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2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들어서 회화에 대해서 관심이 많다. 내 주위에 미술을 하는 친구들이 많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 예전엔 그들을 보며 나와는 다른 관심 분야가 있을 뿐이라 별세계를 대하는 것처럼 느꼈으니 말이다. 하지만 미술 또한 인간의 궁극적인 감정을 풀어내는 것이라 했을 때, 미술이나 음악, 그리고 글쓰기는 닮아 있다. 내가 지금 이렇게 글쓰는 것 또한 결국은 나의 심정을 풀어내는 것이며, 누군가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심리가 숨어 있으니 말이다. 그런 까닭에 미술을 전공한 백진규라는 친구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히 회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미술사에서 '원근법'의 발명은 획기적인 사건이었다고 한다. 원근법을 발명함으로 미술은 좀더 현실과 가깝게 되었으며, 절대적인 관점이 아닌 개인 각각의 관점이 있음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솔직히 원근법은 가까운 것은 크게, 멀리 있는 것은 작게 그리는 것인데, 막상 볼 땐 현실과 똑같은 것이지만 그렇다고 그게 현실이라고 볼 순 없다. 현실에선 멀리 있는 나무라도 작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을 왜곡하면 사실처럼 보이고, 현실을 직접 표현하면 왜곡된 것처럼 보이는 아이러니) 원근법의 발명으로 회화는 한단계 업그레이드 된다.

  바로 이 책에서 주로 다루는 이야기는 회화 전통을 계승할 것이냐, 서양의 원근법을 도입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 또한 그런 거대담론과 함께 사랑이야기도 함께 전개된다. 딸을 곁에 두고자 하는 에니시테, 그리고 그 딸을 사랑하는 카라, 그리고 그 딸(형수님)을 사랑하는 하산의 숨막히는 사랑에 대한 열정이 함께 버무려진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내내 잘 모르는 터키식 문화 때문에 힘겨울 뿐이지, 이런 저런 엮인 이야기들로 재밌게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 누가 뭐래도 이 책의 이야기의 핵심은 미술적 관점에서 적대시하다가 서로 죽이는 사건이 일어나고 그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그 과정에서 펼쳐지는 미술적인 담론들은 하찮은, 거창한 듯 그렇게 흘러간다. 굳이 다른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라면 살인까지 벌어질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하찮은 이야기가 아니였기 때문에 그들에겐 살인까지 해야할 정도의 신념을 낳은 것이다.

  '몇 십년간 산에서 도를 닦던 스님이 무언가를 깨우친 후에는 왜 산에서 내려와 민중으로 들어가는가?' 라는 질문을 들은 적이 있다. 이 질문에 대해 각자 생각해볼 문제이다. 하지만 여기서 나오는 대답이 이 책을 읽는데, 그리고 그런 회화적 갈등을 풀이하는데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다. 좀 어려운 책이고, 지루한 책이지만 읽다보면 분명히 '아하' 하는 깨달음을 주는 책이다. 여러 문화를 접하고 싶고, 그림에 대해 남다른 생각들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한 번 정도는 읽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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