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림의 시인을 찾아서 - 합본호
신경림 지음 / 우리교육 / 200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시인을 찾아서'라는 책을 얼핏설핏 본 적이 있지만, 그다지 읽고 싶지는 않았다. 우선 나에겐 시에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중고등학교 때 도저히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는 시들을 어떠한 감상법에 따라 외우고 외웠기 때문이다. 시가 중의성을 가지고 있을 때 시는 아름다울 수 있는데, 학교에선 정답만을 원했다. 이미 하나의 생각으로 정해진 틀에 따라 읽기를 바랬던 것이다. 그런데 난 불행히도 시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그런 공부방식에도 불만이 많았으니 시험 점수가 잘 나올리는 만무했다. 그런 악순환이 반복되다 보니깐 자연스럽게 시에서 더욱 멀어져 버렸다. 그런 나에게 시를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이른바 대학교에 들어와 러브레터를 쓰며 연애시를 인용해야 했던 것이다. 그 때 보았던 시들은 감수성을 날카롭게 세운 것들이다. 그래서 한번 읽을 땐 정말 내가 느끼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처럼 좋지만, 두번 세번 읽다보면 그렇게 유치하고 가벼울 수가 없다. 이른바 상업화된 '돈벌이가 되는 시'들의 한계였던 거다. 그 탓에 난 다시 시와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가볍게 감수성을 자극하며 쓰는 시라면 나도 백 번 천 번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이제 어느덧 내 나이 28살이다. 아직도 변변한 직장 하나 갖지 못한 '청년 실업'의 대표주자로 오늘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갈구하며 살고 있다. 어찌보면 내 생애에 가장 볼품없고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이 순간 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관점이 결코 하나가 아님을 안다. 그리고 지금의 이런 무수한 사유들이 나의 삶을 더욱 풍요하게 만들거라는 확신도 든다. 작년보다 올해가, 어제보다 지금이 더 즐겁고 행복하다면 그건 합리화일테지만, 나의 생각 속에 다른 방향들과 가치를 찾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감수성이 남다르지 않고 살아있을 때 다시 시를 접하게 되었다. 나의 전공상 한시를 주로 읽게 되었지만, 그 시들을 읽을 때 난해했던 건 역시 사람의 감수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하는 거였다. 그런 고민이 끝내 좀더 이해하기 쉬운 우리시로 이어졌던 것이다. 과거 사람의 시는 그 인식의 격차로 인해 어려웠던 거라면, 지금 사람의 시는 그나마 이해하기 쉬울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역시 맘에 쏙 든다. 물론 시들이 전부다 실린 것도 아니고, 전문이 실린 시는 몇 되지 않지만, 사람을 알고 시를 알고 삶을 알게 되는 그런 책이었다. 나와는 삶의 여건이나 환경이 다르지만 그 시인들이 시로 표현한 것들은 그들 속에 응어리진 삶에 대한 희구였던 거다. 바로 그런 응어리들이 같았다. 나 또한 그런 부조리한 삶에 대한 응어리를 몸소 느끼고 있고, 이 안에서 어떻게 내가 더 나은 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을지 고민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특히 도종환님의 '내 어릴 때 꿈은'이란 시는 나를 감동에 휩싸이게 했다. 내가 교사가 되는 꿈이기도 했지만, 단순히 직업적 교사가 아닌 삶을 나눌 수 있는 그런 교사를 꿈꾸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안도현님의 시들은 대체로 나의 감수성에 맞았다.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는 감동 그 자체였다. 시의 간결한 언어 속에 담긴 깊은 뜻이 맘에 들었다. 지금에 이르러 읽는 시는 확실히 학생 때 의무적으로 읽었던 시와는 느낌이 다르다. 그런 점에서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오히려 시인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찾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누구나 자기를 알기 위해 발버둥칠 것이다. 그런 고민을 할 수 있고, 더 나은 비전을 탐구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 크나큰 축복이다. 내가 중학교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첫 시간에, 화투에 유일하게 나오는 비광(오노도후) 이야기를 해준다. 꿈이 있고 희망이 있다면 그 삶은 결코 실패한 삶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다. 결국 그들에게 해줬던 이야기지만, 그건 내 스스로 나에게 던지는 메시지였음에 분명하다. 이 책으로 인해 시에 대한 기쁨도 찾고, 덩달아 나도 찾게 되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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