날린다. ‘이건 현실이 아냐’라고 거부하는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로 산산조각난다. 누구도 그들을 구원할 수 없다. 환멸로 가득한 시선만이 배회할 뿐이다.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는 능력을 상실한 그들에게 남은 건? 맞다. 결핍’밖에 없다. 사라에겐 좋았던 시절의 가족에 대한 공허함이, 해리는 꺾어져 버린 지난 꿈에 대한 상실감이 둥지를 틀었다. 마리온에겐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모의 애정이 결핍돼 있다.

한편으로 영화는 중독과 결핍, 파멸의 수순을 숨 가쁜 영상으로 표현한다. 관객이 흡사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한 강렬한 영상 메시지를 전파한다. 두 사람의 움직임을 반쪽으로 조각내고 하얀 가루, 동공의 숨 가쁜 움직임, 덜거덕거리는 이를 빠르게 교차 편집한 몽타주(감독은 이를 ‘힙합 몽타주’라고 명명했다). 편집은 정교하고 빠르다.

그러나 이 같은 현란한 스타일과 테크닉을 담은 화면이 영상의 기교로서만 존재하진 않는다.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인간 내면의 풍경을 극한으로 끌고 가면서 관객을 화면에 부착시킨다.

중독은 자기 증식한다



사라는 중독의 자기 증식과정을 적나라하게 토로한다. TV부터 다이어트, 약물로 이어지는 중독의 확대 재생산. 냉장고는 ‘변신괴물’이 되어 사라를 집어삼킬 듯 덤벼들고, TV다이어트쇼의 환영들은 스멀스멀 브라운관에서 기어 나와 사라뿐 아니라 관객을 혼비백산하게끔 만든다. 중독의 심화로 치닫는 계단을 통해 현대인이 맞닥뜨린 현실이 섬뜩하게 드러난다.


중독은 ‘소비’를 미덕으로 삼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연적인 산물이다. “소비하라, 그러면 너희들은 행복해질 것이다”고 무차별적인 공세를 퍼붓는 자본의 횡포는 이미 일상을 주무르고 있다. 일례로 자동차와 핸드폰으로 대변되는 한국 사회의 문명화는 인간 영혼과 맞바꿀 수 있을 만큼 준족의 발전(?)을 이룬 상태다.

헤로인, 코카인, 엑스터시 등 마약에 대해 ‘중독’이란 단어를 우선 떠올리지만 기실 꼭 그렇지만도 않다. TV, 음식, 과자, 섹스, 다이어트, 게임 등 버라이어티한 상품이 진열된 자본의 백화점은 일상 속에 깊이 침투해 있다. 중독이라고 느끼지도 못할 만큼! 무언가에 미쳐야 한다고 강요하고 자본은 끊임없는 소비를 통해 낙오되지 말 것을 요구한다. 즐기는 것을 넘어 집착과 의존의 단계로 점프하는 순간, 삶은 다름 아닌 중독과 마주대하게 되는 셈이다.

<레퀴엠>의 원작자이자 시나리오를 쓴 허버트 셀비 주니어는 “그러한 판타지의 뒤를 좇을 때 마음속에는 구멍이 생긴다.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해 인간은 무언가에 중독돼간다”라고 일갈했다. 구멍은 곧 결핍을 뜻하고 중독은 자연스레 결핍과 공존을 꾀하는 ‘자웅동체(雌雄同體)’일지도 모른다.

꿈이라고 자위하면서 더욱 집착하는 중독은 상품에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는 ‘대통령병’이라는 치유 불가능한 중독 증세를 보인 사람들을 보아왔고 ‘신용카드’란 이름의 병폐를 겪고 있다. 미디어를 가장한 중독성 전파는 여전히 횡행하고 인터넷도 자칫 잘못하는 순간 중독의 늪에 빠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놓고 있는 셈이다.





알게 모르게 어딘가에 중독돼 있을지 모르는 우리네 모습. 그 사실을 확인하려면 중독된 영상에 빠져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2004년 국정브리핑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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