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임진난과 병호란의 양난을 겪은 조선은 심한 충격에 휩싸였다. 중국의 성리학을 제대로 계승하여 하늘의 이치를 물려받았다고 생각했던 '소중화'의식에 기고만장하고 있었는데, 오랑캐라 멸시하던 일본과 청에 의해 크나큰 아픔을 당했으니 말이다. 이 때부터 조선 지식인들은 생각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더이상 성리학의 무용함을 알고 그걸 대체할 새로운 사상을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 아니면 더 끈질기게 성리학을 고수하여 외세를 더욱더 배척해야 할 것인지 말이다. 이런 담론의 중심에 성리학 고수파의 송시열과 비판적인 견해를 지닌 윤휴가 있었다. 이런 논쟁은 얼마간 계속 되다가 끝내 성리학 고수파인 송시열이 승리를 거두게 된다. 이로써 지배층은 집권의 당위성을 드러내기 위해 '북벌론'이란 말도 그럴듯한 정책을 지지한다. 이것이 조선시대에 불어닥친 폐쇄&개방의 전초전이었을 것이다.

  19세기 조선말에 이르러서도 이와 같은 상황이 일어난다. 흥선대원군이 집권하던 시기, 우리는 제국주의의 침략을 받게 된다. 이 가운데 외세에 개방해야 하느냐, 아니면 우리 스스로 입지를 구축하여 일어서야 하느냐의 논의가 오고 갔다. 하지만 이런 논의 가운데 우리는 외세에 개방하기 보다 폐쇄를 하기에 이른다. 물론 여기엔 여러 이권들의 개입이 있었고, 순순히 흥선대원군의 일방적인 결정이 아니였음은 물론이다.

  이러한 사건들을 볼 때 지금의 시각으로는 당연히 양난 후에 성리학을 버리고 더 많은 사상체계를 배워왔어야 한다고, 19세기말엔 개방을 하여 일본처럼 메이지유신의 급격한 성장을 이루었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어느 시대의 이데올로기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그 당시엔 그 당시의 정황과 여러 이해관계가 겹쳐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런 논의조차 기피한다면 그대는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이기를 포기하시라.

  누군가 보기엔 참 하찮은 말장난처럼 보인다. 이를테면 역사를 볼 때 그런게 자주 느껴진다. 성리학을 가지고 아옹다옹하고, 예송논쟁을 통해 국세를 낭비하는 모습을 보면 참 쓸 데 없는 데 신경쓴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고스란히 지금 우리의 시각에 보는 논리일 뿐임을 잊지 말자. 그건 그 당시 사람에게 있어서 거부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그 하나의 판단을 통해 여러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로 이어졌으니 말이다. 그렇게 본다면 지금 우리가 이데올로기 운운하며 '김일성 수령'이라는 문구가 들어갔다는 이유로 남북이 합작하여 만든 책의 출판을 거부한다거나, 북한에서 남한의 애국가가 연주되는 걸 거부하는 것도 하찮은 싸움에 불과할 뿐일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처음부터 하게 된 이유는 이 책에서 얘기하고자 하는 바가 '하찮은 것 & 가장 중요한 것'에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을 읽는 내내 '참 하찮은 것 때문에 서로 죽이고 살리고 잘 하는 짓이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터키 특유의 미술적 회화를 계속 유지해 갈 것이냐, 아니면 서양에서 영향을 받은 원근법을 도입하고 서양화법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냐 하는 문제로 싸운다. 전자의 방식은 신의 권위에 합당한 화법으로 그걸 지속해 나갈 경우, 아무 정신적인 혼란 없이 예술을 할 수 있다. 후자의 방식은 선진화법인 서양의 화법을 도입하는 것인데, 여기엔 문제가 있다. 그건 즉 신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의 저주를 받지나 않을까 두렵다는 것이다. 이런 논의들이 상충하다 결국엔 사람을 살해하게 되는 일까지 벌어진다.

  이 책은 추리형식을 빌려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시점 또한 하나로 고정되어 있지 않고, 책에 등장하는 각 사람의 시점을 자유자재로 왔다갔다 하며 전개하고 신선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터키와의 문화적인 격차가 엄청나서인지 읽는 내내 답답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이 각자에게 어떤 책으로 남을지도 궁금하지만, 이런 문제 의식이 어떤 생각들을 불러 일으킬지가 더욱 궁금하다.

  새로운 느낌의 소설, 그리고 그림에 대한 생각들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책은 좋은 책이 될 것이다. 예술은 옛 것을 고수하고 발전시킴으로 이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끊임없이 외부적인 것과 만나고 변형함으로 형성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해볼 수 있으니 말이다. 예술 뿐 아니라, 우리 인생에 대해서도 그와 같은 물음은 많은 깨달음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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