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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신 - 신은 과연 인간을 창조했는가?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한음 옮김 / 김영사 / 2007년 7월
평점 :
최근 '화려한 휴가'란 영화를 통해 5.18이 재조명을 받고 있다. 개인적으로 광주민주화항쟁에 관심이 많았던터라 새삼 역사를 되집어가며 볼 수 있었다. 그걸 보고 나서 '강풀 만화 26년'을 봤다. 그것 또한 광주민주화항쟁을 다룬 만화이다. 감히 하지 못했던 한 사람에 대한 정죄, 그걸 꿈꾸며 26년을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었다. 그걸 보면서 놀랐던 사실은 그들의 그 악에 받친 모습이 아니었다. 바로 그 옆에서 그를 경호하던 경호실장의 모습이 나를 당혹케 했던 것이다. 경호실장 또한 5.18에 투입된 계엄군 중 한 명으로 죄없는 시민을 죽였다는 사실에 자살까지 감행하며 결국 타부대로 전근가게 된다. 하지만 그와 같은 경험을 했던 동료는 자신이 사살한 후손들을 찾아 사과를 하려했던 반면, 경호실장은 그 모든 것을 합리화하기에 이른다. 이를테면 그의 모든 행동이 타당한 역사였다고 합리화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기의 그 사살 또한 합리적인 행동이 될 뿐이다. 그렇게 되면 죄책감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그 역사라 지칭했던 인물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게 된다.
인간이 얼마나 이성적인 동물일까? 과연 내가 지금까지 믿어왔던 것들이 지극히 타당한 것이었을까? 하는 질문을 수도 없이 던져봤다. 난 기독교인이었으니까. 그런 테두리 안에서 진리를 찾으려 한참 방황했다. 지금까진 성역이라 여겼던 기독교적 가치나, 성경에 대해서 의심해보려하지도 않았으며 그걸 진리로 여긴 채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그렇게 하나의 가치에 휩싸여 살아갈 수록 맘은 편하긴 하지만, 내 삶은 한정되기 마련이다. 사람을 만날 때, 가장 처음 관심 갖는 것은 이 사람이 기독교인이냐, 아니냐 하는 것이었다.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곤 했지만, 그 사람이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되면 좋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꺼려지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그렇게 나의 기본이 기독교란 사상으로 근거지어지고 나만의 테두리를 만들고 있었던 거다.
'만들어진 신' 여기에 공감할 수 있냐, 없냐 하는 문제는 지극히 개인에게 달린 문제일 것이다. 나 또한 기독교라는 종교란 테두리에 갇혀 있을 때엔 감히 의심해보지 않았었으니까. 그 때 이런 제목의 글을 봤으면 '참 세상 말세네'하는 생각만을 하며 거들떠 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최고의 진리인 성경만을 굳게 믿으면 되지, 굳이 그걸 생각할 필요 따윈 없다. 그게 바로 절대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런 절대진리에 대한 확신과 위에서 이야기한 경호실장의 '합리화' 사이에는 별다른 차이점이 없다. 자기가 믿는 그대로 자기의 삶은 살아진다. 하지만 그게 잘못된 좌표를 정하고 가는 것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서 한번정도는 자기의 생각들을 되집어볼 필요가 있다. 과연 나의 믿음이 제대로 된 믿음인지? 나의 신념이 올바른 것인지?
종교는 후세에 들어선 것임에 확실하다.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온 것은 100년 전이다. 그렇다면 그 백년 전에 예수를 믿고 싶어도 믿을 수 없었던 우리의 선조들은 다 어디에 갔을까? 천국에 갔을까? 지옥에 갔을까? 성경이 진리라면, 그건 예전부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라 믿는 오류 때문이다. 성경 66권은 시대가 거듭할 수록 누적된 결과물에 불과하다. 그리고 외경이라는 성경의 잔해물 또한 존재한다. 이걸 어디 봐서 하나님의 말씀이라 할 수 있는가? 인간의 결과물일 뿐이지. 종교는 자연에 대한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함 때문에 생긴 것일 뿐이다. 그럼에도 기독교의 문제는 인간의 성악설을 주장하며 그런 나약함 속에 죄악마저 넣었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이 힘으론 하나도 할 수 없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만 일을 할 수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인간의 긍정적인 가능성을 부정적인 무능으로 치부한다. 그래서 어떤일이 자기 뜻대로 되면 하나님의 도우심이라 인정하며 이뤄지지 않는다 해도 하나님의 뜻이거나 나의 신앙이 부족하다는 식으로 생각한다. 이성적인 판단은 전혀 없고 신앙적인 책임전가만 있을 뿐이다.
이젠 좀 더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이 책이 이단서라고 치부하며 지나치기보다 한번 정도 읽어보자. 그리고 이런 반론을 통해 종교라는 본질을 살펴보자. 그렇게만 된다면 분명 그 종교를 넘어선 인간의 가능성과 긍정성에 공감할 수 있으리라. 그럴 때 진리, 비진리의 이분법이 깨지며 자유로운 신체가 되어 세상을 더욱 활기차게 아름답게 살 수 있을 것이다. 붓타는 말했다. '오직 날개의 무게로 가는 새처럼 가라'라고 말이다. 일체의 관념이나, 신념으로 날 옭아매는 순간 나의 무거워진 몸은 땅으로 쳐박힐 수 밖에 없음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