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승이여

고추장 작은 단지를 보내니 - 연암 박지원이 가족과 벗에게 보낸 편지 ㅣ 참 우리 고전 6
박지원 지음, 박희병 옮김 / 돌베개 / 2005년 5월

  이 책은 연암집에 있는 편지들 외에 최근에 발견된 편지들을 국역하여 싣고 있다. 국역된 내용과 그 내용에 대한 부연 설명, 그리고 원문을 싣고 연암 서간문의 특징에 대한 고찰을 하고 있다. 그렇기에 연암에 관심이 있거나 한문학사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보아도 무관할 것이다.

  나는 연암에게 사숙한 사람이다. 200년간의 세월의 터울이있지만, 맹자가 공자를 사숙하여 하나의 굵직한 학문의 영역을 구축했듯이 나 또한 그로부터 감발 받은 바가 많다는 이야기이다. 그의 문장들은 고문이나 금문으로 편협한 글쓰기 체제를 벗어난 제 3의 길을 모색한 그런 주옥같은 문장이었다. 그 당시에 천편일률적으로 흐르던 고문 위주의 모방적 풍조를 벗어났다는 사실이 날 흥분하게 만들었지만, 그 시대의 테두리를 벗어나 관망할 수 있었던 그의 사유 능력이 나에게 큰 충격을 준 것이다. 아직도 그의 글들을 따라 가기엔 나의 사유의 폭이 좁지만, 머지 않아 그렇게 될 날도 기대해 본다.

  바로 이 책은 그런 연암에 대한 관심으로 읽게 되었다. 연암집에 실리지 않은 편지들이 있다고 해서 관심이 끌렸다. 거기에 원문까지 실려 있으니, 나에겐 금상첨화~~ 거의 큰 아들인 종의에게 보낸 것이다. 거기에 종채나 처제에게 보낸 편지들도 간혹 끼어 있다. 열하일기에서 보던 그의 품채 좋고 세상의 기류에 얽매이지 않는 모습이 이 편지들에선 간혹 희석된듯 보인다. 한층 인간미 넘치는 모습이랄까. 이 편지들이 쓰여진 때는 그의 말년에 집중 되어 있으며, 마지막으로 공무원으로 공무하던 시절이다. 그렇기에 세파를 등지고 자유로운 사유를 펼치던 그 전 시절과는 달라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며, 나이 또한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약간 서글퍼졌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나의 잘못된 편견에 불과할 뿐이었지. 연암을 인간이 아닌 신적 존재로 만들어버린 나의 소치일 뿐이었지. 연암은 그의 손자인 종의의 아들을 끔찍하게 사랑한다. 일반적인 할아버지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또한 정조가 내린 편찬 작업에 대한 고심을 하며 박제가나 처제에게 도움을 청하는 장면이 있다. 그런 장면들을 통해 그의 글이 천재적 소질로 일필휘지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 고심과 고심 끝에 탄생한 것임을 볼 수 있다.

  연암, 그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을 뿐이다. 그렇기에 고심도 하고 고민도 하며, 가난에 치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명문을 남겼다는 사실이 나에게 희망을 준다. 다산이 강진 유배 시절 놀라운 업적을 남겼듯, 박지원에게 있어서 그런 결핍이 반작용을 일으킨 것은 아닐까. 연암, 그는 나의 스승이다.