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 그 사이의 한국 1895~1919
앙드레 슈미드 지음, 정여울 옮김 / 휴머니스트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그리고보면 우리가 무언가를 받아들인다는건 참으로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도 문제가 되는 것이 늘 신중함을 기반으로 한다면 과연 좋다고 할 수 있는 지식조차 제대로 받아들이게 될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린 그런 신중함을 갖추기 전에 무한한 편견들과 고정관념들에 노출되었다. 학교에 다니면서부터 자연과 결별하였고 단어화된, 그리고 분과화된 지식을 하나의 진리인양 받아들였으니 말이다. 요즘 와서 이런 것들에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의 그런 편견들이 우리 삶을 얼마나 병들게 하는지 몸소 보았기 때문이다. 굳이 먼 곳에서 예를 들라면 북한의 주체사상을 들 수 있을 것이며, 가까운 곳에서 예를 들라면 기독교가 가진 편견들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주체사상과 종교적 신념을 어떻게 하나로 묶었으냐고 따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본질에 이르면 하등 다를 바가 없기 때문에 난 같이 논하는 것이다. 그 둘은 자가증식력을 가지고 있어서 한번 받아들이고 나면 일체의 비판이나 이성적 판단이 중지된다. 그것이 나의 삶의 기반이나 되는 양 그것을 음훼하는 사람들이 나오면 '이단'이라며 마녀 사냥을 하는 것이다. 과연 옳은지 그른지, 그것 말고 다른 것들로 나의 삶을 좀더 윤택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아야 하지만, 그게 하나의 삶의 의미이자 신념이 되는 순간 우린 거기에 함몰될 뿐이다.

  지금까지 특정 종교나 사상을 가지고 이야기 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 또한 별반 다를 바는 없다. 각자의 신념과 편견들에 따라 세상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두에 학교에서 배운 것 조차 우리의 삶을 멍들게 하는 파편들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 것이고...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이를 테면 우리의 출발선에서부터 잘못되었다. 지동설이 일반화되기 이전엔 당연히 천동설을 받아들였다. 바로 그 천동설을 기본 지식으로 알고 세상을 판단하고 그 안에 나의 행동을 정립하려고 하니 어찌 큰 문제가 아니겠는가. 출발점이 어긋나면 그 결과는 꼬이고 꼬이게 마련이다. 그렇기에 우린 지금까지 '지식. 정말로 옳은 것'이라 판단했던 모든 것들을 돌려 놓아야 한다. 아니 의심해볼 수 있어야 하며, 그 해답을 찾되 최초의 편견에 따라 맞춰가기보다 새롭게 정립해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바로 어렸을 때 자연과의 소통을 통해 몸에 익혀진 감각으로 진실을 알아나갔던 것처럼 그런 자세로 임해야 한다. 현대인들은 나침반이나 인공위성에서 쏘아준 데이터 분석을 통해 바다에서 자기 위치를 안다고 한다. 기계를 통하지 않으면 자기의 위치조차 모르는 그런 존재가 현대인이다. 그런데 미개인들이라 불리는 그들은 바다에 배를 타고 나가면 바닷 바람의 내음과 물색 등을 관찰함으로 거기가 어딘 줄 안다고 한다. 최초의 순수했던 신체로 돌아간다는 건 바로 이런 열린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 책은 그간 논의 되었던 '국가'라는 개념, 그리고 '국민'이라는 개념, 우리 나라 영웅으로 불려지던 인물들의 실체를 해체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내가 서두를 저렇게 길게 이야기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바로 그런 개념들을 하나의 진리인양 받아들였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집어들고 읽는내내 꽤나 혼란스러워하며 '이단서'로 규정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좀더 열린 마음, 지식을 통해 진보한 신체가 아니라 자연과의 감응을 통한 신체를 만들자고 한 것이다. 

  나는 한국인이다. 하지만 이것이 나를 구속하는 무엇이 될 순 없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은 주거민으로서의 관점이지, 이것을 통해 내가 규정된다는 이야기이진 않다. 우리가 버려할 것 중에 가장 큰 것은 '단일민족'이라는 의식이다. 단일민족이라는 폐쇄적인 민족의식은 우리를 하나의 순응체로 만드는 기제일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민족 공동체이기 이전에 하나의 자유로운 신체들이다. 하나의 구속점은 순간의 안정감을 보장할진 모르지만 곧 나의 모든 것을 통제하며 억압하는 것으로 돌변한다. 그렇기에 우린 이런 단서를 달아야 한다. '나는 한국인이다. 그건 내가 태어난 곳이 한국이며 내가 지금 살아가는 곳이 한국이라는 이야기이다'라고 말이다. 한국이라는 테두리 안에 정착되어 있지만, 그 테두리 안에 함몰되지 않으려는 마음, 바로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중화주의의 해체는 곧 우리의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계기가 되었다. 종교를 믿던 사람이 그 종교의 신을 벗어나 주체화하려면 자의식이 싹튼다. 과연 나 혼자서 이 세상에 맞설 수 있을까 하는 문제부터 난 무엇 해야하는가 하는 자의식 말이다. 그렇듯이 우리 나라 또한 중화주의의 해체를 통해 우리는 운명공동체라는 단일민족이라는 민족 의식이 싹튼 것이다. 물론 그런 민족의식을 고취시킨 것은 우리 스스로 소중화를 자임했던 그 의식마저 깨졌기에 가능했기도 했지만, 일본이 유도하기도 했다. 일본과 맺었던 불평등 조약의 일조는 '독립국으로써의 주권행사' 이다. 언뜻 보면 우리 나라의 주권을 인정해준다는 좋은 소리로 들릴 테지만, 그 안엔 음모가 똬리를 틀고 있다. 바로 중국과의 결별을 통해 일본이란 제국에 편입시키고자 하는 음모 말이다. 바로 민족이란 허구 담론의 출발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왠지 모를 생각들이 머리 속에 가득 피어오르곤 했다. 좀 더 쉽게 말하면 방망이로 맞는 듯한 통증 같은 것이기도 했고, 꽤 민족이란 허구담론에 관해 생각하며 살아왔다고 했지만 그것마저도 하나의 편견에 불과하다는 사실에 답답했기도 했으니 말이다. 이젠 우리의 편견들과 고정관념을 과감하게 해체시킬 때이다. 특히 가슴에 활활 타오르는 열정을 지닌 젊은이라면 더더욱 그래야 한다. 취업 열풍이란 것에 휩쓸려 자기 정체감을 상실하고 국가주의의 하수인이 되기를 자처하기 보다 깨어있는 의식과 열정으로 늘 자기 존재를 곱씹으며 발전적인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이 책이 그런 각성제가 될 것이며, 새로운 가치로 재정립할 수 있도록 유도해 줄 것이다.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느낄 것인가? 마음의 준비가 된 그대여, 과감하게 이 책을 집어들고 맘껏 사유의 장을 펼쳐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