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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아시아의 힘
KBS 인사이트아시아 유교 제작팀 엮음 / 예담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하나의 글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수도 없이 변한다. 이진경씨는 그런 변화를 일컬어 '모든 텍스트는 그 외부의 주름이다'라고 했었다. 시대 상황에 따라 하나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거들떠 보지 않는 책이 되기도 한다. 또한 읽는 개인개인에 따라 동일한 문맥에서 전혀 다른 느낌을 가지게 된다. 즉, 하나의 완결된 책 조차 읽는 사람에 따라, 그리고 그 사람이 처한 상황에 따라,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내용이 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는 근대화를 이루면서 유교를 망국의 원인으로 치부하며 배격해야 할 전범으로 몰았다. 그래서 근대화 초기엔 서양 문물만이 최고의 가치이며 지금까지 우리가 믿어왔던 모든 것들은 허무맹랑한 것이 되었다. 그런 생각이 박혔기 때문인지, 지금 우리도 서양의 것만을 좋게 생각하며 우리의 것, 그리고 우리 고전의 것에 대해선 평가절하 하나보다.
바로 그런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는 우리이기에 이 책은 남다른 것으로 다가온다. 왜 100년간 무시하며 살아왔던 유교를 이 시점에 되돌아 보자는 것일까.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고 외치던 책들을 읽으며 유교를 벗어던져야만 나라가 잘 될거라 생각했던 우리들에게 전혀 새로운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일까.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기에 앞서, 과연 유교가 버려야 할 정도로 형편 없는 사상인가 하는 것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동양이 서양에 비하여 과학기술이 뒤쳐짐으로 제국주의의 피해자가 되었다고 하여 그 모든 폐해를 유교 하나로 몰아가는 건 솔직히 억지 논리의 성격이 강하다. 여러 원인들을 하나로 귀결시키는 건 어리석은 짓이니 말이다. 동양의 인문문화와 예에 관한 성찰에 관해 서양인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다. 유교 사상의 이성성은 이미 서양에서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서양에 패할 수 밖에 없었던 까닭은, 자연을 정복하는 대상이 아닌 공존해야할 대상으로 느낀 데에 있다. 서양에서의 극도의 과학의 발전은 자연의 정복과 세상에 대한 정복욕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동양의 유교는 수신을 통한 세계와 함께 즐거움을 같이 즐길 줄 아는(여민동락) 사상을 지니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 다른 사상의 배치로 인해 동양은 서양에 정복당할 수밖에 없었다.
우린 동서양의 가치 차이를 생각도 하지 않고, 서양에 졌다 하여 동양의 모든 것을 거부하고 서양의 것만을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서양의 좋은 것을 받아들여서 얻은 것은 무엇인가? 물론 그 덕에 돈이 많은 나라의 대열에 낄 수 있었다. 하지만 단지 그것 뿐이다. 우린 자연을 공존할 대상이 아닌, 정복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게 되었으며, 경쟁이란 미명 하에 나 외의 타인들에 대해 넘어서야 할 장애물로 여기게 되었다. 자연과 타인에 대한 극도의 적대감, 그게 서양의 근대가 우리에게 남긴 자취이다. 이런 적대감을 넘어서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바로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다시 유교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그 안에 어떤 해법들이 실려 있고 그걸 어떻게 현대 사회에 적용할 수 있을지 하는 것들이 책에 자세히 나와 있다. 사람의 길로서의 仁, 경제의 길인 義, 존경과 사람사이의 윤택한 관계인 禮, 그리고 학문의 길인 智 이런 사단을 통해 그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미 방송을 본 분이라면 몰라도, 보지 않았거나 유교에 대하여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읽어봤으면 좋겠다. 책 또 깔끔하고 칼라사진도 다수 실어 있어서 재밌고 쉽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텍스트는 외부의 주름이다. 과연 그 주름들에 나의 어떤 생각을 담을 것이며, 그 생각을 어떻게 이 세계에 풀어낼 것인가? 그런 모든 가능성이 그대에게 달려 있다. 맘껏 그 가능성을 펼쳐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