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어 사전
남경태 지음 / 들녘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군대에서 후임이 자기 직책에 맞지 않는 행동을 했을 때, 흔히 '개념 없는~'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 솔직히 욕보단 품위가 있어 보이지만, 그 말만큼 위협적이고 무서운 말도 없다. 그건 곧 '어리버리하다'는 말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군대에서 얘기되어지는 개념이란 '얼마나 군대화 되었느냐?'하는 거다. 그래서 군대적 상식에서 벗어나는, 여전히 사회적인 행동을 할 땐 여차없이 저런 품위 있는 욕을 한다. 하지만 그 개념이란 게 얼마나 자의적이고 우연적인 것인지 당해본 사람은 그 억울했던 기억이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개념'이라는 말에 대해서 예전엔 쉽게 생각했었다. 사전에 나와있는 설명들이 곧 개념일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개념이 절대적인 진실이 아님을 알게 된 건 머지 않아서 였다. 무지개에 대한 사전적인 정의는 "공중에 떠 있는 물방울이 햇빛을 받아 나타내는 반원 모양의 일곱 빛깔의 줄. 흔히 비가 그친 뒤 태양의 반대쪽에서 나타난다. 보통 바깥쪽에서부터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 보라의 차례이다"라고 되어 있다. 흔히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배웠듯이 '일곱색깔 무지개'를 풀어서 설명한 것이다. 하지만 이 설명만을 안다고 하여 제대로 된 무지개를 안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눈을 들어 하늘의 무지개를 봐보자. 과연 일곱색깔인지, 그렇게 분명하게 일곱색깔로 분별할 수 있는지 말이다. 일곱 색깔이란 건 우리의 언어적인 약속에 불과하다. 다른 나라에선 무지개를 3가지 색으로 인지하는 곳도 있고, 15가지 색으로 인지하는 곳도 있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할 수가 있다. 개념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아무 것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바보가 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바보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바로 이 사전의 저자는 "누구나 개념을 객관적으로 사용하려 하고, 또 자신은 그렇게 한다고 확신해도 개념의 정의에는 그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선입견이 개재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특정한 개념의 의미를 알고자 할 때는 반드시 그 개념이 사용된 맥락 또는 이론 체계를 고려해야만 한다." 라고 말하고 있다.

  난 이 사전을 사전이라 부르지 않으련다. 물론 그런 기대를 가지고 읽었으며 그런 기대가 읽는 내내 충분히 확인되어 흡족했다. 이건 사전이기보다 인문학, 사회학, 철학, 과학의 종합적 보고서인 셈이다. 처음부터 사전(단어의 명확한 개념 규정)일거라 생각하고 이 책을 집어들었다면 다소 황당할 것이다. 하나의 개념을 설명하는 다양한 관점들을 여과없이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읽는 내내 자신이 알고 있던 모든 것들에 회의를 제기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회의가 든다는 건 결코 나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회의는 반성을 촉구하며 지금과는 다른 생각을 하게 하는 발전의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나 하나 새로운 국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사고력을 키우고자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붙들고 찬찬히 음미해보길 바란다. 쓰디쓰지만 어느 순간 달콤해지는 그런 순간이 분명 찾아올 거니까.

  남경태가 쓴 '종횡무진' 역사 시리즈를 읽고나서 정말 짜릿한 흥분을 느꼈기 때문에 이 책까지 옮겨오게 되었다. 그의 종횡무진 꿰뚫을 수 있는 혜안이 참으로 경이로웠기에 이 책 또한 그런 기대감에 집어들었다. 역시 이 책에는 '종횡무진' 역사 시리즈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모든 사상들이 맛깔나게 융합되어 있더라. 학문의 횡적 연대란 바로 이런 서술 방식과 탐구 방법을 일컫는 것일거다. 그런 학문의 횡적 연대에 대해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봤으면 한다.

  "놀이도 사랑과 마찬가지로 기술이 필요하다. 젊은 시절을 일로만 때운 사람들은 막상 그 일이 떨어져나갔을 때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런 비극을 예방하려면 일할 수 있는 나이에 반드시 놀이의 기술도 배워둬야만 한다.(호모루덴스 편 中)"

  공부가 놀이가 될 수 있다면 호모루덴스란 결코 특별한 명칭이 되지 않을 것이다. '개념 없는' 개념어 사전은 그런 면에서 탁월한 놀이 기구가 될 수 있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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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7-09-17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고3 딸을 위해 구입했는데, 항상 책상 위에 놓고 수시로 펼쳐봅니다.
제가 막연하게 생각하거나 명쾌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을 슬며서 펼쳐보면 딱입니다!

leeza 2007-09-17 21:57   좋아요 0 | URL
아주 멋진 책인 거 같아요. 두고 두고 읽으며 생각을 정리해도 좋을~

누에 2007-09-17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념없는..'이란 말이 그렇게 무서운 말이었군요.

leeza 2007-09-17 21:58   좋아요 0 | URL
무섭진 않죠^^ 왠지 귀여운 맛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