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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태의 스토리 철학 18
남경태 지음 / 들녘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누구나 세상을 살아간다. 그건 곧 누구나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 이상의 신념을 지니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종교적 신념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세상을 판단하며 사람을 판단할 것이다. 무종교인이라면 각 자의 이데올로기가 있을 것이다. 그걸 삶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미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왜 철학은 중요한 것인가? 세상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철학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을 때, 이미 철학을 가진 것이니 다른 철학을 지닐 필요는 없어진다. 그럼에도 왜 철학을 논해야 하는 것이며, 왜 번거롭게 철학을 탐구해야 하는 것인가? 물론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람 자체가 이미 자기의 한계 영역을 알고 그걸 넘어서려 노력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주어진 그대로의 삶에 만족하며 산다. 주어진 철학이 절대적인 참(진리)라고 생각하며 그걸 부여잡고 세상을 살아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게 끝이 아님은 분명하다. 평생 기독교를 저주하며 살아오던 사람이 임종의 시기가 다가오자 갑자기 기독교를 인정하는 등의 행동을 취하기도 하니 말이다. 그건 죽음의 공포를 벗어나기 위한 일시적인 방법일 테지만, 그의 삶이 지금껏 얼마나 허무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이런 삶의 허무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금껏 지녀왔던 철학의 담론을 새롭게 정립하는 것, 누군가가 어떠한 목적에서 나에게 줬는지도 모르는 삶의 철학의 한계를 넘어서 나의 삶을 내가 정의하고 살아가려 하는 것, 바로 그게 우리에게 철학이 필요한 까닭이다. 우린 지금껏 타인의 의지로 이 세상을 살아왔다. 하지만 이젠 우리가 내 자신의 의지를 명확히 알고 그 의지에 따라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바로 그 명확히 알고자 하는 의지 속에 철학에 대한 담론들이 들어 있는 것이다.
참고로 이 책은 강신주씨가 쓴 '철학, 삶을 만나다'와 같이 읽으면 좋을 것이다. 철학이 결코 삶과 동떨어질 수 없음을, 그런 철학이라면 전혀 무용한 것임을 두 책에선 나란히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왜 우린 무의식이란 것을 알아야 하는지, 왜 우린 인간이 지닌 철학들을 알아야 하는지 이 책에서 명확히 나와 있다. 그건 곧 타인을 이해하는 통로임과 동시에 나 자신을 이해하는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언제나 나 자신의 관점에서 타인을 정형화하려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나 같으면 저렇게 하지 않을텐데, 도무지 저 자식을 잘 모르겠어'라는 말들은 그런 정형화의 한계를 표현한 것이다. 홍상수 감독의 '해변의 여인'이라는 영화에선 사람의 형상을 아메바 모양으로 그린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을 볼 땐 몇 개의 점만을 찍어 삼각형, 사각형으로 정형화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혹 그 사람을 전부다 아는 것처럼 생각한다니, 그런 심각한 착각이 또 있을까. 바로 이런 소통의 문제로 인해 우리의 삶은 늘 고립되며, 나 자신 또한 내 스스로 고립시켜 가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형상이 아메바라 한다면, 우린 수도 없이 그 점들을 찍어봐야만 그를 어느정도 제대로 알게 되는 것이다.
삶은 신념의 문제이다. 며칠전 케이블TV에서 삼황신성교에 관한 프로그램을 방영했었다. 누가보아도 일반물인데 '신성수'라는 이름으로 십만원씩에 판매하고 있고 그걸 치유의 명약이라는 생각으로 아무 거리낌없이 산다. 우린 묻는다. 티비에선 그 물이 먹을 수조차 없는 물이라 방영했지만, 그걸 사람들은 사서 마신다. 우린 이런 사람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드는가?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지 않은가? 신념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그나마 올바른 생각들로 신념을 지닌 사람이라면 당연히 괜찮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 폐해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철학을 통해 나의 신념을 다시 재검토해 보는 게 필요하다 거다.
철학은 곧 내 삶에 대한 비젼을 탐구하며, 나 자신을 알고자 하는 노력일 뿐이다. 이 책을 읽고 그런 깨달음을 조금이라도 얻게 된다면, 이 책은 그 자체만으로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둔 책이라 할 것이다. 스토리를 통해 이야기를 하기에 지루하지도 어렵지도 않다. 하지만 너무 단편적인 이야기들이라 너무 짧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이젠 다시 '철학(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읽어봐야 하려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