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시정을 더듬어
손종섭 엮음 / 정신세계사 / 1992년 12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알게 된 건, 교수님의 소개로 인해서 였다. "이 책을 읽으며 한시를 공부했는데, 여러모로 남는 것이 많더라. 한시에 관심이 있거나, 교양으로 읽고 싶은 사람들은 꼭 한번 봤으면 좋겠다." 바로 이런 말씀을 통해 알게 된 책이다. 그런데 처음엔 별로 흥미가 없었다. 그로 그럴듯이 한시에 관한 여러 책들이 많았었으니깐. 정민 선생님의 '한시 미학 산책'이나, 민병수 선생님의 '한국한시강해', '한국한시사' 등의 책이 있었다. 한시에 관한 책들은 이미 많이 있던 터였으니 그 말이 그렇게 의미있게 들리지 않았던 게 당연하다. 그러나 한시미학산책은 한시를 쉽게 풀어놓았으나, 한시 감상에 대한 깊이는 부족했던 게 사실이고, 한시강해는 시화를 수록해 놓았을 뿐 여전히 한시에 대한 깊은 감상은 없었다. 그게 한계였던 셈이다. 그러던 중에 교수님이 소개해주신 이책을 접하게 되었던 거다.

  이 책은 한마디로 완전 추천할만한 책이다. 한시를 깊이있게 공부하려는 사람에게나, 한문으로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사람에게나, 교양으로 한시를 읽으려는 사람에게나 두루두루 권할 만하다. 우선 한시 한 편을 들어 우리말의 어휘를 최대한 살려 해석해놓았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 겉들여지는 설명까지 읽고 있노라면 '내가 왜 지금까지 한시를 멀리하며 살았던가?' 하고 후회하게까지 만드니 말이다. 그 말 그대로다. 나도 지금까지 산문이나 경서는 나의 삶에 적용해가면서 읽고 또 읽었다. 그래서 장자라는 책을 좋아하게 되었고, 연암의 산문집에 푹 빠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유독 한시만은 그렇게 접근할 수 없었다. 하긴 내가 워낙 시를 싫어하긴 하다. 고등학생 때 정답만을 강요하는 詩 교육을 받은 터라 한시 또한 그런 접근을 했던 셈이니깐. 그렇게 어쩔 수 없이 공부하던 나였으니 한시 또한 그저 그랬던 거다. 그런데 이 책을 읽어보니, 한시 또한 지은이의 감성이 풍부하게 담긴 산문에 비견할만하지 않은가~ 이건 하나의 충격이었으며 하나의 발견이기도 했다. 시가 그저 유미문학의 한 갈래는 아니었다. 거기엔 작자의 현실 상황이, 그리고 시대를 관통하는 폭넓은 혜안이 같이 있었던 거였다. 이 책을 통해 그런 한시의 묘미를 볼 수 있게 되면서 한시를 보는 재미 또한 알게 되었다.

  한시는 결코 어려운 양식이 아니다. 그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많은 양식 가운데 하나일 뿐이며, 자신과의 대화의 한 양식일 뿐이다. '인생을 올바르게 사는 공부는 시를 짓거나 시에 접하는 일보다 더 함이 없으니, 그것은 그 때마다 은미한 깊은 곳에 내재하고 있는 참 자신과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 시의 본질이란, 우주의 생명적 진실이 정서적 감동을 통하여, 언어의 율동적 표현으로 조형된, 제2의 자연이며 인생인 것이다. (서문 中)' 이와 같은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시는 나와 별개인 어떤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이 드러나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이와 같이 좋은 책들이 많이 나오고 또 많은 사람에게 읽힐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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