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교육과 거짓말
노암 촘스키 지음, 강주헌 옮김 / 아침이슬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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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덧 벌써 거의 17년이란 시간동안 교육의 굴레에서 살아가고 있다. 감히 교육과 인간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를 통한 교육을 받게 되고 죽을 때까지 누군가를 통해 무언가를 끊임없이 배운다. 그런 배움의 절정은 학교라는 기관에서, 누구나 ‘학생’이란 신분으로 배우게 되는 시기일 것이다. 그 시기에 사람들은 육체적 성장뿐 아니라 정신적 성장(가치 정립)까지 이뤄지기 때문에 그 때 어떤 교육을 받았느냐 하는 것이 한 개인에게 있어, 또는 그 개인이 소속된 사회에 있어 대단히 중요하다. 나 같은 경우 17년이란 시간동안 학교 교육을 받아오면서 지식을 넓혀간다는 생각만을 가지고 있었기에 선생님의 한마디, 한마디에 대단히 순종적이었다. 애국가를 외우라고하면 당연히 외웠고, 무언가 교칙에 어긋난 행동을 하게 되면 만인의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고분고분히 행동했으며, 친구들은 늘 한결같이  부모님이 차로 태워다 주는데 나만 힘겹게 걸어다니더라도, 그 친구나 국가를 원망하기보다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성공해야겠다는 생각만을 했었다. 그 땐 선생님이란 존재가 한없는 경외감의 대상이었기에, 그 분 말씀에의 순종은 으레 당연한 것이었으며, 학교라는 곳 또한 열심히만 공부하면 어느 정도의 신분 상승이 가능한 곳이라 여겨졌기에 최선을 다해서 공부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나 또한 교육 주입을 통해 비판적 사고나, 비교적 사고를 할 수 없는 ‘우물 안 개구리’일 뿐이라는 자각을 하게 되었다. 이 책에 따르면 선생님이란 존재는 귀족주의적 사회의식을 학생들에게 주입하며, 귀족주의적 요소를 각종 과목을 통해 자연스레 받아들이도록 강제한다는 것이고 학교 또한 가르침을 통한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안목을 키워주기 보다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복종과 순종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쯤 되어 내가 지금까지 알게 모르게 받았던 교육들을 되짚어 보니 그럴 수도 있겠거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전에 들었던 예들만 살펴보더라도 애국가의 암기는 국가에 대한 은근한 충성의 강요이며, 교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사회질서에 대한 순종의 강요이며, 나와 잘 사는 아이에 대한 묵인은 ‘열심히만 공부해 그러면 너도 저 아이 부럽지 않게 더 부유해질 수 있어’라는 말처럼 뜬구름식 교육이 안겨준 허구적 희망이다. 이러한 교육에 대한 자각이 예비 교사를 꿈꾸고 있는 나에게 있어 많이 부담스러운 것 또한 사실이지만, 뭔가 확실하고 옳은 것을 알아가는 것이기에 뿌듯하기도 하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나의 고정관념과도 같던 사상 속에 어떠한 혼란들이 자리하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줄곧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사회라는 교육을 받으며 자라왔으며, 능력에 따라 자본의 양이 다르고 사는 모습도 제각각인 귀족주의(자본주의) 사회의 모습을 눈으로 보면서 자라왔다. 그런 배움과 현실 속에서 민주주의와 귀족주의는 같은 것, 또는 같이 병행되어야만 하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던 기억이 난다.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10년 넘게 살아왔는데, 촘스키는 그런 나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고 꼬집어 준다. 바로 그런 생각 자체가 학교 교육을 통해 가지게 된 고정관념일 뿐이라는 얘기이다. 그 얘기에 따르면 민주주의와 귀족주의는 같은 것도 아니며 병행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인데 그렇게 얘기를 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제퍼슨은 “귀족주의자는 ‘국민을 두려워하고 불신하는 사람들로, 모든 힘을 국민에게서 빼앗아 더 높은 계급에게 몰아주려는 사람들’이다”라고 했으며 “민주주의자는 ‘국민과 모든 것을 함께 하면서 국민을 신뢰하고, 공존의 이익을 정직하고 안전하게 떠맡아줄 존재로서 국민을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들’이라 얘기했다. 이 인용문만 놓고 보더라도 귀족주의와 민주주의가 어떤 점에서 현격한 차이를 가지는지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귀족주의에서의 국민은 기득권자들 위치, 기득권자들의 이익을 위해서만 필요한 존재이기에 그 시간 외엔 방관자(傍觀者)로 머물러 있어야 한다. 국민들의 주체성으로 인한 간섭과 충고는 그들의 안락한 위치 유지와, 쉽사리 얻게 되는 이익 증대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하여 민주주의에서는 국민을 함께 공존해야할 주체로 여기기에 자기들의 위치 유지보다는 서로 잘 사는 것에, 자기들의 이익보다는 국민들의 이익에 초점을 맞추어 일을 한다. 이러한 현격한 차이점 때문에 민주주의와 귀족주의는 같이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촘스키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민주주의자가 될 것인가, 귀족주의자가 될 것인가? 후자의 길은 쉬운 길이며 제도권이 그에 대한 보상을 약속한 길이기에 어느 정도의 부가 보장되는데 반해 전자의 길은 투쟁과 패배의 길이어서 힘이 들고 쉽사리 발걸음을 옮기기 힘들지만 결국은 새로운 시대정신이기에 더욱 큰 보상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이다. 당신 같으면 쉽고 편한 길로 갈 것인가, 어렵고 힘든 길로 갈 것인가?

  위에서 얘기했던 민주주의, 귀족주의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으로 느낄 수도 없는 형이상학적인 것이다 보니, 나와는 너무도 요원(遙遠)한 철학정도로 느껴졌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귀족주의자들로 인해 부익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이 더욱 고착화되고 심화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기에 단순히 나와는 너무도 머나먼 얘기라 하며 흘려보낼 수만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 더욱 큰 충격을 안겨준 발언은 바로 뭣뭣주의자의 선택 따위가 아니었다. 바로 우리의 의식 가운데 귀족주의를 당연시하게 만들고, 귀족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도록 입김을 불어넣어준 사람들이 바로 우리가 흔히 스승이라 얘기하며 존경해 마지않았던 ‘선생님’이란 사실이다. 서두에서도 잠깐 언급했다시피, 과목 하나하나에 귀족주의적 사상을 실어놓고서 그걸 아이들에게 조금씩 주입한다. 그런 교육을 받는 아이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떠한 선택의 여지도 없이 조금씩 귀족주의자들로 길러지고 있는 것이다. 며칠 전에 언뜻 TV를 보니 , 일제 치하 시대에 여학교 선생님이었던 한 할머니께서 그 때 제자들에게 정신대에 가도록 종용했다고 하면서 땅을 치며 눈물을 흘리시면서 후회하고 있는 모습이 나왔다. 이와 비슷한 예로 여러 가지가 있지만 몇 가지만 들어보자면,  일제치하 시대에 남학생들에게는 강제징용에 찬성하도록, 군사 독재시대에는 군부에 대한 저항이나 반항보다는 무조건적으로 충성하도록, 현시대에는 불평등한 부의 편중을 자기의 실력 부족으로 인정하도록 그렇게 교육해왔다. 바로 국가 권력자의 하수인 역할을 선생님들이 해온 것이다.(이 말이 올곧게 세상에 저항하며 나름대로의 참 교육관을 펼쳐온 선생님들까지 폄하하는 듯해서 송구스럽기에 여기에서 얘기하고 있는 선생님들은 그저 일반론에 의거한 선생님들임을 밝힙니다.) 그러한 선생님들 밑에 귀족주의적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그대로 사회에 배출되었기 때문에 이 사회는 여전히 귀족주의적 사회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교육에 대한 맹신이나 순종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비판적 시각으로 교육이란 것을 보게 되니, 교육을 통해 강제되고 억압되었던 많은 예들을 대할 수 있었다. 아마도 나 또한 교사가 되려고 맘먹지 않았다면, 이러한 교육의 폐해를 깨닫지 못했을 것이고, 누군가에게 여전히 귀족주의적 가치관만을 주입시켜주고 있었을 것이다. 교육은 다른 사람에게 더 큰 지식을 준다는 순기능만 가지고 있지 않고 그 권력층에 대한, 기득권층에 대한 권력 유지, 이익 추구의 묵인(당연히 그러려니 하는 생각)을 주입하는 역기능도 있다. 이러한 사실이 크나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지는 까닭은, 내가 단순히 누군가로부터 교육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 아니라, 누군가를 가르쳐야 할 입장에 언젠가는 서야하기 때문이다. 만약 나 또한 지금까지의 교육이란 미명하의 역기능을 모른 채 누군가를 교육시킨다면, 그들에게 여전히 귀족주의를 전파하는 꼴 밖에 되지 않았을 것이기에 생각만 해도  아찔하고 두렵기까지 하다. 그렇게 되기 전에 조금이나마 교육의 순기능, 역기능에 대해 알게 되어 정말로 다행이다. 이젠 나의 교육관을 제대로 정립하여 귀족주의가 아닌 민주주의를 제대로 전파할 수 있는 그런 교사가 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내가 올바른 민주주의 가치관을 가지고 그런 민주주의를 전파해줌으로써 제자들이 올바른 민주주의 의식을 가진다면, 그래서 그런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인다면, 이 사회는 진정한 민주주의가 꽃 피는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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