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학기한글역주 - 동방고전한글역주대전
김용옥(도올) 지음 / 통나무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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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이 저물어 간다. 한 해가 저물면서, 특히 새로운 10년을 준비하는 이 때 꿈을 꿔보는 게 당연하다. 어제의 해와 오늘의 해가 다를 리는 없지만, 사람들은 새해에 떠오르는 해를 보며 맘껏 깊이 의지를 다진다. 그게 자기 위안이든, 자기 최면이든 상관없다. 그런 과정을 통해 우린 희망을 품고 오늘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거니까.  



 

2009년에 읽었던 책 중, 최고의 책은 뭐니뭐니해도 '논어한글역주'였다. 단순한 해석 차원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한국, 중국, 일본 석학들의 주석서를 꼼꼼히 파악하고 거기에 저자의 견해까지 달고 있다. 논어의 맛을 제대로 음미하게 해주는 해석서라고 할만하다. 그 뿐인가, 하나의 텍스트를 이해하려면 거기에 드러난 시대상까지도 면면히 살펴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까지 세세하게 다 보여준다. 그래서 논어는 캐캐묵은 연묵의 향이 아닌, 신선한 바람에 실려오는 봄내음과도 같은 은은한 맛이 있게 되었던 거다. 번역이란 때론 원본을 모욕하는 작업이기도 하지만, 이 책만은 그러지 않았다.  

우리가 흔히 읽고 있는 대학은 원래의 대학이 아니다. 원래는 예기 속에 있던 내용을 '사서'라는 기획에 따라 따로 단행본화 한 것일 뿐이니까. 하나로 뭉쳐진 내용들을 장으로 나누고 경으로 나눈 것은 송대 유학자들이었다. 그들은 새로운 중화 패러다임을 만들기 위해(불교에 대항하는 신세계 문명 운동이라고나 할까) 대학과 중용을 뽑아냈고 그걸 자신들의 '性理'의 체계에 따라 편집한 것이다. 우리가 지금 읽고 있는 대학이란 바로 이런 체계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진 新대학 인 것이다.  

당연히 번역을 하신다면 이 대학을 번역하실 줄 알았다. 지금까지 나온 번역서들은 모두 그러했기에. 좀더 추가한다면, 대학혹문까지 번역하는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도올 선생은 그런 상식을 깨버린다. 이 책이 新대학이라면 원래 대학의 모습을 찾아 그것을 번역하는 것이 더 의미 있겠다 싶은 것이리라. 이미 넘쳐나는 대학 번역본들이 있기 때문에 자신은 다른 번역본을 내시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바로 그것이야말로 '돈키호테식의 용기' 아니었을까? 늘 있는 길을 따라가는 건 쉽다. 모두가 걸어 반들반들 잘 닦여져 있으니, 맹목적으로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몇 십배 몇 백배의 힘이 들게 마련이다. 그런데 도올 선생은 바로  그 길을 가기로 한 거니까.  

하지만 나는 그의 용기를 사랑한다. '불가능한 꿈을 꾸고,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우고,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을 견디며 어느 용사도 감히 가려 하지 않는 곳으로 달려가고, 잡을 수 없는 별을 잡으려 하는 것이 진정한 기사의 의무, 아니 특권이다. -돈키호테-' 그의 용기가 바로 이 책 가득 담겨 있으니까. 이 책은 지금껏 대학을 보며 피상적으로 '격물-치지-성의-정심-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외워왔던 나에게 다른 지평을 열어주는 역작이었다. 그가 새로 만든 길을 통해 나도 새로운 대학의 길을 볼 수 있었고, 또 새롭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었으니까. 그의 용기가 가득 담긴 이 책을 통해 나도 한 걸음 더 걸을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었으니까.  

새롭게 떠오르는 해를 보며 누구나 소원을 빈다. 그 소원엔 자신의 이상향이 반영되어 있을 것이고, 어쩌면 전혀 가능성이 없을 지도 모르는 꿈을 꾸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런 것들이 우리를 살게 하고 좀 더 나은 나로 만들어 가는 것이지 않을까. 대학, 학기역주 또한 바로 그와 같은 가능성을 시험한 역작이다. 이 책을 통해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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