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철학 - 꿈, 깨어남, 그리고 삶
강신주 지음 / 태학사 / 2004년 8월
평점 :
품절


  이 책이야말로 백미이다. 강신주씨를 알게 된 건 다분히 그린비의 리라이팅 시리즈 중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이하 리라이팅 장자)'를 읽게 되면서부터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가 쓴 책들을 다시 찾아보게 되었다. 그랬더니 이 책이 눈에 띄더군. 리라이팅 장자가 대중이 읽기 편하도록 편집 되어 쓰여져 있다는 점에서 보면 이 책은 대중서와는 격이 다른 중후함이 느껴진다. 좋게 말하면 중후함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고리타분하다고나 할까. 그래서 읽기에 좀 꺼려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느낌이 있었지만, 이미 강신주씨가 풀어내는 장자의 매력에 흠뻑 빠졌던 터라 별거부감 없이 집어들게 되었다. 내용은 강신주씨가 쓴 박사 논문을 약간 수정한 것이란다. 그렇기 때문에 논문식의 딱딱한 문체로 쓰여져 있을 뿐 아니라, 주까지도 상세히 달려 있다. (솔직히 난 한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니깐, 원문이 달려 있는 이 책이 더 맘에 든다) 그런 까닭에 일반인이 보기엔 내용이 어려워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장자에 대하여 더 알고 싶은 사람이나, 이미 리라이팅 시리즈의 '장자'를 읽었던 사람이 이 책을 봤으면 좋겠다. 분명히 어려운 만큼 더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고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 그건 흡사 게임과도 같은 매력이라 할 것이다. 어려운 게임일수록 실패할 확률은 높지만 그걸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성공하게 된다. 그 때의 희열은 어느 것에도 비교할 수 없다. 나의 한계와 인내력을 넘어서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책도 또한 마찬가지이니, 특히 철학책들의 그 난해하고 이해 불가능한 문구들이 반복의 반복을 하면 어느 순간 하나의 줄기로 얽혀져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 순간의 희열은 게임을 통해 얻었던 그것 이상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어렵다는 건, 나의 생각을 뛰어넘는 어떤 것이거나, 나와는 너무도 다른 그 어떤 것이란 사실이다. 별 생각 없이 읽어도 술술 읽히는 책은 그 순간 순간 재미에 흠뻑 빠지게 될진 모르지만, 막상 다 읽고나선 별다른 감흥이 없다. 그건 이미 나의 생각과 같다는 것이며, 그만큼 유아적인 발상으로 쓰여져 있다는 것이리라. 하지만 어려운 책을 붙잡고 읽어보자. 읽는 순간 순간 갈등을 느낄지도 모른다. '하얀 건 종이고, 검은 건 글씨네...'하면서 투덜투덜 댈지도 모른다. 그런 인내 속에 끝장까지만 다 읽게 된 것만으로도 다 읽었다는 뿌듯함이 드는데, 그걸 읽고 또 읽어 어느 정도 하나의 커다란 사유의 틀에서 이해하게 된다면 그 기쁨은 과히 어떨지. 각자가 그런 기쁨을 몸소 느껴보며 독서의 즐거움을 경험해보도록 하자. 의식이 자란다는 건 겉으로 드러나는 건 아니지만, 세상을 보는 안목이 생기게되며 세상의 풍파에 감정이 휩쓸리지 않게 된다. 이렇게 말하니깐 철학이 무슨 정신 수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내면의 수양을 통해 세상과의 소통능력을 키워나가도록 하는 것이 바로 철학의 존재 이유일 터이니까.

  이미 리라이팅 장자가 나 자신의 비움과 소통의 문제를 다룬 것을 읽은 사람이라면 이 책도 쉽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 또한 그 주제들을 다루고 있지만, 박사학위 논문답게 학술적으로 본질적으로 치밀하게 탐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책은 더 강도 높은 철학적 탐구를 요구하기에 리라이팅 장자가 쉽게 느껴졌던 독자에겐 도전할만한 책이 될 것이다. 나 또한 이 책을 읽으며 만만치 않다는 걸 몸소 느끼며 한 고비 한 고비를 넘는 희열로 이 책을 읽었으니 말이다. 예전엔 소통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다. 비로소 리라이팅 장자를 읽으면서 소통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몸소 느끼게 되었다. 당연히 난 '역지사지'의 정신만으로 남을 잘 이해할거라 착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역지사지의 정신에 늘 내 정신이 들어 있었으니 문제이다. 나의 생각으로 남의 정신을 제단한다는 것, '己所不欲 勿施於人(내가 하고자 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말라)'라는 유교적인 생각으로 남을 판단하는 것이 문제란 이야기이다. 타인을 나의 관점에서 이해하려 하다보니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하다. 물론 좋아하고 싫어하는 바는 같을지 모르나, 그 본질에 들어가면 모두다 각자의 개성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 모든 나의 관점에서 판단하려 하다보니, 어느 순간엔 '쟤가 왜 저러는지 정말 이해 안 가. 나 같았으면 저러진 않을텐데' 라는 정죄까지 하게 되는거다. 진정한 소통이란 나란 관점을 날카롭게 세울 땐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지사지'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나의 기존 관념들과 편견들을 비워내는 것이다. 이런 소통에 관한 일화는 '송나라 사람이 가발을 파는 이야기'와 '조삼모사의 이야기', 그리고 '왕이 새를 길러내는 이야기'를 통해 들려준다. 

  소통의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좋은 참고서가 될 것이다. 어떻게 철학이 하나의 치유제가 될 수 있는지 이 책을 읽으며 맘껏 느껴보길 바란다. 그렇게 세상과의 소통을 이끌어낼 수 있을 때, 나란 존재를 넘어서 타인과 맘껏 소통의 장을 펼칠 수 있을 때 우리의 삶은 전혀 다른 삶의 모습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까닭에 장자의 글들은 묘한 매력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가 알기 쉽도록 풀어낸 강신주씨 또한 대단하고 말이다. 다음에 시간이 난다면 장자란 텍스트를 연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부쩍부쩍 드는 요즘이다. 나중에 맘적인 여유가 생기면 장자와 함께 소유욕을 즐길 수 있으리라. 그 땐 또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될지 기대된다. '장자가 된 이자'를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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