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깊다 - 서울의 시공간에 대한 인문학적 탐사
전우용 지음 / 돌베개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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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전주에서 태어났고 여태껏 전주에서 살고 있다. 그런 내가 왜 하필 전주도 아니고 서울에 대해 관심을 갖는가?  뭐 긴 말할 필요는 없다. 그저 궁금했으니까~ 단지 그것 뿐이다. 더욱이 서울은 600년간 조선의 수도였으며. 지금 또한 남한의 수도이지 않은가~ 그러니 당연히 예전부터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서울에 첫 발을 내딛은 때는 20살 때였다. 목사님을 따라 이 곳 저 곳을 처음으로 다녀보았다. 그러나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대한 환상이 워낙 컸던 지라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전주의 확장판 정도라는 실망만 안고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워낙 제한된 공간을 짧은 시간에 보다보니 진면목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곁모습만 보고 이런 실망을 한 거다. 서울은 여전히 1년에 한 두번 놀러 가는데 그치는 그런 곳이다. 어찌 되었든 여전히 나에겐 미지의 세계와도 같은 곳이란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서울을 알고자 하는 마음에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다. 그런데 그 곳에서 살 수 있는 여건도 되지 않으니(하긴 막상 산다고해도 잘 아는 건 아니니까. 전주에서 28년을 살아도 이 도시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것처럼. 어찌보면 그 도시를 잘 안다는 것은 사람을 아는 것처럼 관심과 열정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수없이 서울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나 책을 통해 그 궁금증을 채워야 했다.  

  그렇게해서 고르게 된 책이 이 책이다. 서울에 관한 책들은 많지만 이 책의 제목이 맘에 들어서 골랐다. '서울은 깊다'지 않은가? 그 깊은 서울에 관심이 있던 나였으니, 그 제목에 반응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깊다'라는 서술어는 아주 다층적인 의미를 지닌다. 역사가 깊다는 의미도 될 것이고, 그 안에 다양한 의미와 내용이 담겨 있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또는 전혀 의외의 생각을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제목만 읽어보면 과연 책 내용이 무언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책을 펼쳐볼 수밖에 없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가진 제목이 되는 거다. 이건 혹 내가 내 자신을 소개하면서 '저는 ~~한 사람입니다'라고 규정하여 말하기 보다, '저는 깊습니다', '저는 오묘한 사람입니다'라고 하는 것과 같다. '저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라고 규정하면 어떤 책을 읽는지, 어떻게 책을 읽는지 등등 책에 관한 질문만 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규정하지 않으면 각자 관심 분야에 따라 다양한 질문이 나오게 될 것이고, 그에 따라 더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고가게 된다. 그게 알맹이 없는 이야기가 되었든, 진정 깊이 있는 이야기가 되었든 말이다. 바로 내가 이 책을 주문하면서 기대했던 부분이 그것이다. '깊다'라는 제목에 부합되는 책이길... 그래서 내용을 살펴보지도 않고 바로 주문했다.   

  솔직히 이 책이 오기 전까지 좀 불안했던 것도 사실이다. 서울 내의 주요한 공간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해석만을 담은 그렇고 그런 책이 아닐까 걱정되었다. 공간에 대한 역사적 사실은 왠만한 백과사전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으니까. 하지만 막상 도착한 책을 받고 나선 그런 걱정은 기우일 뿐임을 알았다. 책 자체가 잘 나왔다. 책을 평가하면서 책의 편집이나 가독성보다 내용을 중요시하게 된 지금이지만, 이렇게 깔끔하고 꽤 두꺼우며 한 장 한 장 읽고 싶게 만드는 책을 받을 때면 돈이 아깝진 않다는 생각이 아직도 든다.^^(그런 점에서 책편집 또한 하나의 예술이며 창작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내용은 더욱 훌륭했으니까.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 담겨 있었다. 과연 '서울의 시공간에 대한 인문학적 탐사'라는 부제를 달만하다. 공간을 탐구했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 깊게 스며 있는 인간의 속내, 그리고 그 안에 살던 사람들의 발자취를 그려냈다. 보는 내내 감탄을 금할 수 없었던 이유는 서울이 단순한 도시, 단순한 수도가 아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건 조선의 욕망이었고, 지금은 한국의 욕망이었다. 그래서 그저 한번 보고 넣어두려했던 나의 맘을 바꿨다.  

  청계천이 인공 개천으로 만들어지던 날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모두 그 곳에 갔다. 물론 그 대열엔 나도 끼어있었다. 자연 하천에 대해선 이와 같은 관심을 보이지도 않으면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이 곳에 대해선 관심도 많았고 그래서 불원천리하고 찾아간 거다. 그 땐 이런 볼거리들이 그저 좋았을 뿐이다.
인공 개천, 권력자의 향기가 깊게 배어있는 곳
 

  그 곳을 이렇게 보기 좋도록 만들어준 권력자에 대한 칭송을 하면서 말이다. 누구도 거기에 숨어 있는 이면을 들여다 보진 않고 숨쉴 수 있는 공간이 들어선 것에만 감사할 뿐이었다. "개천을 덮고 그 위로 고가도로를 놓은 것도, 고가도로를 헐고 복개도로마저 뜯어낸 것도 모두 권력이 한 일이다. 개별 도시 공간의 변천사는 어떤 의미에서는 특정한 공간에 대한 역대 권력의 변덕스러운 태도 변화를 추적하는 일이다. 물론 거기에는 권력의 배경과 기반, 행사 방식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이해하는 것도 포함된다.(190p)" 하지만 이 책에선 그 안에 들어선 어둑컴컴한 속내를 여지 없이 파헤친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통해 도시의 구조물들이 어떤 영향력으로 국민들의(백성들의) 느낌을 통제하는 지 알려준다. "농촌이 자연 경관에 지배되는 공간임에 반해 도시는 인공 경관에 지배되는 공간이다. (193p) 인공경관을 구성하는 건 사람이다. 그것도 권력을 가진 권력자. 하지만 그걸 단순히 미적 감각을 위해서나, 백성들의 편리를 위해 꾸미진 않는다. 거기엔 다층적인 의미가 있으니까. 청계천이 복개되고, 고가도로가 건설된 것에서부터 다시 개방되어 인공하천이 되기까지 거기엔 권력자의 향기가 깊이 스며 있다. 그런 예는 무수히 많다. 조선에 처음 등장한 '전차'도 단순히 국민들의 편리를 위한 탈 것은 아니었다. 거기엔 명성황후의 장례식을 상시 기억하게 함으로 권력 기반을 단단히 하려던 고종의 속내가 들어 있다. 물론 그게 국민들에겐 인지되지 않았다 할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그런 계획은 지금도 서울 지하철 1호 노선으로 남아 있고 말이다. 고로 서울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깊고도 깊은 곳이라 할 만하다. 

  이 내용은 이 책의 한 부분의 내용일 뿐이다. 병원이 어떻게 신성의 영역과 동일시되는지, 물장수나 무뢰배 등을 통해 서울이란 도시에 살았던 인간의 군상은 어떤지 알려주기도 한다. 도시와 인간, 그리고 그 안에 문화라는 이름의 치장된 권력의 구조 등등 너무도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난 고작 한 번 훑어보듯 읽어봤을 뿐이기 때문에 그 내용을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이 책은 제목만큼이나 깊이 파볼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는 점이다. 파면 팔수록 새로운 것이 나오는 우물처럼 이 책도 그와 같은 깊이와 폭넓은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의 문화적, 인문학적 성찰이 결코 허황된 내용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울은 깊다. 그렇기 때문에 서울에 대한 관심이 있거나, 도시를 통해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드러나는지 알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은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난 감히 말할 수 있다. '서울은 깊다' 그렇기 때문에 우린 그 깊은 우물과 같은 서울을 파고 파야만 한다. 그럴 때 한국 사람으로서의 나 자신을, 그리고 현대인들의 속내를 어느 정도 알 수 있고, 09년에는 좀더 나은 나를 계획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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